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기쁨을 원껏 누리고도 살이 안 찌다니!
신세계였다. 먹고 싶은 걸 다 먹어도, 몇천 칼로리를 위장에 들이부어도 다음날 잰 체중에 변화가 없었다. 희열 속에서 몸을 떨었다. 지나친 희열은 중독이 된다. 제 살 깎아먹는 짓을 지속했던 것도 그 이유였다. 폭식 후 구토는 어느새 정기적인 습관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그 탓에 휴학하고 집에 내려가서도 그 짓거리를 계속 했다. 꼬리가 길었으니 잡혔다. 엄마 생신에 쌀밥 미역국 잡채 갈비찜 빈대떡에 모자라 케익까지 반 판을 해치우고 삼십분 뒤 화장실에 가서 그대로 게워내다가 딱 걸렸다. 속이 안 좋아서, 체해서 그렇다고 둘러대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 후로도 몇 번을 걸려서 결국 들통나고 말았다. 끊임없는 회유와 협박 끝에 병원에 끌려 갔고 상담에 약까지 처방 받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고칠 의지가 없었던 건 아니다. 턱없이 부족했을 뿐이다. 카드를 빼앗기고 용돈 1원도 사용처를 일일이 보고해야 받을 수 있게 되어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토하는 날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네 시간을 먹고 두 시간을 토하고 나면 몸에 힘이 빠져서 손가락 까딱하기도 힘들었다. 먹고 토하고 양치하고 온종일 누워 있다 보면 하루가 지나갔다.
그 짓도 계속 하다 보니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래서 집에 내려가 있던 반년 동안 죽을동 살동 노력해서 폭식 및 구토 횟수를 줄이긴 했다. 이틀에 한 번을 일주일에 한 번, 이 주에 한 번, 한 달의 한 번까지. 완전히 고치진 못했다. 평생 못 고칠 거 같다.
핸드폰을 던지고도 분을 이기지 못해 한동안 자리에 선 채 숨을 몰아쉬고 있다가 문득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와 서둘러 방을 나갔다. 집에 음식까지 들고 찾아온 걸 그대로 돌려보낼 수가 없어서 일단 들이긴 했는데……아, 골치가 너무 아프다. 엄마가 내 섭식장애를 고칠 작정으로 이런 기상천외한 일을 벌인 거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밀어붙일 거다.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이런 감시역까지 붙일 줄은.
서신재.
어릴 때부터 말로만 전해 들었던 엄마 친구 아들을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못하는 게 없어서 은연중에 항상 비교대상이 되었던 그 애는 성장기 시절 내게 있어 넘어야 하는 산 같은 존재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를 느끼고 포기해 버렸지만. 학창시절 내내 온갖 경시대회와 올림피아드, 토론 대회를 휩쓸고 다니다가 고등학교까지 조기졸업을 해서 또래보다 대학 입학을 훨씬 일찍 했다고 들었는데 그런 애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생각할수록 어리둥절했다. 하기야 애초에 혼자서 아무리 고민해 봐야 답이 나올 리 없는 문제다.
504호는 채광이 좋은 집이었다. 애초에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막 고른 집이라 몰랐는데 정오 즈음이 되면 거실 창문으로 햇볕이 쏟아져 들어와 마루바닥이 반짝반짝하게 빛이 났다. 그래서 밥을 먹을 때면 그게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먹고는 했다. 이사 들어온 날부터 늘 바라보기만 했던 자리.
신재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볕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가운데 치즈와 계란 프라이를 얹은 토스트를 한입 가득 베어물고 첫인상과 다르지 않게 무심한 낯을 빛내면서.
그게 신재와 나의 첫 식사였다.
바삭,
바사삭.
색이 붉은 입술이 토스트를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빵이 바스라지는 소리가 오감을 자극했다. 그 모습을 얼마나 넋 놓고 보고 있었을까. 노른자가 터졌는지 접시 위로 주륵대고 흘러내리는 걸 이맛살을 찌푸리고 보다가 이내 손가락을 쪽, 쪽, 키스하듯 입술로 지분대던 신재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금방 눈을 치켜떴다.
“뭐야, 왜.”
몹시 거슬리는 걸 본 것처럼 띠꺼운 표정을 짓는 그 애를 보며 나는 꽤 오랜 시간을 멀거니 서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한테 전화해서 확인 좀 하고 올게.’
‘그걸 나더러 먹으라고?’
‘같이 먹게 돼도 그건 안 먹어. 나 먹을 거 따로 있어.’
경황이 없었던 아까 신재에게 다다다 쏴붙였던 말들이 뒤늦게 하나둘씩 떠올랐다. 자기 딴에는 그래도 첫날이니까 챙긴다고 챙긴 것 같은데 내가 당황한 나머지, 그리고 원하지 않은 타이밍에 들이밀어진 고칼로리 음식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너무 매몰차게 굴었던 것 같다.
