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번과 같은 게이트에 도착했을 때, 유타는 잠금장치에 자신의 눈을 가져다 대었다. 홍채 인식이 완료되었다는 기계음과 함께 묵직한 게이트가 열렸다. 그리고 유타와 함께 그곳으로 들어가자 빛이 하나도 없던 복도에 하나씩 전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오, 유타 님 아니십니까?]
그리고 복도 끝의 마지막 전등이 켜졌을 때, 한 남자와 그 뒤로 서른이 넘는 사내들이 서있었다. 남자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눈치챘다.
[이런, 이런. 일부러 마중 나왔는데 그런 표정이라뇨.]
남자가 걸을 때마다 왼쪽 팔소매가 덜렁거린다는 것을.
그리고 남자가 우리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제야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아.”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남자는 어머니로 인해 팔을 하나 잃었던 자였다. 남자의 차가운 눈동자가 정확히 나를 향하자, 그는 비죽 웃었다.
[아. 유타 님을 보호하는 자가 나를 병신으로 만든 년의 딸이라뇨.]
동시에 억지로 묻어놓았던 기억이 재생되었다. 붉은 피가 흩뿌려진 가족사진이 걸린 액자, 그리고 바닥. 붉은 색. 붉다. 온통 붉어진다. 시야가 붉은 바다로 차올랐다.
[이것 참.]
[거기까지 해라, 덴.]
[기분이 개 같네요.]
남자의 입술이 귀 끝에 닿을 것처럼 소름끼치도록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그날의 악몽. 그날의 지옥.
분노로 인한 것일까. 공포로 인한 것일까.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었다.
[요엘.]
그때 손아귀에 작은 힘이 나를 붙잡았다. 그러자 꿈에서 깨듯 나는 밭은 숨을 내뱉었다. 굳은 목을 돌려 아이를 내려다보니,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나를 마주 보아준다. 그래. 아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눈을 세게 감았다 떴다. 붉은 바다는 가라앉았다.
머릿속이 차가워지자 눈앞의 상황이 어떤지 또렷하게 보였다.
남자의 뒤로 서른은 족히 넘어 보이는 자들이 서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이능력자일 것이다.
[일단 7층으로 가도록 하죠. 뭐… 굳이 저같이 유능한 자를 전투 요원 같은 곳에 처넣은 것은 불유쾌하지만 사토시 님의 명을 따르긴 해야겠죠.]
[먼저 요엘을 8층에 데려다 놓고 오겠다.]
[크으, 여자를 챙기는 배려심이라니. 눈 뜨고 못 보겠네요. ‘유타’ 님, 내숭을 아주 잘 부리시네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유타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무시했다. 그러자 덴은 뒷머리를 긁더니, 옆의 벽면 쪽으로 가 위로 올라가 있던 손잡이를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묵직한 무언가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가 멈추자 매끈한 벽인 줄 알았던 부분이 반으로 갈라졌다.
벽면 안에는 족히 50여 명은 탈 수 있는 커다란 승강기가 있었다. 안으로 모든 인원이 들어가자 승강기의 문이 닫히고 느리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승강기의 위쪽에 층수가 나타나는데, 붉은 빛으로 숫자 8이 써지자 문이 열렸고 요엘은 나를 데리고 나가려 했다.
[그나저나 오늘 장난 아니게 능력을 써야할 텐데.]
[…….]
[오늘 새로 ‘그것’을 만들어야겠네요.]
낄낄거리는 웃음이 뒤에 울려 퍼지자 유타는 잠시 멈추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유타는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그럴 일 없다.]
승강기의 문이 닫히자 반으로 열려있던 벽면도 다시 닫히기 시작했다. 그 벽면이 닫히자 유타는 어둠 속에서 벽면을 더듬거리듯 만지더니 다른 곳에 비해 튀어나온 부분을 눌렀다. 그러자 순식간에 공간은 빛으로 가득해졌다.
[바닥이 무너지지 않을까요?]
유타에게 그렇게 물은 이유는 이곳은 온통 유리로 된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승강기가 있던 벽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져 아래로 보면 7층이 전부 보이는 구조였다.
[지난 30년 간 그런 적 없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요엘.]
[유타 님을 믿어도 되는 거 맞죠?]
내 의심 섞인 말투에 유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푸스스 웃었다.
[유리를 만드는 에스퍼와 경화 능력을 가진 에스퍼가 합작으로 만들었으니 요엘이 막 뛰어다녀도 전혀 끄떡없어요.]
[그렇군요. 신기하네요.]
유타는 잠시 공간을 살펴보더니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이곳에서 저는 아까 그 요원들과 전투를 이 아래에서 벌일 예정이에요.]
