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거짓된 안락을 위하여
작가 : 고래고래몬
작품등록일 : 2017.6.5
  첫회보기
 
#01. 케이조보 가(家)의 그 도련님
작성일 : 17-06-12     조회 : 251     추천 : 0     분량 : 4306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집요한 시선이 전신을 훑었고, 오싹하고 징그러운 기분에 토악질이 날 것 같았다. 입술을 달싹이다가 겨우 나는 물을 수 있었다.

 

 [충… 분히 제가 납득할 이유가 필요합니다.]

 [아아. 이유. 너는 사토시 님께 그 무엇도 전해 듣지 못했구나. 왜 하필 재생 능력의 소유자가 유타의 옆에 있어야 하는지. 사토시 님께서 어떤 원대한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지. 그 분께서 이룩하고자 하는 ‘낙원’이 얼마나 달콤하고 아름다운 세계인지!]

 

 광기에 휩쓸린 센죠는 미친 사람처럼 웃어댔고 나에게 한걸음, 한걸음 다가왔다. 나는 뒤로 물러가며 침착하게 문 쪽으로 몸의 방향을 틀었다. 귀가 썩어 들어갈 것 같았다. 저딴 개소리를 짓거리는 자와 대화를 시도하려는 스스로가 우스워졌다.

 

 [이봐. 도망갈 건가?]

 

 그때 센죠가 앞으로 다가오는 걸 멈추고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굳이 그가 말하지 않아도 뒷말은 알 수 있었다.

 

 유타를 구하고 싶지 않으면 도망가도 된다.

 나는 숨을 천천히 몰아쉬며 걸음을 멈추었다. 선택을 해야 했다. 센죠는 내게 두가지의 선택권을 준 것이다. 유타를 구하고 싶다면, 나는 피를 제공해야 한다. 구하고 싶지 않다면, 피를 제공하지 않고 이대로 나가면 된다.

 

 다만 피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유타의 세포 자멸을 막을 수 없다. 그것은 신체의 노화를 일으킬 것이고, 사토시는 아마 극한의 상황이 되어서야 유타에게 치료약을 제공할 것이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고통을 받는 건 유타다.

 

 […저는.]

 [아아아악-!]

 

 대답을 끝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센죠가 바닥에 주저앉으며 비명을 질렀다. 바닥을 기던 노인은 고개를 퍼뜩 들어 침대 쪽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아, 아직… 정신을 아, 안 잃었…?]

 

 바닥부터 무릎까지 센죠의 무릎이 얼음으로 굳어있었다. 센죠는 냉기로 인한 고통인지 바닥에서 좀처럼 일어나질 못했다. 나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침대로 달려갔다. 그리고 유타를 끌어안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유타 님!]

 

 유타는 침대에서 거의 굴러 떨어진 채 바닥에 손바닥을 대고 있었다. 실핏줄이 터졌는지 아이의 눈은 새빨갰다. 마른 등이 숨을 쉴 때마다 크게 들썩였다. 경련이 이는지 유타는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크게 허리를 꺾으며 울컥 피를 한 움큼 내뱉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손바닥을 떼지 않았고, 얼음은 점점 더 올라가 센죠의 목까지 뒤덮었다. 히익, 거리며 센죠가 벌벌 떨며 소리를 질렀다.

 

 [사, 살려줘! 나, 나는 그냥 유타를 사, 살리기 위해서!]

 

 유타는 떨리는 손으로 피가 묻은 입을 닦았다. 그리고 어딘가 핀트가 나간 얼굴로 사토시를 똑바로 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닥쳐.]

 [유, 유타 내 얘기 좀 드, 들어봐!]

 [그 다음은 입이야.]

 

 입마저 얼리고 싶지 않게 만들려면, 닥치는 게 좋을 거야.

 

 [유타 님, 센죠의 얘기를 들어봐야 합니다. 지금 능력을 과다하게 쓰셔서 몸이 많이 망가지셨습니다. 제 피가 유타 님을 치료할 수 있다면 기꺼이….]

 [요엘.]

 

 나는 시간이 멈추는 걸 느꼈다. 유타는 처음으로 나를 분노에 찬 눈으로 보았다.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듯 그 백색 눈동자는 지나치게 싸늘했다. 그래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건 제가 알아서 합니다.]

 [알아서 한다고요?]

 [네, 요엘은 아무 걱정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더 이상 비밀에 접근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나는 차츰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엉망이 된 주제에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말하는 유타의 오만함 때문일까. 아니면 처음으로 선을 긋는 유타의 모습에 서운해서 화가 난 걸까.

 

 모르겠다. 그러나 알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유타를 조심스럽게 품에서 놓았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진득한 시선을 무시한 채 센죠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노인은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보며 다급하게 외쳤다.

 

 [유, 유타에게 나를 푸, 풀어달라고 말해줘!]

 

 바닥에 얼굴을 처박힌 그는 눈동자만 간신히 올려 나를 간절하게 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를 구해줄 생각 따위 없었다. 그의 앞으로 도착한 나는 무릎을 굽히며 그와 눈을 마주했다.

 

 [지금 얼음에 피부가 달라붙어서 곧 찢어질 거라고! 빨리 말해!]

 [센죠.]

 [너 계속 그딴 태도로 나오면 유타를 구하는 방법 따위 가르쳐 주지 않을…!]

