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아아아악!!!
심연의 대기자들의 비명과 단죄의 소리가 지옥 9계층을 채워갔다.
만계의 계곡 쥬데카에서 동결된 죄인들을 옮기는 집행관들의 움직임이 바쁘다. 정사각형 얼음에 갇혀 녹이고 얼리고를 반복하는 형벌을 선고받은 죄인들은 박제(剝製)되어버린 모습으로 쥬데카의 빙벽에 차곡차곡 정리되었다.
밖으로 꺼내진 죄인들이 얼음 체 몸이 산산이 깨져버린다, 떨어져 나간 신체는 죽은 자의 법칙대로 살과 뼈가 다시 아물지만 야속한 집행관들의 손으로 부서지기를 반복한다. 쥬데카의 하루는 얼음 깨부수는 소리로 한창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가장 부정한 영’이 건설한 ‘지옥의 만마전’은 옛 모습의 찬란한 금은보화로 치장되어 호화찬란한 모습은 사라지고 현재의 만마전은 허름하게 무너져 고작 옛터만을 간직할 뿐이다.
건설자와 그의 잔당들이 검은 구름을 뿜는 화산에서 캐낸 황금들은 만마전의 외벽을 덮으며 영원한 찬란함을 유지하였으나 왕의 등장과 마의 몰락으로 지옥의 열기마저 이기지 못하고 녹아버려 예전의 금맥으로 돌아갔다.
만마전의 주인. 악마들은 황금과 함께 멸종했다. 혁명 이후로 주인 잃은 쓸쓸한 만마전은 사신들의 거주지가 되었다.
“으음…….”
만마전의 거주인. 사신 히미는 알람 소리 같은 산뜻한 죄인들의 비명 덕분에 상쾌한 아침을 맞이한다.
불과 6개월 전, 신생(新生)을 맞이한 히미는 1개월간의 수습과 5개월의 실습기간을 마치고 드디어 초급사신 최하급 5품을 달성하였다.
본래 사신으로 태어난 이들은 짧은 수행기간을 거치고 정식으로 사신의 직책을 맡을 수 가 있다. 하지만 히미는 모종의 이유로 자그마치 6개월간을 지옥 2계층에서 수행을 거쳤다.
히미는 자신이 이러한 부당한 이유를 당해야 하는 지 도통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더욱 수련에 매진할 수 있었고 훈련의 성과는 차츰차츰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사실 6개월이 아니라 1년을 걸렸을 지도 모를 판국이었다.
그리고 오늘, 저승에 첫발을 내딛는 영광스러운 날이다.
“으으…….”
히미는 몸을 일으켜 시원한 기지개를 켰다. 한층 개운해진 히미는 입맛을 다시고 부스스한 머리로 침대에서 일어섰다.
어젯밤은 긴장감은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이럴 줄 예상하고 평소보다 5시간 일찍 잠을 청했지만 죄인을 심판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자니 두근거려 잠이 오질 않았다.
일찍 자야 실수 안 하지.
불면증에 시달리는 히미를 위하여 동료 사신 헬트의 조언과 자장가 덕분에 늦잠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헬트. 헬트. 거기 있어?”
히미가 옆방의 벽을 두드렸다.
돌아오는 것은 묵언이었다.
“아참. 오늘 없지.”
헬트는 아침 일찍 사신본부를 떠났다.
고급사신의 제1품 헬트는 사신의 한정으로 모든 자유를 거머쥘 수 있다. 초급사신처럼 지옥의 죄인으로부터 심판을 대행하거나. 중급사신처럼 영주의 성에 행정을 담당하거나, 살아있는 자의 담당사신이 되어 이승에 들릴 수 있는 것까지 모든 행위가 자유로워진다.
헬트는 중요한 지인을 만나고자 새벽 일찍부터 저승본부를 떠났다.
“음…….”
히미가 난감함에 빠졌다. 대신 씻겨줄 사람이 없는 탓이리라.
