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랑은 월담에게 집안에 아이들을 의탁하는 것을 허락을 받을 수 있는 일인지 물어보니 마님이 성격이 괄괄해서 그렇지 배포가 큰 호인이라고 월담이가 흥분해서 이야기 했다. 자신이나 언년이도 그렇게 해서 온 것을 아가씨는 잊어버린 것이냐며 마님 같은 분을 어머니로 두지 않았으면 아가씨도 이런 1년간의 유람이 가능했겠냐며 걱정 말란다. 그래서 서랑은 맘편히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월담과 언년에게 이제는 피곤하니 일찍 자야한다고 일러두고 아이들이 나간 후 일각 뒤에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몰래 객잔을 빠져나왔다.
빠르게 걸어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주위를 둘러 보고는 지붕위로 뛰어 올라 날듯이 도성 외각으로 벗어났다.
서랑이 빈민촌 담화와 담덕의 집에 도착하자 이미 방에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도란도란 들렸다. 서랑이 가까이 가서 아이들을 불렀다.
“담화야? 담덕아?”
방문이 열리고 담화와 담덕은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아가씨!”
“그래, 별일은 없었고? 들어가도 될까?”
“네. 어서 들어오세요. ”
방은 어제보다 훨씬 말끔해 졌다. 아이들이 개다리 소반위에 주전부리를 올려두고 먹고 있었다. 담덕이가 서랑에게 과자를 주었다.
“고마워. 이건 어디서 났어? 돈이 없을 터인데?”
“어제 저희를 지켜봐 주시던 무사 언니가 먹을 것을 주었어요.” 담덕은 문밖 어딘가를 가리켰다.
지난번 아이들을 돌봐주는 호위무사가 여자였나 보다. 어쩐지 체구가 작고 호리호리 하더라니..왠지 얼굴이 궁금하여 서랑이 문밖을 보며 찾듯이 시선을 돌리자. 담화가 그녀의 손을 잡아 끌었다.
“아가씨 검사님이 자신을 찾아 보지는 말라고 하셨어요. 그냥 지켜봐 주신다고 걱정 말라고..”
“아! 그렇구나. 고마워서 내 인사를 좀 한다는 것이 알았어. ” 담화와 담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서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집안을 깨끗하게 치우고 대견하구나?”
“헤헤. 오빠가 빨래도 하고 청소도 했어요. 우리 오빠는 밥보다 빨래를 더 잘해요.” 서랑이 담화를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담화야 의원이 준 그 지도 아직도 가지고 있니?”
“아니요. 여자 무사님이 위험하다고 가져가셨어요.”
“그래 좀 위험한 심부름이지 . 잊어버려.”
“그런데 저에게 어쩌면 그 심부름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씀도 하셨구요.”
“그래? 그건 반대인데. 일단 내가 담판을 질 터이니 걱정마.”
“괜찮아요. 아가씨 저 할 수 있어요.”
“아니야. 내가 절대 허락할 수 없어. 내가 그 대장하고 이야기 할꺼니까. 이곳에 남아 너희 둘이 부모님도 없이 사는 것은 위험한 일에 휘말리기 십상이야. 그래서 내가 생각해 봤는데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곳이 강하라고 시골이기는 한데 너희들을 돌봐주시라고 부탁 드릴 꺼란다. 먹고 자는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만큼 집안은 넉넉하니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이곳을 떠나도 괜찮겠어?”
“...... ” 아이들은 바로 대답을 못했다.
“가서 담화는 영특 하나까 글을 배워서 상인을 해도 좋고 학문을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담덕이도 글을 배우고 싶으면 서찰에 써둘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난 너희들의 후견인이 되기로 결심했어.”
“후견인이 뭐여요?” 담덕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년이 될 때까지 돌봐주는 사람이 후견인이야.”
담화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지만 곧 동생을 바라보았다.
“담화야 어찌 생각해? 매우 좋은 조건이잖아? 너한테 동생을 돌보며 살아가는 것은 어린아이한테 너무 힘겨운 일이야. 내가 한 오지랖 하는데 이런 것 그냥 두고 못봐.”
“오빠 난 가고 싶어. 여기서는 엄마 아빠도 없고 먹는것도 없어서 배고플 때가 많았잖아? 그리고 오빠가 글을 배웠으면 좋겠어!”담덕이도 담화를 보며 졸랐다.