[그렇다면 일부러 ‘덴’이라는 사람과 싸우는 모습을 저한테 보이려고, 이곳에 저를 데려온 건가요?]
순수하게만 보이는 백색의 눈동자가 내게 향했다. 그리고 약간 날카롭게 찢어진 내 목소리가 다소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덴’은 요엘의 어머니께 해를 가했으니까요.]
지극히 당연한 걸 말하는 듯한 표정에 나는 흔들릴 뻔했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이 속 안에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격정과 같은 분노가 노도처럼 나를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것 같았다. 유타에게, 고작 8살에 불과한 아이에게 이 분노를 쏟아 붓고 싶어져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나를 위해 그럴 필요가 없다. 나는 고작 돈을 받고 곁을 지키는 사람일 뿐이다.
사실 이것도 진심은 아니었다.
너의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의 팔을 잃게 했다. 고작 내가 재생 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너의 아버지는 내 모든 걸 파멸시켰다.
사토시, 사토시, 사토시.
너는 사토시의 아들이다. 내가 꿈속에서 몇 번이고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던 자의 아들이다.
내가 완벽하게 사토시를 증오할 수 있게.
내가 완벽하게 너에게 죄책감을 갖지 않게.
내가 너를….
나에게 이러지마, 제발.
[요엘.]
번뜩 눈을 떴다. 나는 흔들리는 눈으로 가녀린 목소리가 들린 곳을 보았다. 유타는 어느새 승강기에 탄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의 유순한 눈매가 눈물로 젖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너를….
“생일 축하해요, 요엘.”
단어가 새하얗게 부서진다. 너에게 가지고 있던 모든 감정들이 조각나버린다. 증오, 연민, 분노, 슬픔, 모순되는 감정들이 서로 부닥치던 게 마치 거짓이었던 것처럼 산산조각난다.
[덴과 나머지 요원들은 오늘 죽을 겁니다.]
12월 15일.
나조차 잊어버린 생일을.
[밑에 있는 요원들은 요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 명단으로 전부 모집했어요.]
[어… 어째서?]
[이게 제가 준비한 생일 선물입니다.]
유타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얼굴로 나를 보며 또다시 작게 미소를 지었다. 승강기 문이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굳어버린 두 다리는 1년 전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어째서. 어째서 너는 그렇게까지 해서…!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요엘.]
마치 바람소리처럼 조그마한 속삭임이었다.
그리고 유타는 울었다.
“나는….”
승강기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자 주저앉았다. 머릿속은 엉망진창이 되어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눈앞에 계속 삼일 전 각혈하던 유타의 모습이 떠올라 온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다칠 것이다. 크게 다쳐서 아프다고 애처롭게 울 게 분명하다. 30명이 넘어 보이는 이능력자와 엄마의 중력 구체를 단번에 없애던 덴을 두고 어떻게 그 아이가 이길 수 있겠는가.
생일 선물로 이런 걸 원하지 않았다. 복수는 오로지 그녀의 몫이었지, 유타가 함께 짊어질 필요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위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낯선 타국. 낯선 사람. 낯선 공간.
모든 것이 낯선 그녀에게 전부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
겨우 그녀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아이에게 이기적이게도 그녀는 안락을 느끼고 있었다.
***
(※1인칭 주인공 시점 →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자, 드디어 유타 님께서 들어오시는 군요.”
유타가 승강기에서 내리자 덴은 끌끌거리며 웃어댔다. 환영하는 사람처럼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더니 두 팔을 벌리며 목을 쳐들었다. 유타는 방금까지의 젖은 눈과 다르게 메마른 눈으로 무감하게 그 모습을 지켜만 보았다.
“만약에 유타 님께서 제 월급을 더 올려주신다고 약조하신다면, 열심히 싸워드리는 척 져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오, 남자로서의 자존심은 못 버리겠다, 이건가요?”
7층은 네 면이 콘크리트 벽면으로 된 구조로, 어떤 장식물도 없이 오로지 전투를 위한 장소였다. 그리고 8층과의 높이 차가 꽤 되기 때문에 아마 요엘에게는 사실 이곳이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여기 음성은 8층으로 송신이 되는 건가?”
“뭐, 일단은 오프(Off)시켜놓긴 해서 안 들릴 겁니다.”
“컨트롤러가 어디 있지?”
“왜요? 제가 갑자기 중간에 킬까봐 겁이라도 나는 겁니까? 그래서 그 년이 유타 님의 본색을 알고 피할까봐 그러는 겁니까? 푸하하하하하!”
유타의 무표정한 얼굴에 드디어 불유쾌함이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덴은 난생 처음 보는 유타의 일그러진 얼굴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걸 느꼈다.