신생 직후에 새겨진 트라우마 때문에 자신의 얼굴을 남에게 보여주기 심하게 꺼렸다. 심지어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헬트는 거울을 보지 못하는 히미를 대신하여 부지런히 얼굴을 씻겨주거나 불편함을 덜어주었다.
“그래!”
히미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안 씻으면 됨!”
하루정도 안 씻어봤자 곰팡이라도 끼겠어?
역시 나는 천재인가 보다. 라는 대견한 포즈를 취했다.
배게 옆에 놔둔 사신 가면을 뒤집어쓰고 침대에서 떨어졌다. 옷장을 열어 검은 로브를 꺼내고 팔을 집어넣었다,
옷 입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지지!
마지막 팔까지 소매에 집어넣고 다음으로 머리까지 넣는다. 허벅지 중간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차림이지만 움직이기에 불편함은 없다.
“완벽해!”
아랫배가 유난히 헐렁했다.
“…….”
이거…… 뒤구나.
등껍질의 방향이 틀어진 거북이 같은 히미는 퍼뜩 사신 복장을 벗은 다음 돌려 입었다. 복장을 확인할 필요가 있으므로 거울을 바라보았다.
완벽한 사신의 모습이다. 사신 복장은 새 옷이라 때깔이 고왔다. 어젯밤 다림질을 시도하다가 태워 먹은 탓에 새 옷으로 교환 받고 헬트가 대신 다림질을 해주었다. 이 천방지축 꼬맹이 사신은 다림질에도 소질이 없었다.
히미는 지금의 장면을 마음속에 저장했다.
[혼자서 처음으로 옷 입은 날!]
벽걸이에 걸어둔 낫을 챙기고 히미는 나갈 채비를 끝마친다.
방문을 열자 복도에는 다리 없는 귀신들이 사신들의 식사를 나르며 분주히 움직인다. 혹여나 방해되지 않을까 봐, 히미는 벽에 납작하게 기대고 살금살금 사신본부를 빠져나왔다.
*
사신본부 광장에는 3층 건물 높이만 한 전광판이 존재한다.
형형색색 불빛이 각종 문구를 그리며 다양한 임무와 정보들을 알려준다. 전광판을 에워싼 무수한 사신들의 시선은 빠르게 움직였다.
[사지절단집행. 탐욕의 성. 중급사신 이상]
[영주진압. 분노의 성. 고급사신 이상]
[실종자수색+이단 배척. 폭식의 성. 중급사신 제3품 이상]
[귀왕섬멸대. 검은 땅 전역. 고급사신 제2품 이상]
[……. ……. ……]
[……. ……. ……]
[……. ……. ……]
기타 등등.
전광판의 정보대로 사신들은 하루일과를 정한다. 각자 계급과 기량에 맞는 임무를 선택하고 성과를 달성한다. 죄인을 심판하여 단죄하거나 지옥으로 보내는 것만이 하늘에게서 유일이 허가받은 존재의미였다.
“뭘 고를까나~.”
히미 또한 그런 사신 중 하나이다.
눈을 굴려 자신의 계급에 알맞은 임무를 찾기 바쁘다. 초급사신이 수행할 만한 임무는 극히 적은 편이다. 게다가 히미는 초급사신 중에서 가장 최하위 품목에 속한다. 대부분 같은 직위에 속한 사신들은 지옥의 죄인들을 단죄하는 역할을 맡지만. 솔직히 히미는 자신의 존재를 저승에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냉정하게도 맡을 만한 임무는 없었다. 먼저 다른 사신들이 임무를 가져간 것이 아닐까. 더 일찍 일어날걸 그랬나 보다.
그래도 히미는 사신이다. 무사태평한 지옥에 박혀 죄인들의 신체를 잘라내는 지루한 임무는 참을 수 없다. 비록 직책이 낮아도 웬만한 일은 거뜬히 해결할 수 있는 자신감만큼은 충분하다.
그때였다. 전광판에 새로운 임무가 갱신되었다. 히미는 누구보다 먼저 임무를 발견하였다.