 

 나는 그의 머리카락을 쥐어 잡았다. 그리고 다른 쪽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대로 목이 꺾이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요, 센죠?]

 [너, 너?]

 [살고 싶다면 열심히 떠들어야죠, 센죠.]

 

 센죠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나는 더없이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유타 님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요, 센죠?]

 […그, 그건.]

 [지금 저는 굉장히 화가 나있어요. 대답이 더 늦어질수록 불리한 건 누구일까요?]

 [요엘… 제발! 제발,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말아요!]

 

 피를 토해내며 유타는 바닥을 기며 나를 젖은 눈으로 보았다. 일순간 마음이 약해질 뻔했으나 나는 그럴수록 독하게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나는 유타의 시선을 피하며 바닥에 튀어나온 얼음조각을 떼어내 내 목에 가까이 대었다.

 

 [어차피 저는 죽지 않아요, 유타 님. 희박한 확률로 나타난다는 재생 계열이니까요.]

 [그거, 그거 내려놔요. 제발, 제발.]

 [하지만 꽤 큰 치명상을 입게 된다면, 회복이 굉장히 느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유타 님께서 치료를 받지 않으신다면, 저는 몇 번이고 회복된다 해도 죽고자 할 겁니다. 그러니 센죠의 입을 막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요엘! 그게 무슨 소리에요! 제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울면서 바닥을 기며 내게 다가오는 유타를 무시하고 센죠의 머리를 더욱 세게 쥐며 말했다.

 

 [당장 입 열어.]

 

 센죠는 결국 눈을 질끈 감으며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흔히들 재생 계열 능력자는 귀인(貴人)이라고 여겨지지. 왜 그런지 아나?]

 [내 몸 속에 흐르는 피와 연관된 얘기인가?]

 [그래. 그 피는 인간이 감히 범할 수 없는, 성역의 것이라고 불리지. 만약에 네가 ‘기적’을 직접 목도하고 싶으면 유타의 입에 피를 흘려보내면 돼. 그렇다면 네 녀석도 분명 왜 기적이라 불리 우는지 알 수 있겠지.]

 

 나는 조금씩 납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타가 왜 그토록 비밀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굽힌 무릎을 피고 쓰러져 있는 유타에게 다가갔다. 아이는 간신히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고 그마저도 꺼질 듯 위태로워보였다.

 

 […원하지 않았어.]

 

 마치 작은 한숨처럼 연약한 목소리였다. 아이는 포기한 듯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벌벌 떠는 손을 뻗어 내 볼에 가져다 대려다 멈추었다. 그리고 주먹을 쥐며 서서히 팔에 힘을 뺐다.

 

 [요엘.]

 

 나는 멀어지는 손을 붙잡고 내 볼에 가져다 대었다. 놀란 듯이 커진 두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을 발견했다. 여전히 머릿속은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했고, 복잡하게 뒤섞인 감정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아이의 손을 맞잡으며 다른 손으로는 바닥에 솟아오른 얼음조각을 부쉈다. 그리고 조각으로 손바닥을 살짝 그었다. 그리고 그것을 유타의 입에 흘려보내려 했다.

 

 [드셔야 합니다.]

 

 하지만 유타는 남은 손으로 제 입을 막으며 도리질을 했다. 먹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고 그 손을 부드럽게 잡아떼었다. 그러자 유타는 그제야 여덟의 아이가 지을 수 있는 얼굴로 돌아와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시, 싫어요. 나는 머, 먹고 싶지 않아요.]

 [유타 님.]

 [왜, 왜! 요엘은 제게 화를 내야 해요! 괴물인 저를 욕하고 밀어내야 해요! 근데 왜…!]

 [저희는 잘못이 없습니다. 억지로 당신에게 종속되어야 했던 저도, 그런 제 피를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진 유타 님도 어떤 잘못을 하지 않았어요.]

 

 나는 차분하게 말하며, 그대로 멈춰버린 아이를 보며 옅게 웃었다. 들을 리가 없는 말을 들은 것처럼 아이는 굳어져 있었다. 그 틈을 타 나는 아이의 입술을 부드럽게 벌리며 그 안으로 피를 흘려보냈다.

 

 [그러니 유타 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아냐…. 흐윽, 요엘은 나를 원망해야 해요….]

 [유타 님이 원하지 않았다면 그걸로 됐습니다, 저는.]

 

 아이는 도리질을 하며 먹지 않으려 했지만 나는 그것을 막았다. 그리고 억지로 쏟아진 피를 삼킬수록 아이의 몸에 가득히 퍼진 푸른 핏줄이 서서히 사라지는 걸 직접 두 눈으로 보았다.

 

 그렇다. 센죠의 말이 맞았다.

 나의 피는 신의 산물인, ‘기적’이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정해야 했다.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인 증오의 감정은 오로지 사토시에게로 쏟기로.

 

 ***

 

 그렇게 한 달 동안 유타는 사토시의 밑에서 훈련을 받아야 했다. 장장 8시간 동안 사토시에게 교육을, 아니 일방적인 폭력을 감내해야 했던 유타는 늘 최대 출력 이상의 능력을 써야 했다. 결국 아이는 한 달간 늘 쓰러져야 했고, 나는 매일 밤 아이에게 피를 먹여야 했다.

 

 ***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재생 능력 계열자의 수가 희박한 이유를.

 
 

맨위로맨아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