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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로맨스를 원하지 않는다
작가 : Gwan
작품등록일 : 20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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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2. 감정이 앞서도 되는 걸까
작성일 : 17-06-12     조회 : 334     추천 : 0     분량 : 8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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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분에 그 남자 새끼랑 어린년이 머리채 잡고 싸우는 거 있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조루 따위 보다 이교수님이 더 훌륭해요!」라면서 말이야~ 그래서 일 더 커지기 전에 자진해서 병원에서 나온 거야.“

 

 “···당신, 자기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자각은 해?“

 

 “어쩔 수 없잖아~! 그 어린 간호사년이 생각보다 부드럽고 탄력 있는 게 「쫄깃쫄깃」했다고. 역시 젊다는 건 좋은 거야~“

 

 “너! 별이를 성추행하다 나한테 걸린 다음부턴 이제 안 그러기로 약속까지 했잖아!“

 

 “나 참, 어쩔 수 없었다니까~ 그. 리. 고. 그건 오해라고! 난 그 거유 꼬맹이한테 전 남친 자지 길이만큼의 관심도 없다고.“

 

 “어머··· 자, 자, 자···.“

 

 “김설, 그딴 거 복창하지 않아도 돼.“

 

 나는 새빨개진 얼굴로 패닉 상태가 된 녀석을 애써 진정시켰다.

 

 “원나잇 엔조이는 삶이란 것에서 불가항력적인거야~! 너처럼 순정파는 모르겠지만~“

 

 “미성년자 앞에서 잘도 떠들어 되는군, 망할 여자!“

 

 나는 이나연의 사무용 책상에 걸터앉아, 녀석을 향해 시선을 쏟아 부쳤다.

 

 “여자랑 살 한 번 섞었다고 되게 뭐라 하네, 건방진 꼬마 주제에.“

 

 그에 질세라, 녀석 또한 나를 올려다보며 뽀드득 이를 갈았다.

 

 “당신 마음 녹이려고 동성에게까지 접근하지 말란 소리야! 당신이 한 짓 때문에 한 여자가 이상한 길로 빠져버렸잖아!“

 

 “내가 상담하던 환자 주제에 설교는···. 선배한텐 난 친한 동생일 뿐인 걸 어쩌라고! 아니면 선배 대신 당신이 날 안아주면 되잖아!“

 

 이 미친 여자가··· 또···!

 

 “그딴 소리 좀 하지 말라고! 별이랑 그렇게 싸워 놓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거야?!“

 

 “그러니까 나는 그 꼬맹이가 싫은 거야~ 가슴 크고 얼굴도 꽤 반반하면서 너무 동생에게 일편단심이란 말이지. 꼭 내 어릴 적을 보는 것 같아~“

 

 “그 녀석은 그냥 날 가족으로서 소중히 여기는 거야! 당신이 당신 선배에게 갖는 감정과는 다른 거라고!“

 

 “다른지 다르지 않은지 꼬마가 어떻게 알아~? 전문가인 나도 사람 감정이란 건 아직 어려운데~“

 

 “그건 당신이 괴짜 돌팔이니까 그런 거지!“

 

 “우우···! 꼬마, 이만 현실을 직시하는 게 어때? 네가 나한테 계속 시비 걸 처지가 아닐 텐데~?“

 

 “···아, ···젠장.“

 

 깜박했잖아··· 오늘 내가 여기 왜 온 건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게 바로 남자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이교수님?」“

 

 “그 말은 인정해~ 하지만 「이교수」라는 호칭은 꼬마한테 들으니 오글거린단 말이지···.“

 

 누구는 하고 싶은 줄 아냐!

 

 비위 맞추기 참 힘든 여자다. 이러니까 사귀던 남자가 바람이나 피지···.

 

 “좌우지간! 내가 어제 전화했지? 어때··· 생각은 해봤어?“

 

 “아~ 그거? 생각해봤으려나~? 안 했으려나~?”

 

 순간, 내 안에서 이년을 때리고 싶은 욕구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다.

 

 “뭐야, 꼬마? 표정이 너무 굳은 거 아니야~? 집에 가스라도 켜놓고 온 거야~?“

 

 “아, 미안, 미안. 당신 선배 휴대폰 번호 좀 생각하고 있었어.“

 

 “뭐, 뭐야! 갑자기 왜 또 선배가 나오는 건데?!“

 

 선배란 말에 갑자기 캐릭터 바꾸지 말라고! 쓸데없이 당신을 더 놀리고 싶어지잖아.