[공공시설 혼란 죄(단죄, 예정). 정욕의 성. 초급사신]
“예정?”
히미가 글귀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곧 사건이 터진다는 의미인가? 그렇다면 위기의 순간 ‘파앗!’ 등장해서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인가?
“오오오!”
히마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하였다. 어쩜 이리 멋있을 수가!
상상 속에 자신의 모습은 임무를 완벽하게 해결한 늠름한 사신이다. 흡사 영웅의 모습이었다.
히미는 “저거!”라고 말하고 임무를 지목하였다. 지목한 임무는 전광판에서 사라지고 한 장의 종이의 모습으로 히미에게 날아왔다.
명부를 받은 히미는 지옥본부를 벗어나 지옥의 문으로 향했다.
오늘 임무를 달성하고 헬트에게 자랑할 것이다. 분명 장하다고 칭찬해주겠지.
발걸음이 실로 가벼웠다.
*
불현듯 등장한 히미를 무섭게 바라보는 한지예가 몇 발자국 뒷걸음질치다가 결국은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져 버렸다. 일부러 겁을 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등장이 너무 요란했나? 아니면 해골가면이 무서운 이유일까.
“저들을 한시라도 심판하여 주시옵소서!”
치한이 재촉했다.
“맡겨만 주시라!”
기대 받는 다는 것에 기분이 좋은 히미가 낫을 더욱 치켜세우며 강함을 증명하였다.
방면에 한지예와 김지용은 잔뜩 긴장했다. 공포의 대상이라 불리는 존재가 눈앞에 있었다. 비록 꼬마의 모습을 가졌다 한들 사신은 사신이다.
죄인에게 자비란 없다!
“오로지 집행!”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야지!
외날의 거대한 낫을 머리 위로 번쩍 들렸다. 햇빛을 받아 거대화해진 쇠붙이에서 음산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착각으로 똘똘 뭉쳐진 히미가 심판준비를 끝마쳤다.
― 으아아아아아아!
저승의 새하얀 하늘에서 남자의 비명소리가 울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옴짝달싹도 못하는 한지예가 의문에 비명소리를 찾기 위해 연신 주위를 훑었다. 구름만이 두둥실 떠다니는 하늘에는 무엇도 발견되지 않았다.
“어서 죄인들에게 심판을!”
지상에는 사신의 재촉하는 위선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으아아아악!”
“자 빨리!”
“으아아악”
“심판을……!”
“으아으아으아아!”
“……어떤 놈이야!”
훼방꾼의 등장에 짜증이 솟구친 치한.
모두가 그랬다 듯이 사건의 관계자들은 소음의 근원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티끌하나 없어야 할 새하얀 하늘에 검은 존재가 보였다. 처음에는 작은 물체로만 보였는데 잠시 뒤에 자세히 보니 사람의 형체로 보였다,
“설마 이쪽으로 떨어지는 건 아니지?”
위험을 느낀 치한이 뒷걸음쳤다. 자신에게로 떨어질 거라는 불안함에 휩쓸린 것이다. 하지만 그가 다시 확인했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치한의 마지막 앵글에 잡힌 장면은 남자의 얼굴이었다.
쿠웅!
폭탄이 떨어지는 소리와 강렬히 울리는 땅.
대리석으로 곱게 다져진 광장이 금이 가고 거리가 부서져 대리석의 파편들이 온 사방으로 튀겼다. 아래는 돌가루들의 잔해로 자욱하였고 남자가 떨어진 장소는 지반을 내려앉아 움푹 파였다. 마침 치한이 말려들어 땅속 깊숙이 박혔는지 말이 없었다.
―부스럭
크레이터의 중심에서 둘 무더기를 헤집는 소리가 들렸다. 무거워 보이는 돌을 옆으로 밀어내는 사람한 명이 보였다. 남자는 잔해의 연기 속에서 일어섰다.
