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은 노을이 지는 창가에 서서 지난밤에 꾼 꿈이 아직도 머릿속이 혼몽하여 생각하고 생각하였다. 도대체 왜 이런 꿈을 계속 연이어 꾸는 것인가?
그는 종종 사월이라는 여인을 꿈에서 보았다. 그가 12살 때였을까
꿈속에서 어두운 달빛이 고요히 내리 비치는 개울가에 그가 서 있었다. 어디선가 찰방찰방 하는 소리에 고개를 움직이니 그 여인이 등을 돌리고 몸을 씻고 있었는데 그 여인은 피부가 곱고 몸태가 매우 아름다웠다. 그때 한없이 몰래 바라만 보는 꿈을 꾸다가 잠자리에서 소스라치게 놀라서 일어난 적이 있었다.
이젠 자신이 사내의 태가 나기 시작하니 그럴 수 있겠거니 했었다.
두 번째는 너무 충격 이였다. 두 번째는 그 여인이 괴로운 듯 자신을 안아달라는 꿈이 였는데 여인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여인이 최음제 같은 것을 흡인한 듯 맑고 빛나던 눈빛이 온통 혼탁하고 몸에 땀이 많이 나서 옷이 몸에 들러 붙어 있었다. 그만큼 귀엽던 아이가 색기에 몸이 들끓여 있었다. 그도 그녀를 구해주려 여러 방면으로 했으나 결국엔 몸을 섞어야 했다. 꿈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몸이 동하여 꿈속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꿈에 빠져들었었다. 그 여인의 손길에서 특이한 것은 자신을 끌어안을 때 손을 깍지를 껴서 꼭 끌어안아 주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떨어지기 싫다는 듯 . 그 날 아침 자신이 몽정한 것을 알고 헛 웃음을 터트렸었다.
그후에 남녀의 관계에 대해서 학습을 위한 자리에서 여인들과 잠자리를 해 보았으나 이상하게도 꿈속에서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언젠가는 꿈속의 여인과 비슷한 여인으로 잠자리를 가져 보았으나 오히려 꿈속의 여인에게 죄짓는 것 같은 느낌이라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정말 요상한 꿈이 였는데 잊혀질만 하면 어쩌다 한 두 번씩 꿈을 꾸던 것이 최근 이야기를 풀어내듯이 연이어 꿈을 꾸게 된다.
바로 어젯밤 꿈을 꾼 내용은 또 다른 내용을 전해주었다.
꿈속에서 캄캄한 어둠속 어떤 빛이 나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환하게 주변이 바뀌었다. 익숙한 상황 , 자신이 바로 꿈속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주변에 한 여인이 눈을 초롱초롱 뜨며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번 만났던 사월이다. 자신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사월.” 그가 부르자 그 여인이 자그마한 눈으로 말갛게 웃었다. 입술 옆의 점이 함께 웃으며 볼쪽으로 이동하자 활짝 웃는 얼굴이 귀여웠다.
“장군님 혼례를 축하드립니다.” 꿈속의 나는 혼례를 올린 모양이였다.
“고맙소. 오랜만이요. 사월 ” .그는 꿈속의 자신이 자신인지 아니면 상황을 지켜 보는 것인지 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의 가슴에 그녀에 대한 안타까움이 밀려들어왔다. 심장에서 느껴지는 아련한 그리움이 그녀를 보고 싶어 했던 듯 싶었다. 이런 기분이라니. 꿈인지 현실인지.
사월이라는 여인과 그는 기억이 나지 않는 대화를 몇 나누다가 사월이 그를 곧게 바라보았다.
“저 . 한 가지 여쭈어도 될까요?”
“무엇이오?”
“ 저에게 친한 동무가 있는데 이번 겨울에 아이를 낳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월자가 들어가는 것으로 아이 이름을 짖고자 하는데 저에게 이름을 무엇을 해야 할지 물어봐서. 혹시 장군님이 지어주신다면 그 친구가 매우 기뻐할 것입니다. ”
“아이 아버지가 지어주지 않을까?”
“ 저 ...그아이 ,아버지가 죽었다 합니다. ” 사월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 저런, 어디보자. 월광은 아들이름으로 달빛이 비추듯이 세상을 비추면 좋을 것이고. 월화 또한 월광과 같은 뜻이니 여아이름으로 하는 것이 어떠한가?”
