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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가리키는 새하얀 나침반
작가 : 소시지
작품등록일 : 20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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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삶, 이후의 삶. 2
작성일 : 17-07-05     조회 : 290     추천 : 0     분량 : 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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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땅에는 여자 하나와 새끼염소 하나가 질주하고 있다.

 “아니야! 아니라고, 난 죽지 않았어!”

 한지예는 한번 순응한 현실을 다시 부정하는 중이다.

 이 광대한 저승에 탈출구가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무작정 달리기를 어느덧 한 시간.

 지치면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 달리기를 반복한다. 쉴 틈 없이 전력 질주하는 그녀를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무엇이 그녀를 이리도 질주하게 하는 지는 본인과 염소만이 알뿐이다.

 염소에게 전해 들은 이 세계의 정체는 다름 아닌 사후세계.

 이승에서 죽은 자들의 영혼이 흘려들어 오는 제2의 세계이다.

 한지예가 생각하는 사후세계의 이미지는 끔찍할 정도로 좋지 못했다.

 온 세상이 유황불로 뒤덮여있으며 공기 중에는 검은 연기가 자욱하여 숨쉬기도 불가능할 정도이다. 악마들이 들끓고 죄인들에게 무자비한 고문을 반복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지옥의 이야기이다. 반대로 천국의 이야기는 이렇지 않다.

 천국은 천사와 행복이 가득한 세상. 하지만 한지예는 천국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의 상상력이 메마른 것이 아니다. 오직 그녀의 마음속에는 지옥만을 자각할 뿐이다.

 사후세계의 실존 여부를 물으면 당연히 없다고 말하는 여자이다. 그렇기에 인생을 통틀어 그녀는 선행과는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

 물론 사후세계의 여부가 인간의 인생에서 선악을 가름하지는 않는다. 그저 한지예가 글러 먹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죽고서야 깨달을 수가 있었다. 사후세계, 즉 천국과 지옥이 실존한다는 것을.

 인생이라는 증거에서 한지예는 자신에게 천국과 지옥 중에서 하나를 선고받는다면 분명 지옥을 선고받을 것이라고 염려하고 있다.

 “지옥만큼은 절대로 안 가!!!”

 이 순간만큼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신이라는 존재를 탓하고 싶었다.

 정말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면 사람의 입소문과 성서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의 물증으로 사람을 설득시켜나 죽음 뒤에 세상을 두 눈으로 직시해줘야 하지 않은가.

 카페에서도 커피를 시키면 뜨겁다는 문구가 종이컵에 적혀있듯이, 산모의 뱃속에서 인간이 잉태되는 순간에라도 착하게 살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본능을 심어준다면 나치의 독재자가 유대인을 학살하는 일은 없었을 터인데!

 “무능한 과학자들! 바둑 두는 인공지능로봇 따위 연구하지 말고 이딴 사후세계를 엿 먹일 인공천국을 만들란 말이야!”

 신에 대한 분노가 어느새 애꿎은 과학자에게로 방향을 틀었다.

 한지예는 남을 탓하더라도 지옥만큼은 사절이다.

 막연한 인생을 피하고자 자살까지 결심했는데, 막상 또 다른 삶이 존재한다면 그 삶에서도 자살을 결심할 것이리라.

 하지만 이곳은 사후세계다.

 사후세계에서 죽어봤자 다시 사후세계를 반복할 뿐이다.

 한마디로 앞뒤가 꽉 막힌 상황에 놓인 것이리라.

 “뛰는 건 언제나 재밌어!”

 용케도 짧은 다리를 움직여 한지예를 뒤따르는 염소는 매우 흥분한 얼굴이었다. 산책 나온 강아지처럼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며 두 귀를 팔랑였다.

 방면에 한지예는 염소가 언짢은 기색이다.

 “따라오지 마! 망할 저승사자 놈아!”

 “저승사자?!”

 “그래! 이 사악한 자식, 어디서 나를 지옥에 빠트리려고!”

 한지예는 염소의 속셈을 간파했다.

 순진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에게 다가온 새하얗고 귀여운 생물은 분명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지옥으로 끌고 갈 저승사자리라!

