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서랑은 방에서 앞으로 계획을 짜야했다.
일단 태자마마 생신진연은 참석해야했다. 생신진연에 참여하기 위해서 신분패를 소지하고 있었던 것이구나. 그나저나 서랑이라는 아가씨는 담도 크다. 어머님 말을 이렇게 깡그리 무시하고 돌아다니다니. 그간 이런 저런 이야기로 월담이와 그보다 작은 소녀 언년이라는 몸종을 통해서 앞으로 살아야 하는 자신에 대해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본디 부모는 족보가 유명하지 않는 양반인데 대신 돈의 흐름을 잘 알아서 상단을 이끌고 있었다. 작은 상단이긴 하지만 도심에서 운영하는 상단이 아닌 지방에서 물자를 대는 제법 알짜 상단의 단주가 아비이고 2남3녀중 막내딸이란다. 나름 돈이 있는 집안의 딸이라서 다행이긴 한데 월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머님이 자녀가 많으니 너 하나 잘못 되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할꺼라고 유량을 가서 유령이 되던지 말던지 모른다고 선포는 하셨지만 월담의 말에 의하면 아이들을 하나하나 특별하게 사랑하셨단다. 불쌍한 사람들도 도와주어서 마을의 선망이 높으신 분들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자신의 가출한 이유는 나이가 17살로 혼기가 꽉차있있어 혼례에 대한 호기심이 높아가던 때에 큰언니가 시집을 가던 날 형부를 보고 못생겼다며 자신의 남편감은 자신이 직접 수려한 사람으로 데려 올 것이라고 홀랑 외가로 도망쳤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가족들이 있는 몸으로 업보를 푼다는 것이 쉬울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옥황상제의 상선이 그리 말했던듯 싶었다. 능력을 다 쓰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서랑의 그간 삶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마을에서도 말괄량이로 이름이 높았고 성격이 한마디로 철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몸종들도 사소하게 서랑에게 쉽게 잔소리를 했던 것 같았다.
자신의 업보를 어찌 풀어야 하나. 적은 사람을 구하려 온 것이 아닌데. 서랑은 앞으로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줄지 차차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당장은 이 몸의 주인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끌어 모아야 했다.
뱃 여행은 이틀이 지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간에는 김휘 도령이 인사를 하면 서랑도 인사를 하고 어쩌다가 이런 저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는 되다 보니 월담은 이번에 아가씨가 잘 엮여서 빨리 혼래를 올렸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서랑은 귀닫고 바람 쐰다는 핑계로 잔소리를 듣기 싫어했다.
김휘도령은 예전에 비해서 담백한 서랑이 싫지는 않은지 서랑이 보이면 다가와 인사를 하는 정도까지 되자 월담의 상상은 날개를 달아 날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주인 닮아서 그쪽으로는 관심이 지대했다.
드디어 배는 강나루에 내렸고 서랑은 강나루에서부터 걸어가려 했으나 김휘 도령이 도움으로 지금 말을 빌려타고 갈 수 있게 되었다. 처음 김휘 도령이 그녀에게 말을 탈 수 있냐고 묻자. 대뜸 탈 수 있다고 대답했다. 서랑은 본디 전생에 말도 타고 몸좀으로 무예도 익혀서 공주나 주인을 모셨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에 몸종 둘은 놀란 듯 서로 처다보았다. “아씨? 괜찮으세요?” 눈치를 보아하니 서랑은 말을 탄적이 없었나 보다. 저 눈빛 봐라 잡아먹을 듯하네
“아~ 괜찮아. 다 처음엔 그래.”하면서 살짝 속삭였다. 몸종 둘은 말이 끄는 마차에 타고 도성으로 출발했다.
휘는 자신이 오지랖 넓게 왜 저 묘한 여인을 도와주는지 ... 아마도 측은지심이겠지. 하며 서랑 자신과 나란히 말을 타고 가면서 처다 보았다. 여리 여리한 여인의 몸으로 말을 타는 자세는 매우 잘 잡혀있다.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며 말을 타는 모습이 너무 생생하게 활력이 느껴졌다. 정말 이상한 여인 이였다. 보통의 여인들은 얌전하고 정적인 느낌 이였다면 서랑은 동적인 느낌이 들어 심장이 생소하게 두근거렸다.