“ 정말 좋사옵니다. 그럼 그리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 사월....” 사월은 그를 바라보았다. 사월은 조금씩 살이 올라 보였다. 점점 여인의 농염함이 보이는 이목구비로 바뀌어 가는 것 같았다.
“ 나의 후처로 올 생각은 전혀 없는가? 지금도 맘이 바뀌지 않았는가?”
사월이라는 여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다 이내 흔들림이 단호하게 멈추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 여인의 손을 잡으려 했으나 사월이라는 여인이 먼저 한발 물러섰다.
“ 전 천한 노비 출신입니다. 어찌 이리 헌헌장부이신 장군님 옆에 설 수 있답니까?”
“ 상관이 없네. 오히려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는 나를 도와주고 지금의 황제에게 연을 닿아 우리 가문을 일으키게 도와준 것이 사월 그대야. 나에겐 노비출신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야. ...그러니....맘을 돌려주면 안 되는가?”
사월은 그의 말에 맘이 흔들렸으나 이내 다시 맘을 굳건히 다 잡았다 .
실은 지난번 약에 취해서 어쩔 수 없이 장군님과 하룻밤을 보낸 후에 아이가 들어섰다. 그래서 장군 댁에 갔다가 그의 부인과 마주쳤고 그녀를 진즉부터 알아보고 있었다며 그가 사월은 후처로 들이겠다고 말했는데 부인께서는 후처 자리는 바라지도 말라며 만약 온다 하더라도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협박과 뱃속의 아이도 목숨을 부지 할 수 없을 것 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 장군님의 앞길에 재만 뿌릴 것입니다. 아이쿠! 이런 정신 좀 봐! 전 이만 바삐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장군님 뵙고 반가워서 잊어 버렸어요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사월이 뒤돌아 사라졌다. 어둠속으로 서서히... 그런데 그 뒷모습이 너무 아련하고 환의 맘이 아팠다.
환은 그 어둠속으로 달려갔다. 아무리 둘러봐도 그 여인의 옷자락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사월! 사월! 잠시만. !"왠지 이제는 그녀를 다시 만나지 못할 예감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 느낌이 그를 꿈속이라 하더라도 몸이 굳어져 갔다.
“헉!” 환은 벌떡 일어났고. 그리고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 내렸다.
눈물? 꿈속의 여인을 이리 애뜻하게 찾다니. 도대체 그 여인은 자신에게 무엇이길래. 이리 자주 꿈속에서 만나는 것인가? 아쉽게 놓친 나의 연인이던가? 무슨 기시감처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있는 것인가?
그가 생각의 생각을 곱씹고 있다 보니 시간이 오랫동안 흘렀다.이미 붉은 빛을 띠던 해는 산 너머로 사라지고 보랏빛 하늘이 하늘을 감싸 안았다. 계속 생각을 해봐도 지금 딱히 그것이 무슨 뜻인지 결과가 나지 않아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때 홍 내관이 다가왔다
“태자마마 , 결 도련님께서 술시에 도성 문 밖에서 기다리신다고 기별이 왔습니다.”
“술시?”
“네. 여기 인장이 찍힌 서찰은 승정원에 보낼까요?”
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창가에서 벗어나 의관을 갈아 입으러 내실로 이동했다.
홍 내관은 그가 있던 방을 마저 정리하라 하고 다른 내관에게 지시를 하고 태자를 따라 내실로 왔다.
“검은색 지난번에 입던 옷과 같은 것으로.” 홍 내관이 짙은 푸른 바다색의 도포를 내리고 다시 검은색 옷을 꺼내왔다.
“조심 또 조심하셔야 합니다.”
“걱정 말거라.” 휘가 의관을 갖춰 입자. 홍 내관 옆으로 무천이 슬그머니 나타나자 홍 내관이 놀랬다.
“이 크! 기별 좀 하고 나오시지.”
환이 실소를 지었다.“어찌 매번 당하느냐?”
홍 내관이 주먹으로 무천의 팔을 팡팡 때렸다.“ 이 무덤덤한 사람 같으니 라구!”
무천이 고개를 숙이는 걸로 미안함을 나타냈다.
