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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로맨스를 원하지 않는다
작가 : Gwan
작품등록일 : 20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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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2. 감정이 앞서도 되는 걸까
작성일 : 17-06-17     조회 : 310     추천 : 0     분량 : 5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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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정없이 만져되는구나··· 꼬마.“

 

 “뭔 개소리야! 내 손 지금 가만히 있는 거 안 보여?! 내 엉덩이를 만지고 있는 건 당신 손이라고?!“

 

 “아··· 여기가 아픈 곳 아니었어? 넌 항상 여기가 아픈 줄 알고···.“

 

 “이런 망할 돌팔이!!“

 

 당신이 만져야 할 곳은 내 마음이라고, 이 망할 여자야!

 

 

 

 

 

 이 정도면 참을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마음속에 난 상처가 사그라졌다.

 

 문제는 그 다음이지만―.

 

 “아파! 마취 들어간 거 맞아? 살이 덜덜 떨린다고?!“

 

 나는 고개만 살짝 든 채로 셰이킹거리는 발을 내려다보았다.

 

 “아까부터 너무 시끄럽잖아 꼬마~ 마취 잘 들어갔으니까 엄살부리지마~“

 

 천연스럽게 미소 짖는 이나연. 지금 녀석의 손에는 주사귀가 들려있다.

 

 “잘 들어간 게 아닌 거 같은데? 절대 아닌 거 같은데? 나, 나 지금 손 떨리는데?“

 

 내가 아무리 떨리는 손을 강조한들, 이나연의 능청스러운 웃음은 지어지지 않는다.

 

 “그거 왜 하는 거야?! 상처 벌리는 거 같은데?“

 

 녀석은 주삿바늘을 이용해 내 상처부위를 쿡쿡 찌르는가하면, 벌린 다음, 이리저리 살을 휘저었다.

 

 “벌리는 거 맞아. 이렇게 해서 육안으로 안쪽에 유리가 박혔나 안 박혔나 확인하는 거야~“

 

 그 웃음에 불순한 요소가 섞였다는 게 문제지만.

 

 “너 왤케 해맑아? 마조 변태 주제에 주도권 잡았다고 지금 느끼는 거냐?“

 

 “나~ 옛날에 거칠게 환자 다룬다고 윗사람이 계속 지랄지랄했어거든~ 넌 오늘 임자 제대로 만난거야. 축하해 꼬마, 오늘부터 넌 마조히스트다~!“

 

 지금 이나연의 볼이 살짝 붉어져 보이는 건 나의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분명 아닐 것이다.

 

 “으윽···! 넌 내 손에 죽었어! 진짜 죽었어!!“

 

 누운 자세인 내가 아무리 손을 뻗는다 한들, 발 밑쪽에 있는 이나연의 머리채는 붙잡을 수 없었다.

 

 “뭐야~ 때리면 흥분하는 성격? 것도 나쁘진 않고~!“

 

 나의 아등바등 거리는 모습에 더욱 볼을 상기시키는 녀석.

 

 “이나연, 너 별이한테 머리채 뜯길 준비해!“

 

 으아! 방금 살짝 느낌이 왔다고?! 대체 뭘 건드리는 거냐고!

 

 “자아~ 환자님··· 바늘이 더욱 깊숙이 들어갑니다~ 조금 따끔할 거예요~ 사실 마취 제대로 안 했으니까요~!“

 

 역시! 역시 제대로 안된 거냐?!!

 

 “이나연 이 쌍년아!! 내 동생한테 무슨 짓이야!!“

 

 기가 막힌 타이밍에 별이가 등장했다.

 

 하지만 그런 별이는 내게 구원자처럼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거유 꼬맹아~ 한 발짝만 더 다가오면 꼬마 신경이 다 잘려버린다고~?“

 

 왜 다들 가위를 드는 건데?!!

