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자고 갈 거야?“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 번 이나연에게 물었다.
“물론~!“
내 물음에 윙크를 더하며 칼답하는 이나연···.
흐음··· 하는 수 없네.
“그럼 소파에서 자.“
“엥~? 나 이제 30대인데? 너네 같은 젊은 것들이라면 몰라도 나 같은 사람이 소파에서 자면 허리 다 아작 날 텐데···?“
뭐지 저 눈은? 왜 아까의 김설보다 더 불쌍한 눈이 된 거지?
“···내 생각에 당신 허리는 성욕 때문 아니야?“
“아니라니까~! 꼬마, 내가 무슨 365일 해다는 여자인줄 알아? 난 「약과」라니까~ 진짜!“
어쩔 수 없잖아···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그렇게 몸 굴리는 건 당신밖에 없는 걸.
거기다 여자랑···.
“그나저나 왜 소파인 거야~? 방이 3개나 되잖아, 이 집.“
“아니, 옷방을 제외하면 두개야. 거긴 서늘해서 추워. 당신, 거기서 자면 아마 입 돌아갈걸? 참고로 말하자면 안방은 내 거니까 안 돼. 당신이 날 덮칠 테니까. 그리고 작은 방은 김설이 잘 거니까 안 돼. 김설은 당신 스타일이 아니지만 당신이 새로운 것에 욕정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 소거법으로 당신은 거실에서 혼자 자는 게 맞아.“
“말 끝났어~? 나 이제 울어도 돼?“
“울어도 영이가 안 달래줄 거니까, 닥치고 흐느껴!“
별이 녀석은 365일 이나연한테 까칠하단 말이지.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네? 저 오늘 안 나가고 내일 나가란 소린가요?“
이 여자는 뭔 개소리를 짓거리는 거야? 개라서 진짜 멍멍거리는 건가?
“너 시간여행이라라도 다녀왔냐? 네가 왜 나가?“
“그··· 사채업자들이···.“
이 녀석은 대체 언제 적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너 이제 빚 없어. 이미 내가 다 해결했으니까.“
정확히는 「거래」를 한 거지만.
“아하··· 그렇군요···. 별이 씨, 저 한 대만 때려주실래요?“
“알았어.“
“꺄악!!!!“
그것은 심플한 대답과는 달리 강력한 타격음이었다.
보이지 않는 속도로 후려쳤기에 김설의 얼굴에는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 무색했다.
“아파요! 무지 아프다고요?! 너무해요! 진짜 너무해요!“
“왜 내가? 개 네가 발정난 개처럼 나보고 때려달라고 했잖아. 그래서 마조히스트 다루는 데 익숙한 내가 손수 때려준 건데.“
별아? 마조 어쩌고 얘기가 나올 때··· 왜 날 본 거야? 기분 탓이지?
“제가 언제요! 꿈인지 아닌지 확인해보려고 한 거죠! 진짜 너무해요···! 흐으엥···!! 영이 찌···. 훌쩍···.“
기시감에는 컨트롤 c 컨트롤 v다.
옳지, 옳지.
다리를 쭉 뻗은 내 허리춤에 매달려 사정없이 흐느끼는 김설. 이제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나는 그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항상··· 폐만 끼쳐서··· 정말 죄송하고, 또 죄송해요···. 저 같은 걸 위해서···.“
“응? 내가 널 왜 위해?“
이 녀석 대단히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닌가?
“네···?“
김설이 당혹감에 젖은 눈으로 내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
“당연히 내 밥을 위해서지. 이 집에서 삼 천 만원치 요리하기 전까진 못 나가.“
몇 번이나 강조했듯이··· 별이 밥은 영 아니란 말이지···.
“···츤데레.“
“꼬마는 츤데레구나~“
“짜증나···. 나한텐 츤데레 아니면서···.“
몇 번이나 강조했듯이··· 츤데레가 대체 뭐냐고···!
“에이! 잘 거야, 다 꺼져!“
나는 허리에 매달려있던 김설을 밀치며 외쳤다.
“침대도 넓은데 같이 자면 안 돼~? 조금 부대끼면 4명 정돈 충분할 거 같은데~ 사이좋게 설~!이랑 나 사이에 꼬마를 두고, 꼬맹이는 앞으로 많이 튀어나왔으니까 끝자리에서 자면···.“
“그건 기각이라고.“
“나 진짜 소파에서 자면 외로워서 운다고~! 거기다 왜 꼬맹이랑은 같이 자는 거냐고~? 너무 불공평하잖아!“
이나연이 별이 쪽을 쳐다보며 울상을 지었다.
“나는 이미 영이와 약속을 했으니까··· 치마를 포기하고.“
별이는 그런 이나연을 무시하고 김설에게 곁눈질을 했다는 게 문제지만···.