“처음 타신 것이 아닌 듯 합니다만...”
서랑은 저승에서 이승으로 오면서 이승이 더 좋다는 것을 세삼 깨달았다. 그래서 말을 타고 높은 위치에서 반짝이는 나무도 보고 바람을 느끼는 지금이 너무너무 좋아서 옆에서 말하는 것을 흘려들었다.
“네~ 말타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차! 이런 몸종들이 들으면 오해하겠어. 서랑은 휙돌아서 몸종들이 들었는지 확인하였으나 걱정 할것이 없어 보였다. 몸종들은 휘 도령들의 남자 몸종들하고 매우 화기애애하게 이야기 하며 따라오고 있었다. 저것들 봐라? 좋아 죽지?
그녀가 보는 곳을 휘도 따라 보았다.
“잘 따라오고 있는데 몸종들을 잘 챙기 시는가 봅니다..”
“아하하. 하도 오래 같이 지내던 이들이라...” 서랑은 어색하게 웃었다.
“저 계속 이 길을 따라 가면 되는 것 입니까?” 서랑은 김휘 도령을 올려다 보았다. 그와 그녀의 키 차이로 인해서 말을 타고 있어도 올려보아야 해서 불편했지만...
“그렇습니다. ”
“저 그럼 저 먼저 달려가서 기다려도 될까요? 오랜만에 타는 것이라 달리고 싶어서..”
“낭자 혼자? 좀 위험합니다.”
“음.. 도련님도 잘 타시는 듯 한데 그럼 같이 먼저 달려가서 저들을 기다릴까요? 정말 달려보고 싶은데...”
휘는 왠지 그녀의 말이 의심스러웠다. 자신과 단둘이 있고자 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처다 보았으나 그녀의 맑은 눈빛은 그저 아이처럼 말을 타고 싶다는 열망만 가득했다.
그 모습에서 왠지 꼬리를 흔드는 고양이를 보는 것 같아서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러하지요. 저들에게 이야기 하고 올 테니 기다리시지요.”
휘가 뒤로 처지더니 몸종들에게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다가왔다.
“이야기 해두었으니 낭자 먼저 달리 시지요 뒤따라가 보겠습니다.” 휘는 달릴테면 얼마나 달리는지 두고보자 하는 심산이였다.
그러자 서랑은 그의 여인에 대한 무시가 조금 느껴지자 피식하고 웃었다.
좋아 따라 올태면 따라와 봐!
“감사합니다. 그럼. 먼저. 이럇!”
서랑은 휘가 말을 하자 마자 박차고 달려 나갔다.
휘는 자신의 허락의 말이 떨어지자 곧바로 달려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활기참을 느꼈다. 여인에게서 무사를 보는듯했다. 멈칫했던 것도 잠시 휘도 박차고 달려나갔다
“이럇!”
서랑이 앞서서 달리고 그 뒤를 휘가 그림처럼 따라갔다.
휘의 말은 명마여서 그런지 본능적으로 서랑의 말을 금세 따라갔다.
휘는 달리면서 그녀의 모습을 옆으로 잠시 바라보았는데 순간 훅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눈은 반달로 휘어지고 도톰한 입술이 반짝이면서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즐거운 미소였다.
자신도 모르게 휘는 시선을 잡혀 버렸다. 나뭇잎 사이사이 햇빛들이 그녀를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었다.
바람이 그녀의 머리 한올 한올을 날려주었다. 그녀가 달리다가 그를 보며 활짝 웃었다.
“정말 도련님 말이 명마시군요.부럽습니다.” 라며 크게 웃었다. 보통의 여인 같지 않은 행동으로 시원하게 웃었는데 그 모습이 휘의 가슴과 눈에 맺히는 것도 모르고 . 그녀는 밝고 환하게 웃었던 것이다.
서랑은 오랜만의 자유로움에 계속 미소를 지으며 달렸다.