 

 “이, 이 년이···!“

 

 “제발, 제발! 그러지 마! 바늘이랑 가위 그거 내려놓고 싸우란 말이야!“

 

 “나연 언니! 별이 씨는 제가 막을 테니 영이 씨를 무사히 치료해주세요!“

 

 또 어디선가 나타난 김설이 별이의 몸을 등 뒤에서 붙잡았다. 아니, 껴안았다.

 

 “개 주제에 지금 어딜 만지는 거야! 이거 놔! 저 여자보다 내가 하는 게 더 안전하다고!! 에잇! 가슴 만지지 말라고! 날 만져도 되는 건 「내 동생」뿐이라고, 이 빨래판아!!“

 

 이 긴박한 상황 속에서 김설의 손이 어디어디를 더듬은 듯하다.

 

 어디어디를 만져진 별이가 속박당한 채로 몸부림친다.

 

 “너무해요! 누가 이런 걸 만지고 싶어 한다고!“

 

 어디어디가 있는 별이에 비해 어디어디가 없는 김설은 울상을 지으며 반박한다.

 

 “설~! 나이스~! 자, 박힌 유리도 없고, 신경도 문제없으니··· 바느질해야지~?“

 

 “바, 바느질은 옷을 꿰매는 일···인데요···?“

 

 완전히 가학성애자로 변해버린 이나연에게 존댓말을 해버리는 나.

 

 “꼬마? 너 왜 그렇게 심각해? 괜찮아, 괜찮아, 이번엔 조금 더 따끔할 뿐인 걸~ 아니지 아니야··· 이번엔 조금 아플 거야~!!“

 

 아아··· 내 의문이 가볍게 무시당했다. 나는 이제―.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아아아아아아앗악!!!!!!!!!!!!!!“

 

 그렇게, 웃음소리와 비명소리가 비례되듯 실내에 가득 울려 펴졌다.

 

 

 

 

 

 모든 걸 쏟아 부어 고요해진 분위기 속에서.

 

 “나쁜 년···.“

 

 그런 내 원망어린 말이―.

 

 “하앙~♥ 더! 더 욕해줘~!“

 

 마조히스트에겐 상이었나 보다.

 

 “절조 없는 년···.“

 

 나의 비난어린 눈초리가 이나연을 향했다.

 

 “그딴 걸로는 몸에 펌프질 못해~“

 

 그런 내 비난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흘려 넘기는 녀석.

 

 “의리 없는 년···.“

 

 “의리보단 러브지~ L. O. V. E luv~♬“

 

 왜 이 녀석은 계속 들뜨는 거냐고···!

 

 “쓰레기···!“

 

 “지금 이 상황에선 네 매도는 내게 상이야~“

 

 진짜, 이 쓰레기 여자!

 

 “왜 오늘 전화한 거야! 내가 「그 여자」를 멀리하라고 했잖아!“

 

 내가 이나연에게 따지듯 물었다.

 

 “별 수 없잖아~ 선배랑 난 계약했으니까. 꼬마 너와 접촉하면 무조건 보고하기로.“

 

 나는 그게 싫단 말이야··· 싫다고···!

 

 “···내가 다친 것도 말할 거야···?“

 

 “이미 오기 전에 말 했어~ 근데··· 선배는 떨지 않더라···. 나는 네가 또 다쳤다고 들었을 때··· 겁이 날 정도로 떨렸는데···.“

 

 이 바보가···.

 

 나는 이나연의 손을 잡았다. 그 떨림을 내가 감당하기 위해서.

 

 “「그 여자」한테 그런 걸 바란 거야? 넌 정말 멍청하구나···.“

 

 떨림이 내게 전해져왔다. 지금은 우리 둘만이 가질 수 있는 떨림이다.

 

 “그러니까! 매도하지 말라니까? 팬티랑 스커트가 다 젖어버린다고~?“

 

 “···미친··· 변태···. 넌 그 성격만 고쳤으면 시집가고도 남았어.“

 

 “아니, 아니~ 동성 결혼이 합법···.“

 

 “이 개 같은 링거 빼고 집에나 가!!“

 

 “와우~! 몸에 끈적끈적한 거 다 들어갔네~? 바늘은 빼줄게. 하지만 집에는 안 가···.“

 

 “집에 가.“

 

 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럼 진료비랑 약값, 출장비 내놔!“

 

 이 여자가··· 물질적인 걸로 맞서다니.