“홍 내관 뒤를 부탁하지.” 환이 홍 내관에게 말을 하자 홍 내관이 고개를 끄덕였다.“걱정 마시고 다녀오시지요. 너무 늦지만 마시길 바랍니다.”
휘가 고개를 끄덕이고 무천과 함께 병풍 뒤로 걸어갔다. 병풍 뒷벽을 슬그머니 옆으로 밀자 미닫이 문이 열리고 지하로 통하는 통로가 보였다. 둘이 내려가자 마자 홍 내관이 문을 닫고 병풍을 재 자리에 옮기고 방안의 불들을 모두 끄고 태자가 누워있는 것처럼 이불을 꺼내 형태를 만든후 방으로 나왔다.
“태자마마 침소 드셨으니 모두 10보 뒤로 물르고 조용히 움직여야 한다.”
내관과 궁녀들은 익숙한 듯 모두 방밖으로 물렀다.
홍 내관은 문 앞을 지키며 서 있었다.
잠시 후 무천과 환이 궁의 외각 벽에서 둘이 담을 넘어서 나타나자 근처에서 말을 타고 유유자적하게 기다리던 결이 다가왔다.
“아주 능숙하십니다. ”
결이 말에서 내렸다.
“너만 하겠느냐?”
“전해드릴 말이 있어서 연통을 넣었는데 ... 의관을 보아하니 저만 약속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려?”
“할 말만 해라. 바쁘다” 무천이 미리 준비해둔 그의 준마를 나무 사이에서 데리고 왔다. 검은색 말이 반갑다는 듯 푸르륵 거리자 환이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었고 주머니에서 작은 사과를 꺼내 주자 아삭!하고 잘 씹는다. 그가 훌쩍 말에 올라탔다. “가면서 이야기 하자. 전음으로 해라”
결이 자신의 말위에 올라갔고 곧 셋은 말을 달려 출발 했다.
“친구보다 말이 더 좋은가 봅니다?”
“객적은 소리 좀 그만해라. 달리기 전에 먹이를 좀 준 것 가지고... 무슨 일인지나 말해.”
결이 비밀을 위해 환에게 전음을 보냈다.
[ 큰 손님께서 움직일 기미가 보입니다. 저희가 예측한 대로 마마를 밀쳐내고 누군가를 올리려고 합니다. 그 누군가가 휘가 될 듯 합니다. ]
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 내가 부러 큰 손님 심기를 건드렸지 . 이젠 그들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기 보다는 그들을 움직이게 해서 하루빨리 정리를 하고 정권을 안정시킬 것이다.]
[ 그런데 휘가 움직이려 할까요?]
[ 그들은 휘가 움직이려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야. 휘의 명분과 배경이 필요할 뿐이지. 휘의 태도에 달려있겠지만. 이솔 공주 자가는 나도 어쩌지 못하는 분이기는 하지. 아버님도 그러했으니. 사실 예측한 것 아니였나?]
그랬다. 셋은 이미 어느 정도 예측은 했었고 휘는 자신은 절대 그리 못한다고 결과 환에게 말을 해 두었으나 세상일이 어디 자기 뜻대로 되던가?
[ 내 따로 휘와 이야기를 나눠보지. 이제는 휘와 적당히 숨어서 만나야 할 것이야. 휘를 통해 그들을 움직이고 오히려 역으로 옭아 매야 하니까]
[ 그래도 휘는 자신의 어미인데 . 어미를 배신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 그래서 사전에 나와 이야기를 했던 부분이 있으니 다시 확인해 보면 될터.]
[ 그런데 태자마마 이리로 가는 길은 빈민촌 아닙니까?]
[ 맞다. 내가 가고자 하는 행선지도 빈민촌 이니까.]
[ 무슨 일을 그곳에서 도모 하십니까? ]
[ 그래 . 지난번에 말했던 그 약의 출처를 잡을 수 있을 것 같구나. ]
[ 잘 되었습니다. 그 이상한 미약 때문에 저희 쪽 공진단이나. 몸에 좋은 약제들 매출이 하락했으니 저도 같이 가서 돕겠습니다. ]
휘와 결 무천이 담하와 담덕의 집으로 향했다.
서랑은 일찍 부터 빈민촌으로 와서 집을 이곳저곳 수리하고 있었다.