“흐음··· 명분이라는 건가~?“
약점이라고 해주세요.
“뭐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런 셈이지.“
“하아··· 그럼 이건 어때~? 정신과 의사로서 말할게~ 설~!은 지금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야. 혼자두면 옛날에 누구처럼 발작을 일으킬 수도 있어. 그러니 설~!이 최고로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곳에서 재운다. 어때, 만족해~?“
···만족은···.
나는 별이 쪽을 쳐다보았다.
녀석은 역시나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나연의 승!
“결론 났으니 이나연은 작은 방을 이용···.“
내가 손바닥을 마주치며 발정기인 녀석을 쫒아내려던 참―.
“아니지, 아니야~“
“또 뭐?!“
“명분은 나도 있어! 나 이나연은 꼬마가 다쳤다는 말에 진짜 가벼운 발작증세가 있었거든. 이것 봐~ 아직도 손 떨리잖아? 거기다 오늘은 5년 만에 피를 너무 많이 봤어. 그러니 나도 꽤 불안정한 상태야~“
당신··· 일부로 떠는 거 다 티 나는데요?
“당신, 선량한 여자들 처녀막 터트리는 걸로 피란 피는 질리도록 보지 않았어?“
별이의 거침없는 태클 탓에 이나연이 잠깐 주춤한다.
“무, 무슨 소리일까나~? 안 들리는 데요~? 아몰랑~ 오늘 같이 잘 거야! 이게 없으면 안정을 취할 수 없어~“
에잇! 징그럽게 달라붙지 마!
이나연은 마치 김설을 따라하듯 똑같은 자세로 내게 달라붙었다.
타이트한 짧은 스커트가 말려 올라간 탓에 녀석의 야한 속옷이 눈에 띈 것은―.
늙어도 자기가 여자라는 걸 좀 자각하란 말이야···.
“그래도 여긴 너무 좁은데···.”
아무래도 결론이 새로 난 거 같다. 하지만 이런 좁은 침대에서 모두가 함께 자기란 다소 무리가 있다.
내가 잠시 머리를 긁적거리려던 참―.
“아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군.“
“따뜻해···.“
“왠지 몇 페이지 전에도 이런 적 있던 거 같은데···.“
“짜증나~“
“나일론 환자가 짜증은 무슨.“
“한 침대가 아니라면 상식은 세이프라는 거군요···.“
“오늘만이야, 오늘만.“
집주인 두 명이 침대가 아닌 바닥에서 자는 게 실로 황당하다. 뭐, 환자대우 받길 원하는 녀석들에게 침대를 양보한 거지만 말이다.
“너무 달라붙었어, 별아···.“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별이가 내게 기대왔다.
“···10분은 너무 짧았어, 안 그래?“
10분 조금 넘었을 텐데···.
“내겐 너무 길었어···.“
“난··· 널 더 느끼고 싶어.“
내 품에서 별이가 움직일 때마다 이불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진하게 울렸다.
“나 아까 엄청 무리했었는데···.“
나는 별이의 단정한 단발머리를 옆으로 쓸어 눈에 보이는 작은 귀에 걸어주었다.
“괜찮아···. 이젠 내가 무리할 테니까··· 영이 넌 가만히 있어도 돼.“
별이 또한 내 앞머리를 부드럽게 매만지며 말했다.
“꼬마랑 꼬맹이, 지금 밑에서 포르노 찍어? 침대 빌려줄까~?“
“으으으윽! 이거 왠지 염장 지르는 거 같아요···.“
침대 위에서 빼꼼 내민 얼굴들이 강렬한 시선을 내려보내왔다.
“닥치고 잠이나 자지?“
나에게 안겨있던 별이가 그들을 차가운 시선으로 저격했다.
“꼬맹이 네가 그렇게 야한 대사를 내뱉는데 어떻게 잠을 자~? 네가 나라면 잘 수 있을까?“
전혀 야하지 않았는데···.
“머릿속에든 게 그런 거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들리는 거야.“
“별이 씨, 그건 아닌 거 같아요···. 두 분의 대화는 충분히 야하게 들렸거든요.“
김설이 이나연을 거들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개 너도 이나연과 똑같은 변태잖아. 아마 제 삼자였다면 사이좋은 남매라고 생각했을 걸?“
“만화에서 피가 이이지지 않은 남매만큼 강력한 소재도 없었는데···.“
별이의 반박에 못마땅하다는 눈초리로 김설이 중얼거렸다.
“헛소리 한다 김설.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오늘 별이가 좀 많이 놀랐을 뿐이야. 거실을 그 꼴로 만드는 걸 똑똑히 봤으니까.“
이랬다가는 끝이 없을 거 같았기에, 내가 나서서 상황을 중재시키는 게 나을 거 같았다.