담화는 결심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가씨 정말 저희가 가도 될까요?”
“그럼! 너희처럼 총명하고 착한 아이들은 오히려 환영이지. 우리 어머님께서 배포가 크시거든.” 제발 정말이지 배포가 크셔야 하는데... 월담이를 믿어보련다.
이렇게 맘대로 결정해도 뒷탈이 없어야 하는데 서랑은 일단 저지르고 봤다.
어쩌란 말이냐 자신이 이런 성격인 것을 이 성격은 예전 생에서도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성격이니 만약 넘어간다 한들 잠을 못 이루고 고민 고민 끙끙 앓아서 오히려 두통만 쌓였다.
“네. 가서 신세를 지겠습니다. 이 은혜는 꼭 값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그럼 말 나온 김에 서둘러야 할 거야. 이곳을 되도록 벗어나야 하니까. 내일 하루 짐을 챙겨두고 모래 내 몸종 월담이를 보낼 터이니 같이가도록 해. 먼저 나의 외가로 가서 외가 사람들 편에 본가인 강하지역으로 가면 될 거야.”
담덕은 신난다 하며 좋아했고, 담화는 그래도 살던곳을 떠나는 것이 아쉬운지 표정이 담담했다.
“가서 담화는 꼭 글을 배워야해 알았지? 넌 영특한 아이라고 난 생각하거든 배움도 빨리 얻을 수 있을 거야.”
담덕은 벽장 속에서 보자기를 꺼내서 벌써부터 짐을 싸기 시작했다. 빗과 작은 장난감들을 꺼내서 챙기려 하자 담화가 이를 말렸다.
“이런 건 못 가져가”
“왜?”
서랑이 담덕의 손에 들린 물건을 내려놓고 조곤조곤 설명했다.
“옷가지와 꼭 필요한 것만 챙겨야해. 거기에도 이런 것들은 다 있으니 이사가는 것이라 생각하면 안된다. 너희가 물건을 다 들고 갈 수는 없잖아.”
담덕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지만 몹시 표정이 아쉬워 보였다.
“내가 같이 도와줄게” 서랑은 짐을 챙기는 것으 같이 도우기 시작했다.
한참 짐을 챙기다 보니 밖에서 부엉이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부엉이 소리가 3번 들리고 더 이상 들리지 않으면 아가씨를 찾으신다는 거라 했어요.” 잠시후에 부엉이 소리를 들리지 않았다.
“그렇구나. 내가 나가볼게. 그럼 오늘은 이만 일찍들자”
서랑은 문을 열고 나가자 싸립문 밖에 준마 두필과 그중 지난번에 보았던 검은 윤기가 흐르는 말위에서 그가 평복을 입고 잘생긴 얼굴 그대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랑은 섬돌 위의 신을 냉큼 신고서 그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남자 다운 기백이 자신도 모르게 설랜다. 또 이런다 또! 어찌 호완님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린다. 휘는 그녀에게는 달달하고 간지러운 느낌을 준다면 호완님은 남자다운 수컷 날것이 설레임에 피가 막 휘저어 돌아 다니는 느낌이다. 위험한 남자야.
휘가 서랑에게 손을 내밀었다.
“올라타시오. ”
서랑은 손이 내려오자 숨을 차분하게 내 쉬면서 그의 뒤에 타기위해 몸을 돌려 안장을 잡으려 했으나 휘가 긴팔로 그녀의 허리를 잡아 자신의 앞에 앉혔다.
“헉!”
“지난번에 그대가 뒤에 앉아 옷만 잡고 있으려 들으니 내가 떨어 질까봐 속도 내기가 어렵더이다. 이리 앞에 앉아 갑시다.”
서랑이 할 말도 못하고 고개만 주억거렸다.
“가자!” 그의 말과 함께 무천도 움직였다. 그녀를 앞에 태우고 속도를 올리자 지난번 보다도 빨리 그와 이야기 했던 뒷산의 너른 바위에 도착했다.
그 속도로 둘을 태우고 달렸는데도 말은 끄떡 없어 보였다. 이거 완전 탐나는 말이지만 어찌하겠는가? 이미 임자가 있거늘.
휘가 먼저 내리고 서랑이 그가 또 도와줄까봐 잽싸게 따라 내렸다.
