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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로맨스를 원하지 않는다
작가 : Gwan
작품등록일 : 20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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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2. 감정이 앞서도 되는 걸까
작성일 : 17-06-14     조회 : 327     추천 : 0     분량 : 5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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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입었으니까 이쪽 봐도 돼.“

 

 이번엔 별이와 내 시선이 제대로 마주했다.

 

 “···너 말이야. 진짜 괜찮은 거 맞아?“

 

 그 눈을 보며 나는 걱정스러운 듯 되물었다.

 

 “괜찮아. 상처도 없고 누구한테 맞지도 않았어. 물론 만져지지도 않았고···. 그냥 우르르 몰려와서 소리 지르며 물건을 뒤엎길래 조금 놀란 거야.“

 

 별이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과 건조한 말투로 내 걱정에 답했다.

 

 “그래···. 다행이다···.“

 

 그럼에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는 나.

 

 “10분 지났는데 안 가 봐도 돼?“

 

 “가야지···. 근데 있잖아··· 돈··· 어디서 구하지···?“

 

 삼천만원을 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염치없지만 이나연한테 빌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걸 하루 만에 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이나연이라 해도 이번에 개업 탓에 꽤 무리를 했으니까···.

 

 “돈 대신 내주게?“

 

 별이가 차가운 눈을 둥글게 뜨며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조금씩 다시 식어가는 눈매.

 

 “그래··· 설거지하기 귀찮고, 김설이 차린 밥은 맛있으니까.“

 

 “칫··· 요린 내가 해도 되잖아.“

 

 별이가 날카롭게 뜬 눈으로 혀를 차며 말했지만―.

 

 아니, 그건 무리다.

 

 “하아···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한숨을 내쉬며 살짝 헝클어진 머리를 긁적거렸다.

 

 “시간이 있어도 이나연 그 얼빠진 여자는 무리야. 아무리 자기 고객이 큰손이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도와준 거니까. 그 정도 건물이면 꽤 돈이 많이 들었을 테고 은행에서 대출도 했겠지.“

 

 “어? 호구부자가 사준 거 아니었어? 그것보다··· 넌 왜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 거야?“

 

 나는 황당함에 순간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

 

 “이건 얼마 전에 본인한테 직접 들은 거야. 근데··· 너에겐 사실대로 말 안 했나보네. 그 썅년, 너한테 있어 보이려고 자존심만 더럽게 새운단 말이지···.“

 

 저기? 방금 이나연한테 욕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나연 말고··· 하나 방법이 있긴 있어.“

 

 내 마음속 의문을 흘러 넘기듯, 별이가 팔짱을 끼며 연달아 말했다.

 

 “뭔데?“

 

 “한 달 뒤에··· 「어머니」 생신이셔.“

 

 별이의 그 발언은 어이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뭐? 넌 「그 여자」 생일도 알고 있는 거야?“

 

 그 때문에 가늘어진 눈을 뜨며 별이에게 시선을 쏟아 부쳤다.

 

 “···어머니가 나한테 전화··· 왔었어···.“

 

 앗!

 

 내 분노가 담긴 적의어린 시선에 별이가 주춤해졌다.

 

 그것을 깨달은 나는 재빨리 무표정을 취했고, 내 시선이 원상 복귀되는 것에 맞춰 별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너에게··· 할 말이 있으신 듯해.“

 

 “그게 어쨌다는 거야?“

 

 눈은 바뀌었으나 말투에 묻어나는 퉁명스러움은 변하지 않았다.

 

 “부탁해, 어머니한테···.“

 

 내 말투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별이가 가늘게 뜬 눈초리를 내게 비추었다.

 

 “내가 미쳤냐? 날 버리고 떠난 여자한테 뭐 하러!“

 

 이미 1년이나 안보고 살았고, 앞으로도 다신보고 싶진 않은 여자다. 「그 여자」는.

 

 “어머니라면 하루 만에 해결돼. 그 연세에 이미 대기업 간부시니까.“

 

 나를 설득하려고 드는 별이가 짜증났다. 하지만 나는 그런 녀석에게 짜증낼 권리 따윈 없었다.

 

 “그래도··· 「그 여자」는 싫어···.“

 

 “그럼 길에다 암캐 한 마리 버리고 와.“

 

 눈빛 못지않게 차가운 목소리를 내뿜는 별이.

 

 “···「어머니」한테 부탁하면···.“

 

 나는 시선을 내리깔며 마지막 저항을 했다.

 

 “너 「우리엄마」 번호 알아?“

 

 “······.“

 

 “그치? 나도 우리 이 여사 번호 몰라. 이메일 같은 걸로 연락해도 최소 몇 달은 걸릴걸? 운 없이 론칭쇼 기간이랑 겹치면, 아마 년 단위로 점핑할거고.“

 

 별이의 차가운 시선을 받으면 받을수록,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를 못 뵌 지도 벌써 1년 가까이 됐네···.