 

 “당신이 날 진짜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대답해! 생각했어? 안 했어?“

 

 “아니··· 굳이 알바 따위 없어도···.“

 

 “010-2288-85···.“

 

 “알았어!! 그만해! 그만! 흐아아앙···!! 연상 주제에 연하한테 건방지게 까불어서 미안하니까! 제발 부탁이야, 하지 마!“

 

 “그래? 그럼 다시 한 번 물을게. 생각했어? 안 했어?“

 

 “했어, 했어요! 그러니까 휴대폰 내려놓으세요! 제발···.“

 

 우와··· 이 녀석··· 표정이 아주 장관이잖아.

 

 지금 이나연은 거의 울기 직전상태였다. 아니, 이미 눈에는 물기가 촉촉하게 맺혀있다.

 

 그러니까··· 이걸 보고 누가 30대라고 하겠냐고.

 

 “저기 영이 씨··· 이 여성분··· 누구누구 못지않게 엄청 귀여우시네요.“

 

 갑자기 내게 바짝 다가온 김설이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넌 내 허락 없이 갑자기 다가오지 마! 너 때문에 중요한 흐름이 깨질 뻔했잖아!

 

 후···.

 

 나는 가까스로 두근거릴 뻔한 심장을 달랬다.

 

 지금 내가 여기서 이 짓을 하는 게 다 김설 때문이라니···.

 

 “내 생각과 당신 생각이 같길 바라.“

 

 이나연, 너한테는 참 미안한 일이지만··· 이 녀석한테 함께 있을 수 있는 구실을 줘야 하니까··· 무조건 알바자리가 필요해.

 

 “···꼬마··· 네 약점이 잡히면··· 죽을 때까지 써먹어줄 테다···!“

 

 “아이고 무서워라~ 내 약점을 제일 많이 알고 있는 주제에 협박은. 잔말 말고 결정이나 해!“

 

 “······.“

 

 “뭐? 크게 말해! 망할 이나여나.“

 

 “네 맘대로 하라고!!!“

 

 소리질러주셔서 고맙습니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좋아. 김설 일자리 get.

 

 “···나보다 한참 연하인 주제에···.“

 

 “자기보다 한참 어린놈한테 욕정 하는 변태 주제에.“

 

 “선배랑 닳지만 않았어도··· 너 같은 꼬마 따위한테···.“

 

 침울해진 녀석이 말을 흐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하아··· 넌 그 여자가 대체 왜 좋은 거야?“

 

 이나연··· 정말 이해할 수 없단 말이야···. 넌 도대체 왜 그런 이기적인 사람을 좋아하는 거냐···!

 

 “바로 내 옆에 널 좋아하는 여자가 있잖아! 쟤한테 물어봐. 널 좋아하는 이유··· 두 사람은 닳았으니까··· 아마 같을 거야···.“

 

 너, 너무 괴롭혀져서 맛이 간 거 아니냐? 그 여자가 나랑 같을 리가 없잖아! 떠난 사람이랑 남겨진 사람이랑 같을 리가···.

 

 “영이 씨는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신 분과 달라요. 영이 씨는 상냥해요! 그래서 전 영이 씨가 좋아요!“

 

 뭐? 이 녀석··· 지금 뭐라는 거야···?

 

 정말 뜬금없었다. 정말 뜬금없이··· 녀석의 나를 향한 자기주장이 시작되었다.

 

 “읏···! 선, 선배도 상냥해!“

 

 그리고 그와 경쟁하듯, 이나연 또한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아니요. 영이 씨가 세상에서 제일 상냥해요! 그리고 영이 씨는 잘생겼어요!“

 

 “···잘생긴 건 인정···이 아니라! 선배가 꼬마보다 더 상냥해! 그리고 선배는 예쁘고 멋진 사람이야!“

 

 “그분이 멋져봤자죠! 영이 씨보다 예쁘고 멋진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요. 영이 씨는 키도 크세요.“

 

 “우리 선배도 키는 커~ 머리도 똑똑하고 말이야~“

 

 “으으···! 영이 씨가 똑똑한지는 잘 모르겠네요··· 워낙 공부를 싫어하시니···.“

 

 “···그러네···. 꼬마는 공부하는 걸 싫어하니··· 선배도 그렇고.“

 

 “거···기다··· 영이 씨는 한 번씩 음침한 생각을 하죠···. 지나가는 사람들보곤 「쓰레기」라고 하시고···.“

 

 “맞아. 꼬마는 자주 그러지···. ···삐뚤어진 녀석.“

 

 잠깐, 둘이 지금 뭐하자는 거죠?

