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심적으로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기 마련이다.
그곳이 나에게 어떠한 추억을 남겼는가 혹은 그 장소에 누가 있어 나에게 어떠한 맘이 들게 하는가에 따라서 그곳의 나의 고향 같은 장소가 된다.
예전부터 휘는 집이 갑갑했었다. 그에게 많은 기대를 읊어대는 어머님 보다는 넉넉한 마음으로 자신을 품어주시는 아버님이 있어서 숨을 쉴 수 있었으나 이제는 자신에게 있어서 집은 하나의 족쇄와 같아 벗어나고만 싶다.
그에게 이제는 서랑이 있는 곳이 그가 돌아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그가 자신의 방에서 담너머 멀리 바라보며 한곳만 응시하고 있었다.
밖에서 사랑채로 누군가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그의 시선이 자신의 처소로 옮기는 청지기에게로 향했다.
“도련님 , 결이 도련님이 오셨습니다.”
“이리로 뫼시어라.”
“네.”
휘는 아침부터 결에게 서찰을 보냈었다. 오후가 되어서 이곳에 온 것이다.
분홍색 허리띠를 걸치고 하이얀 도포를 꽃처럼 어여쁘게 입은 도령이 부채를 살랑거리며 들어온다.
“오! 친구 마중 나왔는가?”
“눈이 빠져라 마중 나왔지. 들어와.”
결이 피식 웃더니 방에 들어왔다.
“식사는 했는가?”
“아니 . 이 몸이 공사가 다망하여. 식사를 못 했는데 밥 좀 줘.”
“그래 , 밖에 누구 있느냐?”
“네! 도련님” 청지기기 나가다가 돌아왔다.
“석식을 이곳으로 준비 하거라. ”
“네.” 청지기가 빠른 걸음으로 물러나고 결이 방문을 닫았다.
결이 부채를 탁 접으며 눈을 바로 응시했다.
“그래. 긴급한 사항이 뭔가?”
“청해 여각에 있는 서랑이라는 낭자 좀 잘 지켜봐 줘. 손님의 비밀을 철저히 지켜주는 것 알고 있지만 한번 더 당부하고자 불렀어.”
“왜?”
“우리 어머님께서 서랑에 대해서 탐탁치 않으셔. 아마 곧 만나자고 기별을 넣을 것 같은데... ”
“그건 좀 걱정되는 군. 서랑이라는 아가씨와 바로 만나지 않는 한 ,우리 여각의 규칙상 누가 물어본다고 해서 여각 내 처소의 위치를 알려주지는 않으나. 단. 서찰이나 기별을 넣어달라고 할 때에는 그 낭자의 선택에 달려있겠지.”
“그래서 연락을 넣은 것이야. 혹시라도 어머님께서 서랑낭자를 찾는다면 나에게 연락을 주던가 되도록 만나지 않도록 방해 좀 해줘.”
“그것은 단편적인 방법이지 원칙적인 해결 책은 아닐세.”
“알고 있어. 하지만 맘이 놓이지 않는군.”
“허허! 세상에 휘가 나에게 여인의 일로 부탁을 할 줄이야. 꿈에도 몰랐네. 그 아가씨가 맘에 들었는가?”
휘가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라면 나의 삶을 나누고 싶어. 그러니 소중히 지켜줘야 하지 않겠는가?”
결이 부채를 피면서 살랑살랑 바람을 불었다.
“사랑에 대한 너의 바람이구먼. 결국에는 피할 수 없는 건가? 그래. 도와줘야지. 하지만. 그녀도 너와 맘이 같은가?”
“그건 기다린다고 했으니 기다려 봐야지.”휘가 조금 시무룩 하게 대답을 했다.
“서랑이라는 아가씨는 너에게 맘이 별로이다? 혹시 다른 사내가 있는가?”
“그건 아닌 듯 한데...”
“잘 모르겠다?” 결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잠시 후 식사가 나오고 둘이 마주 앉아서 이런 저런 대화를 하였다.
“충길이는 어딜 갔는가? 얼굴을 보여도 한참 보일 사람이?” 결이 저녘 상까지 청지기가 가져가자 의아해 하며 휘에게 물었다.
“서랑에게 보냈내. 잠시 동안 충길이를 빌려주기로 했어.”
“왜?”
“서랑낭자가 외가에 서찰을 보내야 하는데. 자신의 몸종만 보내기가 불안하다고 충길이를 부탁 하더라구. 그래서 그러마 하고 보냈어.”
“그렇군. 일단 너의 심정에 대하여 이야기를 잘 들었으니. 난 이만 가보겠네 ”결이 도포자락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도 뒤따라 일어나 결이를 배웅했다.
“부탁해.”
결이 그를 잠시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휘의 어깨를 툭! 하고 쳐주고 문을 나섰다.