 

 “다른 방법은 없을까?“

 

 “없어.“

 

 단호하잖아···.

 

 “너 왜 이렇게 단호박이야? 원래라면 당신, 「동생이 부탁하면 뭐든 들어주는 누나」 아니었어?“

 

 “널 위한 거라면 이러지 않았지. 하지만 이건 「네 일」이 아니잖아?“

 

 정론이다. 별이의 말대로 이것은 「네 일」이 아니다.

 

 “···어쩔 수 없단 말인가···.“

 

 “그래··· 전화 한통에 삼천, 선택은 내 몫이야. 감정 죽이는 건 영이 네 특기잖아.“

 

 “하아··· 일단··· 김설한테 다녀올게···.“

 

 무의미하겠지만,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운다고 다 달래주면 똥개 버릇 나빠지는데···.“

 

 「강아지」는 맞지만 「똥개」는 아니야···.

 

 “개 아니고 김설이야. 갖다올 테니··· 그 여자랑 통화할 수 있게 준비해줘. 그나저나··· 아까 낮에 할 말이 있다는 게 설마 「그 여자」 생일 얘기였어?“

 

 김설과 내가 외출 전, 별이가 머뭇거리며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래···. 다행이네··· 내가 널 데려갈 수 있어서.“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별이.

 

 결국··· 이번에도 내팽개치는 건가.

 

 별이는 「그 여자」에게로 가려고 한다.

 

 그것을 만류하고 싶어도··· 내겐 그럴 자격이 없다.

 

 「나는 죄인이니까」

 

 “···다행은 무슨.“

 

 별이는 이미 선택했고, 나는 그 선택을 따라야한다.

 

 「다른 것」을 포기하고 「그 여자」에게 가야한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별이에게서 뒤돌아 걸어갔다.

 

 10분은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울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김설에게···.

 

 나는 녀석을 잃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

 

 

 

 “···10분··· 이미 지났어요···.“

 

 그 울림은 약속을 어긴 나를 질책하는 게 아니었다.

 

 “불만 있어?“

 

 “아뇨···. 불만 같은 건 제게 사치예요···. 영이 씨가 제게 기다리라고 하셨어요. 그거면 돼요. 저는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있어요···.“

 

 김설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말을 흐렸다.

 

 “흠··· 너, 날 너무 신뢰하는 거 아니야? 내 말이 이 상황을 해결해주는 것도 아니잖아.“

 

 자신없어보여도, 그 말에는 나를 향한 맹목적인 신뢰가 담겨져 있었다.

 

 “하지 못해도··· 해결하지 못해도··· 전 기다릴 거예요. 제게 이미 당신은··· 절대적이니까···.“

 

 ···그건 너무 과장된 거 아니냐?

 

 “···그거 의존증이야, 고쳐.“

 

 나는 바닥에 웅크린 녀석에게 다가갔다. 시선을 맞추기 위해서.

 

 “어찌 보면··· 영이 씨 탓도 있어요···. 저 같은 거에게 경솔을 아끼지 않으셨으니까···.“

 

 “남 탓은···. 그나저나!“

 

 별이 때와는 다른 떨림이다.

 

 나의 떨림인가. 아니면 녀석의 떨림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미칠 듯이 녀석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고 가슴이 말했다.

 

 “너··· 언제까지 울고 있을 건데.“

 

 나는 녀석의 뺨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마치 갈색 눈의 또렷이 박힌 슬픔을 걷어주는 것처럼.

 

 “아직··· 아직 영이 씨가 안아주시지 않았어요···. 안아서 달래주신다고 하셨으면서···.“

 

 “또 남 탓이냐, 망할 김설!“

 

 녀석을 「안았다」라긴 보단, 내가 녀석에게 「안겼다」고 말하는 게 옳겠지···.

 

 이 행위 또한 별이 때와 다르게 거칠다는 느낌이 없었고, 부드러움과 따스함을 복 돋아주었다.

 

 “···이제 뚝해.“

 

 “오글···거리시네요···. 근데··· 괜찮으신가요···? 이렇게 절 끌어당기시면··· 전 더욱더 멀어지지 못할 텐데요?“

 

 김설이 나를 꼭 껴안았다.

 

 흠칫 떨리던 몸은 제자리를 찾듯이 그 떨림을 멈춘다.

 

 녀석은 나를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나 또한 매한가지였다.

 

 “···몰라. 네 마음대로 해.“

 

 이 상황에 맞는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떠올랐지만, 말하지 않았다가 맞는 표현일 것이다.