 

 “대화할 때 사람 눈도 안 마주치려고 하고···.“

 

 “그래, 그 버릇은 의사인 나도 짜증나.“

 

 “더럽게 츤츤거려서 확 지어 박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츤데레면 츤데레답게 귀여운 맛이 있어야 하는 데··· 얼굴을 붉히면서 말하지도 않고.“

 

 이나연, 너도 츤데레 라는 게 뭔지 아는 거냐?

 

 “항상 놀리고··· 곱슬머리라고···.“

 

 “누가 가학성애자 아니랄까봐~ 병이야 병.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녀석이란 말이지. 아, 내가 정신과 의사였지 참~“

 

 “만지는 거 싫어하고.“

 

 “안으려고 하면 밀어내고~“

 

 “같이 자는 것도 안 된다고 하시고.“

 

 “난 자는 거까진 바라지도 않는데~ 그냥 섹스만 해주면 좋은데~“

 

 “맞아요, 그거예요! 왜 절 덮쳐주지 않···.“

 

 “적당이 해!!“

 

 

 

 ※※※

 

 

 

 이나연과 얘기를 끝낸 우리는 밖으로 나와 길가를 서성이고 있다.

 

 시내 쪽을 향한 걸음 속에서, 먼저 입을 뗀 건 김설 녀석이었다.

 

 “1층 카페가 나연 언니 거였군요···.“

 

 어쭈, 이것 봐라? 날 씹어대면서 벌써 친해진 거냐?

 

 “그 여자 부자 고객이 그 건물을 사줬다나 뭐라나. 1층은 카페, 2층은 상담 및 진료실, 3층은 오피스텔처럼 쓴다던데.“

 

 꼭대기 한 층을 통째로 쓰고 있느니 완전 스위트룸 뺨치겠군.

 

 그냥 김설을 거기서 재우는 것도··· 아니지··· 이 녀석이 이나연 취향은 아니지만 만약이란 게 있으니.

 

 “나연 언니··· 성벽이 맘에 걸리지만, 역시 좋은 분이신 거 같아요.“

 

 “딱히 걱정 안 해도 돼. 넌 그 여자 취향이 아니니까.“

 

 “왠지 그 말 「넌 여자로서 매력 없어」라고 들리는 데요···.“

 

 “그런 게 아니야. 그 여자, 저렇게 보여도 꽤 마조성향이 있거든. 그래서 그런지 눈매가 날카롭고 차가운 여잘 좋아해.“

 

 “와아··· 그 말, 전혀 위로 안 되네요···.“

 

 너 눈을 왜 그렇게 뜨니? 뭔가 대단히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오해하기 딱 좋게 들린 모양이네···. 그래도 오해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그냥 그 여자가 짝사랑하는 여자를 알고 있을 뿐이야.“

 

 “···짝사랑···. 그거, 나연 언니가 말씀하신 「선배」분 말인가요?

 

 “그래.“

 

 “그렇군요···.“

 

 “안 물어봐도 돼?“

 

 “뭐가요?“

 

 “아니··· 이나연의 선배에 대해서···.“

 

 “물어봐야 하는 건가요?“

 

 “그냥··· 네가 궁금해할 거 같아서···.“

 

 “궁금해요··· 당연히 궁금하죠. 나연 언니도 알고 영이 씨도 알고, ···어쩌면 별이 씨도 알겠죠. 근데 저만 모르니까···. 그래도 저는··· 영이 씨가 집적 말해주실 때까지 기다릴래요.“

 

 그게, 그게 네가 진짜 원하는 거야? 네 물음에 답하는 것보다 내가 먼저 말해주는 게···.

 

 “근데··· 왠지 짐작이가요. 나연 언니가 영이 씨랑 대화할 때 힌트를 너무 많이 줬거든요.“

 

 이나연 이년···! 의사란 놈이 감정에 치우처서는!

 

 “앗! 지금 속으로 나연 언니 욕하셨죠? 못됐어 정말!“

 

 “무, 무슨 소리야?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이나연을 얼마나 존경하는···데?“

 

 “나연 언니는 분명 감정이 앞서는 분이지만, 그래도 영이 씨를 얼마나 걱정하시는데요!“

 

 “그거야 나도 알··· 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이나연이 내 걱정을 하는 건 분명 오늘 화젯거리에 없었을 텐데?

 

 “네? 아 그게···.“

 

 “너, 이나연한테 뭘 들은 거야?“

 

 아까 전, 두 사람은 날 1층으로 쫒아내고는 약 10분 정도 대화를 나눴다.

 

 이나연 녀석··· 알바에 관해 몇 가지 당부할 게 있단 구실이었지만··· 설마 김설한테 무슨 얘길 한 건 아니겠지?