 한지예는 얼마 전 악마는 위장 솜씨가 뛰어나다는 어느 인터넷의 짤막한 글귀를 본 적이 있다. 미모의 여성으로 위장하여 남자를 홀리고, 반대로 남자로 위장하여 여자들 겁탈하는 그런 악마를.

 불쌍하게도 악마와 동격으로 취급당한 염소였다.

 “틀려! 나는 사신이 아니야.”

 염소는 한지예의 오해를 부인했다.

 “차라리 천사라고 말해보시지? 말하는 동물을 누가 믿을까 보다!”

 “정말이야. 너에게 해를 입힐 생각은 없어.”

 “그 말을 어떻게 믿어?”

 “믿어줘 .나는 사신도 아니고 천사도 아니야. 나는 저승의 안내자이고 하늘의 영이야!”

 한지예는 약자를 깔보는 듯한 얼굴로 염소를 비웃었다.

 “그럼 발가락이라도 핥아보시지 하늘의 영 씨. 네놈의 현란한 혀 놀림으로 날 천국으로 보내버리란 말이야!”

 “그것만은…….”

 그것은 비아냥거림이었다.

 이승에 두고 온 까닭인지 그녀에게는 신발이 없다. 타이트한 나일론재질의 스타킹이 그녀의 뽀얀 다리를 감쌀 뿐이다. 매혹적인 다리를 핥으라는 제안은 혹여나 매력적인 제안일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을 하늘의 영이라고 부인하는 염소에게는 어느 정도의 자존심을 낮출 필요가 있다.

 “하하하. 거 봐, 거룩하고 순결한 분들은 그런 거 못하지? 응? …………어? 어어어?! 지, 진짜로 핥지 마!”

 한지예는 당혹함을 금치 못했다.

 정말로 염소는 다리를 핥기 위해 혀를 날름거린 것이라. 다소 유연한 혀동작으로 보아 염소는 진심인 듯했다.

 “미, 미친!”

 한지예는 염소를 때어내기 위해 전력 질주했다. 하지만 인간의 속도로는 동물과 비교하자면 상당히 부족할 따름이다. 염소는 금방 한지예를 따라잡아 뱀처럼 늘어진 혀로 그녀의 종아리를 핥았다.

 “으꺄!”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전류에 관통당하는 듯한 마비감각을 느꼈다.

 소름끼치는 감각을 맛 본 한지예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지고 말았다. 염소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아니하고 혀를 날름거리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저리 꺼져! 꺼저어어!!”

 발버둥치는 한지예를 상관치하지 않고 염소는 열심히 혀를 놀렸다. 반투명 검은색이었던 스타킹이 어느덧 염소의 타액으로 범벅되어 표현할 수 없는 형태로 물들어갔다.

 주인에게 애정 표현을 아끼지 않는 애완동물의 모습으로 비춰볼 수도 있으나, 한지예는 염소를 동물로 생각하지 않았다. 눈물까지 글썽이며 억지로 핥는 염소의 모습은 한지예의 잠재된 가학 심을 자극했지만, 모멸감은 어쩔 수 없다.

 당장에라도 염소의 머리를 걷어차 버릴까, 욕구에 휩싸였으나 염소의 혀 놀림이 심상치 않다.

 ‘뭐어, 거짓말은 아닌 것 같네…….’

 혀 놀림에는 정성이 깃들어져 있다.

 구석구석 핥는 절묘한 정밀함은 오로지 핥는 대상의 쾌락만을 추구한 고난도의 경지였다.

 역시 천국으로 인도하는 하늘의 영의 책무이랄까…….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 상태가 지속한다면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는 것이라 직감한 한지예는 낙심한 얼굴로 염소에게 말했다.

 “……믿어줄 테니깐, 이제 그만해.”

 “젛망(정말)?”

 얼굴이 활짝 핀 염소는 혀를 집어넣었다. 흡사 피에 적신 검을 칼집에 집어넣는 무사의 모습이다.

 “믿어줘서 고마워. 다시 소개할게, 나는 이곳 저승에서 죽은 자들에게 길을 인도해주는 안내자야. 이름은 버질,”

 “나는 한지예야…….”

 “지예구나! 반가워!”

