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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가리키는 새하얀 나침반
작가 : 소시지
작품등록일 : 20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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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의 성. 2
작성일 : 17-07-13     조회 : 249     추천 : 0     분량 : 4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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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넓은 광장에 도착한 한지예.

 반듯한 대리석이 바닥을 뒤덮어놓은 광장은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소리가 잇따라 들리고 음악의 화음과 음식의 향기로운 냄새가 짙었다.

 운동장크기의 광장은 상점가와 음식점이 대부분이었다. 카페스탠드에서 티타임을 즐기는 사람과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 그리고 벤치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람들마저 여유로움이 물씬 느껴졌다. 이곳은 그야말로 도시 속 쉼터였다.

 한지예의 마음속에서 두근거림이 요동쳤다. 비록 이승에서는 끔찍한 결말을 맞이했지만, 저승에서만큼은 다르다. 자살해버린 인간에게 천국이란 사치에 불과하더라도 지옥만큼은 피할 수 있다.

 답은 하나였다. 이곳 저승에서 평생 사는 것.

 누구에게 방해받지 않고 피해주지도 않는다.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저승은 모든 것이 공짜다. 적당한 숙소를 구한 뒤 평생 놀고. 먹고. 잔다. 이곳이야말로 인류가 평생 꿈꿔왔던 파라다이스.

 “좋아.”

 한지예의 눈빛이 75년 만에 돌아온 핼리 혜성처럼 반짝였다.

 자살하기 전과 상반되는 활기찬 모습이다. 어느새 오른손은 다짐한 듯 꽉 쥐고 있었다. 한지예는 두 팔을 높이 들어 올리고 선언한다.

 “가자. 새 시작을!”

 이때, 그녀의 코끝에서 식욕을 자극하는 향기가 흘러들어왔다. 향기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시선이 부딪힌 그곳에는 다양한 음식을 파는 노점상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

 한지예가 멍하니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결박시킨 원흉을 하나하나 주시하였다.

 지글지글 불판에 구워져 기름을 쏟아내는 스테이크. 바삭바삭 식용유에 튀겨지는 바삭한 치킨. 걸쭉한 치즈를 흘리는 요망한 피자. 고급음식점에서만 보았던 초밥. 막힌 목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콜라와 맥주,

 그녀는 상점가로 한 발짝 발을 내디뎠다.

 이승에서 누리지 못하는 사치. 배속에 들어간다면 다 똑같다는 생각으로 꾹 참았던 욕구.

 하지만 저승에서는 누릴 수 있는 사치. 단연컨대 공짜.

 한지예의 가장 소원했던 생활의 첫 번째이자 가장 서글픈 욕구.

 “우선 먹고 보자.”

 

 *

 

 한가득 묵직해 보이는 종이 팩을 품고 등장한 한지예는 외톨이 벤치에 앉았다. 여러 가지 음식들이 섞이고 섞여 넘실거리는 종이 팩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지만 용케도 균형을 유지하였다.

 “누구부터 먹을까? 이놈? 아니면 저놈? 쿠흐흐흐.”

 한지예는 기분이 좋은 듯 흥얼거리며 음식들을 하나둘씩 집어 들었다. 가장 먼저 그녀의 식욕을 후려 줄 첫 번째 타자는 기름에 튀겨져 보이는 것만으로도 바삭해 보이는 간장치킨이었다.

 한 손으로 닭다리를 붙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 날개를 붙잡은 채 군침을 흘리는 한지예는 윤기가 흐르는 튀김옷의 자태를 감상한다.

 “크흑……!”

 급기야 눈물까지 흘리는 그녀.

 치킨은 그야말로 궁극의 음식이다. 사정이 빠듯한 보육원에선 영양에만 치중된 학교급식수준 미달 정도의 급식만 배급되었다.

 한지예는 고등학생이 된 후로부터 어느 정도의 돈을 벌수가 있었지만, 거금에 속하는 치킨 값은 그녀의 지갑 사정에 커다란 타격을 줄 뿐이다. 게다가 보육원에는 그녀보다 어린 동생들이 있었다. 연장자로서 동생들을 챙겨주지 못할망정 자기 혼자 몰래 치킨을 뜯다니, 들키면 사형감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치킨을 맛보는 날은 간혹 보육원관계자들이 어린 고아들을 가엾이 여겨 치킨파티를 벌이는 순간뿐이었다. 그때가 되면 한지예는 마른하늘에 만나가 내리는 기적을 경험하였다.

 “자! 축배를 들라!”

 한지예가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닭다리와 날개를 치켜세웠다.

 오늘은 감격스러운 날이다. 자살을 선택하고 사후세계에 떨어져 지옥을 선고받은 날이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계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날이다.

 전자는 가능성이고 후자는 확정이다. 자살의 경험은 이미 떨쳐 내버린 과거일 뿐이다. 지옥 선고쯤이야 남에게 폐를 끼치지만 않으면 될 일이다.

 지금은 확정된 상황을 만끽할 뿐.