휘는 결이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이 그녀에게 힘이 되었으면 하는데 뭘 어찌 해야 할지 바보 같은 느낌이 들어서 한숨만 나온다. 지금은 일단 자중하고 외출을 삼가고 있었다. 자신이 움직이면 그의 어머니 또한 함께 뒤를 밟거나 움직일 확률이 너무 높았다.
결은 자신의 말에 훌쩍 올라타고 언제나 처럼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말을 돌봐준 시종에게 감사의 고갯짓을 했다.
그리고 말을 차서 달려 나갔다.
이젠 자신도 그렇고 휘도 그렇고 곧 있을 주군에게도 다가 올 사모하는 마음들을 생각하게 된다.
결은 처음 만월을 보며 가엽다 독하다 강하다 라는 생각으로 눈에 들어와 지켜 보았으나 그것이 첫눈에 빠지는 연심인지는 나중에 알았다.
진즉에 알아 챘다면 기녀가 되지 않도록 막았을 터인데. 나중에 자신의 마음이 진심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지금은 그녀를 보호하고 감싸고 있는 것이지만 언젠가는 그녀의 위험한 행동을 모두 통제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위험하더라도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만월은 사실 대비의 모략으로 하루 아침에 역적이 되버린 용성현 시강관의 딸이 였다. 주요 관직은 아니지만 나름 명망 있던 가문의 딸이였을 만월의 실제 이름은 용 부희였다. 만월은 결을 도와서 기방에서 대비의 소문을 모으고 대비의 반대세력인 태자를 도와 일을 도모하고 있어. 혹시 모를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에 결은 그녀에게 위험한 일은 되도록 자중하게 시키고 있었다.
만월은 자신의 목적이 달성 될 때까지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겠다고 자신에게 약속한 바 있어. 그는 그녀의 바람이 이루어 지고 나면 그때 솔개가 먹이를 낚아 채듯이 그녀를 바로 자신의 품안으로 꽉 틀어넣을 것이다.
복수라는 것이 속의 맘이 풀릴 것 같아도 일이 벌어지고 끝이나면 자신 또한 생치기를 내는 것이 복수의 감정이다. 그녀 또한 한동안 맘을 잡지 못할 것이다.
그 사이에 자신이 파고들 것이니 그때를 기다리고 있는 자신이나. 자신을 좋아하는지 모르는지 모를 아가씨를 보호 하고자 애를 쓰는 휘나 둘다 참으로 여인 앞에서 소심들 하다. 아무래도 맘이 깊어서겠지. 맘이 깊지 않으면 이리되든 저리 되든 상관없이 행동을 거침없이 할 터인데 그러지 못하니 한발자국도 섣불리 달려가지 못하는 것이지.
결이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청해 여각에 도착 했을 때에는 밤이 되는 시각이였다. 그가 자신의 말에서 내리며 자신의 집사인 학수가 다가오자 말고삐를 내주었다.,. “만월은 어디에 있느냐?”
“큰 손님이 오셔서 그곳에 계시는 줄 아옵니다.”
큰 손님은 대비마마의 또 다른 이름이였다.
“그 손님이 가시거든 나에게 오라 이르거라.”
결은 청해 주류의 입구는 잘 들어가지 않았다. 이렇듯 자신의 처소에 만월을 불러서 주류의 이야기를 들었고 주류운영으로 부득이하게 방문할 시에는 인피면구를 착용하고 가는 터였다. 아무래도 자신의 본모습을 주로 보이는 것이 아직은 위험했기에 자신은 비밀리에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역할을 하며 또는 본연의 아들모습을 보여 주어야 했다.
“참 서랑이라는 아가씨는 어디에 묶고 계시느냐?” 휘가 여각을 한번 휘휘 둘러 보았다.
“휘도련님이 모셔온 서랑아가씨요?”
“그래. 휘가 데려온 서랑 아가씨.!”
“2층 가장 안쪽 방에 머물고 있습니다”
결이 2층 계단에 서서 그쪽을 한참 노려보다가 다시 자신의 처소가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혹시 누가 그녀에 대해 묻거나 연통이 오면 먼저 나나 만월에게 먼저 말을 한 후에 전달해 드리도록 하거라.”
“네” 학수는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해서 그런지 이유를 묻거나 토를 달지 않아서 편했다.
“휘의 어머님께서 연통이 오면 꼭 그리해야 한다.뭐!다른 연통은 아가씨에게 먼저 전달한 후에 기별을 주어도 괜찮다.” 그래도 이유를 살짝 설명해 주는 결 이였다. 학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들었다는 표시이다.
결은 방에 들어와서 자신의 웃옷을 벗고 자신의 옆방에 있는 욕조에 들어가 목욕을 했다. 하얀 피부에 군데 군데 몸에는 칼날의 흔적이 있는 다부진 몸매였다.
그의 얼굴만 보면 곱상하다 여기고 무시하는 자들도 그가 옷을 벗거나 움직임을 드려내면 무시할 수 없는 기세가 있었다.
그가 시원하게 목욕을 하고 방에 들어오자 만월이 그의 방에서 살포시 일어나 인사를 했다.