그와 접촉하면 할수록 서랑은 맘이 흔들렸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내에게 자신의 마음만 애달아 하면 자신만 손해이다.
휘는 서랑이 자신에게 거리를 두고자 신경 쓰는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뭐가 저리 무서운 건가? 내가 무서운 인상인가? 많은 여인들이 자신에게 손이라도 잡혀보고 싶어하거나 말이라도 걸어보고자 하는 모습에 익숙하다가 저리 행동하니 휘는 괜히 쓸대 없는 생각을 한다며 자조했다.
휘는 그런 그녀를 보다 바위 위에 편히 앉았다. 너른 바위는 그 옆에 앉을 수 있을 만큼 넓어서 자신의 옆에 앉을꺼라 생각했으나 오히려 서랑은 맞은편에 작은 바위에 엉덩이를 살짝 걸쳤다
“저에 대해서 알아 보셨는지요?”
“알아봤다. 시골 강하지역 상단의 막내딸 이더군 그렇지만 무애를 익혔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니 그대는 빠져야 할 것이다. 연약한 여인으로써는 이런일은 매우 위험하다.”
“무애는 몰래 배운 것이라. 기록에는 빠졌을 것입니다.” 일단 우기고 보는 서랑이다. 여차하면 실력을 보여주면 될 것이고.
“여인이 몰래 배워 익힐만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럼 증명해 보이지요.”
휘는 서랑의 여리 여리한 체구를 흘끗 바라보았다. 호위 무사대에 있는 홍일점 수련보다도 몸이 약해 보였다. 수련은 몸이 다부져 보여 남자로 많이 오해도 받는데 서랑은 절대 무애를 익힌 여인이 아닌 것 같아 의심스러웠다.
“좋다. 내 무관인 무천과 5합동안 그의 옷깃이라도 건드린다면 믿어보지.” 그의 호위무사 무천은 대주역국에서 최고 일인자의 무애를 갖고 있었다. 물론 휘보다는 한수 아래였지만 휘는 자신의 무공을 대내외 적으로 많이 드러내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일단은 자신의 실력이 정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위험했다.
그런 무천의 옷깃을 건드린 다는 것은 수련만큼이나 무공을 해야하는 것이다.
“좋습니다. 저 분은 무애가 출중하시니 옷깃을 건드리라 하신 것 이겠지요. 힘든일일텐데 그래도 해보겠습니다. 단 만약 제가 그 조건을 이뤄낸다면 이번일에 저도 참여하겠습니다. 그 정도는 저도 원하는 조건이 될 듯 싶습니다.”
“이해할 수 없군. 그 아이들이 그대의 아이라도 되나?”
“그 어린아이들을 위험해 지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모르면 몰랐지 알고 있는 상황에서는 두눈 감고 있지 못하는 성격이여서요. 제가 한 오지랖 떨지요.”
그녀의 오지랖이라는 말에 휘는 눈썹을 꿈틀 거렸다.
하필 어제 꿈속에 들은 단어를 그녀가 썼다니 그리고 보니 꿈속의 여인이 눈가에 주근깨가 자잘하게 있었고 서랑은 주근깨는 없지만 입가에 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 위치가 서랑과 똑같았다.
“지켜 보고나서 생각해 보지”
서랑은 그의 허락의 말이 떨어지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무천이 다가왔고 휘는 서랑에게 자신의 검을 건내주었다.
“검집에 든 상태로 상대하도록 하시오.”
“네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서랑은 제법 무거워 보이는 칼을 잡았다.
왠만한 무애가 아니고서야 자신의 체형이 맞지 않는 이런 무거운 칼을 들고 무천과 상대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자신이 누구던가 최고의 조건들을 달고 왔으니 해볼만 했다.
“아가씨가 저에게 들어오시지요.” 무천이 복면을 쓴 상태로 말했다.
저 얼굴이 궁금하니 복면을 벗거 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랑이 검집채로 무천의 어깨쪽을 공격하자 무천이 자신의 검으로 그녀의 공격을 막아냈다. 서랑은 연이어 그 칼의 각도로 그대로 그의 얼굴쪽으로 밀어넣었다. 무천이 손으로 그 검집을 쳐서 털어냈다.
서랑은 빠르게 살포시 뛰어 위에서 아래로 검을 내리 그었다. 그녀의 힘이 무천에게 역시 밀리는 터라 중력의 무게를 이용해서 그를 눌러보려 했으나 그가 냉큼 몸을 돌려 피했다.