 

 “···오늘 돈 다 써서 없어, 다음에 줄게.“

 

 “설~! 때문인가~? 거실에 쇼핑백이 엄청 많던데~ 꼬마 취향으로 설~!을 싹 개조한 거야~?“

 

 “녀석이 입을 옷이 없어서 사준거야! 김설도 이젠···.“

 

 끝말을 삼키며 말을 흐리는 나.

 

 “세 달도 안 본 사이라더니··· 3년이 넘도록 꼬마 뒷바라지 해준 나보다 더 소중히 여기네···. 이거 질투해버려도 괜찮은 거 맞지?“

 

 “그, 그런 거 아니야! 녀석에겐 진짜 아무것도 안 남았어···. 그러니까 내 곁에 있는 동안 내가 녀석의 것들을 만들어줄 거야. ···다른 마음 따윈 없어.“

 

 말을 하면서도, 나는 움츠러들었다. 이나연은 그런 내 모습을 즐거운 듯 관찰하며 내 손등을 자신의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후훗··· 그럼 내가 더 소중하다는 거네~?“

 

 “···맘대로 생각해, 망할 여자···.“

 

 나는 녀석의 감촉을 받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연하 주제에 츤데레 매력 터지는 걸~~!“

 

 하지만 이나연의 그 말에 다시 고개를 원위치 시킨다.

 

 “대체··· 그 츤데레란 게 뭐야?“

 

 김설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잖아.

 

 “뭐야~? 이 문명에 뒤떨어진 꼬마는···. 꼬마, 너 요즘 인터넷 같은 거 안 해?“

 

 내 손을 쓰다듬던 손길이 멈추며 어이없음을 감추지 않는 이나연.

 

 “하, 하는 데···? 뉴스나··· 실시간 검색어··· 지진정보··· 일기예보··· 알라딘···? 같은 거···.“

 

 이나연이 날 보며 기막히다는 눈을 쏟아 부쳤기에, 내가 뭔가 잘못한 거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스마트폰 사줬을 때··· 좀 더 다양하게 놀라고 하지 않았던가~?“

 

 “e북 같은 거나··· 신간알림 같은 걸로 다양하게 즐기는데···. 가끔씩 영화 상영관 정보도 보고.“

 

 아주 가끔씩 말이다.

 

 “···꼬마, 최근에 영화 본 게 언제야?“

 

 응? 갑자기 웬 영화?

 

 “음···? 1년 전 겨울···이였나? 심야영화로 본 거 같아.“

 

 심야엔 사람이 없으니까.

 

 “잠, 잠깐만 기다려봐.“

 

 응? 이나연 녀석, 어디 가는 거야?

 

 

 

 

 

 “뭐야? 거실 치우고 있던 애들을 왜 데리고 온 거야?“

 

 거실로 나간 이나연이 김설과 별이를 데리고 돌아왔다. 그 때문에 안방 침대 위에는 네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그래, 왜 데리고 온 거야?“

 

 “아직 거실 다 못 치웠는데요···.“

 

 어리둥절하긴 두 녀석도 마찬가지인 듯, 어째서인지 합이 잘 맞는 둘은 동시에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야, 꼬맹이~! 너 네 동생이랑 영화관 안 간지 얼마나 됐어?“

 

 어딘가 불만스러움이 묻어나는 별이에게 이나연이 물었다.

 

 “으응? 한 1년 정도 됐나? 근데 그건 왜?“

 

 불만을 당혹감으로 감추며 별이가 말하자, 그 답을 들은 이나연은 얼굴을 찡그리며 자신의 이마에 손을 얹혔다.

 

 “설~! 넌 영화관 언제 가봤어?

 

 이번 타깃은 무릎을 꿇은 채 다소곳하게 있던 김설에게로 향했다.

