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환은 매춘골을 나와 얼굴의 복면을 벗고 방문객이나 상단의 사람들과 같은 평범한 옷으로 변장을 풀었다. 나루터 입구쪽이 아닌 옆쪽 건물 구석에서 서서 서랑을 기다렸다. 워낙 뛰어난 인물이다 보니 귀찮은 시선을 피하고자 삿갓을 쓰고 서랑이 오기만 기다렸다.
그가 변복을 풀고 기다리는 것에도 시간이 어느 정도 소요되었을 터인데 서랑의 걸음으로 움직여 온다 해도 이미 나올 시간이 되었을 시각이지만 서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뭔가 맘에 들지 않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주군의 불편한 심기에 무천이 나섰다. “다시 가볼까요?”
“그래. 너가 돌아가서 모셔 와라.” 무천이 부하를 시키지 않고 직접 움직이라는 말이다.
무천이 매춘골로 다시 빠르게 걸어 들어갔다.
늦은 시간일수록 이곳은 오히려 화려해지고 사람들의 움직임이 늘어난다. 아까보다 번잡해진 곳으로 그가 들어가자 매춘부들이 그의 남자답고 잘생긴 외양에 사방에서 손을 뻣어 그를 잡아 당기려 했으나 그가 빠른 몸놀림으로 그 손들을 교묘히 피해서 움직였다.
그가 무덤덤하게 안쪽으로 빠르게 들어갈 때 큰 마차가 빠르게 그의 옆을 스치듯 달려갔다.
마차의 앞뒤로는 말은 탄 무사들이 있었다. 무천은 한번 마차를 힐끗 보고는 다시 빠르게 걸었다.
이환도 무천이 곧 시야에서 사라지고 그의 뒤로 무사들이 말을 타며 호위하듯 마차의 앞뒤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그의 시야에 잡혔다.
보통의 마차도 아니거니와 사람들이 저리 많은 곳에서 달리는 것은 무엇인가 급하다는 것인데 거기에 호위까지 왠지 그의 느낌이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더군다나 서랑이 보이지 않으니 모든 가능성을 판단해야 했다.
환에게는 태자의 호위무사가 100명이고 그의 정애는 무사는 30명 정도 있었다. 모두 그가 직접 선발하여 무애도 그와 대련을 하며 같이 능력을 키웠다.
한번 움직일 때 적어도 그의 정애의 무사는 10명을 이끌고 다녔다. 서랑이 보기에 항상 무천과 태자만 보이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태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왔다. 그도 그럴것이 태자 이환의 삶은 위험이 도사리듯 살아온 삶이고 그런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항상 자신의 목숨에 대한 위험요소를 파악하고 준비해야 무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항상 어느 상황에서건 비밀임무가 생기기 마련이다.
환은 그의 뒤를 소리 없이 따르는 무사를 손짓으로 부르자 복면을 쓴 무사가 나무 뒤에서 스르륵 존재를 드러냈다.
“수상하다 저 마차를 쫒아라. 둘이 한조로 쫒으며 마차가 도착하는 곳에 한명이 계속 상황을 파악하고 다른 한명은 나에게 기별을 넣어라.”
“존명” 그의 말이 떨어지자 이번에는 나무 위에서 기척을 죽이고 있던 무사하나가 나타나 함께 마차 뒤를 쫒았다.
무천은 운우락 근처까지 가서 고개를 휙휙 돌리며 서랑과 비슷한 외양의 사내가 있는지 빙빙 돌았다.
서랑의 인상착의를 묻거나 이름을 부르며 찾을 수가 없는 상황이라 그의 눈에 그녀가 보이길 바라며 찾는 것이 답답했다.
그가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니며 기웃기웃 거리자 그의 다리를 툭툭 두드리는 손길이 있어 아래를 내려 다 보니 자그마한 아이가 강아지를 안고 그를 올려다 보았다 .
“아저씨 착한 사람이에요? 나쁜 사람이에요?”