곧 그들은 도성으로 도착하여 각각 신분폐를 보여주고 도성으로 천천히 말을 타며 이동했다.
휘가 그녀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웃었다. 그의 가늘게 휜 눈빛이 참으로 봄바람처럼 살랑거린다.
“날씨가 참으로 좋습니다. 이런 날씨 낭자도 좋아하시지요?”
그녀가 하늘을 올려다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요 이런 날에는 빨래를 언능 해서 햇빛에 쨍쨍하게 말려야 해요. 비 오는 날보다 맑은날이 참으로 좋습니다.”
그녀의 의외에 대답에 그가 껄껄 웃어댔다.
서랑은 왠지 자신의 언행이 몸종 같은 대화를 나눈 것 같아서 민망했다.
그녀의 빨개진 볼이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서랑낭자는 꽃도 좋아하시지요? 무슨 꽃을 좋아하시는지?”
“크게 좋아하는 꽃은 없지만... 국화꽃이 좋습니다. 차로 마실 수 있어서요.”
그녀가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휘는 그녀의 미소에 자신도 입매를 굳혔다. 그녀의 생각이 지금 어떠한지 정말 궁금했지만 대화는 이만 나눠야 할듯했다.
“이곳입니다. 이 여각이 이 도성 안에서 가장 큰 여각입니다.”
서랑은 대가 댁 자택처럼 큰 건물을 올려다 보았다. 4층까지 층층히 올려져 있는 건물은 눈이 휘둥 그래질 만큼 높다랬다.
“정말 큽니다.” 나머지 일행을 기다리며 휘가 넌지시 물어보았다.
“낭자는 매우 능숙하게 타시는 것을 보니 혹시 무애도 할줄 아시오?”
서랑은 그의 질문에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조금은 합니다. 손에 검이 없어서 감이 떨어졌는지.. 한번 검을 만져보았으면 하는데....지금은 아쉽게도 짐 사이에 검이 없습니다.”
“나에게 검과 화살이 있는데 괜찮다면 여각 뒷 편에 공터가 있던데 그곳에서 검을 잡아보시는 것은 어떠하시오? 여인들이 검을 하는 것은 많이 보지 못하여서. 낭자도 하는지 조금 궁금해 졌구려.”
“정말이십니까? 그럼 검만이라도 잠시 빌려주시면 몸을 풀어보겠습니다.”
도대체 이 여인은 꽃이나 날씨 이야기에 그저 심드렁 하게 대답하더니 이런 것에는 말이 술술 나온다. 정말 특이한 여인이다. 첫 만남에서 본 여인이 맞는가 싶다. 어찌했던지 지금은 이 모습이 훨씬 그의 심장을 간질간질하게 했다.
곧 그들의 몸종들이 헐레벌떡 도착하여 여각에 짐을 풀고 그녀와 휘는 서로에게 인사를 하였다. 서랑은 뒤돌아서 계단을 총총 올라가는 모습을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휘를 그의 몸종이 다가와서 말했다.
“도련님 혹시 저 아가씨가 맘에 드십니까? ”
휘가 그의 몸종 충길에게 눈빛을 쏘았다.
“무슨 소리냐?”
“아니 도련님이 여인들 보는 눈빛은 얼음이 차갑다 못해 떨어지는데 어찌 저 아가씨는 봄바람입니다. 그려.”
“내가? 그런 일 없다.넌 오히려 저 월담이라는 아이랑 보기만 좋더구나.”
충길이 피식 웃었다.
“전 솔직한 젊은이 지요. 그럼요 제가 또 한 매력하지 않습니까? 도련님 만큼은 아니어도 여자들이 꾀지요.” 저 능글능글한 모습을 보니 그의 친구 최결이 생각이 났다.
“가서 결이에게 내가 왔다고 전달하기나 해라.”
“당연합지요. 이곳의 주인이신데. 말씀 전하겠습니다.”
“아씨! 말은 언제 그렇게 배우셨습니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아니나 다를까. 월담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아차! 이성을 잃고 말을 타다니 조심했어야 했는데..... 이럴 땐 오리발이다.
“맞어, 너 몰래 배웠어.”
