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는 어머니 꿈을 꾸었다. 어머니는 새하얀 비단 속곳을 내게 선물하시고는 그 위에 기다란 금비녀를 올려다주셨다. 누가 봐도 값비싸고 좋은 것이었으나 나는 결단코 그것을 받지 않으려 하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뜻이 완강한 탓에 나는 비녀와 속곳을 받고야 말았다. 곧이어 어머니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하얀 땅 위에 나 혼자 남았는데, 손에 올린 것을 보니 받은 것은 온데간데없고 나는 또다시 빈손이었다. 허망함에 자꾸만 눈물이 났다.
날이 밝자마자 나와 일행은 급히 준비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아침저녁으로 먹은 것은 거의 없고, 갈 길은 먼 고행이 계속되고 있었다. 여종들은 일관성 있게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정말로 양반 노인네의 첩실로 가는 건가 싶어 씁쓸히 웃는데, 갑자기 가마가 멈추어 섰다. 출발한 지 한참 뒤였고, 해가 질 무렵이었다.
“내리시지요.”
가마가 땅에 닿고 천천히 문이 열렸다. 눈앞으로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공기는 차고, 군데군데 눈이 남아있었지만 나름 견딜 만했다.
내가 선 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깊은 산골마을이었다. 어젯밤 나를 다그치던 여인은 손가락으로 길 끝을 가리키며 ‘저 집’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말했다.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조그마한 초가집 한 채가 자리 잡고 있었다.
“혼인은 도련님께서 오시면 정화수 떠놓고 하시지요.”
“예?”
“집에 잘 머물지 않는 분이니 걱정할 일은 별로 없을 겝니다. 들고 온 짐이며 곡식은 저희가 정리해드리지요. 원하신다면 여종아일 하나 두고 갈까요?”
사람들 얼굴을 둘러보았으나 다들 떠나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 뒤를 따랐던 사람들은 빠른 움직임으로 짐을 옮기고 집을 정리했다. 처음 들어가 본 집은 세간살이가 몇 없었고 아주 깔끔했으며, 미약하게 피 냄새가 났다. 그들은 얼추 정리를 끝낸 뒤 서둘러 떠날 채비를 했다. 어느덧 해가 져 산길이 위험할 텐데도 결코 예서 머물겠단 이야기하는 하지 않았다.
“그럼 안녕히 계시지요.”
하직인사를 마지막으로 도망치듯 돌아가는 그들의 모습에 간밤의 꿈이 다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구나 싶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거추장스런 새 옷을 벗고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미 내 보따리를 검사했는지, 따로 챙겨온 헌옷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편히 입을 수 있는 옷을 따로 넣어두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내 손으로 옷가지를 정리하고 옷궤를 닫았다.
그간의 길이 너무 고단했으므로 나는 간단히 씻고 이부자리를 펴 누웠다. 아궁이에 불을 피우지 않아 냉골 같은 방이었지만 다시 일어나기에는 몸이 너무 천근같았다. 내가 이토록 잘 지치는 사람이었다니. 새삼 몰랐던 사실에 웃음이 났다. 웃음은 웃음이었으나 끝에는 꼭 울게 되는 이상한 웃음이었다.
*
며칠이 지났건만 이 집 앞을 지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들어오는 이도 없었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끼니를 때우고 소일거리를 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지아비가 될 위인은 그림자도 비추지 않았다.
그동안 몇 번의 큰바람이 불었고, 한 번은 비가 내렸는데도 집은 여전히 조용했다.
문득 마을의 평안을 위해 처녀를 미물에게 바쳤다던 옛 이야기가 생각났다. 비와 바다의 안녕과 형형색색으로 물들 자신의 논밭을 위해. 반드시 살아있는 처녀를 바쳐야 하고, 다음날 확인하여 그 자리에 남아있으면 직접 손을 써 죽였다는 무시무시한 말도 있었다. 이제는 그것을 모두 믿을 만큼 어린 나이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만 했다. 아비 노름빚에 기녀가 되었다는 이도 드물게 보았으니 내 처지가 그들보다 나을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끼익. 힘겹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몇 발자국 걷는 걸음소리가 들리더니 우뚝 멈추어 섰다. 아마 내 신발을 보고 멈칫한 모양이었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조심스레 문을 열자 역한 피 냄새와 함께 강한 열기가 느껴졌다. 집 앞 마당에는 죽은 지 얼마 안 된 멧돼지 한 마리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그 뒤에는 약간 낯이 익은 모습의 사내가 서 있었다.
“어, 저기…….”
그는 잠시간 무슨 생각을 하더니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비웃음은 아니었는데 묘하게 소름이 돋았다.
“꼴이 참 우습게 됐구나. 인연이 이렇게도 떼었다 붙여지네.”
“예?”
무슨 말인가 생각하려는데 그가 곧바로 말을 붙여왔다. 그의 말투에는 약간의 비아냥거림이 섞여 있었다.
“그 집 사람들이 뭐라 하며 널 여기에 데려다 놓더냐?”
“서출이지만 양반은 양반이라고, 혼례는 도련님 오시면 정화수 떠놓고 치르라고…….”
“혼례?”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 그의 모습에 나는 절망을 느꼈다. 오기 전 느꼈던 불안감이 ‘혹시’가 아니라 ‘역시’가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떨지 않으려고 치맛단을 세게 쥐고선 꼿꼿이 섰다. 조금이라도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언제든 내쳐지고 무시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설사 그렇게 될지언정 더 이상의 우스운 꼴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느 때고 당당함을 잃지 않으려 했다. 때로는 그런 자신이 이해되지 않고 우습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적어도 남에게 험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아양을 떨어 생명을 구걸하고 기회를 노리는 것만큼 한심한 짓은 없다. 그리 생각하고 살기 시작한 것이 벌써 오래 전 일이었다.
