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바리새끼가 어디서 참견이야!”
다짜고짜 주먹을 날리는 치한. 방면 김지용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의 속셈이 뻔히 보였던 탓이었다. 침착하게 공격을 막아냈다. 예언이라도 한 걸까. 팔만 움직여 치한의 주먹을 잡아채버린 것이다.
“커헉?!”
치한은 당혹한 기색이 가득했다. 기회를 엿본 회심의 일격이 단순하게 잡혀버리다니 예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낑낑거리며 주먹을 빼내려고 했지만 김지용은 얌전히 손아귀에서 놓아줄 생각은 없다.
이윽고 비겁한 속임수에 복수하듯, 단순히 손아귀의 악력으로 치한의 주먹을 쥐어짰다.
“끄아아악! 아파! 아프다고!!”
치한이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김지용은 보이는 그대로 군인다운 사내였다. 사람을 죽이더라도 한시의 변함없는 무자비한 얼굴. 살해를 저질러본 인간의 모습이었다.
치한은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김지용의 살벌한 눈빛에서 핏빛이 돌았다. 피를 흠뻑 적신 눈동자가 공포를 내뿜었다. 굳어버린 치한은 재빨리 두뇌를 회전시켰다.
“그만해!! 그래……!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니!”
자백에 수긍한 김지용은 곧바로 주먹을 놔주었다. 고통을 호소하던 치한이 반대로 분위기를 바꿔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이, 이봐! 도대체 뭘 잘못했다고 그러는 거야?”
치한의 결백한 주장에 김지용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러면 자네는 어째서 저 아이를 괴롭혔지?”
김지용은 한지예를 가리켰다. 치한은 횡설수설 말했다.
“그건 말이지. 복잡한 이유가 있어. 분명 설명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할 거야…….”
“거짓말하지 마. 변태 자식!”
양 뺨으로 붉게 살짝 부기가 오른 한지예가 치한의 수작을 훼방 놓았다.
“아, 아니! 저년이! 어른들이 말씀하시는데 어딜!”
치한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장에라도 한지예를 패대기치고 싶었지만 간신히 감정을 억누르고 차분한 어투로 달래듯이 말했다.
“어쨌든, 우리끼리 알아서 해결할 테니 당신은 가던 길이나 가.”
치한이 장승같이 서 있는 김지용을 억지로 등을 떠밀어 재촉했다. 하지만 김지용의 몸은 거대한 바위마냥 밀려가지 않았다.
한지예를 발견한 김지용은 내버려두어서는 안 될, 가녀린 소녀가 떠올렸다. 한지예가 그 소녀와 마찬가지이다. 의지할 상대가 필요한 것이리라.
“미안하지만, 결판을 내고 끝내야지.”
“잠깐만…….”
“이왕이면 더 이상 마주치지 말도록 합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네만.”
“아니, 아니. 멈춰봐. 어째서 저년을 도와주는 거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목소리로 김지용의 행동에 특이점을 물었다. 한편 김지용은 자신의 행동이 어떠한 모순이 생겼나 고민하였다. 있을 리 없는 김지용이 대답했다.
“저 아이가 나보고 구해달라는 눈빛을 보내서 말이지.”
“뭐어?”
너무나도 가식적인 말로 들리던 치한이 황당함이 가득한 얼굴에서 똥까지 씹은 표정을 더했다.
“이봐, 그냥 무시하고 가면 되잖아? 거봐. 저 인간들도 다 모르는 척하잖아?”
치한이 주민들을 가리켰다. 주민들은 황금이 시선을 피한다.
“그래도 말이야. 모른척하면 사람으로서의 무언가가 잃은 느낌이라네, 내가 좀 그래. 이해해주시게나.”
“정―말! 할 짓이 없구나?”
“할 짓이 없지는 않아.”
치한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의 기준으로 김지용의 발언들은 하나같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뿐이었다.
저승과 인간들의 대해 치한은 거대한 모순을 품어왔다.
왜 죽어서까지 선의를 베푸는가?
어차피 죽어버린 목숨이다. 살아생전 얽매이던 인간의 욕망을 이곳에서 풀 수 있다. 게다가 이승의 법도 금전적인 문제도 저승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의 몸이며 족쇄에서 벗어난 영혼이다.
“이봐, 죽어서까지 그러고 싶어?”
분노에 가득한 치한이 이를 악물고 나무라듯 물었다.
“무슨 의미지.”
말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김지용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꼭 이렇게까지 힘들게 살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봐 우리는 이미 죽어버렸잖아. 여태껏 발목을 붙잡은 이승의 것들이 사라졌단 말이야. 게다가 넌 젊다고, 일찍 죽은 게 서럽지도 않아? 그래, 본능에 몸을 맡기는 것도 좋은 생각이야.”
간교한 치한이 김지용을 꼬드겼다. 거짓된 입술과 뱀의 혀에서 감지용의 욕구를 자극하기 위한 입놀림은 멈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헛된 짓임을 깨닫는 순간은 잠시 후의 일이다.
