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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가리키는 새하얀 나침반
작가 : 소시지
작품등록일 : 20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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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작성일 : 17-07-03     조회 : 300     추천 : 0     분량 : 5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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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에는 19살이다.

 세상에서 그러하듯 모두가 말하길, 10대의 종반부는 어른이 되어가는 출발점이므로 미래의 걱정이나 사회생활의 두려움 따위 사그리 잊어버리고 앞날이 창창한 미래만을 생각하며 전진하라고들 격려를 보내지만, 장래희망이나 입시시험 따위 전부 물 말아 먹은 그녀는 되먹지도 않는 개소리라며 희망고문자들에게 정중히 중지를 날리는 여자였다.

 태초의 태어날 때부터 다리 밑 운명을 타고난 한지예는 희망이라는 단어와는 담을 쌓을 시피했고, 의지할 대상을 없어 무엇이든 간에 혼자 해결하는 버릇 탓에 그녀가 자란 보육원에서 인정한 세계제일의 마이페이스였다.

 그녀의 성격을 축약해서 말하자면 동등한 처지의 아이들을 위로해주기는커녕 치킨 한 조각 주기를 기피했으며 봉사정신이 투철하기는 개나 줘버렸다. 덤으로 남을 괴롭히기 좋아하는 천부적인 사디스트였다.

 이런 정신체계가 언제부터 굳어진 지는 알 수 없다. 그저 한지예 본인은 개개인의 타고난 성격차이라며 자신을 돌연변이라도 좋으니 부디 인격체를 존중해달라며 말하지만, 모두가 말하길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자란 환경 탓이라고들 한다.

 한지예는 만물을 통틀어 사랑받기를 거부했다. 그것이 설령 본인 자신이더라도.

 

 

 요란하게 울리는 방 하나가 있다.

 잡다한 공구와 건축자재들이 널브러진 다용도실은 보육원 내에서 인적이 드물기로 손꼽히는 장소이다.

 평소 장난꾸러기 고아들의 비밀기지로 떠들썩한 이곳은 아침이 되면 만석을 이루지만 한지예가 방문한 새벽은 그야말로 텅 빈 밀실이나 다름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장소에서 무엇을 하든 들킬 일은 극히 희박하다. 예를 들어 앙상하게 튀어나온 서까래에 대못을 박는다든가, 적당한 길일의 밧줄을 천장에 메건 다든가. 의자를 발을 딛고 조용히 기도한다든가.

 한지예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커억. 컥…… 컥.”

 목을 조이는 밧줄을 풀려는 모양새가 참으로 막연했다.

 섬뜩하게 놀아나는 손가락들이 목 주위에 붉은 자국을 남기고 그 자국으로 시뻘건 선혈이 흐른다.

 착지를 갈망하는 다리가 허공에서 맴돌지만, 서랍 모서리나 공구함에 치이고 부딪혀 멍이 들고 살이 터진다. 살기 위해 몸을 비틀어보지만 엄한 곳에만 부딪혀 상처를 남길 뿐. 몸부림이 거세질수록 밧줄은 목을 조여와 바람 빠지는 소리마저 희미하게 들릴 정도로 번지고 만다.

 올가미에 걸린 운명은 참으로 가혹하다.

 심지어 이 정도의 고통일 줄은 본인마저 몰랐을 것이다.

 단순히 약간의 고통이 뒤따르고 죽을 줄 알았건만, 역시 상상력이란 믿을 것이 못됐다.

 한지예는 자신의 정보 부족함을 심각하게 반성했다.

 자살을 하기에 앞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법이다. 죽기까지의 소요시간과 고통은 필히 검토해볼 만한 내용이다. 짧은 고통으로 단숨에 목숨을 끊을 수 있는 단락적인 필수요소인 것이다.

 ‘어제 그 아저씨 말에 넘어간 게 문제였어.’

 불현 듯 한지예는 어제의 기억을 되새긴다.

 그날 밤 새벽, 한지예는 명소라는 이야기에 혹하여 인적이 드문 대교를 방문했다. 난간에 적힌 다양한 글귀들로 유명해진 어느 도시의 다리였다.

 죽기에는 투신이 제격이라는 어느 인터넷 정보에 한지예는 꽤나 설득력 있는 정보라고 확신이 서버렸다.

 우선 온전한 상태로 죽는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단순한 익사라면 훼손은 적다. 고층빌딩에서 몸을 던지면 시체가 온전하지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 한지예는 고소공포증을 앓고 있다. 높은 곳이라면 끔찍이 싫다.

 마음을 정리하고 바깥 난간에 서버린 한지예는 흐르는 강물에 자신의 몸이 맡기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괴활하다시피 한 키에 털모자를 뒤집어쓰고 파카를 껴입은 남자였다.

 남자는 한없이 나른하다는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애야. 오늘 밤은 유난히 물이 차단다.”

