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결은 미친 듯이 웃어댔다. 서랑은 짜게 식은 눈빛으로 그를 냉랭하게 쳐다 보았다. 저런 미친놈이 다 있나? 얼굴은 누가 봐도 눈에 확 들어올 만큼 어여쁘게 생겼으면서 하는 짓이 이상하게 서랑에게는 밉상이다.
“뭐가 우습습니까?” 서랑이 차갑게 말하자.
“하하~ 아니, 꿈은 꿈이지 꿈이 모두 현실을 반영하면 죽다 살아나는 것도 가능하겠네요? 미신입니다. 미신!” 그의 그런 말에 오히려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 가는 것은 오히려 이환 이였다.
요즘 들어 꿈속의 사월이라는 여인과 자신과의 이야기가 연결되어 보이는 것이 그냥 넘기기에는 찝찝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 여서 그가 시간이 나는 틈틈이 자신도 모르게 꿈속의 생각에 빠져 들 때가 여러번 이였는데 그런 그의 행동을 옆에서 비웃는 것 같아 오히려 결의 말에 표정이 굳어진 것이다.
스님이 그렇게 웃고 있는 결에게 말을 건냈다.
“항상 처사님을 보면 현상 세계만 탐독하고 냉철하시니 그리 생각하실 만도 하지요. 하지만 사람의 생이 그리 단순하게 삶이후에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묘한 우주의 순리를 보면 순환으로 반복되기 마련이고. 우리가 매번 겪고 있는 4계절 , 달의 모양이 반복되고 물도 하늘에서 나서 땅으로 흘러 다시 하늘로 올라가듯이 지금의 삶이 끝나면 또 다른 사람의 형상이나 짐승의 형상으로 반복되어 살아 갑니다. 가끔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간간히 들려 오기도 하지요. 아가씨도 그런 것 같다 라고 판단하시는 것이지요?“
서랑은 넉넉하게 이야기를 받아주는 일송 스님이 참 고마웠다. 누구와는 저리 다르게 사람은 외모가 다가 아님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서랑은 결을 삐딱하게 바라 보았다. 뭐. 나름 누군가는 저리 생각할 것으로 예측했으니 아쉬울 것도 없는 사람이다. 뉘랑 결혼할지 갑갑해 보인다.
“네. 스님 사람으로 태어나 세상에 빛이 되는 것은 이번 생에 제가 태어난 것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답하고자 함입니다. ”
결은 아직도 큭큭 웃어댔다. 결은 본디 실리주의이고 유학을 학문으로 배워서 귀신이니 뭐니 그런 것에 평소 관심도 없고 사람들을 혹하게 하는 미신이라 믿고 있었다. 결이 옆에 앉은 그의 친우인 태자에게 어깨를 가까이 가며 웃으며 말했다. 워낙에 막역지우라 하늘 같은 태자의 자리라 해도 결에게는 그냥 친구였다.
“이보게 감찰관 나리, 저런 어의 없는 것에 혹해서 힘들고 위험한 일에 뛰어들겠다고 나서는 여인은 내 생전 처음이네.. 아니 처음이 아닌가?” 결은 순간 만월을 생각했다. 그의 말 같지도 않는 농지꺼리를 듣기 아니꼬운 이환은 그에게 슬그머니 다가 앉은 결을 밀어버려서 결은 뒤로 나자빠졌다.
“아구구! 이보게 감찰관. 왜 그러시는가?” 결은 자기와 같이 실리주의인 그가 자신을 밀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능글맞은 결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누운 상태로 올려다 보았다. 그런 그를 무천이 일으켜 앉혔다.
“누워서 올라다 보지 마시지요.” 무천이 엄하게 결에게 한마디 하자 결이 실소했다.
“사내가 옆에 들러 붙어서 징그럽다. 떨어져라. 그리고 서랑 낭자의 요청은 내가 허락하지.” 결이 벌떡 일어서서 이환을 이번엔 내려다 보며 말했다.
“그런 허접한? 이유로 우리의 일에 깊숙이 개입하겠다는데 어찌 믿고 받아들이십니까? 감찰관 나으리?” 이번엔 무천이 일어나 결의 다리를 걸어 그를 무릎 꿀렸다.“ 저희 나으리를 내려다 보지 마시지요.” 결이 입을 벌리고 태자 이환을 응시했다.
서랑이 뛸 듯이 기뻐하며 감사인사를 스님과 이환에게 올렸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환이 어의가 없어 실성한 듯 앉아 있는 결을 무시하고 서랑에게 오늘의 해야할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서랑은 도성의 부자 마을 중 가장 으리으리한 저택 앞에 서 있었다. 집 담벼락 주변으로 참나무들도 있었지만 집안에는 단풍나무 매실나무도 있어 집안의 조경이 매우 뛰어나 보였다. 기와집이 몇 채인지 마당도 넓어 돌로 된 담벼락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바로 이집이 그 유명한 하늘의 별도 딴다는 좌상 추무랑의 집이란 말이지?