 염소, 버질은 해맑은 미소를 머금었다.

 “저승은 오늘이 처음이지?”

 “으, 응.”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지 물어봐!”

 혀놀림 만큼이나 착실한 염소였다.

 버질은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한다는 인상으로 한지예에게 궁금증을 요구했다. 한지예는 모르는 것이 산더미처럼 많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럼. 네 말대로 이곳이 사후세계라면 어느 쪽이야?”

 “어느 쪽이라니?”

 “그 있잖아. 천국이라 던지, ……지옥이라 던지.”

 사람은 죽으면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고, 그 영혼은 생전에 지은 죄의 따라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간다는 사후세계의 개념을 말한 것이다.

 하지만 한지예는 생전에 딱히 착한 행실을 하지 않았고 신도 믿지 않았다. 아마 지옥이라고 판단하는 순간.

 염소는 자신의 머리를 발굽으로 벅벅 긁고는 그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결론부터 말해주자면 너의 구원과 심판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어.”

 한지예는 의아한 얼굴이다.

 “어째서? 여기는 사후세계잖아.”

 “여기가 어중간한 곳이라서 그래. 정확하게는 지옥의 일부분이지만, 현재 개념은 천국과 더 깊은 지옥의 사이야.”

 한지예는 맨땅을 내려다보고 다음에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간단히 이해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서 천국과 지옥을 결정한다는 뜻이구나.”

 “뭐 그러긴 해.”

 “다행이다~”

 한지예는 안도하고야 말았다.

 그녀의 지옥심판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 물론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묵혀두었던 불안감을 잠시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뭐야~ 괜히 걱정했었네.”

 기고만장해진 한지예는 검은 땅을 전력 질주하던 아까전의 자신이 부끄러웠다.

 천국과 지옥의 중간 활로인 저승은 최소한의 바리게이트인 셈이다. 한지예가 죄를 범하지 않는 전제하에 지옥에 떨어질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리라. 한지예는 그렇게 생각하고야 말았다.

 버질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눈치체지 못한 한지예는 기어코 버질이 발굽을 내려치자 그 사실을 인지할 수가 있었다.

 웅장한 울림이 저승 전역에 울렸다.

 “깜짝이야!”

 생각 외로 은근 큰소리가 울렸는지 한지예는 깜짝 놀란 얼굴로 험악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버질을 쳐다보았다. 버질은 잔뜩 구겨진 인상으로 으르렁거렸다.

 “멍청아! 네가 어떤 죄를 범했는지 잊었어?!”

 순간 뒷걸음질쳐버린 한지예는 버질의 말을 마음속 깊게 담아뒀다. 자신의 죄가 어느 정도길래 이렇게 심각한 정도로 자신을 타이르는 것일까.

 “내 죄…….”

 그렇다. 그녀는 결코 용서받지 못하는 큰 죄를 범했다.

 그 죄를 무게를 따진다면 지옥에서 가장 깊다고 알려진 곳을 그런 사람들의 장소로 만들어질 정도이다. 가장 무거운 악질의 죄이며 부모를 배신한 가장 큰 패륜이다. 가장 어처구니없으며 한편으로는 가장 비극적인 죄.

 자살은 회개조차 용납받지 않는 죄이다.

 한지예의 마음속에 절망이 내려앉았다. 이대로 지옥에 떨어진다는 말인가? 불구덩이 속에서 영원토록 불타오르고 족쇄에 이끌려 차례대로 악마의 창에 찔리는 것일까. 사람높이만 한 젓가락으로 남을 먹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다리가 떨리고 오금이 저렸다.

 “그래도 안심해. 확정은 아니니깐.”

 그나마 희망이 담긴 버질의 말에 한지예는 벌러덩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가르쳐주세요! 어떻게 하면 지옥에 가지 않을 수 있나요! 제 머리를 질근질근 밟으셔도 좋아요. 아니면 발굽의 때라도 핥으라면 핥겠어요! 제발 알려주세요!”

 인간의 절박함을 한눈에 감상한 버질은 혐오스러운 얼굴로 한지예를 쏘아보았다.

 흡사 산업폐기물을 바라보는 시선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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