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무결도왕
작가 : 천성민
작품등록일 : 20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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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화
작성일 : 16-07-13     조회 : 582     추천 : 0     분량 : 6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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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잘 벼려진 호조단참이라니! 좋구나!”

 중년 사내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팽현수의 도는 사내에게 닿지 않았다.

 어느새 허공으로 몸을 띄운 사내가 연속적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파파파팡!

 수십 개나 되는 주먹의 잔영.

 내공이 실려 있지 않음에도 하나하나에 실린 기세가 만만치 않다.

 팽현수는 망설임 없이 바닥을 굴러 그것을 피해 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어느새 착지한 사내는 팽현수의 뒤를 쫓듯 연속적으로 주먹을 날려 왔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팽현수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일격이었다.

 순간 팽현수의 머리를 스치는 한 가지 초식.

 망설일 틈이 없었다. 팽현수는 도를 고쳐 쥐고는 날아드는 사내의 주먹을 향해 길게 뻗었다.

 슈슈슉!

 날아드는 사내의 주먹을 뱀처럼 부드럽게 타고 들어가는 팽현수의 도.

 예상치 못한 날카로운 공격에 사내는 다급히 주먹을 거두며 뒤로 물러났다.

 순간 사내의 얼굴에 놀람이 떠올랐다.

 지금의 일격은 도가 아닌 검에나 어울릴 법한 변초(變招)였던 것이다.

 검 특유의 화려함을 제거한 지극히 실전적인 변초.

 낭인들의 검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런 변초를 도로 펼치는 것을 보고 사내는 의아한 표정으로 팽현수를 바라보았다.

 “네 녀석, 도대체 정체가 뭐냐? 어찌 낭인들이나 법한 검의 변초를 알고 있는 거지?”

 중년 사내의 질문에 팽현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호라, 대답하지 않겠다는 뜻이로구나. 그렇다면 널 제압하고 듣도록 하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사내에게서 엄청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지금의 팽현수로서는, 아니 한창때의 자신이라도 버텨 낼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기세였다.

 절로 어깨가 떨려 왔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무섭지는 않았다. 분명 자신은 사내의 티끌만도 못한 실력을 갖고 있음에도 두렵지 않았다.

 팽현수는 자연스럽게 도를 들어 올렸다.

 “자아, 어디 한번 막아 보거라!”

 사내의 낮은 외침과 동시에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여전히 내공은 실려 있지 않았지만 무시 못 할 속도와 힘이었다.

 슈슉!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날아드는 주먹이 마치 커다란 바윗덩이처럼 보였다. 어디에도 피할 곳은 없었다.

 그렇다면…….

 짧은 순간, 팽현수의 머릿속이 빠르게 기억을 훑었다.

 몇 가지 대처 방법이 떠올랐지만 단련되지 않은 지금의 몸으로는 도저히 실행할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

 ‘젠장, 방법이 없구나.’

 혀를 차며 팽현수는 도를 가로로 들어 앞을 막아섰다. 피할 수 없다면 충격을 최소화하는 수밖에.

 파팡!

 도를 쥔 손에 온 힘을 다한 순간, 중년 사내의 주먹이 닿으며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동시에 팽현수는 몸을 뒤로 튕겨 냈다. 하지만 사내의 강한 힘을 채 반도 풀어내지 못하고 팽현수는 그대로 주욱 뒤로 밀려났다.

 드드드득!

 미끄러져 가는 몸을 멈춰 세울 수 없었다. 두 다리에 잔뜩 힘을 줬지만 팽현수의 몸은 힘없이 뒤로만 밀려갔다.

 “컥!”

 그대로 팽현수는 등 뒤의 커다란 바위에 부딪치며 신음을 토해 냈다. 등을 통해 온몸으로 전해지는 엄청난 통증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는 고통을 참으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땡강!

 하지만 더 이상 도를 쥐고 있을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대로 도를 떨어트리며 팽현수는 털썩 주저앉았다.

 “이, 이런! 너무 세게 쳤나?”

 당황한 중년 사내의 음성을 들으며 팽현수는 그대로 의식의 끈을 놓아 버렸다.

 

 “으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팽현수는 나직한 신음을 뱉어 내며 힘겹게 눈을 떴다.

 “이제 좀 정신이 드느냐, 꼬마야?”

 중년 사내의 목소리에 팽현수는 화들짝 놀라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큭!”

 순간 전신에 전해지는 격통에 팽현수는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토해 냈다.

 “이런! 섣불리 움직이지 말거라.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았을 거다.”

 중년 사내가 다급히 팽현수를 부축하며 편한 자세로 눕혀 주었다. 숨을 쉴 때마다 통증이 느껴지긴 했지만 다행히도 뼈가 부러진 곳은 없어 보였다.

 “움직이지 않고 조금 쉬면 될 게다. 내가 너무 흥분해서 힘을 좀 과하게 쓴 것 같구나.”

