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진짜 여기서 2주 동안 살 거야?“
마주본 시선 속에서, 내가 이나연에게 물었다.
“꼬마 네가 내 몸 필요 없다고 나가라며.“
그런 내게 볼을 부풀리며 장난스럽게 대꾸하는 이나연.
녀석의 얼굴을 보니, 분위기가 느슨해진 것 같아 정말 다행이었다.
“네가 언제 그렇게 야릇하게 말했냐! 그··· 아까 그거··· 가르쳐주면··· 안 쫒아낼게···.“
나도··· 그 분위기에 동참한다. 하는 김에 궁금한 건 역시 물어보고.
“뭐? 아~ 그거? 내 키는 164.8cm이야. 몸무게는 비밀! 쓰리사이즈는 위에서 부터···.“
그거 말고!
“네 거 말고 김설 거 말이야, 김설 거!“
“엥~ 내 거 말하는 거 아니었어? 난 또 뭐라고~ 꼬마가 내 몸 라인이 도드라지는 페티시즘 코스튬을 입혀서 「선생님이라고 말해!」 플레이 할 줄 알았는데~“
정말로 실망했다는 투의 그 눈빛은 뭐죠···? 그리고 왜 하필 선생님이죠?
“에이, 됐어! 살짝 유혹에 질 뻔했는데··· 정신이 번쩍 드네. 그냥 공짜로 살게 해줄게. 어차피 너한테 신세도 여러 번 졌으니까···.“
“그래? 아쉽네~ 그럼 대신 꼬마한테 좋을 걸 가르쳐줄게, 가까이 와봐봐~♥“
“너··· 눈이 무서운데···? 나한테 이상한 짓 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지?“
갑자기 야릇해지는 녀석의 눈초리에 나는 꼴깍하고 소리죽여 목젖을 움직였다.
“아니야! 이상한 짓은 깨병인 널 간호할 때 충분히 할 수 있다구~! 엄청 짧은 스커트의 간호사 복장으로 말이야~“
간호사 복장은 아니지만 네가 어제 입고 온 스커트도 충분히 짧은 거 같은데?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거 같아, 너 그냥 집에 돌아가는 게 좋을 듯싶어.“
“아이 참~! 아무 짓도 안 한다고! 그냥 귀만 빌려줘!“
그럼 설마―.
“아··· 그거 뭔지 알 것 같아.“
강아지 치수라던가.
나는 재빨리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 녀석에게 조아렸다.
“준비된 거 같아, 이제 말해.“
살짝 기대감에 부풀어 두근두근 거리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좋은 걸 알려줄게」 라면서 친구가 야한 동영상을 보여주는 느낌?
아, 나는 친구가 없으니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 없구나.
“그게···♥“
이나연의 매혹적인 음성이 내 귀에 다이렉트로 전달된다. 호기심이 내 전신을 좀먹는 순간이었다.
왠지 모르게 속닥속닥♥ 거리는 효과음이 깔릴 것만 같은 야릇한 분위기 속에서, 녀석의 달콤한 지식들이 내 메모리 속에 백업되었다.
“근데 있잖아? 아무래도 내가 남자라서···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좋은 정보를 듣고 좋은 지식을 알게 되었지만··· 이상하게 한 가지 의문이 가시지 않는 게 있었다.
“녀, 녀석은 말이야···. 많이 말랐잖아? 슬림···하니까···. 네가 말한 그···그런 사이즈가 나, 나오지 않을 거 같은데? 아예 모르는 건 아니라도··· 여자보단 모르니까···. 그냥 작은 의구심 같은 거야···.“
“아~ 바스트?“
···그걸 당당하게 말하면 내가 좀 부끄러운데?
“그치만 그거 맞는데~? 「선배의 쓰리사이즈」 선배는 옷 입으면 말라 보이는 타입이니까~ 꼬마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이해가 돼! 하지만 실제로 보면 어마무시하다고~? 꼬맹이보다 사아아아알짝 작은 정도~?“
“···선배···?“
이상하다. 김설은 내 선배가 아닌데···.