“그래서 너는 마음도 맞지 않는 사내와 혼인하려고 이 긴 시간을 기다린 것이냐.”
말문이 턱 막혔다. 무어라 대꾸해줄 말이 없었다. 그는 이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서는 내게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순간 그와 나 사이의 거리가 코가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그는 얼굴에 남아있던 웃음기를 전부 지우고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몸이 빳빳이 굳어 뒷걸음도 치지 못했다. 그의 뜨거운 숨이 내 얼굴에 닿았다.
“좋은 말로 할 때 당장 이 집에서 나가. 올 때 들고 온 것 전부 다 가지고서.”
“나갈 수 없습니다.”
“나가라 하였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나갈 수 없다 하였습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시지요.”
나도 모르게 성이 나 말이 비뚤게 나갔다. 내장을 쏟아낼 듯 몇 번이나 토해가며 당도한 곳이었다. 도착한 후에도 단 한순간조차 마음 편한 적이 없었다. 나는 어금니를 앙다물고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는 기가 찬 듯 허, 하고 밭은 소리를 내며 내게서 눈을 뗐다.
“너도 보통내기는 아니겠구나.”
“칭찬이면 달게 듣지요.”
“만약 내가 너를 끝끝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찌할 셈이냐.”
“설마 저를 저 멧돼지처럼 쳐 죽이실 겁니까?”
순간 그의 날선 눈빛을 보았다. 조금씩 화가 차오르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어차피 맞는 데는 이골이 나 있으니 때린다고 몇 번 맞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 순간,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솥뚜껑만한 그의 손이 내 머리 위로 움직였다.
“그래도 죽는 건 무서운 모양이지? 팔 한 번 올렸다고 움찔거리는 게 말이야.”
“그, 그런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몸이 반응한 모양이었다. 깨닫고 보니 나는 두 팔로 내 머리를 감싸고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그는 아까 높이 들었던 한 쪽 손으로 제 털모자를 벗어 탁상마루에 내던지고, 겉옷고름을 천천히 풀었다. 그러고는 꺼멓게 죽어있는 멧돼지 곁으로 걸어갔다.
“보다시피 나는 양반도 서출도 아니다. 그저 산짐승이나 잡아먹는 사냥꾼이야.”
그가 축 늘어진 멧돼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거칠고 빳빳한 털들을 가르는 손가락들이 무척 단단해보였다.
“아마 한 달도 안 돼 너는 이곳 생활이 지겹다며 뛰쳐나갈 것이다.”
“돌아가는 길을 모르니 돌아갈 데도 없습니다.”
그와 나는 서로 단호했다. 그 역시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그는 이제 나를 회유해 볼 생각으로 화를 누그러뜨리며 조금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잘난 사내도 아니고, 좋은 사내는 더더욱 아니다. 너를 몹시 괴롭게 할 것이야. 매일 울게 만들 수도 있어.”
“견딜 수 있습니다.”
“견뎌서라도 이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자 여전히 매서운 눈빛을 한 그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제가 아까 전에 물었었지요. 저를 그 멧돼지처럼 죽일 거냐고요.”
“그랬지.”
“제가 이곳에서 살지 못하고 그곳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아마 저는 그 멧돼지 꼴이 될 겁니다. 그보다 못할지도 모르지요.”
여기서는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 그곳에 가면 ‘반드시 죽게 돼 있는’ 것이 되고 만다. 억울하고 분통하더라도 일단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돌아간다 한들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오게 될 것이 뻔했다. 그렇게 몇 번의 도망을 꿈꾸며 살다보면 어느 새 나는 나가기를 포기하고 집안 살림에만 골몰하게 될 것이었다. 나에게는 울며 달래줄 친정어머니 대신 있는 힘껏 매질하여 피멍 들게 만들 아버지만 있으므로. 고생스레 돌아가 죽는 것보다야 하루라도 이곳에 더 오래 머물며 사는 것이 나았다.
겁박한 것도 아닌데 그는 굳어 있었다. 내가 한 말이 마음속에 꽤 깊이 박힌 듯했다. 나는 조금씩 걸음을 내딛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이 집에서 쫓겨난들 내가 갈 수 있는 최장거리는 겨우 울타리 밖이었다. 나는 걸음으로써 그의 결단을 종용했다. 그는 잠시간 무슨 생각을 했는지 결연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내 거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코끝을 지나는 피 냄새는 더욱 강해졌다.
“그럼 어디 한 번 견뎌보아라. 네가 내일 아침에 죽어있다 한들 나는 신경 쓰지 않을 테니.”
*
산에는 어둠이 빨리 찾아왔다. 겨울은 나뭇가지 사이로 꽉 차 있어서 어디에 앉거나 누워도 땅이 딱딱하고 차가웠다. 나는 생명 없이 빛바랜 풀숲에 누워 별들이 촘촘히 박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유명한 예인 한 사람이 밤하늘을 베어다가 이불로 쓰겠단 글을 썼다는데, 그 말이 십분 이해가는 밤이었다. 나는 얇디얇은 천 조각 하나 없이 홀로 집 근처 너른 땅에 누워 별구경을 했다.
하늘에 뜬 별들은 한없이 많아도 어지럽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오른손을 뻗어 밤하늘을 더듬어보았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별들의 감촉이 부드러웠다. 그것들을 한 데 모아 온몸에 감쌀 수 있다면……. 그리고 오늘이 이생의 마지막이라면, 내 기억의 끝은 저 밤하늘이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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