“언제 배웠지? 서당에서 중간에 사라지는 것이 그것 때문 이였어요?” 주역국은 돈만 있으면 서당을 남녀 차별 없이 다니게 했는데 문제는 서당을 들어가기는 쉽지만 졸업이 어려웠다. 그래서 서랑은 졸업을 하지는 않고 중간에 그만뒀다고 했었 더랬다.
서랑이 서당에서 중간 중간에 사라졌었나 보다. 불성실 했던 태도가 이번에는 정말 고마웠다..
월담이는 정말 중요한 정보 제공자 였다.
“흠흠. 맞아. 무애도 조금씩 배웠었어.”
“공부 안하고 그런 것 하니까 졸업을 못하시었지요. 난 그런것도 모르고 놀러만 다닌다고 마님이 뭐라 하시면 핑계도 못 데고 혼구녕만 났는데 진즉에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혼사길도 어려운 처자가 무애까지 한다면 남자들이 좋아하겠느냐? 그래서 쉬쉬 한거야.”
“아! 그렇긴 그렇네요 남정네보다 힘이 세면 남자들이 싫어하죠.”
그래 그렇게 생각해라.
언년이가 목욕물을 받아두었다고 말하자 월담이와 대화를 피하기 위해 부리나케 몸을 씻으러 작은 욕탕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만의 몸을 뜨듯한 물에 담그는 것이지 절로 흥얼흥얼 콧노래가 나왔다.
무애도 옵션이였으니 무애도 확인해보면 될 것이다. 일단 무애는 여인의 생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몸을 푹 담그고 자신의 알몸을 하나하나 뜯어 보았다. 몸매가 매우 여성스러워서 매우 흡족했다. 피부도 보드라워 자신이 봐도 피부가 매우 촉촉하게 뽀송뽀송해 보였다. 욕탕에서 나오자 마자 언년이가 몸에다 향유를 발라주었다.
“향기가 좋네. 이것 뭐지?”
“초란꽃입니다. 향기가 은은하고 오래 지속되지요. 피부도 좋아지구요.”
머리도 여러번 빛어서 이쁘게 묶고 빨간 꽃모양의 머리꽃이를 재빨리 꽂아주며 월담이가 제잘댔다. “ 이번에는 아씨가 김휘 도련님을 제대로 역으신 것 같아서 뿌듯합니다. 거울을 보세요 이쁘시죠? 이제 내려가서 식사를 하셔요. 김휘 도련님도 지금쯤 내려 가셨을 껍니다.”
“월담아. 난 그냥 여기서 먹고 싶은데?”
“왜요?”
피곤해서 그와 다시 대화하기가 좀 어색했다. 워낙에 대화가 청산유수로 말하지는 못했다. 예전에는 평범한 외모로 남자들이 주로 말을 걸지 않아서 사내와 단둘이 있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식사를 하면 대화를 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하지만 월담이에게 그렇게 이야기 할 수는 없었다.
“휘 도령과는 오늘밤 따로 만나기로 했으니 밥을 먹으면서 생각을 곰곰이 해야겠어. 너무 들이대면 싫어 한다구.”
“오! 역시 아씨 대단하세요. 그럼 식사를 가지고 올라오도록 할께요.”
서랑은 둘이 챙겨주는 식사를 하면서 월담이가 자신은 내려가서 먹겠다고 하자 아무래도 그 남종들하고 있고 싶어하는 눈치라 내려 보내고 편하게 식사를 했다.
역시 혼자가 맘이 편하다 그동안 서랑낭자 역할을 하느라 알게 모르게 신경을 썼더니 너무 피곤했다. 목욕도 하고 식후에다가 조금 잠이 오려고 해서 침상에 누웠다.
“조금 자 볼까?”
하품이 나오고 노곤한 몸에 바로 눈을 붙였다.
눈을 잠깐 붙인다고 했는데 어찌나 잠이 꿀맛 이였는지...시간이. 그냥 흘러간다
“아씨!! 일어나세요 !”
“음. 더 자고 싶어.”
“일어나시라니깐요. 휘도련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구요. 여각 뒤 공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