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게…….”
당황했다. 사람을 그렇게 대놓고 쳐다본 건 처음이었다. 왜 그랬지. 왜 안 하던 짓을……. 패닉에 빠진 내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버벅대자 신재는 토끼눈을 뜬 채 나를 말없이 빤히 주시하기만 했다. 내 대답을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하얀 접시 위로 반숙 노른자가 점점이 떨어지고 있었다.
“맛있어 보여서…….”
얼떨결에 진심이 튀어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눈을 치뜨는 신재를 보며 망했다는 생각을 했다. 오기 속으로 벌인 신경전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그래도 사실이니 별수 없었다. 살다살다 뭔가를 그렇게 맛있게 먹는 사람은 처음 봤다. 한낱 치즈 한 장에 계란 프라이 하나 올린 빵을 햄버거 피자 먹듯 하던 신재. 다이어트 이후로 늘 굶주려 있는 내게 그 모습은 강렬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하하…….”
동그랗게 뜬 눈이 가늘어지는가 싶더니 신재는 곧 고개를 푹 숙인 채 웃기 시작했다. 찌르면 하얀 피가 나올 것 같던 얼굴이 무방비하게 웃는 모습에 나는 또다시 넋을 빼고 말았다.
……웃으니까 완전 딴 사람 같네.
“너 솔직하네.”
정오의 햇빛 아래 나른하게 늘어진 채 아이처럼 웃던 신재.
“이리 와서 앉아. 왜 거기 서서 그러고 먹어.”
“…….”
“고집 그만 부리고.”
한참동안을 혼자서 큭큭대던 그는 이윽고 웃음을 멈추고는 여전히 뻘쭘하게 서 있는 나를 불렀다. 까닥까닥 손짓을 하는 신재는 장난감을 눈앞에 둔 고양이처럼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
망설임 끝에 먹던 것을 들고 그 애가 있는 식탁으로 다가가 앉았다. 식탁 위로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셔 나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렸다. 눈 앞에 보이는, 음식이 아니라 식량 같은 락앤락 내용물과 추리닝 바지가 부끄러워 무릎을 모았다. 발가락이 오므라들었다. 신재의 손은 주스가 담긴 컵을 감싸고 있었다.
“너 나하고 동갑 맞지?”
눈처럼 새하얀 손과 주스 색의 조합이 묘해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신재가 툭 던지듯 물어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눈이 마주쳐서 얼른 시선을 내렸다. 이상하게 얼굴을 못 보겠다. 낯을 가리는 건 아닌데.
“응. 스물세 살.”
어느 샌가부터 나이를 말하는 게 불편하고 망설여진다. 스물셋. 어딜 가나 선배 노릇, 먹은 노릇 해야 하는데 손에 잡히는 건 하나도 없어서 뒷걸음질치게 만드는, 애매하게 먹은 나이.
“어리네.”
“뭐야.”
내게는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면 할 말을 미리 생각해 두는 습관이 있었다. 빈틈을 만들지 않기 위해 애쓰다 보니 생긴 버릇인데 그게 무색하게 신재가 한마디 할 때마다 머릿속이 자꾸만 하얗게 지워졌다. 초면에 반말하는 것도 안 좋아하고 안 하는데 얘하고는 그러고 보니 말부터 텄다. 원래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마냥 익숙했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얘기 들어왔던 애라 그런가.
“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신재는 대답 대신 웃었다. 결 좋은 머리카락이 창가로 들어오는 바람에 살랑대고 있었다.
“이름이 뭐야?”
나는 사람들의 관심이 싫었다. 원래 내성적이고 쑥스러움을 타는 성격이기도 했지만 살을 뺀 이후로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태도를 바꾼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받고 싶지 않았다. 호의건, 관심이건, 사랑이건. 그 어떤 것이든. 발치에 던져지는 어떤 것도 내가 느낀 환멸과 허무를 달래주지 못했다. 아는 사이, 알던 사이로부터 시작된 거부감은 곧 불특정 다수를 향해 시위를 당겼다.
“강,”
그래서 신재가 이름을 물었을 때도 목이 막혀 쉽게 소리를 내지 못했다. 이름은 알아서 뭐하게요, 쏘아붙이는 게 몇 년 간 입에 익어 있던 차라 더했다.
“강연수.”
내 이름인데도 퍽 낯설었다. 이렇게 순순히 이름을 내놓는 게 얼마 만이더라. 무미건조한 대답에 신재는 한껏 무르익은 사과 같은 얼굴로 웃었다. 잘 웃네. 첫인상이랑은 다르게.
“나는 신재.”
신재가 신재임을 알았던 순간. 정오의 해가 칠흑처럼 까만 머리를 추수를 기다리는 벼색으로 물들이던 그때.
“서신재.”