“그런 걸 바로 개. 이. 득. 이라고 하지~“
넌 게이시잖아요.
“당신 내일 출근 안 할 거야? 늙은 사람들은 밤이 짧고 아침이 빠르잖아. 일찍 자!“
내가 이나연을 노려보았다.
“꼬마, 애석하게도 내일은 일요일~♥ 경사났네~ 경사났어~ 야.“
이나연은 내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능글맞은 웃음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일요일은 출근 안 하냐!!“
“안 하는데용~ 그리고 평일도 다 내 마음인데용~”
아니 이 여자가?!
“영아 시끄러워, 저 년 무시하고 빨리 내 허리에 팔 감아.“
내가 눈살을 찌푸리려고 하자 별이가 내 가슴팍에 자신의 뺨을 맞댔다.
“이건 고문이에요···. 눈앞에서 대놓고 NTR이라니···.“
당황하는 나와 달리 왠지 모를 울상을 짓는 김설.
“설~! 내가 그럼 대신 해줄까? 나도 꽤 한 따뜻 하는데~?“
그런 김설에게 무언가 의미심장한 말을 건네는 이나연···.
저거··· 위험한 게···.
“나연 언니··· 그건 다른 의미로 제 정조가··· 꺄앗! 이거 놔주세요! 무섭단 말이에요!“
역시 그랬냐?!
이나연이 김설에게 더러운 짓거리를 시작하려던 참―.
“이나연, 너 내 가사도우미한테 무슨 짓이야! 김설한테서 떨어져!“
나는 별이를 잠시 떨어트리고는 이불을 걷어차듯 일어나 김설을 지옥에서 끌고 내려왔다.
“너도 바닥에서 자.“
침대완 달리 바닥은 넓다. 그러니 3명에서 나란히 눕는다 해도 충분히 남을 것이다.
김설을 무사히 탈환한 나는 포옹을 풀어 힘껏 토라진 별이를 다시 한 번 껴안았다.
그 순간―.
“히히~ 작전 성공이야~ 설~! 너는 참 순수하단 말이야~? 진짜로 내가 덮칠 줄 알아서 비명까지 지르다니~“
“이, 이나연! 넌 왜 내려오는 거야!“
이나연이 자신의 깔끔하게 풀어헤친 갈색머리를 이끌며 침대위에서 슬금슬금 기어 내려왔다.
“그치만, 혼자 자면 무서운 걸~ 이왕이면 다 같이 자는 게 좋잖아?“
안 좋아, 안 좋다고!
“이럴 거면 애초에 침대를 양보하면서까지 따로 잔 이유가 없잖아! 잠깐! 너 지금 어딜 만지는 거야?!“
이나연이 별이를 안고 있는 나를 등 뒤에서 껴안고는―.
“왜? 좀 만진다고 닳는 것도 아니잖아?“
“으앗! 너, 너!”
뭔가 소중한 것을 유린당하는 기분이다.
“이나연, 진짜 내 손에 죽고 싶어?“
다행히 그 손의 움직임을 별이가 캐치했지만.
“꼬맹이, 눈앞에 이런 게 있는데 여자로서 참으라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너 혼자 독점하지 말고 하루정돈 빌려줘도 괜찮잖아? 나라면 꼬마를 남자로 만들어줄 수 있는데~“
“나 남자 싫어! 안 되도 되니까 떨어져, 떨이지라고!“
나는 이나연에게 도망치듯 별이의 뒤쪽으로 대피했다. 구석 끝이라 그런지 심적으로 안정이 되었다.
“칫! 꼬마가 도망쳤잖아~! 꿩 대신 닭이라고··· 꼬맹이나 만지라 이건가~?“
나이 서른에 볼 부풀리지 말라고!
“그냥 자! 왜 굳이 누굴 만지려고 하는 건데?! 너 때문에 수위가 계속 올라가잖아! 이 개변태년아!“
“그러니까! 잠자리에서 욕하면 흥분한다고~!“
그렇게 말하며 이나연이 이번에는 별이의 몸에 손을 뻗쳤다.
“나 말고 저기 있는 개나 잡아먹으라고! 날 만져도 되는 건 내 동생뿐이야!“
저, 무서우니까 잘 막아주세요, 별이 씨!
“그럼 두 분이서 오붓하게 즐기시고··· 전 이만 영이 씨 옆으로···.“
“안 돼!“
“설~! 그건 아무리 너라도 안 되는 거야~!“
“잠깐만요! 왜 저한테 다 몰린 건가요?! 꺄아악! 제 파자마 속에 손이 들어왔어요!“
“이 녀석들아 제발 잠 좀 자자고!!“
그 외침은 나의 솔직한 바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