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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로맨스를 원하지 않는다
작가 : Gwan
작품등록일 : 20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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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1. 한 번 입 밖으로 나온 것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작성일 : 17-06-06     조회 : 50     추천 : 1     분량 : 4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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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 같은 담당교사의 개 같은 수업은 개 같아서 듣기 싫다. 아니, 개 같지 않아도 듣기 싫은 게 바로 수업이며 하기 싫은 게 바로 공부다.

 

 이것은 진리다.

 

 학예를 배우는 사람이 뇌라는 게 있다면 이러한 진리를 깨닫기 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진리를 깨달은 나는 이 수업시간을 모두 사용해 가지고 온 책을 읽었다.

 

 애석하지만 별이의 손을 꽉 움켜쥔 채 말이다.

 

 문학적 감수성+흥미로운 이야기와 지금 잡고 있는 별이의 손.

 

 둘 중 어느 쪽이 내게 더 큰 메리트가 되는 지는··· 노코멘트 하겠다.

 

 

 

 

 

 고등학교 입시 때문인지 쉬는 시간임에도 반 분위기가 꽤 시리어스하다.

 

 뭐, 개중에서도 공부하기 싫어하는 녀석들은 일찌감치 떠들고 있지만.

 

 별이 녀석은 대체 어디에 소속된다고 할 수 있으려나···.

 

 정답은 둘 다 「아니요」겠지.

 

 자의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군가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걸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인지력은 자의식의 양이 크면 클수록 더욱 향상된다.

 

 하, 하지만··· 이 상황에선 그딴 건 필요가 없겠지.

 

 바로 옆에서, 그것도 이렇게 뜨겁게 빤히 쳐다보는데··· 당연히 모를 리가 없겠지···.

 

 부담스럽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하다. 책 속의 문장에 전혀 집중할 수 없기에 이야기가 머릿속에 전해지지 않는다.

 

 전교 1등의 여유라는 건지, 아니면 그냥 자신이 아끼는 인형의 상태를 점검하는 건지···.

 

 차라리 놀란 말이야!!

 

 별이를 동경하는 녀석들이 지금 이 모습을 본다면 아마 무조건 적으로 환멸 하겠지.

 

 아니지, 아니야··· 이미 같은 반 애들은 환멸 했을 수도···. 쉬는 시간엔 아무도 이 녀석 근처에 오려고 하지 않으니까.

 

 ···아니면 내 탓이거나.

 

 「social phobia」 그것은 사회 공포증이라 읽고 흔히 대인 기피증이 말한다.

 

 4년 전부터 지금까지 증상이 계속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오랜 기간 은둔생활의 버릇으로 몸에 박인 탓인지.

 

 이유야 알 수 없지만, 나는 사람을 자꾸 회피하거나 무시하려 한다.

 

 불가피하게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상황이 올 땐 대화하는 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필요 이상의 대화는 나누지 않는다.

 

 원래부터 사회성이 좋은 편이 아닌 몸이기에 지금까지도 아무런 문제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물론 단 한줌의 불만도 없다.

 

 남을 이해시키려고 힘쓰지 않아도 되며 입을 열어 집단의 분위기 따위를 고조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이건 내게 메리트다. 그리고 나에겐 대인 기피증 같은 건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냥 정신과 담당의가 붙여준 병명에 불과할 뿐···.

 

 “후훗, 얼굴이 음침해졌네. 또 자기 합리화 같은 걸 하는 거야?“

 

 아무런 자각 없이 튀어나온 표정 탓에 내 생각이 읽혔지만, 이젠 새삼 놀랍지도 않다.

 

 하지만 궁금하단 말이지···.

 

 물론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맞추는지가 아니다. 내가 궁금한 건―.

 

 왜! 왜 별이 녀석의 독심술은 나한테만 효력이 있냔 말이야!

 

 “정답은 「난 너만 보고 있으니까」야.“

 

 “······.“

 

 나도 모르게 호기심 어린 표정이 새어 나간 모양이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전신을 순환시켰다. 그리고 점점 가속되는 펌프질 탓해 정신적 피로감이 하늘을 치솟는다.

 

 하아···. 정신이 피폐해지니 몸까지 피로에 찌들어가는 거 같다.

 

 “잘래···.“

 

 “그럼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려줘. 네가 자는 모습을···.“

 

 “공부나 해!“

 

 나는 별이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게 소리치고는 책상에 고개를 처박았다.

 

 그와 동시에 수업 종이 울렸지만 당연하게도 개의치 않는다. 세상에서 제일 나와 관계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어나보니 교실은 고요 그 자체였다.

 

 2시간 정도를 죽은 듯이 자니 이미 하교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녀석의 왼손을 붙잡고 있던 탓인지, 내 손에는 별이의 잔향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이것은 손바닥을 펼치자 말자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남아있는 건 손바닥에 쓰여 있는 검은색 글귀뿐.

 

 이거··· 장담하는 데 무조건 유성 매직일 거다.

 

 

 '학생회의 때문에 먼저 갈게. 그리고 2시간 25분 동안 손잡아 줘서 기뻤어. 그럼, 집에서 봐. 영이의 별이가.'

 

 

 지금 시각이 4시 50분이니 별이가 떠난 지 10분정도 지났다.

 

 나는 혹여나 하는 마음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거려보았다.

 

 ......집에나 갈까.

 

 역시 집에 가는 게 옳은 판단인 거 같다.

 

 

 

 

 

 나는 별이 녀석에게 문자를 보내고, 학교를 빠져나와 서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내 휴대폰은 서점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신간이 나올 때마다 알림이 오게 되어있다. 그리고 때마침 오늘 온 신간 목록 중엔 마침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있었다.