 그 말에 마법이라도 담긴 듯, 어느 순간 느껴지지 않던 추위가 다시금 들어와 그녀의 살결을 파고들었다. 아무래도 본능인지라 한지예는 황급히 옷을 싸매었다. 달랑 겨울용 교복으로 추위를 막아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남자는 한지예에게 캔 커피를 권했다. 자신은 잠이 많은 체질이라며 외출 때는 적어도 서너 개 정도는 지니고 다닌다고 덧붙였다.

 “어째서 저런 곳에 있는 거냐.”

 “네?”

 “왜 위험한데 서 있냐고.”

 한지예는 부인할 수가 없다.

 솔직해 말해버리는 것이 옳을까.

 아니. 한지예는 고개를 저었다. 뭐라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이유를 털어놓아 봤자 피로 안 마른 어린놈이 무엇을 아느냐며 야단맞을 것이 뻔해 보였고 단순히 자살하고 싶어서라고 말하자니 자신의 처지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다. 한지예는 그마저도 아닌 어중간한 답변을 해주었다.

 “저도 몰라요.”

 “모른다니?”

 “정신 차려보니 저런 곳에 서 있었고 아저씨가 말을 걸어준 것뿐이에요.”

 둘의 만남이 그저 우연이라고 한지예는 설명했다.

 “아무튼 여기는 사람이 하도 많이 죽어서 묫자리로는 좋지 않아. 시커먼 놈이 널 데리고 간다고.”

 한지예는 그의 대해 경쾌한 대답을 전해주었다.

 “저승사자요? 이왕이면 대저택 전셋집 가진 섹시한 미혼이었으면 좋겠다.”

 망상의 나래를 펼친 한지예는 혹시나 존재하는 저승사자에 대해 호기심을 보였다. 전승에 따르면 저승사자는 지옥의 9급 공무원이라는 설이 있다, 카드라.

 “저 여기서 죽으면 저승사자가 데리고 가요?”

 “계속 죽을 생각하면 내가 데리고 가버린다.”

 “우엑. 왜 하필 아저씨 같은 남자한테 끌려가는데요?!”

 “그럼 죽지 마.”

 나른한 얼굴에 겉 맞는 나른한 목소리였다. 한지예는 그 목소리가 묘하게 듣기 거북했다.

 “참견이거든요!”

 한지예는 거칠게 투덜거렸다. 남자는 그녀의 태도가 언짢은지는 인생을 터득한 시골 할아버지처럼 충고를 해주었다.

 “뭐 죽기는 네 나름이야. 방금처럼 한 발짝만 내딛으면 끝나는 게 이 세상이거든, 그렇다고 손가락질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이미 있어도 막상 보지는 못하겠지만.”

 남자는 다 마신 캔 커피 깡통을 다리 아래에 던졌다. 어딘가에 부딪히듯 깡깡 소리를 세 번 정도 내더니 퐁당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내가 여태까지 본 사람 중에서 뭐하나 이루지 못하고 죽은 사람을 턱없이 많이 봤어. 너는 그런 녀석들이랑 틀려야 해. 이왕 죽기로 마음먹은 거 쓸모없는 걱정들은 버리고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죽으라는 거야. 그러다 보면 엄청 할머니가 돼서 저절로 죽는 거지. 영정사진은 늙을수록 예쁘게 찍히는 법이거든.”

 이 당시 한지예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이미 그의 마음에는 죄의 싹처럼 자살이라는 계획이 잡혀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그런 말을 하고 자리를 떴다.

 고작 그런 말을 전해주려고 나타난 것일까, 한지예는 의문을 느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날 한지예는 다리에서 뛰어내리지 않았다. 무슨 연루인지는 본인도 모른다. 그다지 충동을 느끼지 못한 더러 이상하게 몸이 피곤했다.

 그 날 새벽 한지예는 투신자살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죽는 거 따위 내일로 미뤄두자는 식이었다.

 

 목을 매는 지금 이 순간, 한지예는 생각했다.

 ‘원하는 걸 하고 죽으라고……?’

 어째서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남자는 고작 이 한마디를 전해준 것인데. 어제와 오늘은 고민조차 하지 않은 건가.

 후회가 막심이 피어오른다.

 사망의 공포보다는 죽기 직전에 밀려오는 여생의 후회가 너무 아깝게 느껴진 것이다.

 다시 시작하면 지금보다는 훨씬 열심히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사람도 만나 사랑도 해보고 못해본 연애도 해보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난생처음 칭찬도 받아보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도 있을 텐데.

 왜 죽는다는 선택을 해버려서 이런 꼴이 되어버린 것일까.

 한지예는 밧줄에 희망을 품어본다.

 혹시 썩은 동아줄이 아닐까.

 헛소리일지는 모르지만, 위기의 순간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지는 기적이 생길지도 모른다.