 

 왜냐··· 녀석의 감정은 「네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이 씨를 끌어안고 있은 채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이러면 아프지도 않고, 불행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으니까···.“

 

 내 어깨부근이 조금씩 젖어 들어간다.

 

 이유는 뻔했고, 때문에 나는 녀석을 더욱 끌어안았다.

 

 “멍청아···! 시간이 멈추면 사람도 멈춰. 이럴 때는··· 「이렇게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거야···.“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오글거리는 대사를 읊으며, 나는 녀석의 눈물을 달랬다.

 

 “후훗··· 맞아요, 그러네요···. 그렇게 죽는 것도 꽤 로맨틱 하겠어요···.“

 

 눈물을 흘리면서도 작게 미소 짓는 소리가 내 귓가를 적셨다. 나 또한 그 미소에 답하듯 미소 지었다.

 

 “착, 착각하지 마! 난 그 로맨틱에 어울려주지 않을 거니까. 죽고 싶으면 혼자 죽어.“

 

 “알아요···. 착각 안 해요···. 그냥··· 떠나기 전에 이걸로 만족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 미소가 네게 다시 한 번 이별을 고했다. 멋대로, 말이다.

 

 “···떠나려고?“

 

 “네···. 제가 이곳에 있으면 두 분이 다칠 것예요. 그, 그러니까···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마지막으로 영이 씨를 느낄 수 있어서··· 만질 수 있어서··· 정말로, 정말로 다행이에요···.“

 

 녀석의 미소가 다시 눈물에 잠긴다.

 

 나는 그게 싫었고, 녀석이 고하는 이별이 짜증났다.

 

 이 녀석은 자기 멋대로 찾아오고 자기 멋대로 떠날 생각인가보군.

 

 “근데··· 영이 씨, 발 아프지 않으세요? 아까 유리조각이···.“

 

 “······.“

 

 “쳇! 너 때문에 아프기 시작했으니까 책임져.“

 

 상처가 난 줄도 몰랐는데··· 젠장, 서서히 찔끔거리면서 아파오기 시작했다.

 

 “마지막이니까···. 제, 제가 핥을 까요···?“

 

 ···왜 나랑 비슷한 발상이 나오는 거니?

 

 “···아, 아니··· 그것 좋은 생각이 아니야.“

 

 남에 상처부위를 핥아주는 녀석이 세상에 어딨냐!

 

 나만 빼고. 그리고··· 한 놈 더.

 

 “침대 밑에 구급상자 있어. 빨간약 발라줘.“

 

 “···그러면 포옹 풀어야 하는 데요···.“

 

 녀석이 갑자기 힘을 주며 나를 더욱 쌔게 끌어안았다.

 

 이, 이자식이?!

 

 “나, 나중에 해주면 되잖아! 나 아프다고! 따, 따가워···!!“

 

 농담 하는 게 아니라 진짜 발바닥이 더럽게 아팠다.

 

 

 

 

 

 내 혼신을 다한 간청에 아쉬운 듯 포옹을 푼 김설.

 

 그, 그리고―.

 

 “저기··· 피, 피가 엄청 심, 심한대요···.“

 

 “그, 그러게···. 나 죽는 거야···?“

 

 발바닥 전체가 핏자국으로 덮인 참상이 실로 오싹오싹했고, 마룻바닥에 빨간색으로 색칠된 발도장들이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상, 상, 처처, 부, 부위에 유, 유리, 가가, 박, 박혀, 있, 있, 을을 수도 있, 있고··· 신, 신경 같, 같은 걸, 걸 건, 드, 드렸, 을, 을 수, 도도 있으, 니, 까까··· 병, 병, 원은은 이, 이미 닫, 닫을 시, 시간이고··· 응, 응급실에 가, 가, 가···.“

 

 이보세요? 다친 놈보다 더 떨면 어쩌냐?!

 

 “너 일단 손에 쥔 가위부터 내려놓고 말해.“

 

 구급상자 안에서 꺼낸 가위를 손에 쥔 채 손을 덜덜 떠는 김설. 아, 참고로 다른 쪽 손에는

 붕대가 들려있다.

 

 “빨, 빨간 약, 약, 바, 바르, 지지, 도 않않, 았, 는, 데 영, 영이 씨, 씨, 발바, 닥이 빨, 빨, 개, 개, 요오···.“

 

 “일단 가위부터 내려놓으시라니깐요···?“

 

 “흐···흑··· 으윽··· 흐에에에에에에에으에에엥···!!“

 

 “울지 마, 울지 말라고! 가위 들고 울지 말란 말이야?!!“

 

 이 녀석아! 가위 들고 슬금슬금 오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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