김지용은 뿌리내린 나무같이 쉽게 심지가 꺾이지 않는다. 오만한 위선자라 들통 나버린 치한의 입술은 온통 거짓과 꼬드김이리라. 귀담아들을 필요조차 없는 방자한 언어뿐이다.
“나를 속이려 드는 구나. 헛소리는 그쯤에서 그만둬.”
“헛소리? 나는 진실을 말하는 것뿐이야. 이곳에서 쓸데없는 인간성으로 오래 못산다고 말해두는 거야.”
김지용은 신경을 곤두세우며 치한을 바라보았다.
“먹고 자는 건 죄가 아니지. 단순히 욕구일 뿐이야.”
치한은 자신의 가슴팍을 쿵쿵 쳤다.
“죽어버린 우리를 얽매이게 할 존재는 없어. 비로소 우리는 자유로워 진 거지. 먹고 싶을 땐 먹고, 자고 싶은 땐 자는 것처럼 속임수도, 폭력도, 강간도, 살인도 우리의 판단으로 이룰 수 있어.”
“자네는 심판이 두렵지 않나.”
“심판?”
단어를 되새기는 치한은 한차례 한숨을 쉬었다. 잠시 있다가 치한이 검은 미소를 번뜩였다.
“그래. 지옥은 무섭지. 귀신들이 바글바글하고 죄인들은 불 속에서 불타고.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쳐.”
치한이 벌벌 떠는 시늉을 냈다.
“하지만 말이야.”
치한이 검은 미소를 번뜩였다.
“방법이 있단 말이지.”
“방법이라니……?”
“그래. 저승에서 유익한 여생을 보내는 방법은 아주 많단 말이야.”
치한이 작게 키득거렸다. 좀처럼 내면을 드려다 볼 수 없는 터라 치한의 꿍꿍이를 파악하지 못하는 김지용으로써는 치한이 무엇을 꾀하는지와 계략을 주모하는지는 본인만이 아는 사실이다.
“자, 주위를 봐.”
치한이 조용한 시민들을 가리켰다. 변함없이 시민들은 조용했다.
무관한 반응이 마음에 쏙 들어버린 치한이 흡족한 미소를 짓고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하지? 저것들도 나름 방법을 익힌 거야. 내가 죄인이면 저놈들도 전부 죄인이지,”
이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무관심이 죄라는 점을 시민들은 뼈저리게 이해하고 있었다. 한지예를 도와주는 행위가 당연한 행동이라 생각했다.
다만, 꼭 내가 나서야 한다는 갈등이 발목을 꽁꽁 묶어버린 것이다.
나서지 못하는 이들에게 대신 나서줄 대변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 앞에 있는 김지용은 너무나도 부족했다. 오로지 인간성을 내세우며 반론해도 인간성을 팔아버린 괴물 앞에서는 한낮 종이칼에 불과했다.
“자네 말이 맞네.”
김지용은 끝내 순응하고 말았다. 더는 말이 통하지 않음을 깨달은 것이다.
“크으~ 이제야 말이 통하네! 그래야 왕따를 당하지 않아요!”
장하기라도 하듯 김지용의 등을 토닥였다. 자식의 깨달음을 칭찬하는 부모처럼.
하지만 김지용은 치한의 손길을 뿌리쳤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서 노는 법이지.”
바로 마음에 꽂히는 직설에 밝아졌던 치한의 얼굴이 얼마 가지 못하고 또다시 험악하게 굳어졌다.
“뭐, 뭐라고오?!”
자신이 농락당함을 깨닫고 흥분한다. 꽉 쥐어진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고 핏빛이 가득했던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저년이나! 이놈이나! 나를 무시하고 말이야!”
우레 같은 고함소리가 광장을 울렸다. 성을 참지 못한 치한은 부득부득 이를 갈았다. 김지용은 한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분노해봤자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네. 그만 포기하고 이곳을 떠나게나.”
치한은 김지용을 노려보았다. 각오를 다진 듯한 그의 눈동자가 불꽃처럼 일렁였다. 원한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불씨에 불을 집힌 것 마냥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복수심과 원한이 최고조에 이른 것이리라.
“너희는 이제 큰일이 일어난 거야. 후회해도 늦었다고.”
말이 끝나자마자 치한이 심상치 않은 음흉한 미소를 띠었다. 김지용이 치한의 악한 미소를 수상히 여겼다. 혹시나 하는 의심과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주위를 맴돌았다.
이변이 일어났다.
김지용의 불안함이 적중하고 만 것이다.
“자, 자네 설마!”
치한이 자신의 안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얼굴 중앙을 타격한 탓에 코에서 선형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치한은 아픈 티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기쁨에 흥분한 모습이다.
눈에는 진노가 보였고, 입은 기쁨을 만들었다.