 

 “벼, 별 냬키··· 아얏! 으으윽···.“

 

 이 녀석··· 지금 혀 씹은 거야? 조금 귀여웠지만··· 수상하단 말이지.

 

 “똑바로 말해.“

 

 “진, 진짜라니까요! 별 얘기 안 했어요. 그냥 옆에서 듣기만 해도 나연 언니가 영이 씨를 많이 생각한다는 걸 알 수 있어서···.“

 

 “뭐야··· 그런 거였냐···.”

 

 아닌 거 같은데.

 

 “으으··· 혀 아파···.“

 

 입가에 손을 댄 채 작게 울먹이는 김설.

 

 “괜찮아?”

 

 “아파요···.”

 

 “으이구, 하는 수 없지. 혀 내밀어봐.“

 

 “네? 뭐, 뭐라구요?“

 

 “혀 내밀어보라니까?“

 

 “네, 넸! 펴! 아양!“

 

 김설 녀석이 당황한 모양인지 또 혀를 씹었다. 마지막에 들린 귀여운 타격음은 언젠간 다시 듣고 말겠다고 속으로 다짐해버렸다.

 

 “아주 혀를 잘근잘근 씹어대는구나.“

 

 “으흐··· 훌쩍···. 그, 그치만··· 갑자기 혀를 내밀라니···. 키, 키스···.“

 

 이 녀석··· 병 있나?

 

 “미쳤냐?! 그럴 생각 없어!“

 

 “그럼 왜··· 혀를···.“

 

 “잔말 말고 내밀기나 해! 사람 없을 때 후딱 끝내게.“

 

 “네, 네!“

 

 허둥지둥 자신의 작은 입을 여는 김설.

 

 “더 내밀어.“

 

 “에···.“

 

 “굳이 혀 내밀면서 대답 안 해도 돼. 가만히 있어.“

 

 나는 날름 내민 녀석의 혓바닥을 보았다.

 

 꽤 크게 씹어 드셨는지 상처 자국을 타고 피가 조금 흐르고 있었다. 그것도 방금 거까지 해서 두 군데나.

 

 손이 많이 가는 녀석···.

 

 “호오~ ···호오~ ···호오~“

 

 “으으ㅡㅡ으으ㅡ으으으ㅡ윽으으ㅡ으으···.“

 

 그렇게 간지러운 거냐? 별이가 해줄 때는 별로 안 간지럽던데···.

 

 “···됐어. 이제 좀 덜 아플 거야.“

 

 “······.“

 

 “옛날에 별이가 해줬거든. 혀 씹은 건 약 못 바르니까.“

 

 “······.“

 

 뭐야? 왜 이렇게 조용해. 얼굴까지 새빨갛게 돼서는···.

 

 내가 이상한 짓 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반응해버리면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잖아!

 

 “딱, 딱히 별 감정 없었어! 그, 그냥 별이가 해준 게 생각이 나서···.“

 

 “···츤데레.“

 

 “내, 내가 왜 변명하고 있는 거야! 네가 이상한 반응 보이니까 이렇잖아! 썅···! 먼저 갈래.“

 

 왜 내가 부끄러워해야 하는 거냐고! 이건··· 이상하잖아···.

 

 나는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보폭을 크게 해 김설보다 앞장서 걸음을 옮겼다.

 

 “···무지 귀여우셔···.“

 

 김설 녀석은 뭐라고 구시렁구시렁되는 거야!

 

 “뭐해, 망할 김설! 저녁 전에 집에 갈 거니까 빨리 와!“

 

 “아, 네! 같이 가요~“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부르자, 녀석은 웃는 얼굴로 답했다.

 

 “뭘 실실 웃는 거야! 또 혀나 씹어버려!“

 

 “히히~ 그럼 영이 씨가 또 호오~ 호오~ 불어주시는 건가요? 그러다 살짝 혀와 혀가 닿···.“

 

 “웃기지 마! 너 때문에 괜히 나만 민망해졌잖아! 사람의 선의를 뭐로 보고!“

 

 “후훗, 선의만 가지고 그런 행동을 하셨다고 하시니~ 차암~ 영이 씨는 역시 츤데레네요~!“

 

 “입 다물어! 자꾸 꼬짱부리면 옷 사준다고 한 거 취소해버린다?!“

 

 “어쩔까나~?“

 

 미소 지으며 자신의 턱을 손가락으로 집는 김설.

 

 “이, 이 녀석···!“

 

 “헤헤, 농담이에요. 자, 빨리 가요.“

 

 “으으읏··· 됐어! 옷 안 사줘!“

 

 “네~! 괜찮아요. 또 영이 씨 옷 입으면 되니까~!“

 

 으아아아아! 이 여자가···!