서랑은 빈민촌에서 이곳 마을로 들어오면서 일행과 거리를 두고 움직였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감찰관 호완님과 무천, 그리고 미친 결이 건너편에서 숨어서 지켜보고 있음을 그녀의 기감 안에서 느낄 수 있었다. 기척을 지울 수 있음에도 오히려 서랑이 안심하라는 듯 기척을 지우지 않았다.
서랑은 어깨에 맨 짐을 다시 추슬러 올리고 대문 앞에 섰다.
대문을 향해서 손을 들어 쿵쿵 문을 두드렸다.
“누구시오?”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집안 마당쇠로 보이는 젊은 떠꺼머리 사내가 서랑을 내려다 보며 물었다.
“늦은 밤인데 어디서 오셨수?”
서랑은 목소리 톤을 신경써서 낮췄다.
“주문하신 약제를 드리러 왔습니다.”
“아! 그렇군 이번에 온다고 기별은 왔는데. 밤이 너무 늦었어. 왜 이리 늦게 오셨수? 어여 들어오슈” 그가 서랑의 팔을 잡아 끌어 집안에 들이고는 대문을 냉큼 닫았다. “잠시 기다리슈. 우리 행랑아범께 말하고 오리다.”
그가 날래게 행랑채 쪽으로 움직였고, 잠시 후 머리가 희끗희끗하지만 꼬장꼬장해 보이는 뱀의 눈을 가진 행랑아범이라는 자가 나왔다.
그가 서랑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고 서랑은 약보따리를 건내 주었다.
그가 약봉지 하나를 코에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더니 수량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서 주머니에서 옆전 꾸러미를 꺼내 서랑에게 건냈다.
“이것은 심부름 값이다.이 약제는 내가 주문한 것이고 그리고 이곳에 왔던 것은 비밀로 해야 하는 당부의 뜻이니 그리 알고 가거라”
서랑이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빈 봇짐에 넣었다.
“매우 귀한 약인가 봅니다. ” 서랑이 살짝 말을 띄어 보았으나 그의 눈이 매서워 졌다. 그렇다고 움츠릴 서랑이 아니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듯 배시시 웃었다.
“내가 몸이 아파서 쓰는 것이니 신경쓸 것 없다.!” 행랑아범이 대문을 열고 나가라는 듯 손짓했다. “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서랑은 대문을 나왔고 일행과 출발하기 전 약속한 장소에서 이환 일행을 만났다.
“어찌 전해 주었소?” 환이 물었다.
“행랑아범이 자신의 약이라고 말을 하며 약을 받아갔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일을 입단속 시키려고 저에게 심부름값 이라고 돈도 주었습니다.”
서랑이 가방에서 엽전을 꺼내 두 손에 올려 보이는 것이 어린아이가 마치 용돈을 받은 듯 귀여운 표정이라 이환이 웃으며 말했다.
“그 돈은 낭자가 쓰시오.”
“어머! 그래도 될까요?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월담의 여비가 조금 부족하던 터라 그의 넉넉한 마음이 고마웠다. 서랑이 냉큼 자신의 봇짐에 다시 돈을 넣었다.
이를 본 결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아니 돈이 아쉬우면 이런 일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하셔야지 내가 이래뵈도 큰 여각 몇 개 운영하고 있는데 일자리가 필요하면 자리를 만들어 드릴까 낭자?”
서랑은 한숨을 쉬었다.
“참 얼굴값도 못하십니다. 얼굴은 그리 곱게도 선랑하게도 생기셔서는 하는 말들이 쫌생원 같으니 사내다운 맛도 있으셔야 지요. 호완 감찰관님처럼 배포가 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언제 돈을 벌고자 이일을 선택했다 했습니까? ”
“아! 물론 기억하오 꿈속에서 계시를 받으셨다고.”
서랑이 얼굴이 점점 요상하게 울그락 불그락 했다. 저 인간이! 어디서 엿같은 것만 먹었나. 하는 말이 다 엿 같아! 꼬일 대로 꼬여서 끈덕지기도 하고!
“결이 무사님은 어디 가셔서 말하지 말고 가만히 계셔요 그래야 중간이라도 갑니다.!”
“허! 나에게 이리 바락바락 대드는 것을 보니 누군가가 생각나는 군”
“뉘 신지는 모르오나 사람 보는 눈은 저와 같은가 봅니다. 외모에 혹해서 할말 못할말 가려하지 않고 정직 하신분 일꺼라 생각합니다. ”
“큭큭큭 , 언제 소개를 시켜줄까요? 이왕지사 이리 한배를 탔으니 만나서 나쁠 것도 없지.”
“서로 도움이 된다면 저도 좋습니다. ”
이 환은 티격태격 말장난을 치는 결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결이 그녀를 호감있게 바라보는 것을 알았다.
좀 전에 서랑이 약제를 주러 좌상댁에 들어가는 것을 함께 지켜보며 결이 생각난 듯이 그에게 시장터에서 아이를 도와준 그 낭자가 아니냐고 그에게 물어 왔고 이환은 맞다고 대답했었다. 결이 처음엔 기억을 못했지만 나중에 뉘인지 알아봤다며 여인치고는 담도 크고 호기로운 모습이 자신이 기루를 운영하는 만월이 생각난 모양 이였다. 결이 만월을 좋아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서랑을 맘에 든다 말하자 자신도 모르게 뿌듯했었다.
