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빼고서
관심이라는 건 원하든 원치 않든 오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취사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싫다고 안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좋다고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예전에……내가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었던 것은 얌전하고 조용해서가 아니라 못나서, 별 볼 일이 없어서 그랬던 거였다. 과거의 내 위치를 객관적으로 확인 당하는 순간은 고통 그 자체였다. 사람들이 관심을 주면 줄수록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내가 나란히 표본대 위에 올라 잔인하도록 적나라하게 비교 당했다.
진짜 개 같아.
배수구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물줄기를 보며 자조했다. 사실 제일 개 같은 건 나라는 것도 알고 있다. 남들은 살 빼고 잘만 사는데, 새 인생을 마음껏 누리고 즐기고 사는데. 왜 나만.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살을 뺐는데 더 싫어하게 됐다. 근데 여기서 더 미움 받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계속 음식을 가리고 운동을 한다. 미움 받을 용기는 사랑 받는 사람이나 낼 수 있는 거다.
수건에 한참을 묻었던 얼굴을 들었다. 배가 고팠다. 위장에 뭐라도 넣어야겠다 싶어 욕실을 나섰다. 주방까지 나가는 것도 귀찮다. 언제부턴가 밥 먹는 게 조금도 기대되지 않는다.
“……어?”
방문을 열자마자 코로 훅 끼쳐들어오는 고소한 냄새에 눈이 크게 뜨였다. 갓 구운 빵 냄새, 버터 냄새. 정말이지 오랜만에 맡는 것 같은 그 냄새는 잠잠했던 내 위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옆집에서 토스트라도 해먹는 모양이었다. 곤혹스러움에 미간이 구겨졌다. 이 건물 환풍이 잘 안 되는 건가? 계속 이러면 곤란한데.
딩—동
주린 배를 감싸 안은 채 집안의 창이란 창은 전부 닫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지? 택배인가? 시킨 게 없는데. 엄마가 뭘 보냈나? 짚이는 게 없어 고개를 갸웃대면서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었다. 문앞에는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부스스한 머리, 고양이처럼 치켜올라간 눈, 소년처럼 앳된 인상, 흰 피부, 까만 머리카락. 버터 냄새. 택배 기사나 도시가스 검침원일 거라 생각했던 나는 전혀 예상도 못했던 쪽으로 전개된 상황에 얼을 뺐다.
“안녕.”
토스트가 올려진 접시 두 개를 들고 서 있던 남자가 대뜸 인사를 건네왔다. 나는 여전히 벙 쪄 있는 상태였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일단 내가 만들어 왔는데 앞으로 메뉴는 상의해서 정할 거야.”
남자는 사무적인 말투로 말을 빠르게 이어나가며 내게 들고 있던 접시 중 하나를 들이밀었고 그 당연한 기세에 나는 황당해 할 새도 없이 접시를 받아들었다.
“얘기 들었겠지만 한 번 더 얘기하고 넘어가는 게 낫겠지.”
버터로 구웠는지 노오란 식빵 위에 진한 주황색 치즈와 계란 프라이가 얹혀 있었다. 황금색 노른자가 유혹적으로 넘실댔다.
“아침은 오전 아홉시, 저녁은 오후 여섯시.”
군대 조교가 규칙을 읊듯 무감정한 톤으로 또박또박 말하는 얼굴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았다.
“약속 있는 날은 꼭 전날에 미리 얘기해 주고.”
머리가 안 돌아갔다. 예술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하나도 이해가 안 가는데 상황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눈앞의 남자는 저만 알고 있는 것 같은 소리를 속사포처럼 쏟아내고 있었고 나는 스크린을 보는 관객처럼 그 희멀건 얼굴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질문 있으면 하고.”
할 말을 모두 마쳤는지 남자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입을 딱 다물었다. 그러고는 짝다리를 짚은 채 나를 가만히 주시했다. 내가 할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누구세요?”
*
“네, 여보세요?”
“엄마!”
네 번의 시도 끝에 연결된 전화는 내 머리를 펑 터뜨렸다. 여태까지 전화 피했으면서 저런 태연하고 느긋한 목소리라니.
“아우, 귀청 떨어지겠다, 왜 그래?”
“엄마 이게 대체 뭐야? 뭐? 밥 먹어주기 알바?”
말 그대로다. 아침부터 버터에 구운 고칼로리 토스트 두 그릇을 들고 집에 들이닥친 정체불명의 남자애는 엄마가 고용한 알바생이라고 했다. 그것도 밥 같이 먹어주기 아르바이트. 하루 두 번, 아침 저녁으로.
이게 말이 되냐고!
“아아, 신재 만났구나?”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이게 뭐야!”
“말했으면 네가 순순히 한다고 했겠어? 맨날 굶기나 하고.”
뭐? 신재 만났구나? 진짜 나만 쏙 빼놓고 엄마 멋대로 벌인 일이었구나. 뜬금없이 이웃 사는 사람하고 친하게 지내라고 신신당부 하기에 뭔가 했더니 이거였어? 열이 머리 끝까지 뻗쳐서 소리를 빽 질렀지만 엄마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다다다 쏘아붙였다. 불안이 등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엄마 마이페이스 한 번 발동되기 시작하면 끝인데.
