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천국을 가리키는 새하얀 나침반
작가 : 소시지
작품등록일 : 20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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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의 성. 3
작성일 : 17-07-14     조회 : 264     추천 : 0     분량 : 4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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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장 중앙에는 유명한 명소하나가 존재한다.

 백색 대리석으로 담을 쌓아 만든 작은 분수대에선 세차게 물을 분수했다. 그리고 분수대의 중앙에는 마치 미의 여신을 본떠 섬세하게 조각해낸 것 같은 여신상이 아름다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순백의 석재가 그려낸 몸매의 곡선은 보는 이마저 아찔하게 느껴질 만큼 요염했다.

 여신상을 보기위해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찾아온 관광객도, 우연히 광장을 들리다 여신상을 발견한 시민도 모두 여신상의 미모에 넋을 잃었다.

 다만 한지예 만큼은 관심 밖이지만.

 방물관의 흔한 전시품을 보는 것 마냥 금세 흥미를 잃어버렸다. 감수성이란 메마를 대로 말라버린 건어물 같은 한지예는 냉큼 시선을 돌리고 흥미를 자극해줄 대상을 찾는다.

 머지않아 그녀의 시선이 닮은 곳은 2인석의 작고 왜소한 벤치였다. 한지예는 이거다 싶어 냉큼 달려가 자리를 잡았다. 시각적인 아름다움보다 육체적인 편안함이 우선시였다.

 분수대가 작동할 때마다 시원한 기운이 불어와 몸을 식혀주었다. 분수대가 정지해도 고요한 물소리가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저기, 학생?”

 한참 자유를 만끽하는 한지예에게 다가서는 그림자가 짙게 깔렸다.

 나이는 대략 40대 정도에 턱살이 축 처지고 주름살이 가득한 중년의 사내였다. 사내는 남은 빈자리에 엉덩이를 밀어 넣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 자리가 자신의 자리인 것처럼.

 “누구세요……?”

 “어디 보자.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고…… 분명 저승은 오늘처음이지?”

 중년의 판단력이 보기 좋게 틀어 맞았다.

 “아참 오해하지 말렴. 학생처럼 정보가 부족한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하거든. 그런 거 있잖아. 봉사라든가.”

 중년은 가느다란 실눈을 뜨고 한지예를 훑어보았다. 다소 부담스러운 시선에 한지예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낯설고 수상하다. 이것이 첫인상이었다. 한지예는 날카로운 말투로 싫은 기색을 표했다.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방면 중년은 나무라는 식으로 허탈하게 웃었다. 자신의 첫인상이 다소 수상할 법하다고 인정하는 바이다.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등을 토닥였다.

 “그럴 만도 하지. 나도 처음에는 모두가 낯설고 어석했거든. 사후세계라니, 솔직히 믿어지지 않잖아?”

 중년은 자신의 정수리를 가리켰다. 피에 젖어 눌어붙었는지 머리끝이 납작했다. 머리카락을 타고 무언가가 뚝뚝 떨어졌다. 그것은 피였다.

 “사실 생전에 선생이었거든, 학생을 보니 옛 생각도 많이 나버려서 그래. 마침 인연이고 해서 이것저것 가리켜주려고 했지.”

 어느 샌가 팔목을 붙잡혀버렸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족쇄를 채운 것만 같았다. 불쾌감은 배가 됐다.

 “뭐가 가장 궁금해, 관광지? 여자애들이 좋아할 만한 쇼핑점을 알고 있거든. 배가 고프면 잘 아는 맛집을 아는데 소개해줄까? 저기가 지름길이야.”

 중년이 한지예를 일으켜 세우고 한 방향을 가리켰다. 수상할 정도도 어둠침침한 골목이었다.

 한지예는 중년의 손을 뿌리쳤다. 꽤 세게 잡힌 탓에 손목에 붉은 자국이 남아있었다.

 “됐으니깐 가던 길이나 가세요.”