“단주님을 뵈옵니다.” 오늘도 하늘에서 내린 선녀처럼 이쁜 외모에 발그래한 표정까지 결의 눈에는 사랑스럽기 그지 없었다.
“허허! 우리 사이에 무슨 그리 거리가 느껴지는 말인지.. 큰손님이 오셨다고?”
“네. 그로인해 아뢸 것이 있었구요. 그런데 절 먼저 찾으셨다구요?”
만월에 그에게 새 수건을 건내 주었다.
“휘가 데려온 아가씨 . 휘의 어머님께서 기별을 하면 우리를 통해서 이야기를 전달해야 겠다. 휘가 그녀를 감싸려고 하는구나. ”
“알겠습니다. 휘 도련님이 서랑 낭자를 맘에 담으셨군요?” 만월이 눈을 휘며 웃었다.
“그랬더구나. 나도 늘 말하지만 내 마음에도 너가 들어와 있는데 넌 도통 거리를 좁히지 않아서 애가 타도록 날 만드는데 이젠 나의 가르침을 뛰어 넘는 구나.”
만월이 피식 웃었다.
“단주님도 저에게 묵직한 존재감이 있으시니 서로 퉁치시지요.”
“퉁칠 것을 퉁쳐야지! 돈도 아니고.! 맘을 줬다고 하는데도 !”
“앉아보셔요. 머리 말려드리겠습니다.”
만월이 고운 손으로 그의 어깨를 살짝 눌러 의자에 앉혔다. 만월은 자연스럽게 그의 대화 주제를 옮겼다.
“오늘 큰 손님께서 태자의 자리를 옮기실 모양 이더이다”
“!”
“보위에 오르기 전까지 태자의 자리를 이솔 공주님의 아드님이신 휘 도령으로 하는 것이 어떠한지 까지 말이 나왔습니다.”
“좌상과 영부사더냐?”
“네. ”
결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만해도 될듯하다. 이 밤을 틈타 그분을 만나야 할 터이니 다시 외출 준비를 해야겠다. ”
만월이 아랑곳 하지 않고 머리를 마져 수건으로 말렸다.
“고뿔 드십니다. 좀 더 깊어진 후에 출타하세요.”
결이 만월의 허리를 잡고 자신의 무릎위에 앉혔다.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서 입술을 말아 한입가득 삼켰다. 한참을 질척한 입맞춤이 오고 가고 만월의 숨이 가빠졌을 때 결이 고개를 들었다.
“이래도 나에게 맘이 없더냐?”
“왜 맘이 없겠습니까? 이리 출중하신 사내를 앞에 두고. 허나. 저의 신분이 밝혀지는 순간 대주님도 위험합니다. 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이고 그러기에 저의 인생에 대주님을 끌어 들일 수 없습니다. 하루살이에게 맘을 두면 나중에 어찌 감당 하시려구요?”
“만월. 너에게 내가 그리 무능력해 보이더냐? 내가 지금 태자전하를 도와드리고 있는 것은 친구이기 이전에 만월 너에 대한 신분의 복원이 목적이고 너와 당당하게 혼례를 올리기 위함이다. 너의 목숨은 나의 목숨과 같으니 누구도 너에게 손하다 댈 수 없다. 나에겐 가장 중요한 삶의 방향이 되었으니 그리 생각하지 말아라. ”그가 다정하게 그녀의 눈가를 쓸어 주었다.
“또또 심각해 진다. 만월~”
만월이 볼을 발그래 붉혔다. “전 기녀입니다.”
결이 손을 내려 볼도 쓸어 주며 말했다. 그의 이런 다정한 모습을 본다면 무천은 아마 기겁할 것이였다.
“누누이 말했지만 넌 기녀에 입적도 안 시켰다. 그리고 너의 서방이 나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더냐? 아무도 내 허락이 없이는 너에게 손끝하나 못 대는 것을 알지 않느냐? 혼례식만 올리지 않았지. 이미 부부나 마찮가지야.”
“단주님. 그래도 저의 소망이 이루어 져야 합니다. 그래야 제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전 매번 뒤를 돌아보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이런 여인이 어찌 단주님 옆에 설 수 있을까요?”
“내가 괜찮다 하지 않느냐? 또 이야기가 돌아 오는군 큰 손님을 해결을 봐야 나도 홀애비 신새를 면하지. 일단 알았으니 너도 돌아가거라.”
만월은 그에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섰다. 나서면서 말을 준비하라 일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자 결은 피식 웃었다.
“저리 날 챙기면서 맘에 없는 듯 하다니...쯧쯧 내가 기방운영이 몇 년인데 그걸 아직도 모를까? 똥고집 하고는....” 결이 다시 검은색 옷을 꺼내어 탄탄한 몸에 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벽장에 숨겨둔 날카로운 검기를 흘리는 검을 한번 검집에서 꺼내서 확인해 보고는 허리춤에 차고 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