 맹호처럼 달려들 때와는 달리 순순히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중년 사내의 모습에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졌다.

 “괜찮…… 소.”

 팽현수가 억지로 입을 떼자 중년 사내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동시에 질문이 쏟아졌다.

 “좋다. 어쨌건 내가 이겼으니 승자의 권리로 네게 몇 가지 묻겠다. 오호도를 알고 있는 걸 보니 방계는 아닌 듯한데, 어째서 이런 외진 곳에서 수련을 하고 있는 게냐? 게다가 너처럼 어린 녀석이 어찌 그런 실전적인 변초를 알고 있는 게냐? 혹여 낭인들과 연이 닿았던 게냐?”

 “…….”

 사내의 어느 질문에도 팽현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대답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하나는 가문의 치부를 들추는 것.

 또 다른 하나는 꿈인지 실제인지 알 수 없는 전의 삶에서 오랜 시간 낭인 생활을 하며 얻은 것이었다.

 말해 봤자 믿지 못할 일이었다.

 팽현수에게서 대답이 나오지 않자 중년 사내는 연이어 질문을 던졌다.

 “비밀이라는 거냐? 그럼 네 아비는 누구냐? 혹시 문수(聞輸) 녀석이냐? 아니면 문창(聞昌)인가?”

 팽현수에게는 숙부가 되는 어른들의 이름이 사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의 이름에 팽현수는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가문의 어른들의 이름을 아랫사람 대하듯 친근하게 부르는 자. 자신이 변형시킨 오호도를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무예가 뛰어난 자. 그저 맨손으로 강호를 종횡하며 커다란 무명을 얻은 자.

 절대의 무인 삼십 인을 꼽을 때, 항상 수위에 오르내리는 강자.

 그 이름은…….

 ‘신권 팽문기!’

 

 ***

 

 “와하핫! 진작 말을 하지 그랬느냐! 네가 문협 형님의 아들이라고 말이다.”

 호탕하게 웃으며 중년 사내, 팽문기는 팽현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굵직한 손이 어깨에 닿자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지만 팽현수는 내색하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근데 문협 형님의 아들이 왜 그런 구석진 곳에서 수련을 하는 게냐? 본가에 커다란 연무장이 있지 않던가?”

 “그건…….”

 갑작스런 질문에 팽현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팽문기가 아버지의 동생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가문을 떠난 팽문기에게 가문의 치부를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팽현수가 대답 대신 가만히 고개를 숙이자 사정을 알겠다는 듯 팽문기가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게로구나. 뭐, 문협 형님이 한 일이니 대충 예상은 가지만 말이다. 그런데…… 정말 말해 주지 않을 거냐? 네가 어찌 그런 실전적인 변초를 익히고 있는 건지?”

 “그보다 어째서 숙부께서는 이렇게 사람이 오지 않는 구석진 곳으로 오신 겁니까? 아무리 가문을 떠났다고는 하지만 숙부님 정도라면 아무도 무시하지 못할 터인데…….”

 팽현수는 팽문기의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팽문기는 크게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와하핫! 그게 말이다. 조용히 다녀가라 당부하신 분이 계신다. 뭐, 어차피 네가 날 봤으니 다 소용없게 됐지만. 사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다니는 건 내 성미에 맞지도 않으니. 그런데 정말로 말해 주지 않겠다면 구태여 말 돌릴 것 없다. 내 더 이상 묻지 않으마.”

 “감사합니다, 숙부님.”

 고개를 숙인 팽현수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죽기 전 과거의 생에서 자신은 팽문기와 만나기는커녕 아무런 연도 닿지 않았다.

 그저 팽문기가 강호행을 하며 수많은 강자와 겨루고 승리를 했다는 소문만을 들어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 이렇게 팽문기와 만나게 된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왜 이렇게 상황이 변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이 자신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임을 팽현수는 예감할 수 있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두 사람은 어느새 내원의 입구에 닿았다. 팽현수는 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응? 왜 멈춘 게냐?”

 “저는 여기까집니다. 아버지의 명이 없이 들어갈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그럼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팽현수의 어깨를 팽문기가 꽉 잡았다. 걸음을 뗄 수 없을 정도의 강한 힘이었다.

 “네 집에 네가 가겠다는데, 무슨 허락이 필요하단 말이냐. 어서 가자꾸나. 이렇게 온 김에 문협 형님께 인사나 드려야겠구나.”

 강한 힘으로 자신을 이끄는 팽문기의 힘에 팽현수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의 손에 질질 끌려갈 뿐이었다.

 “누가 감히 대팽가에 함부로 침입하려는가!”

 순간 버럭 외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팽가 내원의 경계를 맡고 있는 친족들이었다.

 얼핏 보기에 거지처럼 보이는 팽문기의 행색에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던 두 사람은 곧 그의 뒤에 있는 팽현수의 모습을 발견했다.

 “현수? 네가 이런 시간에 어쩐 일이더냐?”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고 질문을 던진 이는 팽현수의 사촌, 팽현도(彭弦燾)였다.