“응~ 선배 말이야. 왜? 이제 내 것도 궁금해진 거야? 나는 선배보단 작지만···.“
나는 내 머릿속에 있는 새홀리기 폴더를 빛의 속도로 휴지통에다 처박아 넣었다.
썅! 지워져라지워져라지워져라지워져라!!!!!!!
“너 그냥 꺼져!!!“
※※※
“···국이 좀 짜다?“
“아··· 그거 별이 씨가 만드신 된장찌개에요.“
“좀이 아니라 많이 짠 거였구나···. 정신이 헤롱헤롱한 상태라 다행이다. 이게 바로 등가교환의 법칙이라는 건가···?“
내가 이나연을 노려보며 뇌까리듯 말했다.
“너무해! 내가 영이를 위한 만든 건데!“
다른 쪽에서 따지듯 외치는 별이는 잠시 무시하고.
“에잇~ 설~! 물 좀 부어서 다시 끓여줄래?“
녀석도 나처럼 신비한 맛의 된장찌개를 타박했다.
“아, 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살려서 들고 와라 김설.
“당신 아직 집에 안 갔어?“
나는 이나연에게 다시 한 번 눈초리를 쏟아 부쳤다.
“응~! 꼬마 너한테 좋은 걸 알려줬으니 2주분 숙박비는 지불한 셈이야.“
뭐라고요 이 여자야?!
“좋지 않아, 좋지 않다고! 그거 때문에 아직까지 머리가 아프다고···!“
별이가 만든 음식 맛을 제대로 못 느낄 정도면 나 아픈 거 확실하다고.
“이나연···! 너 영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별이가 나를 따라 가늘게 뜬 눈으로 이나연을 쳐다보았다.
“응~?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아무것도가 아니잖아! 영이가 지금 손으로 머리 짓누르고 있는 거 안 보여? 대체 뭘 말한 거야?“
어차피 맨 정신에 당신 요리를 먹어도 이렇게 될 거 같습니다.
“꼬맹이는 몰라도 된답니다~ 설~! 아직 멀었어? 나 배고파~ 나이가 들어서 국 없인 밥 못 먹는단 말이야~“
“다 돼가요.“
이 4인용 식탁이 꽉 차는 날이 올 줄이야···. 생전 처음이군.
“이나연, 저거 다 당신 짐이야?“
소파 근처에 무더기로 쌓여있는 짐들을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응 맞아~ 다 싸들고 오진 않았어~ 차에 또 이것저것 있긴 하지만~“
짐까지 들고 온 걸보니··· 애초에 내 집에 눌러 붙을 생각으로 온 거였네···.
“뭐한다고 짐 같은 걸 들고 오냐? 어차피 평일엔 병원 문 열잖아.“
1층이 카페(알바생 김설), 2층은 진료실, 3층이 오피스텔이니까··· 필요한 건 챙겨오면 될 텐데···. 꼭 안 와도 되지만.
“휴가야 휴가~ 내 병원이니까 문 여는 건 내 맘이지롱~“
젓가락 끝으로 사람 가리키지 마.
“개업한지 얼마나 됐다고··· 그래도 돼?“
“어차피 내 고객들이 날 필요로 할 땐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거든~ 2주 정돈 출근 안 해도 문제없어요~“
“···그럼 김설 보고 당신 건물에 혼자 있으란 소리야?“
“예···? 저 알바 첫날부터 방치 당하는 건가요···?“
어느새 별이가 망친 된장국의 수습이 끝났는지, 김설이 오븐 장갑을 낀 채 찌개냄비를 들고 그렁그렁 눈망울을 젖히고 있다.
어이! 그거 뜨거운 거 아니냐? 울다가 잘못해서 엎지를까봐 좀 무서운데?
“아~ 설~!을 깜박했다. 설~! 너도 휴가~“
“닥치고 일 하러 가!!“
첫날부터 휴가란 게 말이 되냐고!