 

 서점까진 걸어서 약 20분 정도 소요된다.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시간에 버스를 찾는 사람의 수는 안 봐도 뻔하고 택시기사와의 불필요한 대화도 사양하고 싶다.

 

 애초에 그딴 걸 싫어하지만.

 

 아침에는 그렇게 강하게 자기주장을 하던 해도 지금은 눈에 띄게 엷어졌다.

 

 덕분에 더위가 가셨고, 오전과는 달리 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완전히 해가 지고 밤이 오면 날씨는 더욱 쌀쌀해지겠지.

 

 

 

 

 

 회전문을 통해 서점에 들어가니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간편하게 쇼핑을 할 수 일어서일까? 아니면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이 그들에게 독서를 허락하지 않아서일까?

 

 어찌 되었건 나한텐 좋은 상황이다.

 

 비문학코너를 제치고 문학코너로 가니, 신간 책들과 베스트셀러가 쭉 나열되어 있었다.

 

 역시···.

 

 내가 찾던 책은 유명 작가의 신간이라 그런지 눈에 띄기 쉬운 곳에 진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쌓여있을 줄만 알았던 책의 개수가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그냥 평일이라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불이 나게 팔려나가는 걸보니 기분이 뒤숭숭하다.

 

 작가의 팬 된 입장에서는 이 작가의 네임드가치가 높아지면 질수록 마치 내 일처럼 기분이 좋아지지만··· 작품의 독자 된 입장으로선 「이런 이야기는 나만이 아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해버린다.

 

 쓸데없이 독점욕이 강한 게 나의 단점이라는 것을 새삼 재실감한다.

 

 다른 것도 천천히 봐볼까.

 

 사람도 적고 오랜만에 서점에 왔기에 더 둘러보기로 마음먹었다.

 

 큰 서점에 좋은 점은 역시 많은 책과 앉아서 책을 볼 수 있게끔 소파나 의자가 구비되어 있다는 점이겠지.

 

 나는 아무 소설책을 하나 빼 들고는 의자에 앉았다.

 

 벽에 등을 기대고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꼬았지만, 시선이 느껴질 것만 같아 원상태로 되돌렸다.

 

 나는 하드커버에 감싸인 책을 들고 첫 장을 펼쳤다.

 

 이제 읽기만 하면 완벽하다. 읽기만 하면―.

 

 “왜, 왜! 어째서 던만추 10권이 없는 겁니까!! 야자도 빼먹고 달려왔단 말입니다!!“

 

 카운터에서 어느 개자식이 소리치는 게 내 귀에 메아리쳐 들려왔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문학코너라 그런지 카운터와 제일 가까운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때문에 저렇게 무식하게 소리치면 그 소리가 여기까지 선명하게 전해져오는 것이다.

 

 보통은 서점에서 빼애액! 거리는 사람이 없지만···.

 

 카운터에 눈길을 한 번 주니 직원이 소리지리는 개자식을 살살 달래는 모양이다.

 

 하아··· 다시 읽어볼까.

 

 “재고 재고하지 말고 제대로 다시 찾아보란 말입니다!!!“

 

 이런 씨!

 

 첫 장 채 다 읽지도 못했는데 다시 한 번 흐름이 깨졌다.

 

 흐름이 깨지고 나니 어느새 내가 다리를 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중학생이라 무시하는 겁니까?! 오늘 나온 책이 벌써 다 팔렸을 리가 있냐고요!!“

 

 녀석이 내는 소음 탓에 결국 나는 책을 덮고 카운터 쪽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내가 있는 위치에선 녀석의 뒷모습만이 보였다. 키는 나보다 작아 보이는 170 중후반쯤.

 

 삐쩍 말라서 그런지 왜소한 체격이었으며, 머리를 몇 달째 자르지 않았는지 뒷머리가 덥수룩했다.

 

 하지만 그것들과는 달리, 녀석이 입고 있는 교복은 녀석이 부자 학교로 소문난 중학교에 재학 중임을 증명해줬다.

 

 저긴 형편 안 좋은 사람은 다니기 힘든 거로 아는데···.

 

 재고가 없는 책 한 권 구하지 못하는 데 전국에서 이름난 재벌들이 다니는 학교 교복을 입고 있다니···.

 

 성적 우수자라 장학금을 같은 걸 받는 건가?

 

 하지만 그 학교는 돈 만큼이나 머리 좋은 녀석들이 넘치고 넘칠 텐데···.

 

 흐음···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 어차피 공부를 잘해봤자 별이 녀석만큼은 못 할 거고.

 

 “재고 확인은 아직 멀었습니까? 시간이 없다고요, 예?!!“

 

 으아, 시끄러운 녀석!

 

 하는 수없이 나는 녀석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녀석이 공부를 못하건 잘하건 돈이 많건 가난하건 나에겐 중요치 않다.

 

 다시는 저딴 민폐 녀석과 마주치기 싫다.

 

 그것은 나의 솔직한 바람이었다.

 

 

 

 

 

 원래 살 예정이었던 책과 함께 따로 두 권을 더 구매했다.

 

 서점까지 걸어온 소득이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다행이긴 하지만··· 시간은 다행이지 않다.

 

 손목에 찬 시계를 보니 어느새 7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나는 벨소리 무음을 해체함과 동시에 스마트폰을 체크했다.

 

 “······.”

 

 처음에 문자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엔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몇 백통씩 찍혀있었다.

 

 역시나 역시, 전부 별이 녀석에게서 온 것이다.

 

 ···전화 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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