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거짓된 안락을 위하여
작가 : 고래고래몬
작품등록일 : 20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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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케이조보 가(家)의 그 도련님
작성일 : 17-06-05     조회 : 248     추천 : 0     분량 : 4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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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엘은 수업을 마친 뒤, 나랑 간단하게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본관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차로 30분이 걸리는 별관으로 가야했다. 그런데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유타는 유독 말이 없어지는데, 전에 한 번 이에 관해서 물어봤을 때 아이는 그저 힘없이 웃었다.

 

 

 [수업이 많이 힘들면 하루쯤 쉬게 해달라고 사토시 님께 말씀을 전해볼까요?]

 [아…. 아뇨, 아뇨. 전 괜찮아요. 그냥 조금 피곤해서 그래요, 요엘.]

 [유타 님께서 언제든 쉬고 싶을 때 말해주세요.]

 [걱정해줘서 정말로, 정말로 고마워요.]

 

 유타는 고개를 푹 숙였지만, 빨개진 두 귀가 눈에 띄었다. 유타는 내가 예의상으로 하는 걱정의 말에도 저렇게 민망해하고 고마워했다.

 

 [요엘이 제 곁에 있어줘서 진심으로 다행이에요.]

 

 문득 유타가 고개를 들어 나를 올곧이 올려다보며 말했다. 적막한 차 안에서 아이의 다정한 속닥거림이 유독 크게 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홍조를 띈 채 아이는 눈꼬리를 접으며 말갛게 웃었다.

 

 어쩐지 아이가 애처롭게 보였다. 고용인들에게서 외면을 받는 아이가 거의 외부인에 해당되는 내게 정을 갈구하는 모습이 내게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 부담은 곧 죄책감이 되어 날 짓누르기 때문이었다.

 

 [네.]

 

 나는 짧게 대답하며 고개를 돌려 창문에 들어오는 경치를 보았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아이의 머리를 쓰담을 것 같은 손을 세게 말아 쥐었다. 시선이 뒷목에 향하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묵묵히 눈동자를 창문에 고정시켰다.

 

 오래도록 머물던 시선이 사라지자 나는 그제야 주머니에 있던 수첩을 꺼내서 열어보았다. 나는 유타의 하루 일과가 정리된 수첩을 가지고 다녔는데, 아이가 무슨 수업을 언제 듣는지 다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능력 자유 허가실’.

 별관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국가는 이능력의 무분별한 남발을 통제하기 위해, 일부 장소 혹은 특정 상황에서만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허가증을 주었다. 사유지에 이 허가증을 준 게 다소 의아했지만, 케이조보 가(家)가 그만큼 영향력이 있다는 걸로 해석하면 납득이 되었다.

 

 [가서 이능력을 허용치 이상으로 쓰지 말고 오세요.]

 

 그리고 유타는 매일 이곳에 가서 이능력을 최대 출력치 이상으로 쓰고 와야 했다. 수업을 끝마치면 아이가 항상 내게 업혀서 차에 태워야 할 만큼.

 

 나는 여전히 아이를 돌아볼 수 없었지만, 결국 한마디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의 죄책감을 덜기 위함이었다.

 

 [요엘.]

 

 그때, 내 새끼손가락을 따뜻하게 쥐는 작고 보드라운 손이 느껴졌다. 아주 천천히 마디를 감싸면서 혹시나 내가 내칠까 망설이는 그 떨림마저 세세하게 알 수 있었다. 그 작은 온기가 어쩐지 내 눈가를 시리기 만들었다.

 

 아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겨우 그 작달만한 손에서 전부 알 수 있었다.

 

 ***

 

 이능력 자유 허가실에서 유타는 8시간을 보내야 했다. 총 8층으로 구성된, 창문 하나 없이 폐쇄된 거대한 건물은 왠지 모를 위압감을 주었다. 그리고 건물로 들어갈 수 있는 3m는 족히 되 보이는 거대한 철문 앞에서 유타는 망설임 없이 앞으로 향했다.

 

 오로지 홍채 인식 잠금장치로 되어 있는 게이트를 열고 들어가는 이는 오로지 유타뿐이었다. 나는 게이트 앞에서 아이를 기다려야 했다.

 

 들어가기 전 유타는 나를 돌아보더니, 내 품에 안겨들었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나는 아이를 밀지도 끌어안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두 팔을 들고 있는 자세로 멍하니 있었다.

 

 [괜찮아요.]

 

 유타는 나를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햇빛 아래에 유타의 새하얀 머리카락이 조각난 달빛처럼 보였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건 유타임에도, 아이는 오로지 나만 걱정하며 괜찮다고 속삭였다.

 

 ***

 

 하늘이 새까만 어둠에 뒤덮였다. 게이트 앞에 털썩 주저앉아 읽던 미리 챙겨온 교재와 노트는 더 볼 필요도 없었다. 시간을 보기 위해 손목시계를 확인해보니 어느새 저녁 10시였다.

 

 그리고 무거운 철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게이트가 열렸다. 나는 다급하게 일어나 달려 나갔다. 검은 양복을 입은 자가 나를 보더니 업고 있던 유타를 내게 넘겨주었다. 나는 유타를 빠르게 끌어안으며 안색을 살펴보았다.