“저기…….”
“얘기는 끝났어?”
“어? 어.”
망설임 끝에 운을 떼자 신재가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얘 말투 진짜 칼 같다. 딱 떨어지게 말하는 게 틈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어서 당황하게 된다.
“사전에 얘기 못 들었나 보네.”
“응. 전혀.”
“어쨌든 오늘부터 시작할 거니까 너 먹을 거 가져와서 여기 앉아.”
무심한 얼굴로 식탁을 검지로 톡톡 두드리면서 말하는 모습이 누가 보면 이집 주인인 줄 알겠다. 어이는 없는데 묘하게 반발심은 들지 않는다. 하도 당연한 듯이 굴어서 그런가.
“……너 알아서 먹다가 가. 엄마한텐 같이 먹었다고 해놓을게.”
“너 먹는 거 다 보고 갈 건데.”
“엄마 부탁 받아서 하는 거지? 억지로 안 해도 돼.”
말하는 도중에 한숨이 나와 손으로 이마를 덮었다. 보나마나 불도저같이 밀어붙였겠지. 엄마 성격상 잘 포장해서 얘기해 놨겠지만 창피함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서신재는 아침에 알람이 두 번 울리면 침대에서 일어난다고 했다. 먹는 거 하나 제대로 조절 못 해서 이러고 있는 꼴이 얼마나 미련해 보일까.
“알겠지만 우리 엄마가 걱정이 좀 많…….”
“아니.”
말허리를 동강내는 단호한 음성에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토스트를 내려 놓은 신재는 자로 잰 듯한 무표정으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느릿하게 깜빡이는 눈꺼풀 속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보며 직감했다. 얘 완전 마이웨이 스타일이구나.
“아.”
이걸 하고 싶어서 한다고? 또라인가? 성격 특이하다고 들었던 것 같긴 한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래…….”
예감이 안 좋다. 저런 성격 감당 안 되는데.
“그럼 내가 알아서 먹을 테니까 본 셈 치고 그냥 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혼자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리 엄마 뜻이라지만 이런 괴상한 걸 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안 하겠다고 하기엔 이미 알바비를 세 달치를 미리 지불한 상태란다. 무슨 돈이 땅 파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아, 모르겠다. 일단 오늘은 아니야, 안 해.
“내가 보이는 데서 알아서 먹어.”
마른세수 끝에 방으로 다시 들어가려는데 강압적인 목소리가 귀를 잡아당겼다. 이상할 만큼 새까만 눈이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밀랍 같은 얼굴이 햇빛 아래서 스산하게 빛났다. 거부감이 뱀처럼 몸을 감싸고 조였다.
“그럼 여기서 먹을 테니까 알아서 보든가.”
안 그래도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던 차에 고운 말이 나갈 리가. 피곤하게 입씨름 할 거 없이 뭐라도 빨리 입에 밀어넣고 내보내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움직였다. 걸음을 한 발자국 옮길 때마다 어색함이 발꿈치에 따라붙었다. 온몸의 관절이 삐걱대는 것 같다.
냉장고에서 락앤락을 꺼냈다. 삶은 계란, 고구마, 방울토마토. 후식으로 바나나. 무심코 등을 돌리던 나는 멈칫했다. 식탁이 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어제 식탁과 의자들을 전부 거실 창가 쪽으로 옮겨 놨던 것을 그제야 떠올렸다. 신재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갈 곳을 잃고 망설이던 나는 하는 수 없이 조리대에 올려놓은 채 서서 먹기 시작했다. 퍽퍽하고 질겅질겅한 식감이 입안에서 섞이지 않고 굴러다녔다. 목이 멨다. 무지방 우유를 한 입 먹어도 여전히. 코에는 고소한 냄새가 계속해서 맴돌고 있었다. 어제는 라면이더니 오늘은 토스트인가. 고구마에서는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집안에는 곧 애매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모스부호처럼 오가는 가운데 오기로 똘똘 뭉친 기괴한 식사는 계속되었다.
신재는 어느새 토스트를 두 개째 먹고 있었다. 노릇노릇하게 구운 토스트와 노란 치즈와 샛노란 노른자가 눈가에 어른어른하게 맺혔다. 목을 타고 침이 꼴딱, 꼴딱 넘어갔다. 어느덧 포크질이 멈추었다.
“왜?”
“어?”
이제 막 오렌지 주스를 삼키던 그 애는 돌연 내게 말을 걸어왔다. 괴상한 걸 보는 듯한 눈길에 나는 그제야 내가 먹던 것도 내려놓고서 신재가 먹는 모습을 감상하듯 보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