“가서 내 진단서 만들어와. 조금 과장되게.“
“뭐야~? 꼬마 그거 불법인데? 벌써부터 보험 사기꾼이 되려고~?“
“아니거든! 학교에 제출해야 병결처리가 되지.“
음··· 된장찌개가 살아났군. 김설이 맞은편에 있으니 머릴 쓰다듬는 게 힘들겠네.
다음 기회에.
“영이 너 학교 쉬려고?“
옆에 있던 별이가 걱정스러운 듯 나를 보았다.
“어차피 가서 수업도 안 듣는데 왜 가, 안 가.“
그런 별이에게 퉁명스럽게 답하는 나.
“그럼 나도···.“
“그건 기각. 불량아인 나는 어차피 학교 같은데 가봤자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넌 나랑 달리 학생회장에다 모두에게 신뢰받고 있어. 조금 억지스러운 감이 없지 않아 있겠지만··· 넌 제대로 학교에 가는 게 좋아.“
“너··· 짜증나···! 날 내게서 떨어트려 놓으려고···.“
크흠···. 들킨 건가?
“그치만요! 제대로 학교에 안 가시면 진학에 문제가 되지 않나요? 출석이라던가 내신이라던가!“
“출석일수는 내 유능한 주치의가 알아서 해줄 거야. 진학문제는 이 녀석이 있는 한 나 같은 멍청이도 하이패스고.“
내가 별이의 어깨를 살짝 끌어당기며 말했다.
이 천재 녀석은 시험에 나올 문제를 정확하게 집어주니까 말이야.
“난 그냥 별이가 가르쳐준 문제를 달달 외우기만 하면 될 뿐.“
누워서 떡먹기가 바로 이런 거지.
“전 과목을 다 외우는 것도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데요···.“
“···영이 앞에선 나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닌데···.“
별이 녀석이 혼자서 뭐라 뭐라 중얼거렸지만, 딱히 신경 쓰이진 않았다.
“뭐, 애초에 고등학교 같은데 진학할 생각도 없지만.“
나라에서 정한 의무교육은 중학교까지니까, 굳이 새 교복 입을 필욘 없잖아?
“네?! 그건 안 좋아요! 전 영이 씨 별이 씨랑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어요!“
맞은편에 있는 녀석··· 완전 식탁을 너머 올 기세군.
“평생 안 봐도 될 얼굴들 만나봤자 시간낭비야. 거기다 난 원래 집 밖에 나가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는 성격이고.“
“그치만··· 같이 다니고 싶은 걸요···.“
녀석아··· 그렇게 시무룩해하면 지금 당장 쓰다듬고 싶어지잖아···.
“저기 있잖아~ 우리 밥 안 먹어~? 나 지금 접시에 놓인 생선이랑 눈 마주쳤는데, 나보고 빨리 자길 먹어달라는데?“
“내 병결처리 알아서 해주면 앨 먹게 해줄게.“
그게 중요하단 말이지.
나는 이나연의 생선접시를 낚아채 녀석의 앞에서 왔다리갔다리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녀석은 생선접시를 쫒으며 열심히 땡그란 눈동자를 굴렸다.
“그 생선 고등어야? 고등어 맞지? 얼핏 봤을 때 등이 푸른 놈인 거 같았어~! 나할게~! 할 테니까! 먹을 걸 앞에 두고 내게 「기다려!」라고 말하지 말아줘!“
교섭완료.
녀석의 먹이를 다시 재 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러자, 많이 굶주렸던 모양인지 이나연은 허겁지겁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
“응~♥ 맛있어~! 이거 엄청 맛있어~♥“
“왠지 나연 언니가 불쌍해 보여요···.“
“그러게··· 저년을 동정하긴 처음이야.“
“제일 늙은이가 젓가락질 시작했으니 우리도 밥 먹자.“
과정 같은 건 개나 줘버리라고! 결과가 좋으면 모든 다 좋은 거야.
그렇게, 4명이서 먹는 첫 아침 식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