 

 “네? 그런데 비싸지 않나요? 저는 할머니가 폐지를 주우실 때··· 종종 가져다주신 만화책을···“

 

 ···울지 말라고?!

 

 “너네···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는 거 없어~?“

 

 하아··· 대체 뭐가 잘못됐다는 건지···.

 

 “네가 30대 노처녀인···.“

 

 “야 이 멍청이들아!!! 10분 거리에 영화관 나두고 1년 전이 마지막이라는 게 말이 돼?!!“

 

 으아아아악악아아아앗!!!!

 

 내 말을 자르며, 이나연이 어째서인지 내 귓가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왜 소리 질러! 나 환자라고?!“

 

 귀가 찢어지는 줄 알았잖아!

 

 “영화관을 안 간다고?! 데이트 필수 코스라고 영화관은~?! 원나잇 상대랑도 가는 영화관을 한참 놀 나이인 10대들이 안 간다고~? 그게 말이 돼?“

 

 뭐냐 그 보편적인 일반화는.

 

 “10대라고 해서 꼭 영화관에 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원나잇 같은 것 좀 그만둬.“

 

 너랑 결혼할 녀석이 네가 다른 남자들이랑 뒹굴고 다녔다는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 것 같냐?

 

 “난 「누구」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니까, 괜찮아.“

 

 「누구」는 또 「누구」야? 여기서 더 등장할 「누구」가 있는 거야?

 

 “그게 아니라··· 미래의 네 배후자를 위해 모르는 남자랑 자는 건 좀 자제하라는 소리야.“

 

 미래의 당신 배후자가 언제 나타날지가 미스터리지만.

 

 “웬 남자~? 난 여자 쪽이 더 좋은데~?

 

 아··· 그래, 정정하지.

 

 “여자든 남자든 그만 하라고!!“

 

 “우훗~ 막상 꼬마도 레즈 플레이를 보면 기뻐할 거면서···. 간혹 지금 내가 여기서 설~!을 벗긴다던가 하면···.“

 

 “···넌 삐뚤어진 게 아니라 이미 부서진 거구나···. 불쌍한 녀석··· 이리와, 한 번 안아줄게.“

 

 나는 큰 맘 먹고 이나연을 향해 양손을 펼쳤다.

 

 “꼬, 꼬마가 안아주는 건 좋지만··· 얼굴도 모르는 부모 대신 할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빚더미에 나앉은 사람을 보는 것 같은 그 눈빛은 왠지 싫어~“

 

 네? 그런 사람이 현실에 존재한가요? 아하··· 내 침대 위에 「검은 짐승」이 있었구나···.

 

 김설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가 된 것처럼 눈망울을 그렁그렁 흔들었다.

 

 저게 고도의 연출이나 연기가 아니라 순수하다는 게 문제다.

 

 “흐윽··· 저···전 불쌍하지··· 흐에엥에···! 전 정말 불쌍한 여자예요! 영이 씨···! 흐으으···.“

 

 은근슬쩍 내게 안기는 건 고도의 연출이지만 말이다.

 

 “영이에게서 떨어져 암캐+빚쟁이, 내가 널 죽일 거 같으니까.“

 

 넋 놓고 있던 별이에게서 따끔한 시선이 날아왔다. 어째서인지 그 눈빛은 내게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싫어요! 아까 영이 씨가 절 달래다 말았다고요! 영, 영이 씨! 어서 제 머릴 쓰다듬어주세요! 빨리요!“

 

 내 허리에 팔을 두른 채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이 칭얼거리는 김설.

 

 뭐, 아까 좀 있다가 해준다고 했으니까··· 옳지, 옳지.

 

 머리를 풀어헤쳐서 그런지 복슬복슬해서 진짜 강아지 털 같단 말이지···.

 

 아, 실제로 강아지를 만져본 적은 없지만.

 

 “너네들··· 대화의 논지가 흐려졌다고 생각하는 건 나뿐이야···? 영화얘기는 대체 어디 간 거야?“

 

 으응? 논지가 흐려져도 흐름은 지속되니까··· 딱히 상관없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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