서랑은 몸을 돌려 다리로 그의 복부를 치려 했으나 무천이 빠르게 그녀의 다리보다 낮게 포복하여 헛발질을 했다. 생각보다 무천이 무척 날래고 힘도 좋았다.
그렇다면! 서랑은 검집으로 왼쪽 상단위를 찔렀다. 무천은 오른손 잡이니 상대적으로 왼쪽이 약할터! 무천이 예상대로 검으로 그녀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래도 서랑은 온몸을 밀어가며 그의 몸에 가까이 밀었다. 무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 그녀의 몸이 가까이 오자 그는 몸을 보호하고자 뒤로 더 물러나려 했다. 상대적으로 하체가 움직이자 상체는 조금 균형을 잃었다. 그가 하체를 신경쓸 때 서랑은 얼굴을 그의 얼굴에 가까이 가져가서 입으로 그의 코에 걸린 복면을 물어 끌어내렸다.
그러나 무천도 놀란 눈으로 서랑을 바라보았고. 휘는 그녀가 마치 입을 맞추듯 무천에게 다가간 것에 놀라 자연스럽게 끼던 팔짱마저 풀어냈다.
“다섯합 만에 무천님의 복면을 건들다 못해 벗겨냈어요. ! 어때요?” 서랑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무천님 얼굴을 보여주시지 않으신 연유가 이리 잘생기셔서 그렇군요.” 그녀의 해맑은 칭찬에 평소 얼굴 표정이 없던 무천이 당황해했다.
남자다운 골격의 얼굴이여서 장수의 기질이 엿보였다.
이런 스타일은 예전 전생의 그녀가 모시던 공주님의 스타일인데 공주님이 계셨으면 매우 좋아했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무천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휘는 그녀에게 빠르게 다가왔다.
“어느 정도 무애는 익힌 듯 하군. 이만 무천은 뒤로 물러나라.”
무천이 고개를 숙이고 뒷걸음으로 10보 정도 떨어졌다.
“저런 얼굴을 좋아하는 거요?” 휘는 자기도 모르게 무천과 자신의 외양을 비교했다 자신이 조금 더 곱상하게 생긴 것 같아서 그녀의 생각이 조금 궁금했다.
자신의 이런 생각의 변화를 그는 단순히 서랑에 대한 호기심이라 생각했다.
서랑은 사람이 떡하니 저리 처다 보고 있는데 아니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이분 엉뚱하게 이런 것을 물어보다니. 좀 민망했다.
“네 전 무천과 같은 사람이 좋습니다.” 사림이 좋은 것이니 그게 그거다!
휘가 다시 무천을 바라보자 무천이 얼굴을 붉히며 뒤를 돌았다.
“좋소. 그대는 아이들을 대신하여 약제를 심부름 하는 것을 도우면 되오 그대가 원하는 대로 아이들은 이번 건에 대해서 빼도록 하겠소.”
“그래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은 저의 고향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키가 작으니 담화처럼 하고 배달하면 크게 무리가 없을껍니다.”
휘가 그녀를 못마땅한 듯이 처다 보았다.
“그래서 남아처럼 보이겠소?”
“걱정마시어요. 완벽하게 하겠습니다. 그럼 내일부터 약제 배달을 해야하는데 ”
휘는 서랑에게 내일 같은 시각에 빈민촌 아이들의 집에서 다시 보자고 말을 했다. 그리고 그녀가 좋아한다는 무천에게 다시 그녀를 데려다 주라고 하고 자신은 휙 먼저 내려갔다.
서랑은 밝게 웃으며 무천에게 다가갔다.
“무천님의 말도 잘생겼습니다. ”
무천은 아까부터 말도 전혀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무천이 올라가서 태자처럼 그녀에게 손을 내밀려 하자 서랑이 됐다며 손을 흔들고 그의 뒤에 올라탔다.
“무천님은 부담없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갈터이니 달리시지요!”
무천은 그녀의 복사꽃 같은 고운 손이 그의 허리를 꽉 끌어안자 숨이 턱 막혔다.
무천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녀를 태운채 그녀가 머물고 있는 여각으로 달렸다.
그날 그 순간부터 무천은 서랑에게 꼼짝 못하는 말 잘듣는 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