무천은 아이의 동글동글한 얼굴과 맑은 눈을 보며 피식 웃었다.
“나쁜 사람이 나쁘다고 말하겠니? 그래도 난 나쁜 사람이 아니다. 이런 곳에 있지 말고 집으로 가거라.”
아이가 그의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떴다.
“그럼 아저씨는 착한 사람이에요! ”
“사람을 찾아야 해서 바쁘니 어서 강아지 데리고 집에 가거라.”
“사람을 찾아요? 이쁜 오빠 찾아요?” 아이가 그의 말에 대뜸 말을 붙이자 무천은 사방을 둘러보던 시선을 다시 내려다 보았다. 혹시 이 아이가 서랑을 본걸까?
“혹시 눈이 호두알만큼 크고 하얀 얼굴에 허름한 흰색 무명옷을 입었어. 얼굴이 이쁜 남자 아이를 못 보았니? 봇짐을 들고 심부름을 갔는대 안돌아 와서 .키는 한 이만큼?” 그가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 위쪽을 표시해 보여주었다.
아이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알아요! 강아지 찾아준 오빠여요. 오빠가 전해주라고 했어요. 찾아올 꺼라고”
“그래! 어디서 봤어?” 무천이 급하듯 무릎을 접어 아이의 눈과 맞췄다.
“저기에서 어떤 칼 차고 있던 나쁜 아저씨들에게 꽁꽁 묶여서 잡혀 갔어요.!”
“뭐? 어디로 갔는지 봤니?”
아이가 그의 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로 건물 뒤로 갔어요. 저 건물 뒤에는 마차들이 있어요. 그걸 타고 간 것 같아요.”
“그래 고맙다 혹시 더 알려줄 것은 없어?”
“잘 모르겠어요. 그 오빠 꼭 도와주세요.”
꼬마가 강아지를 꼭 끌어 안으며 말했다.
“그래 정말 고맙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 여기는 위험하니.” 무천이 주머니에서 엽전 몇 개를 꺼내 아이의 손에 쥐어주었다.
“네! 감사합니다.!” 아이는 마치 할 일을 해서 속이 후련한 듯 씩 웃으며 뒤돌아 뛰어갔다.
무천은 재빨리 건물 뒤로 뛰어갔다. 건물이 여각 이였는지 그곳은 여행객들의 마차들과 말을 보관하는 곳 이였다.
그가 마부 인듯한 사내에게 꼬마에게 말했던 인상착의를 말하자 그가 말하기를 주저하며 곤란한 낯빛을 띠었다.
이럴 때에는 돈이 바로 해결책 이였다.
무천이 품에서 은화 하나를 꺼내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마부가 은화를 꼭 쥐었고 냉큼 옷속에 감추었다. 주위를 한번 휘휘 둘러보고는 그에게 작게 속삭였다.
“말씀 드리기 곤란하긴 하지만...추석랑께서 그 사내아이를 밧줄에 묶어서 마차에 태워 가셨습니다. ”
추석랑은 얼굴도 많이 알려져 있어서 그의 행실에 대해서 소문이 무성했다. 아비의 뒷배를 믿고 오만방자하게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을 들었지만 매춘골까지 왔다는 것은 행동의 끝을 보여주는 짓 이였다.
그런데 그것이 단순히 여인이라 끌고 갔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이일과 관련되어 끌고 간 것인지 알 수가 없었으니 답답했다.
후자라면 서랑의 목숨이 위험했다.
“혹 그 마차가.....”
“네. 검은 지붕의 파란 벽지를 바른 마차이옵니다. ”
“알았네!” 무천은 빠르게 골목으로 들어가 주위를 살펴본 뒤에 지붕위로 올라가 경공으로 이환이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이환은 초조하게 매춘골 입구만 노려보고 있었다.