 몸부림치면 끓기는 것일지도 몰라. 기도해볼까. 하나님은 죽음에서 구해주신다고들 하잖아.

 한지예는 죽는 순간에서도 살 방법을 물색했다.

 하지만 현실도피였을지도 모른다.

 밧줄은 그녀의 소원을 부정하듯 정교한 꼬임 새를 가졌다. 썩어 곪거나 날붙이로 자르지 않는 이상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한지예는 절망에 휩싸였다.

 이 고통이 영원히 이어지면 어떡하지. 끝내는 축 늘어진 시체가 돼서 대롱대롱 매달리는 것일까.

 어렴풋이 지나쳤던 인터넷의 정보가 떠오른다.

 사람이 죽으면 근육이 풀리게 되고 모든 장기가 몸 밖으로 배출된다는 글이었다. 한지예는 굳이 상상하기 싫었다. 최후의 모습이 파리와 바퀴벌레의 먹잇감으로 전락해버린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섬뜩했다.

 앞으로의 미래가 형편없다.

 반론할 수 없는 실패한 삶이다.

 태어나서부터 성장하기까지 쭉 이런 식이니깐 결과도 이런 거야.

 ‘아니야. 그건 형편없는 변명에 불과해.’

 한지예는 자신을 타일렀다.

 애당초 그녀가 자초한 일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계획한 일이며 원하던 결말이 아니던가. 남은 것이라곤 썩어버린 육체와 미미하게 남을 뿐인 한 여자의 도시 괴담일 뿐이다.

 자신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웃지 못하는 몸을 대신하여 마음속으로나마 비웃었다.

 형편없는 자신이 너무 싫었으니깐.

 그때였다. 겨울 한기가 몸을 관통했다.

 분명 이곳은 밀폐된 공간이다. 바람이 들어올 통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살벌한 기운은 바닥을 헤집고 방안 구석구석을 덮쳐왔다. 동시에 한지예는 누군가의 기척이 느꼈다.

 그 순간 한지예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보여서는 안 될 것이 보이고 말았다.

 투명한 윤곽이 드러나더니 굴곡과 색이 입혀지고 형태가 꿈틀거렸다. 마치 뱀의 꼬리라고 짐작할만한 형태였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팔로도 보였다. 동시에는 짐승의 털과 발톱을 지닌 괴기한 수족처럼 보였다.

 괴상한 팔이 한지예의 다리를 타고 와 허리를 어루만졌다. 겁에 질려 몸을 떠는 한지예의 귓가에 속삭였다.

 크르르르르…….

 짐승의 울음소리.

 후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임을 직감한 한지예는 눈을 돌려 옆을 주시하였다. 곧바로 불쑥 모습을 드러낸 의문의 존재와 눈이 마주쳤다.

 짐승의 눈동자는 심해처럼 깊었다. 그 존재는 산양의 뿔을 달고 있으며 얼굴은 소를 닮기도 했다. 분명 짐승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몸은 짐승의 것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다.

 육중한 체격과 다부진 근육. 이족보행을 가능케 하는 상체와 하체의 골격은 분명 인간의 신체와 많이 유사했다.

 혹시 신화에 나오는 상상 속 동물이 아닐까. 하지만 저 짐승은 실존하는 생물이고 그녀의 눈앞에 생생히 존재한다. 만일 저 존재를 부정하려면 먼저 자신의 눈부터 부정할 터.

 하지만 한지예는 그 존재를 받아들였다.

 ‘귀신.’

 죽음의 문턱에서 보이는 존재가 귀신 말고 무엇이 있으라. 지면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저 신기루도, 온몸을 얼어붙게 하는 저 차가운 바람도, 전부 귀신의 소행이 분명하다.

 귀신의 초점 없는 눈동자에서 삶의 의미라곤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무기력하고 나태한 눈빛이다.

 한지예의 자살행위에 이끌린 상실과 허무함이 저 자살귀를 불러 드린 원흉이다. 동반자를 자처한 귀신은 한지예를 음부의 깊은 늪으로 인도하여 피와 살이 구워지는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버릴 것이다.

 그렇게 귀신은, 골수가 빨려 흉측하게 비틀어진 팔로 그녀의 눈을 가리기 시작한다.

 한지예는 최후의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귀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삐쩍 마른 손으로 그녀의 눈을 가렸다. 손가락 마디 사이에서 마지막 이미지가 사라진다. 천천히 세상은 좁아진다.

 귀신이 입을 뻐금거렸다.

 나를…….

 한지예는 흐릿해지는 의식을 간신히 붙잡고 귀신의 말을 주시한다.

 탓하지…… 마라…….

 억울함 섞인 말들이 점점 음성을 되찾을 때, 그리고 한지예가 비로소 눈꺼풀이 감기자 귀신은 실실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그의 뜻이기도 하니깐…….”

 의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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