“이 와중에 저 년을 챙길 정신머리는 있는 걸 보니 여유가 아주 대단하십니다?”
“…생각해보니 컨트롤러를 굳이 안 받아도 될 것 같아.”
“예? 그게 무슨?”
유타가 무릎을 굽혀 바닥에 조용히 손바닥을 댔다. 덴은 그것을 보며 욕설을 짧게 내뱉고는 후방에 있던 무리들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시발, 도망가!”
유타의 왼쪽 어깨에서부터 흘러나오던 푸른 얼음 조각들이 팔을 뒤덮었다. 점차 그 조각들이 바닥을 짚은 유타의 손바닥으로 밀집되었다. 그리고 어깨에 있던 모든 조각들이 손바닥에 완전히 뭉쳐졌을 때, 굉음이 바닥에서 터져 나왔다.
콰과가가가가가각-!
콘크리트 바닥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유타가 짚은 바닥을 뚫고 날카로운 빙석(氷石)들이 솟구쳐 무리를 집어삼킬 것처럼 달려들었다.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빙석들은 순식간에 무리를 원으로 둘러싸고 그 몸집을 불려나갔다.
또한 아무도 도망갈 수 없게 고공을 향하던 빙석의 끝부분들이 중앙으로 모아들었다. 마치 꽃 봉우리처럼 무리를 한순간에 먹어치운 얼음 구체를 보며 유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컨트롤러는 사용도 못할 테니까.”
안에 갇힌 에스퍼들은 두꺼운 얼음을 깨부수려 화염을 내고 전기를 방출시켰다. 빛 한 점 없는 좁은 공간에서 다수의 인원이 능력을 쓰자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몇몇은 아군의 능력에 의해 입은 부상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젠장. 한 발 늦었어.”
덴은 이를 갈며 씹어 내뱉었다.
분명 한달 전에 받아놓았던 데이터로는 이만큼의 광범위한 능력을 쓸 수 없었을 텐데, 역시 소름끼치는 괴물 새끼였어.
“이봐. 잠깐 비켜봐.”
덴의 흥분한 음성에 무리가 두려워 잠시 자리를 비켰을 때, 오른팔에 모든 힘을 압축시킨 그가 얼음을 향해 주먹을 강하게 내리쳤다.
콰앙-!
빙석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며 덴은 밖으로 나가며 코웃음을 쳤다. A등급의 증강계 에스퍼인 그에게 이런 얼음벽 따위 깨부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산소를 차단시켜서 죽일 생각이었다니. 멍청하기 짝이 없군.
“뭐, 예상했어. 빙속(氷屬) 계열의 소유자란 건 이미 알았으니까. 이 정도는 별거 아니….”
덴은 정수리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에 의아해하며 위를 쳐다보았다.
이게 뭐지. 물이 떨어진다고?
의문도 잠시, 순식간에 물 덩어리들이 안면을 강타했고 그의 몸뚱이가 파도에 휩쓸려 버렸다. 이미 물은 7층 높이의 반 이상으로 차올라 능력을 쓰기 힘든 상황이었다.
빙석이었던 얼음 구체를 순식간에 녹여 물로 만들어?
내가 저 새끼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데, 해빙(解氷)의 능력이 있단 내용은 없었는데?
“…너, 이 괴물 새끼가!”
덴이 몸이 터질 것 같은 수압에 분노를 표했다. 그 데이터는 잘못 됐다. 저 개새끼는 능력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유타는 이미 자신이 서있는 곳에만 얼음 기둥을 만들어 유유히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요원들을 차가운 눈으로 볼 뿐이었다. 이미 왼쪽 팔에는 약간의 경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번에 힘을 한꺼번에 방출한 탓이었다.
유타는 약하게 혀를 차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요엘의 울 것 같은 눈동자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그의 생기 없던 눈동자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요엘, 나의 요엘.
당신의 슬픔은 곧 나의 슬픔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유타가 손을 허공을 향해 뻗으려는 찰나였다. 조금만 더 가까이 하면 요엘에게 닿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이 개새끼가…!”
어느새 유타가 있는 곳까지 올라온 덴은 손을 뻗어 그의 멱살을 잡았다. 두 다리에 근육 세포를 무리하게 증강시켜 20m는 족히 되는 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덴은 바로 유타를 바닥으로 집어던졌다.
바닥으로 빠르게 수직낙하하면서 유타는 두 팔을 벌려 벽 쪽에 향하게 한 뒤에 냉기를 손바닥에 흘려보냈다. 그리고 물속에 처박히기 직전, 얼음송곳 수십 개를 방출시켜 콘크리트 벽면을 뚫고 고정시켰다. 유타의 몸이 크게 한 번 흔들리고 떨어지는 것을 멈추었다.