 이쯤이면 포기해주기를 빌었다. 성폭행이니 인신매매이니 이승의 흉한 이야깃거리가 저승에도 당연히 있을 법했다. 게다가 저승은 죽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욕정을 풀지 못하고 죽은 이들은 저승에서라도 욕정을 풀기 원했을 것이다. 비록 천국을 포기하더라도. 비록 지옥에 가는 한이 있어도.

 한지예의 간절한 소원에도 중년은 포기할 줄 몰랐다. 이번에는 허리에 손을 넣고 끌어 앉았다. 혐오감을 느낀 한지예가 중년을 밀쳐냈다.

 “정말 왜 이러세요!”

 중년은 ‘어이쿠’하고 뒤로 물러섰다. 끈적한 목소리로 작게 타일렀다.

 “오해하지 마, 가벼운 스킨십이야. 왕년에는 통했는지 요즘은 이상하게 오해를 받더라고. 이 아저씨가 나이가 들어서 그렇지 왕년에는 꽤 인기 많았어.”

 “궁금하지 않아요. 참견하지 말아 주세요.”

 “도와주고 싶어서 그러는데, 사람 섭섭하게 만들 구만.”

 꾸깃꾸깃해진 종이처럼 구겨진 표정의 중년은 낭패한 기색으로 거들먹거렸다.

 더는 관련되기 꺼린 한지예가 알아서 자리를 피했다. 광장에는 사람이 붐비는 탓이리라. 각종 특유의 사람이 가득하니 그녀에게 해를 입히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아무쪼록 신변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조용하고 한적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그녀의 발길이 막혀버렸다.

 “어이쿠. 어딜 가려고.”

 중년이 다시 손목을 붙잡은 탓이다. 하지만 한지예는 당황하지 않았다. 망설이지 않고 목을 크게 빼고 외쳤다.

 “여기 치한이에요!”

 

 7화

 

 한지예의 비명이 무수한 시선을 한곳으로 집중시켰다. 중년은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뭐어?! 치한? 무, 무슨 소리야!”

 분노가 치밀어 오르자 손아귀에 힘에 힘을 가해졌다.

 “으윽…….”

 가느다란 팔목이 찌부러질 듯 그녀는 고통을 신음하였다.

 “그만 손 좀 놔주실래요. 치한한테 만져진다니 기분이 나쁘네요,”

 “이 계집이 자꾸만 치한이라고……! 증거 있어?!”

 치한의 얼굴이 험상궂게 변했다. 자신을 변태라고 칭해지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방면 한지예는 승기를 잡은 마냥 경멸의 시선을 보내며 입꼬리가 살짝 들어 올렸다.

 주민들이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위로 받아야 하는 존재는 그녀이며 벌을 받아야 하는 존재는 치한 쪽이다. 아무리 사건의 전말을 모르는 한낮 나그네라도 한지예의 편을 들어줄 것이 뻔했다.

 만약 한지예가 가해자라 해도 상황은 변함없이 흐를 것이다. 젊은 여자가 나이 든 중년에게 사로잡힌 상황만 보아도 가해자 역할은 중년에게로 쏠릴 것이다.

 이쯤이면 반응이 올 것으로 확신하고 주위를 보았다. 적어도 두세 명도 충분하다. 소수의 인원이 시발점이 되어 소심한 방청객도 용기를 얻는 법이다.

 ‘어라…….’

 이변은 없었다.

 그녀를 위해 나서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다. 하나같이 서로 눈치만 살피기 바빴다. 그저 주민들은 웅성거리며 안타까움을 표하기만 했다. 평소처럼 거리를 활보하며 상황만 흘끔거렸다. 서커스의 원숭이처럼 구경거리가 돼버렸다.

 ‘어째서…….’

 서글플 눈동자로 도움을 구하지만 하나같이 눈이 마주치면 황급히 얼굴을 돌려버리거나 자리를 피해버렸다. 졸지에 혼자가 돼버린 한지예의 마음속에서 아까의 수치심보다는 배신감이 굳게 자리 잡았다. 주민의 무관심 속에 덩그러니 버려진 한지예는 끝내 절망하였다.

 “어이. 학생.”

 중년의 노여움. 한지예는 굳어버린 얼굴을 살며시 우측으로 돌렸다.