 

 “너 진짜 짜증나, 짜증난다고!“

 

 “네~! 괜찮아요. 전 영이 씨가 너무너무너무 좋으니까~!“

 

 김설의 갈색 눈이 능글맞게 변했다.

 

 “어디다 팔짱을 끼는 거야.“

 

 “에이~ 닳는 것도 아닌데 까칠하시긴.“

 

 진짜 오늘 괜히 나왔어! 이나연 그 망할 여자부터 해서 이 녀석까지!

 

 “근데··· 영이 씨···· 옷, 진짜 안 사주실 건가요···?“

 

 미소 짓던 녀석이 갑자기 움츠러들었다.

 

 “뭐? 내가 미쳤다고 사주···.“

 

 “다음에 또··· 영이 씨랑 데이트 할 때, 예쁜 모습을 보이고 싶은데···.“

 

 이유가 그거였냐···.

 

 “···안 사줘.“

 

 “그래요···. 뭐 별이 씨 옷도 예쁘니까···.“

 

 “됐어, 사줄게···.“

 

 별이 건 좀···.

 

 “네? 방금···.“

 

 “갚아!!“

 

 뭔가 분하다. 항상 괴롭히던 입장에서, 괴롭힘 당하는 입장이 된 것만 같다.

 

 내가 왜 녀석의 페이스에 휘말린 것 같냐고! 거기다! 이 녀석··· 왜 이렇게 귀엽냐고···!!

 

 그래, 인정한다!

 

 나는 이 녀석이··· 김설이··· 귀여워 미칠 것 같다···.

 

 아, 젠장··· 팔짱 괜히 풀었잖아! 내 쪽에서 할 수도 없고··· 해, 해달라고? 아니야···!

 

 “영이 씨.“

 

 “···왜.“

 

 “팔짱··· 다시 껴도 될까요? 조금이라도 좋으니···.“

 

 “맘, 맘대로 해!“

 

 나의 솔직하지 못한 외침에, 김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답했다.

 

 

 

 

 

 나란히 선채 길을 걷던 우리는 백화점 안으로 들어섰고, 건물 안은 시선이 느껴질 만큼 충분한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원래라면 피하고 싶고, 미칠 듯이 괴로웠을 시선들일 텐데··· 지금은 전혀 괴롭지 않았다. 왠지, 왠지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더욱더 보여 지고 싶었다. 김설과 팔짱을 낀, 지금 내 모습을···.

 

 자랑하고 싶었다.

 

 지금의 우리를.

 

 

 훗날, 홀로 남은 내가 추억이라는 앨범을 열었을 때, 별이와 함께 보낸 순간과··· 오늘이라는 시간을 같이 꺼내보겠지.

 

 

 

 ※※※

 

 

 

 “엄청 깜깜하네요···.“

 

 쇼핑을 마친 우리는 해가 다 지고 난 지금에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별아, 우리 왔어.“

 

 어두운 현관, 나는 아무렇게나 운동화를 벗으며 별이를 불렀다.

 

 응? 별이 녀석 집에 없는 건가?

 

 우리가 집에 돌아왔음을 알렸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불 꺼진 실내의 무거운 공기뿐이었다.

 

 “영이 씨, 아무것도 안 보여요.“

 

 “좀만 기다려봐.“

 

 나는 거실에 불을 켜기 위해 스위치가 있는 벽 쪽으로 손을 뻗었다.

 

 “꺄앗! 지금 제 가슴을 만진 게 영, 영이 씨인가요?!“

 

 뭐야, 벽인 줄 알았는데 너였냐?

 

 “네가 서있는 쪽에 스위치가 있어.“

 

 “깜짝 놀랐잖아요! 만, 만지고 싶으시면 미리 말씀을···.“

 

 “닥치고 불이나 켜!“

 

 누가 그딴 걸 만지고 싶다고!

 

 김설이 스위치를 눌렀는지, 탁 하는 소리와 함께 거실 형광등이 켜졌다.

 

 “뭐, 뭐야··· 이게 다···.“

 

 빛이 들어오면 무거운 공기가 어둠과 함께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공기는 그대로 남아 내 정신을 무겁게 짓누른다.

 

 나는 내 눈에 비친 모든 것들이 모두 의심스러웠다.

 

 왜냐··· 거실이 쑥대밭으로 변해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집안에서 태풍이라도 휘몰아친 것인지 탁자나 소파 할 것이 없이 가구들이 다 엎어져 있고, 식기 같은 그릇들도 몇 십 개씩이나 깨지고 부서져있었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앗!

 

 “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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