 

 유타가 핏기가 없는 입술만 달싹거렸다. 신음을 내뱉으며 아이는 식은땀을 연신 흘렸는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투명한 피부는 푸른 핏줄이 선명하게 보였고, 마치 경련처럼 아이는 몸을 들썩였다.

 

 [본관에 도착하면, ‘센죠’에게 데려다 놓아라.]

 [이능력 수업… 은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겁니까?]

 [사토시 님께서 자네에게 그것까지 알 권리를 주지 않았다.]

 

 남자의 냉정한 목소리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일단 유타의 상태를 회복시키는 게 중요해 나는 아이를 조심스럽게 등에 업혔다. 그리고 차로 얼른 뛰어가 뒷좌석에 눕히고 내 다리에 유타의 머리를 올려놓았다.

 

 그러자 유타가 크게 허리를 휘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작은 등을 웅크리며 두 손으로 입을 막고는 쉴 새 없이 기침을 하던 아이의 등이 파르르 떨렸다.

 

 [아, 아파….]

 

 유타가 젖은 눈으로 나를 보았다. 항상 어른스럽게 내색하지 않고 참던 아이가 처음으로 울면서 아프다고 말한다. 나는 숨을 멈추었다.

 

 […유타 님?]

 

 입을 막던 유타의 두 손은 피로 흥건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유타를 품에 세게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유타를 치료할 능력 따위 내게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아이를 끌어안고 공포를 같이 이겨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최근 일주일 간 늘 겪는 일이었지만 여전히 유타의 이런 모습을 보는 건 겁이 났다.

 

 ***

 

 본관에 도착한 나는 서둘러 이곳의 주치의인 센죠가 있는 방으로 뛰어갔다.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자 그는 당연한 듯 돋보기를 내려놓고 손짓했다. 조심스럽게 아이를 침대에 내려놓자마자, 센죠는 가라앉은 눈으로 날 보더니 말했다.

 

 [오늘은 좀 심각하니 이만 나가보도록 해.]

 [아뇨. 유타 님께서 정신을 차릴 때까지 만이라도 여기에 있겠습니다.]

 [자네가 그럴 필요가 없어.]

 [제 임무는 유타 님께서 어떤 위협도 받지 않도록 곁을 지키는 겁니다. 그러니 떠나지 않겠습니다.]

 

 센죠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리더니 쇳소리를 내며 내게 단호하게 말했다.

 

 [마약을 써야 해. 그러니까 그만 나가있어.]

 [마약이요…?]

 [이 상태는 저번과는 다르게 ‘자가 치료 활성제’로는 안 통해. 신체 세포를 파괴시켜서 최대 출력치 이상으로, 아니 신체가 무너져버릴 때까지 이능력을 썼어.]

 

 센죠는 대충 대답하며 문을 열고 나를 세게 밀어냈다.

 

 [오늘은 기다리지 말고 그냥 가서 잠이나 자. 이건 오늘 하루로 치료가 끝날 것 같지 않으니까.]

 

 쾅, 소리가 나는 문 앞에서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센죠가 말한 ‘자가 치료 활성제’란 신체의 내부 면역 체계를 일시적으로 증강시켜 스스로 몸을 회복하는 능력을 늘리는 약이었다. 유타는 지금까지 그것을 먹고 열이 떨어질 때까지 있다가 잠을 자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것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나는 센죠의 말과 다르게 문 앞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문 앞에 기대어 앉아 유타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여전히 내 손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떨렸다.

 

 [제발.]

 

 그러나 새벽의 여명이 뜰 때까지 유타는 나오지 않았다.

 

 ***

 

 삼일 뒤, 나는 오랜만에 유타를 깨우러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센죠의 치료를 받아야 했기에 유타의 일정은 전부 취소되었고, 나는 아이의 얼굴을 그동안 볼 수 없었다.

 

 나는 알람을 끄고 대충 씻은 다음에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검은 양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바로 옆방에 있는 유타의 방으로 가 노크를 했다.

 

 [유타 님, 요엘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아침잠이 많은 유타는 늘 그렇듯 답이 없었다. 그래서 평소처럼 문을 옆으로 밀고 들어가려 했다.

 

 [요엘!]

 

 갑자기 허리를 붙잡고 달려들 듯 안기는 아이로 인해 뒤로 넘어져버렸지만.

 유타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고 나를 여기저기 살피기 시작했다.

 

 [다쳤어요? 다치면 안 되는데! 진짜 미안해요, 요엘!]

 

 뒤통수에 느껴지는 알싸한 고통에도 눈물방울을 매달은 채 올망졸망한 눈으로 나를 보는 눈길에 결국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담을 수밖에 없었다.

 

 [괜찮습니다.]

 

 유타는 잠시 멍한 눈으로 내 손길을 받더니 이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더니 내게 폭삭 안겼다.

 

 [너, 너무해요….]

 

 뭐가 너무한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아침 먹어요, 유타 님.]

 

 유타의 배에서 울리는 작은 밥 시계 알람은 정직했다. 그러자 유타는 거의 우는 소리를 내며 내게 너무하다고 연신 종알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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