“아야야 머리야…….”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 대략 1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단정한 갈색 머리카락의 남자였다. 남자는 추락한 후유증이 남아있던지 두통을 호소하고 돌무더기 속에서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
“제기랄. 성문 녀석……. 갑자기 집어 던지고 지랄이야.”
“살아있어?!”
우주에서 떨어진 외계인을 발견한 마냥 한지예가 깜짝 놀란 심정으로 말했다.
“너, 너. 괜찮아?”
“네? 저요?”
남자는 옷에 묻은 돌가루들을 털어내고 다친 곳을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이내 심오한 표정을 짓고는 가벼운 제스처를 사용하였다.
“다 나았는데요?”
심지어 추락으로 생긴 두통마저 사라진 듯 개운한 표정이다.
한지예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치한이 충격을 완화해준 탓이라도 할지라도 상공 수백 미터에서 떨어진 남자는 죽어야 마땅할 충격이었을 것이다. 분명 목숨을 잃었어야 할 터인데.
“과연 불로불사…….”
한지예를 간호해주던 김지용이 작은 목소리로 진실을 규명하였다.
불로불사(不老不死). 즉,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음.
저승에서 어떤 한 수를 써도 죽지 않는 법칙이 존재한다. 이미 죽어버린 육체가 존재하기에 영혼은 죽음에서 해방되고 상처라는 족쇄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죽은 자들의 법칙대로 상처는 금방 아물고 죽음이 있는 육체를 잃은 영혼은 영원히 산다.
“저쪽은 영혼동결인가…….”
하지만 비록 죽지 않는다고 한들 고통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한계점은 다르지만 영혼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의 허용범위는 존재한다. 이를테면 강판 충격을 받은 영혼은 긴 수면을 자게 되는데 영혼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현상을 ‘영혼동결’, 영혼이 흩어지는 상황을 ‘영혼기화’라고 부른다.
긴 시간이 흐르면 원래의 형상으로 돌아오는 법이지만 영혼은 인간의 육체보다 정신집합체에 가까워 영혼이 심각하게 훼손될 경우에는 본래의 형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예를 들어 ‘귀신’이라는 존재도 이에 속했다. 영혼기화가 지속하여 본래의 형상으로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은 귀신이 되고 이를 ‘귀신화’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영혼동결이 지속될 경우.
전생의 육체가 고치처럼 변하는데 이를 ‘사신화’ 혹은 ‘신생’이라 부르며 전생의 기억과 전생의 육체를 잃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런 자들을 ‘사신’이라고 불린다.
번뜩.
섬뜩한 붉은 빛 안광을 뿜은 히미가 낫을 굳세게 잡았다.
사신본부에서 챙겨온 명부가 하늘에 두둥실 떠다녔다. 명부에 적힌 의문의 글귀와 죄인의 사진이 희미한 빛을 발했다.
“트루…… 오베른?”
하늘에서 떨어진 남자는 히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 이름이 자신이라고 확신하는 마냥, 남자는 화들짝 놀란다.
“나 불렸니?”
남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히미는 한 발자국 내디뎠다.
단지 죄인이 늘어난 탓이 아니다. 정욕의 성을 들린 이유. 첫 번째 임무. 비로소 사신이 자신의 목표물을 발견한 것이었다.
“목표! 포착!”
해골가면에서 붉은 안광이 다시금 번뜩 뜨였다.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 히미가 지나간 자리에는 검은 발 도장들이 선명하게 찍혔다. 낫을 찍어 내릴 기세로 드높이 치켜세우니 햇빛에 반사된 쇠붙이가 더욱 거대화하였다.
“죄인 둘! 그리고 공공시설 혼란 범! 집행 계시!”
한지예는 온몸으로 싸늘한 살기가 느껴져서 당장에라도 몸이 두 동강나는 공포에 휩싸였지만 처마 몸을 움직이질 못했다.
히미가 뿜어내는 살기는 절망스럽다. 약간의 자비나 은총 따위 느껴지지 않은 오로지 죽음의 공포와 사신의 위압감이 모두를 압도했다.
그리고 마침내 히미가 낫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