황제가 아파서 누워 계셨어도 이리 초조하지는 않았었다. 오히려 머리는 냉정하게 차가 워 지고 상황을 빠르고 객관적으로 파악해서 여러 가지 묘수들을 생각해 내곤 했었는데 지금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어서 빨리 서랑의 모습이 보여 지길 바랬다. 환은 자신이 그녀에게 맘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깨닫지 못했다. 뒷짐을 진 상태로 왼손을 오른손으로 잡고 있었는데 왼손의 주먹을 쥐었다 풀었다 하며 자신의 긴장된 상태를 풀고자 노력했다.
“별일 아닐 것이야.” 이환은 혼자 말을 되뇌였다.
무천은 그가 믿는 이들 중 무애가 가장 뛰어난 자였다. 그가 찾으러 갔으면 무슨 일이 있어서 서랑을 대려올 것이다.
이환은 무천이 지붕위에서 빠르게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자신 앞에 혼자 서자 머릿속의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죄송합니다. 주군 아가씨께서는 납치된 것 같습니다.”
이환은 평소 차갑고 상황파악이 빠른 태자이기에 그가 보고하면 다음 단계에 대해서 지시가 있을 꺼라 생각하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그의 노여운 목소리와 말투가 매우 빠르게 되돌아 왔다.
“뭐라! 어디로! 누가! 흔적은 찾았겠지!” 동시에 물어보는 질문에 무천이 오히려 대답을 하다 당황했다.
“추무량의 아들 추석랑이 서랑아가씨를 마차에 태워 보냈다고 합니다.”
“혹시 그자가 눈치를 챈 것이냐!”
“그건 잘 모르옵고. 방금 이곳을 떠난 마차인 듯 합니다. ”
“혹! 너가 들어갈 때 나오던 마차더냐!” 이환은 자신이 두뇌가 더디 움직이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
“네. 그러하옵니다.”
“모두 추무량의 집으로 간다!” 이환은 빠르게 말위에 뛰어 올랐고 그가 달려나가기 시작하자 나머지 무사들도 그의 뒤를 쫒았다.
무천이 이환에게 말위에서 전음을 보냈다.
[태자마마 저희가 모셔올 것이오니 마마께서는 장시간 자리를 비울 수 없습니다. 먼저 환궁하시옵소서.]
태자는 뒤에서 일을 지시하기 보다는 그들과 함께 현장에서 전우처럼 움직였으나 중요한 일정이나 상황에 따라서는 어느 선에서 칼같이 공사 구분을 하여 행동을 했다 즉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잘 파악했다. 그런데 태자는 오늘밤에는 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홍내관이 알아서 잘 처리한다고 하지만 거의 이번주 매일밤 태자는 움직였기에 꼬리가 길면 움직임을 들킬 수 있다.
그래서 무천이 태자에게 전음을 보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아무말도 없었다.
한번 말을 해서 대답이 없다면 더 이상 말해보았자 소용이 없다.
이환은 말을 달리며 자신이 왜 이리 진노하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화를 내는 것인지 서랑이 그곳을 나왔을 때 끝까지 지켜봤어야 했다는 자책감에 미칠 것 같았다. 혹시라도 자신들의 일이 발각되어서 서랑이 잡혀갔다면 정말 끔찍한 상상이 머릿속을 부유하고 있었다.
그녀가 죽어가는 모습까지 상상이 되자 머리를 흔들어 잡생각을 떨쳐냈다. 아직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찌되었던 돌려놓을 것이다.
그는 말이 고삐를 바짝 쥐고 말에게 더 빨리 가라 신호를 주었다. 그의 초조한 맘을 아는지 그의 군마는 힘겨운 기색 없이 빠르게 달려갔다.
서랑은 마차 안에서 자신을 보며 히죽 히죽 웃는 시정잡배를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그와 서랑 단둘이 마차 안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서랑은 여유있게 마차 밖을 내다 보았다. 강가를 지나 도성 쪽으로 가는 듯 했다.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싫다! 왜 남복을 한 것이냐?”