 “이년이 미쳤나!”

 짜악! 살과 살이 맞닿는 경쾌한 마찰음.

 시끌벅적한 광장에 총성이 울리는 듯한 괴음에 시민의 발걸음을 하나둘씩 멈춘다. 치한은 그녀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무슨 태도가 그따위야!!! 가정교육 못 받았어?!”

 한지예는 뺨을 어루만졌다. 뜨거운 감촉이 얼얼하게 쓰렸다. 입속에서는 피 맛이 느껴졌다.

 갑작스러운 폭력이 더해져도 주민들의 행동은 여김 없이 손발이 묶여버린 상태였다. 혀를 차는 소리와 웅성거림이 오히려 그녀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수치라면 이 정도의 수치는 없다.

 주민들은 사건의 전말을 몰랐다. 그렇기에 선 듯 다가갈 수는 없다.

 혹여나.

 그들도 두려웠다.

 혹시 말려들지는 않을까 봐. 나까지 피해보지 않을까 봐. 엄한 사람을 탓해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닐까 봐.

 자칫 잘못해서 지옥에 빠지지 않을까 봐.

 마지막 남은 기회만큼은 신중하게 선택할 필요가 분명하다. 비록 누군가의 위기라도 자신의 안전이 우선이리라. 모두에게 각인된 심판의 두려움은 이랬다.

 “이년이고 그년이고, 한번 만진 것 가지고 개지랄이네, 네 몸에 상처라도 줬냐고!”

 억울함 섞인 치한의 노성이 광장을 울렸다. 치한은 한지예의 묵언이 괘씸하게 여겼는지 머리채를 끌어 잡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처절하게 넘어트렸다.

 “으윽……!”

 한지예는 한 올씩 머리카락이 뜯기는 고통을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원망 섞인 눈빛으로 치한을 노려보았다. 치한의 인상이 극심하게 구겨졌다.

 다시 한 번 손바닥이 하늘 위로 높게 올라갔다.

 짜악!

 “눈 안 깔아!!”

 쩌렁쩌렁한 고함소리가 고막을 꿰뚫는다.

 “건방진 계집……!”

 치한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당장에라도 짓밟고 싶은 욕구가 강렬했다. 쓰러진 그녀 위에 올라타 모두가 보는 눈앞에서 처참하게 모욕해버리고 싶었다.

 그 순간. 치한이 한지예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한다. 이목 구미와 머릿결, 목과 어깨가 이어진 핏줄부터 쇄골의 냄새까지. 혀를 날름거리며 침을 꼴깍 삼켰다.

 “하아. 생긴 건 존나 예쁜데.”

 치한은 혀를 쯧쯧 찼다.

 숨결이 차다. 한지예는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애써 참았다. 울어버리면 마음에 커다란 상처가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치한의 눈이 번뜩 떠졌다. 계략을 궁리한 듯 교묘한 미소를 띠었다. 불쑥 얼굴을 내밀고 한지예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하루 동안 놀아주면 용서해줄게.”

 떨림이 멈췄다.

 한지예가 더는 고민하기를 관두었다. 치한을 향해 증오가 섞인 눈으로 노려보았다. 벌레 보는듯한, 아니 그 이하의 쓰레기를 보는듯한. 경멸과 멸시가 뒤섞인 눈빛이 치한의 몸을 관통했다. 그리고 속삭였다.

 “지옥에나 떨어져.”

 그 이상, 아무 말을 나오지 않았다. 그저 하늘이 운명하는 대로.

 치한의 얼굴이 섬뜩하게 굳어버린다. 머리채를 잡은 손, 그리고 나머지 한 손이 그녀의 얼굴을 향했다.

 한지예는 온몸의 힘을 풀었다. 앞으로의 대책 따위 떠오르지 않는다. 무관심이 그녀의 침착함마저 짓밟아버렸다.

 그녀는 힘이 없다. 이 불행을 빠져나갈 힘이 있었다면 자살을 택하지 않았겠지. 그렇기에 무능력하다. 무능하기에 주위의 도움이 절실하다. 하지만 한지예는 버려졌다.

 지그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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