그저 앞으로의 상황에 자신이 이기리라 확신하고 조용히 웃기만 했다. 만취한 취객마냥 몸을 이리저리 비틀더니 중심을 잡지 못했다. 하지만 한낮 취객이 아니길, 한지예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저 모든 행동은 거짓연극임을. 그리고 하나의 안무인 것을.
고통을 숨기고 우리를 향한 저 비웃음은 마지막 작별인사를 고했다.
그리고 치한이…….
쓰러졌다.
“으아악! 아이고 나 죽네! 누가 좀 도와주시오! 여기 사람 죽어요!”
광장 한복판에 드러누운 치안이 온갖 꾀병을 부리며 사방팔공으로 비명을 지른다.
“아이고 사신님, 사신님! 저 죽어요. 죽어!”
코뼈가 부려진 치한은 바닥을 치며 원통하게 울었다. 마치 노크를 하듯이, 누군가의 이곳에 불러내는 모양새이다.
쿠구구구구구…….
그때였다. 땅의 울림이 느껴졌다. 두 다리를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의 떨림은 아니지만 주위를 혼비백산으로 만들기에는 충분하였다. 그리고 뒤이어 관계자들의 주위로 검은 불기둥이 솟구쳤다. 뜨거운 열기 때문에 결국 한지에는 엉덩방아를 찍고 말았다.
“저게 뭐야!”
한지예는 당혹한 나머지 엉덩이의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검은 불기둥은 탐욕스럽기 그지없었다. 땅을 뚫고 하늘을 갈망하는 불길이 마치 섬뜩하게 놀아나는 검은 손길과 같았다.
“골치 아프군. 일이 상당히 꼬여버렸어.”
김지용이 한지예의 팔을 끌어주고 중심을 기대어주었다.
“단단히 마음먹게나! 지옥에 떨어지기 싫다면!”
“지옥이요?!”
모두를 위협하던 검은 불기둥이 서서히 사그라지기 시작하였다.
한지예는 눈동자를 굴려 상황을 관찰하였다. 치한의 이상행동으로 이변 현상이 발생했지만 딱히 달라진 차이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방면 주민들의 시선이 한지예에게로 꽂혔다. 주목받은 이유를 모르는 한지예는 자꾸만 머리를 갸웃거렸다. 앞을 보아도, 옆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달라진 거 없는 광장이다.
“여기! 여기!”
그녀가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순간. 눈앞으로 뽀얀 속살의 가녀린 팔이 이리저리 돌아다닌 것이다. 한지예는 자신의 가슴 언저리에서 무언가가 방방 뛰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은 탓이었다. 한지예가 고개를 숙였다.
“사신! 등장!”
가슴언저리정도에 검고 조그마한 체구.
대략 추정하길 10살 미만, 인간의 두개골을 가공한 해골가면과 온몸을 두른 검은 로브. 정형적인 사신의 모습을 반영한 존재가 아기자기한 손가락으로 V를 표했다.
“사…… 사신……?”
한지예가 멍한 얼굴로 꼬마 사신을 바라보았다.
딱히 의심할 점은 없다. 분명 눈앞의 존재는 사신이 틀림없으니. 하지만 너무나 작고 왜소하다. 저승을 대표하는 두려움의 존재가 속 알맹이는 꼬맹이라니…….
“아이고, 사신님!”
코뼈가 아물었지만 출혈이 멈추지 않아 피를 뚝뚝 흘리는 치한이 넙죽 몸을 숙여 겸손을 표했다.
“저 사내가 저를 죽이려 들어 사옵니다. 부디 처벌을!”
치한은 자해한 코를 강조하며 김지용을 지목하였다.
“부상. 매우 심각.”
꼬마사신은 치한의 상처를 보더니 안쓰러운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그러고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아기자기한 장난감의 형태의 모형 낫을 꺼냈다.
“변환!”
낫을 하늘로 치켜세우자. 빛을 받은 모형 낫은 기괴하게 보일 정도로 거대한 크기로 변화했다.
“오케이! 심판!”
“오오오!”
꼬마사신은 상당한 무게를 지닐 것 같은 낫을 번쩍 들고는 사형선고를 내렸다.
사신이라는 존재들에게 허용되는 무기가 위풍당당한 모습을 자랑하였다. 동시에 쇠붙이는 단숨에 사람이라도 쪼갤 것 같이 날카로웠으며 섬뜩한 해골가면의 안광은 붉은빛을 띠었다.
“자, 잠시만요!”
한지예는 팔을 번쩍 들었다. 사신의 등장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상황은 꼬일 대로 꼬여버렸다. 치한이 피해자 흉내를 낸 것이 원흉이리라. 심지어 저 순진한 사신은 그대로 알아들은 것이 더욱 큰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니 오해를 풀어야 한다. 당장에라도 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진실을 규명해야만 한다.
이상, 재판관이 말한다.
“묵비권! 행사 가능!”
타협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