말이 길어지자 환이 그들의 투닥거림을 막았다.
“밤도 늦었으니 오늘은 이만 상황을 종료하고 헤어지지.”
이번엔 환이 빠르게 손을 내밀었다. 서랑이 웃으며 두손을 휘휘저었다.
“아닙니다. 전 무천 무사님에게 신세를 지겠습니다.”
환이 이번에 그녀의 그런 거부의 손을 잡아챘다.
“무천의 말만 피곤하게 하지 말고 이리 타시오.”
둘의 행동을 지켜보던 결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무천에게 전음을 흘렸다.
[내가 보는 것이 지금 사실이 맞더냐?]
[네 맞습니다.]
[언제부터 여인을 돌같이. 아니 똥보다도 못하다 보시던 분이 손을 내밀고 그것도 자신의 말에 같이 태우려 하시려느냐?]
[지난번에 한번 탔었습니다.]
[뭐?]
[이제 태자마마도 여인을 사귀실 때가 되셨지요.] 실은 무천이 태자보다 5살 위였다. 태자를 아우 보듯 바라보며 대견해 한다.
[남 이야기 하는군. 무천은 이미 혼례를 올렸어야하는 나이에 누가 누굴 훈수야?] 무천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결을 바라보자 결이 방그래 웃으며 능글맞게 응수했다.
그 사이에 이 환은 서랑을 자신의 앞에 앉히고 출발하자 남은 두 사내들도 그의 뒤를 따라 달렸다. 그렇게 도성의 밤은 깊어간다.
다음날 아침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들에게는 좋은 화창한 날씨였다. 초가지붕위에서 새들이 후다닥 날아가며 지저귀는 소리가 정다웠다. 서랑은 싸립문 앞까지 배웅해 주며 말했다.“여비는 여기 더 넣어두었으니 필요하면 쓰고 너무 아껴 쓰지는 말고.” 월담은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 어디서 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맙습니다. 아가씨. 그건 그렇고 아씨 저 없다고 엄한 곳 돌아다니지 말구요 언년이 너는 아가씨 잘 보필해 드려 금방 다녀올게. ”
서랑은 내심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 월담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담하 담덕 남매를 바라봤다.
“가서 건강해야해 공부는 절대 게을리 하면 안 된다.”
“네! 아가씨. 공부 열심히 하고 올 께요” 담하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언년이는 담하에게 삶은 감자와 달걀을 곱게 싼 보자기를 건내주었다.
“잘 다녀와 담하야.” 담하가 언년에게 빙그레 웃어주자 언년이도 활짝 웃어주었다. 둘이 참 잘 어울린다. 나중에 이들이 이대로 커 준다면 둘을 엮어줄 생각도 있었다. 혼자 몰래 생각하며 히죽 웃는 서랑이다.
“그래그래 적어도 자기 앞가림 정도 할 줄 알면 멋진 사내가 되겠지. 그지 언년아?.” 언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짝반짝한 눈에 아쉬움 보다는 미래의 담하를 생각하는 모양이 이뻐 보인다. 서랑이 담하 머리를 토닥토닥 다독여 주며 말했다. 담하는 눈물을 글썽 거렸다. 그 사이에 정이 들었다고 매달리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리 눈물이 많아서야. 서랑은 피식 웃었다.
“자! 여기 당과야. 이것 가면서 먹어.” 담하가 울던 눈물을 쏙 감추고 환하게 웃었다.
“이거 다 먹어도 돼요?” 벌써 하나를 꺼내 오물오물 씹는다.
“지금 다 먹지는 말고 심심할 때 하나둘 꺼내 먹어.”
“감사합니다.” 서랑은 충길에게도 부탁을 했다.
“잘 보살펴 주길 부탁해.”
“네 아가씨.” 충길은 월담의 손을 슬그머니 잡자 월담이 볼을 붉혔다.
“자! 이제 출발!” 서랑이 담하와 담덕을 돌려서 문앞에 세웠다.
일행은 서랑에게 다시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길을 나섰다.
서랑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언년을 안아주며 말했다.
“우리 맛있는거 먹을까? 시장에 가서?”
“정말요? 저 시장에서 먹고 싶은 것이 있었어요.!”
“그래. 그래. 이제부터. 낮 동안에는 내가 도성밖에 있는 부석사라는 절에 가서 약제공부를 하고 올 텐데 언년이 심심하지 않겠어?”
“집에서도 할 일은 있구요. 예전 여각에서 사귄 친구들 만나러 가도 되요..
참! 근데 아가씨 자꾸 돌아다니시면 안 된다고 언니가 그랬는대.“
“그럼 너도 부석사 같이 가자.”
“그래도 되요?”
서랑은 담하와의 이별에 씩씩하게 구는 언년이를 꼭 끌어 안아 주었다. 이 아이는 참 보면 볼수록 이뻐서 꼭 이런 딸하나 있었으면 하는 이상한? 생각을 하는 서랑이다. 그러고 보면 결혼은 하고 싶은가 보다. 자기도 모르게 큭큭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