“잔말 말고 신재랑 같이 밥 먹어. 너 걔 그렇게 한가한 애 아니다? 신재 보통 애 아니야. 엄마 친구 아들이야.”
“아, 그렇게 대단한 애가 왜 이런 걸 하냐고.”
“내 말이. 이거 해주는 거 기적 같은 일이야. 내가 호선이 친구라 해주는 거야. 너 아주 영광스러운 줄 알아야 돼.”
호선이 아줌마면 엄마를 비롯한 엄마 친구들이 다 부러워한다던 그 아줌마인데. 그분 아드님이라고? 그래, 진짜 대단한 분 납셨네. 근데 그게 지금 나랑 무슨 상관이야. 누가 같이 밥 먹어 달랬냐고. 그것도 돈까지 줘 가면서!
“영광은 무슨! 나 안 할 거야! 안 해! 싫어!”
“강연수.”
“아니, 무슨 돈을 주면서 같이 밥 먹어 달라고 해? 내가 무슨 왕따야? 히키코모리야? 엄마, 나 밥 같이 먹을 친구 많아.”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집에 와서 밥을 차려주는 것도 아니고 같이 밥 먹어주는 아르바이트라니. 엄마가 남들과 좀 다르고 독특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진짜 너무했다. 기상천외한 것도 정도가 있지.
“차라리 그 돈 나 줘. 옷이나 사 입게.”
“싫으면 집에 내려와서 병원 다니든가.”
엄마가 무슨 말을 해도 추호도 물러날 마음이 없어 이를 갈고 있다가 그 한마디에 말문이 막혀 입을 뻐끔거렸다.
“집에 올래?”
“아, 언제는 복학하라며…….”
엄마의 목소리는 어느새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취약점을 찔린 나는 진땀을 뻘뻘 흘렸다. 말소리가 기어들어갔다.
“병원 제대로 안 다니고 뺑돌거리면서 학교도 안 나가니까 그런 거 아니야, 너네 아빠가.”
“사람이 어떻게 매일 두 끼를 같이 먹어. 약속도 있고, 스터디도 해야 되고—”
“신재랑 스터디 해. 걔 완전 수재야. 어릴 때부터 영재 교육—”
“그건 나도 했었거든요. 아, 몰라. 아무튼 안 해. 이거는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그래요, 그 유명한 호선이 아줌마 아드님인데 오죽하시려고. 말로만 듣던 엄마 친구 아들을 실물로 영접하게 된 건 몹시도 흥미롭고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그래서 안 한다고?”
“몇 번을 말해. 안 해.”
누구랑 같이 시간 맞춰서 밥 먹는 것도 번거로운 마당에 버터에 빵에 치즈에 계란 프라이까지 올린 칼로리 덩어리를 아침 식사라고 가져오는 애하고 밥을 먹으라고? 그것도 하루 두 번을? 농담이지? 죽는 게 낫다.
“그러면 너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건데?”
내가 완강하게 거부하자 몇 번이고 묻고 또 묻던 엄마는 마침내 인내를 그만두고 말의 온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순간 불안이 뒤통수를 찔러왔다.
“햄버거 먹고 토하고, 피자 먹고 토하고—“
“이제 안 그런다고 했잖아!!”
쾅! 집어던진 핸드폰이 문짝에 부딪히면서 난 파열음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덮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래, 저 소리 왜 안 나오나 했다. 어떻게 번번이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쑤실 수가 있지. 나한텐 너무 아프고 수치스러운 기억인데. 이렇게 얼굴에 열이 오르고 눈물이 날 정도로, 끔찍하고 괴로운 기억인데.
다이어트에 성공한 내 앞에 펼쳐진 건 레드카펫인 줄 알았던 내장 융털이었다. 원하는 옷을 하나씩 입을 수 있게 된 나는 본격적인 섭식장애를 겪기 시작했다. 목표 체중에 도달하기 전에도 아슬아슬하게 겪고 있었지만 그래도 병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처음 구토를 시작했던 건 BMI 지수 기준으로 정상 체중에 돌입했던 시점이었다. 남들 보기에 적당하지만 나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몸. 보는 눈에 따라 심심치 않게 흠이 잡히던 몸. 설상가상으로 오랜 다이어트 기간으로 내 눈 또한 왜곡되어 있던 상태였다. 체중계는 내가 정상이라고 했지만 거울은 여전히 내게 손가락질을 했다. 지쳐 있던 정신은 곧 병에 걸렸다.
평소에는 식단 칼 같이 잘 지키다가 참아왔던 식욕이 폭발하는 날에는 눈에 보이는 건 죄다 입에 쓸어넣었다. 서너시간에 걸쳐 음식을 식도에 밀어넣고 두 시간에 걸쳐 변기 속에 그대로 게워냈다. 후두부를 강타하는 식욕 때문에 눈앞이 깜깜해지고 손이 벌벌 떨려도 예전 몸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항상 앞섰다. 몰랐으면 모를까 날씬한 몸으로 사는 삶을 알고도 다시 돌아갈 순 없었다. 지금 당장 먹지 않으면 죽을 것 같고, 다시 살이 찌느니 죽는 게 낫고. 선택권이 없었다. 건강한 돼지보다 식도암에 걸려 마른 환자가 낫다고 생각했다. 진심이었다. 그렇게 사느니 자살하겠다는 소리도 들었던 마당에 못 할 것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