 팽현수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는 앞으로 나섰다.

 “숙부님을 본가로 모시기 위해 들렀을 뿐입니다, 현도 형님.”

 “숙부? 누가 숙부라는 거냐? 설마 네 옆에 있는 저 거지를 말하는 건 아닐 테지?”

 노골적으로 팽현수를 무시하는 어투.

 저도 모르게 팽문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팽현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맞습니다, 형님. 이분이 저희 숙부가 되시는 신권 팽문기 대협이십니다.”

 “뭐라, 신권? 하! 이젠 하다못해 머리까지 이상해진 거냐? 그 거지가 신권이라고?”

 무시가 아닌 경멸을 담은 팽현도의 말에 팽문기는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우우웅!

 작은 진동과 함께 폭발할 듯 엄청난 기세가 터져 나왔다.

 “큭!”

 압도적인 위압감에 팽현도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토해 내며 무릎을 꿇었다.

 가문의 어른들, 어느 누구에게서도 느끼지 못한 압도적인 존재감.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무언가 전신을 짓누르는 듯 몸을 일으켜 세울 수조차 없었다.

 “아직도 내가 누군지 의심스러운가? 건방진 놈 같으니…….”

 “몰라뵈었습니다, 신권 숙부님!”

 적당히 눈치를 보고 있던 다른 한 사람, 팽현일(彭弦溢)이 무릎을 꿇었다. 그제야 팽문기는 팽현도를 짓누르던 기운을 거둬들였다.

 “쿠, 쿨럭! 쿨럭!”

 기침을 토해 내며 팽현도는 간신히 호흡을 골랐다. 팽문기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그럼 이제 들어가 봐도 되겠지?”

 “무, 물론입니다.”

 팽문기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씨익 미소를 지으며 내원의 문을 활짝 열었다.

 거리낌 없이 걸음을 옮기던 팽문기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자 팽현도와 팽현일 두 사람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아참! 문협 형님은 지금 어디 계시냐?”

 “가, 가주께서는 연무장에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팽현일의 대답을 들은 팽문기는 눈 깜빡할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문득 팽현수를 함부로 내원에 들이지 말라는 가주의 명이 팽현일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바탕 치도곤을 당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팽현일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압! 핫!”

 커다란 기합성이 연무장으로부터 터져 나왔다. 조금은 앳되어 보이는 소년이 커다란 도를 맹렬히 휘두르고 있었다.

 올해로 열다섯이 되는, 팽문협의 둘째 아들 팽현성.

 오호도를 익히기 시작한 지 고작 오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의 도에 실린 기세는 만만치 않았다.

 후우웅!

 도를 휘두를 때마다 허공을 가르는 파공성이 들려왔다.

 팽현성이 이대로 성장해 준다면 누구도 무시 못 할 정도의 실력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후기지수(後起之秀).

 그리고 앞으로의 가문을 이끌어 갈 기재.

 팽현성의 앞날을 생각하며 팽문협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만하면 되었다. 잠시 쉬자꾸나, 성아.”

 “아닙니다, 아버지. 아직도 많이 모자랄 뿐입니다. 아무리 해도 초식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습니다. 좀 더 다듬어야 합니다.”

 “어허, 무리한 수련은 몸을 망칠 뿐이다. 벌써 두 시진이나 쉬지 않고 그러지 않았더냐. 이제는 좀 쉬려무나.”

 “알겠습니다, 아버지.”

 팽현성은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이마를 적신 땀을 닦아 냈다.

 그런 아들의 모습에 팽문협은 그저 흐뭇할 뿐이었다.

 자신을 뛰어넘는 무재. 팽현성이 성장한 후 만들어 갈 가문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때였다.

 연무장의 입구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하하핫! 문협 형님, 그동안 무고하셨습니까? 소제 문기가 왔습니다!”

 팽문협이 고개를 돌리자 연무장으로 들어오는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앞장서서 걸어 들어오는 완전한 거지 차림의 중년 사내. 그는 바로 이십여 년 전 가문을 뛰쳐나간 자신의 동생, 팽문기였다.

 순간 팽문협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문기? 네놈이 여긴 어쩐 일이더냐?”

 자신을 뛰어넘는 엄청난 무공의 소유자. 원래대로였다면 가문의 부흥을 위해 가주가 되어야 했던 팽문기였다.

 하지만 그는 도를 버리고 주먹 하나로 혈혈단신 가문을 뛰쳐나가 버렸다.

 당연히 팽문협이 그를 환대할 리가 없다.

 거기다 팽문기의 뒤에서 머뭇거리는 팽현수는 더욱 못마땅했다.

 “하핫! 오랜만에 보는 동생에게 너무 매정하십니다그려.”

 “이미 가문을 떠난 네가 함부로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본가가 만만해 보였더냐? 그리고 현수, 넌 내가 부르기 전에는 내원으로 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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