그가 그녀의 위아래를 훑듯이 바라보자 거머리가 온몸을 기어 올라와 피를 뽑아 먹는 듯한 기분 나쁜 느낌이 들었으나 서랑은 표정을 계속 담담하게 유지했다.
“저도 대답하기 싫습니다.”
“하하하! 어차피 넌 오늘밤 나한테 잡혀 있을 꺼니까 뭐! 대답을 안해도 상관없다.”
“부녀자를 납치하는 것은 국법에서 금하고 있을 탠대 참 용감하십니다.”
서랑이 그를 비아냥 거렸으나 오히려 그는 그것이 칭찬인 듯 으하하 웃었다.
“우리 아버지가 좌상이다. 이 나라는 대비의 손안에 있고 대비를 뒤에서 봐주시는 것이 우리 아버지다. 알겠느냐?”
“그렇군요. 제가 처음입니까? 아니면 다른 여인들도 이리 하셨습니까?”
저런 빌어먹을 놈들은 허세도 있어서 성공한 것에 대해서는 주변에게 말하고 싶어 하는 성향이 있다. 물론 들키면 안 되어서 꽁꽁 숨길 수도 있겠지만 저런 작자는 말하고 싶어서 입이 간질거리는 유형이다.
“몇번 하긴 했지.” 그가 큼큼 거리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한심한 작자 같으니라고 자기한테 유도심문 당하는 것도 모른다.
“아버님도 아십니까?”
“아니다.! 아버님 몰래 들키지 않았지. ”
“어떻게 들키지 않으셨습니까? 대단하십니다. 혹 죽이셨습니까?” 서랑이 살짝 은근하게 그의 눈치를 보아가면서 말을 건냈다.
“그럼! 증거는 남겨두면 안되는 법이야”
“어머! 그럼 저도 죽게되나요? 전 죽기 싫어요!” 서랑이 무서운 듯 겁먹은 표정을 만들었다. 일단 저놈에게 방심을 이끌어 내야 했다.
“너는 좀 아깝다. 나에게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면 그런 일은 없지 . 내가 너만 좋다면 첩으로 받아주마.” 서랑은 속으로 혀를 찼다.
“ 저는 도련님처럼 남자 다운 행동을 하는 사내가 좋습니다. 살려만 주시면 도련님 곁에 있겠습니다.”
서랑이 여우처럼 눈을 깜빡거리자 그가 손을 허벅지 위에 올리고 비볐다.
“ 좋다. 우리 집에 가서 한번 뜨거운 밤을 보내보자. 그럼 내가 생각해 보마.”
“ 아이 심장 떨려 죽겠어요. 언제 도착하나요?” 서랑은 슬쩍 거리를 가늠했다.
“ 곧 도착한다. ”
서랑은 고개를 숙이며 포기한 듯한 한숨을 내쉬며 그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그는 서랑의 머리끈을 풀어서 윤기나는 머리카락을 한줌 쥐고 코를 밖고 냄새를 맡았다. 서랑은 저 징그러운 행동에 속에서 욕지기가 올라왔다.
“ 그런데 여기는 좀 외진 곳 같은데요.?” 서랑이 도성에서 조금 벗어나 빽빽한 나무들이 보이자 그에게 물어보았다.
“ 집에서는 좀 곤란하니 다른 경치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지 . 이쁜 것 이리 순순히 따라오면 얼마나 좋아?” 그가 서랑을 끌어 안았다.
서랑은 속으로 참자 참자 하며 욕지기를 참아내느라 힘들었다.
손을 풀도록 해야 하는데. 일단 다리도 묶여 있으니.
마차가 잠시 뒤에 멈추고 밖에서 무사가 물었다.
“도련님 도착했습니다.”
“그래! 이 아이를 끌고 가거라.”
서랑은 무사들에게 짐짝처럼 등에 얹혀서 마차 밖을 나왔다.
서랑은 주변을 보니 빼곡한 나무들이 보이고 소리를 질러 주위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일단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며 속을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