담하와 담덕에게 점심도 먹이고 저녁도 먹이면서 집을 청소하고 쓸고 닦았다. 그 이유는 바로. “아가씨! 이집에 진짜로 기거 하실 껍니까?” 월담이가 부엌에서 소매를 걷어 붙이고 청소를 하다 하다 화가 나는지 얼굴을 붉히면서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에는 충길이와 같이 토담의 무너진 부분을 보수하고 있었다.
“이미 결정 내렸으니까. 끝!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야. 외가 가서 돈을 가지고 올 때까지 내가 이곳에서 기다릴께. 우리 여비도 많지도 않으니 잘 됐지뭐!”
담하가 이불을 널었던 것을 담덕이랑 같이 털면서 부끄러워했다.
“매일 청소한다고 하기는 했는데 깨끗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아가씨가 살아 주신다고 하니 이집을 비워도 안심할 수 있어서 전 좋은데...”
언년이가 가마솥에서 감자를 쪄서 꺼내왔다.
“세참 드세요!” 언년이는 나이에 비해서 요리를 잘했다. 같은 또래인 담하가 언년이에게 다가가 감자를 받아 먹었다.“내가 그냥 찔때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아!”
언년이가 활짝 웃었다. “저의 방법이 있지요! 소금만 넣고 삶는 것 보다. 여기에 설당을 살짝 넣으면 더 맛있지요.” 언년이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요리나 그 밖에 배울 것 들을 찾아서 배우느라 바쁜 아이였다.
그런 점이 참으로 이뻐 보인다. 서랑이 다가가서 언년이의 머리를 쓱쓱 쓸어 주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언년이랑 결혼하는 낭군은 복 받은거야.!”
“정말요. 아씨?” 언년이가 그러면서 담하를 살짝 바라보았다.
담하는 감자를 먹다가 언년이랑 눈이 마주치자 사래를 들렸는지 컥컥 거렸다.
“오빠 괜찮아?” 담덕이가 아무것도 모른채로 담하의 등을 두들겨 주면서 연신 감자를 먹었다. 이제는 감기도 많이 떨어져서 아이가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다.
“오늘까지는 우리 모두 이곳에서 자고, 떠날 사람은 내일 바로 길을 떠나는 걸로.”
월담이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 피곤해서 가다가 쓰러질 지도 몰라요.”
“힘이 센 충길이가 업어 주겠지 뭐~ 아까 보니 발뚝이 장난 아니던데” 서랑이 살짝 월담이를 충길이 쪽으로 밀어주었다.
“아가씨는 또 언제 보셨어요?”
“팔뚝을 이렇게 걷어 붙이고 일을 하는데 안 보이는 것이 이상하지!”
월담이가 슬쩍 충길의 팔뚝을 보다가 볼이 발개지더니 감자만 우걱우걱 먹었다. 서랑은 피식피식 나오는 웃음을 참다 참다 하하하! 하고 웃어버렸다.
충길이도 같이 웃었고 곧 웃음은 다들 전염되듯이 따라 웃었다. 월담이만 토자져서 저녁을 지어야 한다고 부엌으로 갔다.
아무래도 월담이가 오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모양이다.
집안 정리가 거의 다 되어가고 충길이 서랑에게 다가 왔다.
“마님이 아가씨를 찾을까 걱정되었는데 아침부터 짐을 싸서 그곳을 바로 나올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
서랑이 마루에서 아이들의 봇짐을 싸면서 대답했다.
“부르시면 피할 이유도 없지만. 굳이 부르실 때까지 내가 기다릴 이유도 없지”
“그런데 . ”
“?”
“저희 도련님에게 맘이 있으셨던 것이 아닙니까?”
서랑은 짐을 한곁에 두고 충길을 바라보았다.
“예전엔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이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돌아 보지 않으려고.”
“에? 그렇다면 좋아했던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애이! 도련님은 훌륭한 신랑감인 것은 사실인데. 그런 무서운 시어머님이 있는 집에 시집가서 힘들게 살고 싶지도 않아. 그럴정도로 내가 푹 빠진 상황은 아니란 소리야. ”
“허! 우리 도련님은 아가씨를 맘에 담고 있는 것 같은데.”
“ 곧 좋은 처자가 도련님의 맘을 차지할 거야. 걱정말어.” 서랑은 충길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