눈이 다 접히도록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하던 신재. 신재는 내게 앞으로 잘 지내 보자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들인 가구가 없어 휑한 집안을 햇볕만이 그득 채우던 그 한낮. 신재가 이사 온 첫날이었다.
*
……그렇게 해서,
얼결에 식사 메이트가 생겨버린 내 삶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 걸핏하면 건너 뛰던 끼니를 제때 챙겨먹게 되었고 누군가랑 같이 먹다 보니 대충 때우기 보단 되도록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쪽으로 가게 됐다. 생각했던 것보다 긍정적인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 얼떨떨할 정도였다.
“메뉴는 각자 먹고 싶은 거 먹거나……그냥 네가 정하든가.”
신재는 먹을 것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뭐든 잘먹고 가리는 게 없었지만 먹는 걸 딱히 좋아하지도 않았다. 관심 자체가 없어서 좋지도 싫지도 않은, 딱 그 정도.
생활의 중심이 음식과 식욕으로 돌아가는 나로서는 신기할 따름이다.
“넌 아무거나 괜찮아?”
“어. 난 그냥 배만 채우면 돼.”
“…….”
“왜?”
“아냐.”
부러워서, 라는 말은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도로 삼켰다. 뼈와 혈관이 도드라진 신재의 팔이 눈에 들어왔다. 셔츠 사이로 언뜻 보이는 쇄골, 선이 예쁜 목과 어깨. 얄쌍한 턱선. 적당히 마른 몸. 너는 살 같은 거 한 번도 쪄 본 적 없겠지. 부러움과 착잡함이 뱃속에서 뒤엉켰다. 입이 썼다.
“너네 집에서 먹을래, 내 집에서 먹을래.”
“음…….”
솔직한 심정으로는 스터디룸처럼 밥만 먹고 헤어지는 공간이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 다 큰 남자애 혼자 사는 집에 가기도 좀 그렇고, 그렇다고 매번 우리집으로 들이는 것도 영 부담스럽고 불편하고. 근데 현실적으로 그러기 힘드니까.
“번갈아가면서?”
내 대답에 신재의 미간이 미묘하게 찌푸려지는 것이 보였다. 나름 묘안을 낸다고 한 건데…….
“그, 그게 아무래도 공평하지 않을까?”
눈치를 보다가 우물쭈물 덧붙이자 신재는 이맛살을 찌푸린 채 고개를 숙이고는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톤이 낮은 음성이 “귀찮게…….” 하고 작게 중얼거리는 게 들려왔다. 이마에 혈관이 툭 불거지는 게 느껴진다.
“야, 다 들리거든.”
“너네 집에서 먹을 땐 밥만 먹고 나갈 거야.”
짜증 나서 팩 쏘아붙이자 뚱하게 있던 신재가 입을 열었다.
“내 집에서 먹을 땐 네가 나가고 싶을 때 나가면 되고.”
말 툭툭 뱉는 거하며 마이페이스인 거 보면 경우 없이 굴 것 같은데 행동 보면 전혀 아닌 게 의외였다. 외려 챙길 거 더 깍듯하게 챙기고 매너 있게 배려해 주는 모습에 내심 놀라게 된다.
“나가기 싫으면?”
“그럼 계속 있든가.”
“진짜?”
농담삼아 한 말인데 너무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와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심드렁하게 있던 신재가 눈썹을 치키는 걸 보고 아차 싶어 얼른 표정을 가다듬었다. 너무 좋아했나. 애정결핍처럼 보였으면 어떡하지. 괜히 제 발 저린다.
“왜 그렇게까지 해 주는 거야?”
“그것도 조건에 포함되어 있어서.”
뜸들인 끝에 멋쩍게 묻자 칼로 무 자르는 것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머리에서 김 새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엄마 진짜 별 걸 다 하라고 했네.
“섭식장애의 요인에는 외로움과 공허함이 큰 비중을 차지하니까.”
네, 네, 그러시겠지요. 듣기 싫어서 일부러 고개를 돌리고 보란 듯이 귀를 후볐다. 맞는 말인 거 아는데 듣기 싫다. 누군가가 내 강박증을 알고 있다는 게 속을 따끔하게 찔러온다. 불편하고 창피하고, 그렇다.
“어느 쪽이든 소화 다 될 때까지 나랑 같이 있기만 하면 돼.”
“소화 끝날 때까지?”
구체적인 조건 제시에 눈이 번쩍 뜨였다. 아니 사람이 소화 되는데 얼마나 오래 걸리는데 무슨…….
“두 시간이면 충분하겠지.”
“두 시간……?”
“앵무새야?”
틱틱대는 서신재는 안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두 시간? 농담이겠지? 하하, 영혼 없이 웃으며 고개를 돌렸지만 새까맣게 빛나는 눈은 일말의 타협의 여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이번 학기 내내 이 딱 봐도 까탈스럽고 제멋대로인 애, 그것도 남자애하고 하루 장장 네 시간 여를 붙어 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