 한지예는 이날을 내려준 하늘에게 감사하고 치킨을 덥석 베어 물었다. 간장에 잘 버무려진 튀김옷의 식감은 그야말로 극강의 바삭함! 치킨의 생명은 뭐니 뭐니 해도 갓 튀겨진 순간의 바삭함이리라. 그리고 환상적인 바삭함 뒤에 뒤따르는 육즙의 담백한 황홀함! 당연컨대 숙달된 치킨 공의 엄선한 기준으로 선발된 1등급 생닭이 아니면 이 정도의 육즙은 나올 리 해야 나올 수가 없다! 이 두 조합이 입속에서 한 대 뒤엉켜 치킨 하모니를 연주하니 그야말로 극락이 아니겠는가.

 한지예의 몸이 녹아내리듯 사르르 녹초가 되었다.

 “하아아…….”

 폭설이 내리는 산장에서 몸을 녹이는 등산객마냥 한지예는 열기를 띈 목소리를 내었다.

 “정말 꿈이 아니구나.”

 한창 식욕이 왕성한 나이이다. 평범한 가정의 또래 아이들이 마냥 부럽고 한창 어른을 갈망할 때이다. 어리광을 받아줄 부모가 없는 한지예로서는 피치 못할 운명이기에 욕구를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만약 어른이 된다면 꼭 이루고자 하는 소원 중 하나가 질리도록 군것질을 하는 것이리라.

 “아참!”

 그 순간 한지예는 번뜩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남몰래 작성한 ‘먹고 싶은 TOP10’리스트가 그녀의 서랍 3번째 칸에 봉인되어있었다. 아마도 한창 고민이 많은 중학생 시절에 작성한 것이 틀림없을 터. 만일 한지예의 자살소식이 밝혀진다면 그 리스트 역시 발각될 것이 뻔하다. 그녀의 자살 동기가 먹지 못한 서러움에 목을 매었다고 판명 나리라.

 “그게 대수라고.”

 한지예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피자 조각을 꺼내 들어 입에 물었다. 걸쭉하게 늘어난 치즈를 보며 흐뭇함에 사로잡혔다.

 물론 폭식은 죄이다. 한지예는 방금 피자 겉 부분을 버리는 괘씸한 대죄를 범했다!

 아무리 자원이 풍부하다고 한들 노동력은 애당초 사람에게서 나온다. 재료를 운송하는 유통부터 요리, 판매까지. 죽은 자들에게 행복을 보장해주는 자원봉사자가 있기에 저승의 행복수준이 천국의 친애천 수준과 맞먹을 정도였다.

 더욱 지옥에 가까워진 한지예의 먹는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절반도 먹지 못하고 금세 배가 부른 탓이다.

 “으윽…….”

 기름기만 섭취한 한지예는 더부룩한 위장을 달래었다.

 물론 처음부터 배가 고팠던 것도 아니었다. 저승에서는 배고픔을 느낄 수 없다. 한지예는 단지 먹어보고 싶다는 호기심뿐이었다.

 “우와…….”

 그때였다. 한지예의 옆자리에서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한지예는 손에 쥐고 있던 햄버거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한지예도 모르는 사이 귀신같은 소녀는 벤치 옆자리에 앉은 것이다.

 생긴 것은 10살짜리. 작은 체구의 소녀였다. 환한 햇살에 비쳐 은색 왕관을 연상하게 하는 백색 단발머리를 가졌고 푸른 하늘색 바탕의 흰색 물방울무늬 잠옷을 입고 있었다.

 자다 깨다만 소녀는 한지예가 품고 있는 폭식의 잔재들을 뚫어지라 쳐다보고는 군침을 줄줄 흘렸다.

 “언니, 혼자서 다 먹는 거야?”

 배고픈 초식동물의 똘망똘망한 눈빛을 보내는 소녀는 입가의 침도 닦지 않고 말했다.

 과연 소녀의 모습도 예외는 아니었다.

 왼쪽 이마로부터 턱까지 다량의 피가 흐른다. 뚝뚝 흐르지 않아 굳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지만 소녀의 피는 온기가 남아있는 혈액이다. 넘친다는 표현보다는 순환된다는 표현이 옮았다. 한지예는 상대하기 귀찮다는 기색으로 말했다.

 “다 공짜잖아. 너도 먹고 싶으면 받아오면 되지.”

 한편 소녀는 침울한 목소리로 말한다.

 “우리 아저씨가 괜한 민폐 끼치지 말래. 윈디는 그렇게 많이 먹지도 않는데.”

 시무룩해진 소녀는 음식에 대한 집착이 커져만 갔다.

 “나도 먹고 싶은데…….”

 소녀에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금세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한 모습에 한지예는 종이 팩의 내용물을 보았다. 아직도 처리하지 못한 기름진 음식들이 가득했었다.

 ‘과연.’

 그 순간 한지예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다.

 “아니. 어차피 나 혼자는 다 먹지도 못해,”

 한지예는 배고픈 소녀에게 종이 팩을 넘겨주었다. 잔반처리를 소녀에게 떠맡긴 것이다.

 “와아! 정말 다 주는 거야?”

 작은 몸집에 종이 팩을 양팔 가득 껴안은 소녀는 꽃이 핀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도 잠시 소녀는 갈등을 보였다.

 “……이만큼이나 먹어버리면 아저씨한테 야단맞을 텐데.”

 그 갈등도 피자를 꺼내들자 묻히고 만다.

 “붸에에에.”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소녀는 치즈가 넘쳐흐르는 자태를 보고는 군침이 범람하고 말았다.

 한편 소녀가 피자에 눈이 팔린 사이, 한지예는 소녀의 시선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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