그때였다. 물속에 빠져있던 에스퍼들 열댓 명이 튀어 올랐다. 유타의 눈동자가 세로로 찢어졌다. 그리고 잔인한 살의(殺意)가 백색 눈동자를 뒤덮기 시작했다.
아직 안 죽은 것인가.
그리고 그들은 유타를 향해 한꺼번에 능력을 폭발시켰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폭탄처럼 붉은 화염이 터졌다. 그리고 에스퍼들은 벽면을 뚫은 얼음송곳을 붙잡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회색의 재와 검은 연기가 7층의 공간을 전부 채웠고 그 누구도 시야를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끄, 끝난 건가?”
“혹시 죽었으면 어떡하지?”
“제기랄. 재수 없는 소리 하지마.”
에스퍼들의 얘기에 끼어들며 덴은 송곳 위를 밟고 올라섰다. 유타가 있던 곳에는 여전히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라 상태를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덴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죽지 않았다.
아니… 죽지 않았다는 걸로는 표현이 부족….
덴이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공간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흡사 지진과 같은 강도로 진동이 일자 콘크리트 벽면에 금이 갔다.
설마.
덴이 침음했다. 그가 서있는 송곳이 박힌 곳에도 균열이 일더니 점차 송곳이 아래로 꺾이기 시작했다. 송곳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다른 송곳으로 이동하려던 덴은 바닥 쪽을 보며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아주 멀쩡히 살아있군, 시발.”
공간의 반을 채우던 물이 갑자기 쪼개졌고 점차 그 수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빠르게 줄어들던 수위와 함께 얼음 기둥이 옆으로 기울더니 이내 반으로 동강이 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커다란 물줄기가 위로 솟구쳤고 송곳에 버티고 있던 에스퍼들 중 일부가 그로 인한 물폭탄을 맞고 떨어져 나갔다.
혼돈 속에서도 덴은 연기 속에서 드러난 인영(人影)을 발견했다. 비록 하얀 기모노는 거의 다 찢어져 헐벗은 차림이 되었지만, 녀석은 사지 하나 잃은 곳 없이 멀쩡했다.
“이 개새끼가….”
정말 우릴 죽이려 한 거였어.
그리고 완전히 연기가 걷혔을 때, 덴은 공포로 인해 숨을 헐떡일 수밖에 없었다. 물이 삽시간에 사라지게 된 이유는 녀석이 바닥을 반으로 갈랐기 때문이었다. 비록 등급이 B,C로 구성되었지만 무려 열다섯의 에스퍼가 동 시간에 최대 출력으로 능력을 폭파시킨 것이다.
“…분명히 말했을 텐데.”
흙먼지가 이는 곳에서도 사귀(邪鬼)의 흉흉한 눈동자는 반들거렸다. 여덟 살의 아이가 결코 가질 수 없는, 피를 욕망하는 살인귀의 눈이었다. 저것은.
반으로 갈라진 바닥 중 한쪽이 다른 쪽을 타고 올라갔다. 물기라고는 한 점도 없는 콘크리트 바닥은 고공으로 향할 듯 흙바람을 일으키며 솟아올랐다. 그리고 땅이 천장의 전등을 완전히 가려버렸을 때, 에스퍼들은 압도와 공포로 뒤섞인 감정에 몸을 떨었다.
“너희는 컨트롤러를 사용할 수 없다.”
음영 진 얼굴에서 표정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잔혹하리 만큼 올라간 입꼬리는 포식자의 광기를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아이는 광소(狂笑)를 터뜨리며 묘한 색(色)을 발산했다.
“어차피 이곳에서 죽을 테니.”
순식간에 웃음이 거친 이의 얼굴은 싸늘하기 짝이 없었다.
빛을 보고 있는 자는 오로지 유타였다. 나머지 인간들은 아래쪽 땅에서 도망을 치려 발버둥을 쳤다. 살기 위해 인간들은 손으로 벽면을 잡고 기어오르려 했지만, 이미 능력을 전부 소진했기에 불가능했다.
그리고 무자비한 눈길이 아래로 향했을 때, 조금도 망설임 없이 그는 바닥에 손을 짚었다. 그와 동시에 바닥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몸체를 얼음으로 뒤덮기 시작했다. 전부다 뒤덮은 뒤에 유타는 거대한 얼음 기둥을 만들어 그것으로 바닥을 찍어 내렸다.
쩌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얼음으로 덮인 땅에 균열이 일어났고 유타는 그곳에서 뛰어 올라 벗어났다. 유타의 발이 땅에서 떨어지자마자 조각이 난 땅의 덩어리들이 마치 운석처럼 아래쪽 바닥을 향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바닥이 부서지는 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