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무결도왕
작가 : 천성민
작품등록일 : 2016.7.13
  첫회보기 작품더보기
 
제 7 화
작성일 : 16-07-13     조회 : 607     추천 : 0     분량 : 6104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실로 군더더기 없는 실용적인 움직임.

 팽문기는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고작 열여덟에 불과한 아이였다. 그것도 지닌바 무공이 약하다 하여 가문에 버림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하지만 달랐다.

 비록 내공이 약하기는 했지만 팽현수의 움직임은 흡사 수많은 실전을 거친 낭인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팽문기는 흘깃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팽현수의 눈동자를 보았다.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무심함.

 저 나이대의 아이가 가질 수 있는 눈빛이 아니었다. 더욱이 가문이라는 틀에 갇혀 살아온 팽현수에게는 더욱 무리였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니, 오히려 팽현수에 대한 흥미가 더욱 짙어졌다.

 “하지만…… 아직 모자라!”

 미소와 함께 팽문기는 주먹을 내질렀다.

 파파팡!

 도무지 피할 수 없는 공격에 팽현수가 바닥을 굴렀다. 금세 벌떡 몸을 일으킨 팽현수가 맨주먹으로 달려들었다.

 퍽!

 가볍게 막긴 했지만 주먹이 제법 묵직하다. 그새 또 다른 주먹이 팽문기의 사각을 타고 흘러들었다.

 터엉!

 분명 주먹을 휘두른 것은 팽현수.

 하지만 충격을 받은 것도 팽현수였다.

 허공에 뜬 몸의 균형을 간신히 잡은 팽현수를 노리고 팽문기의 날카로운 일격이 날아들었다.

 “아쉽지만 이걸로 끝내자꾸나!”

 팽현수의 한계를 느낀 팽문기의 목소리.

 순간 팽현수의 주먹이 활짝 펴졌다.

 후드득!

 펼쳐진 손에서 떨어진 흙먼지가 팽문기의 눈가를 어지럽혔다. 팽문기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감았다.

 팽문기가 고개를 돌린 짧은 순간, 팽현수는 허공을 한 바퀴 돌아 착지했다. 그리고 전신의 기운을 끌어 올려 팽문기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팽현수는 그대로 쓰러졌다.

 

 “제법이로구나. 나에게서 제대로 된 공격을 성공시킬 줄이야.”

 짐짓 감탄한 듯 중얼거리는 팽문기의 목소리를 들으며 팽현수는 몸을 일으켰다. 잠시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숙부?”

 “뭐야?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게냐?”

 팽현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긴 했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팽현수는 무슨 소릴 하느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팽문기를 바라보았다.

 “아무튼 신기한 놈이라니까. 네가 날린 마지막 일격에 내가 어찌 된 줄 알기는 하느냐?”

 피식 웃으며 팽문기는 옷깃이 너덜해진 자신의 왼쪽 가슴을 가리켰다. 살짝 붉게 부은 주먹의 흔적이 있었다.

 팽현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제가 한 것입니까……?”

 “그럼 내가 스스로 낸 자국이겠느냐? 제법 묵직한 공격이었다. 이 신권이 새파랗게 어린 녀석에게 일격을 허용하다니, 거참!”

 투덜대는 듯했지만 팽문기의 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팽현수와의 비무가 만족스러웠던 것 같았다.

 가만히 팽문기의 눈치를 살피던 팽현수는 한쪽 구석에 내려놓은 봇짐을 짊어졌다.

 “숙부께서 만족하신 것 같으니 다행입니다. 그럼 전 먼저 가 보겠습니다.”

 “뭔 소리냐? 날 따라오기로 한 거 아니었더냐?”

 “그런 적 없습니다만…….”

 “그러지 말고 따라와라. 안 그럼 지금 있었던 일을 문협 형님께 사실대로 고해 버릴 테다!”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으름장을 놓는 팽문기.

 하지만 그냥 흘려들을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이 본 팽문기라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알려졌다간 자신만 곤란한 일. 이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절로 흘러나오는 한숨을 느끼며 팽현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알겠…… 습니다.”

 

 ***

 

 반 강제로 팽문기의 뒤를 따르기 시작한 지 벌써 보름의 시간이 흘렀다.

 팽현수로서는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팽문기가 장로회와 팽문협에게 자신을 데려가겠다고 선언한 이상, 어딜 가든 사아란은 자신의 뒤에 팽문기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간신히 다시 얻은 기회를 허무하게 끝낼 수는 없는 일.

 팽문기라는 방패를 이용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이용해야만 했다.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기를 때까지는.

 “헉, 헉!”

 팽현수는 참았던 숨을 토해 냈다. 길이 없는 거친 산속을 거침없이 달리는 팽문기의 뒤를 쫓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쌓인 몸의 피로를 풀 시간조차 없었다.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저만치 멀어진 팽문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팽현수는 파르르 떨리는 두 다리에 힘을 줬다.

 이제 한계라고 떨리는 육신이 소리쳤지만 팽현수는 한 걸음 한 걸음 힘차게 내딛었다.

 하지만 얼마지 않아 다시 걸음을 멈췄다. 이미 팽문기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된 지 오래.

 눈에 띌 정도로 떨려 오는 다리는 더 이상 팽현수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지.’

 팽현수는 이를 악물었다. 이 정도의 고통도 이겨 내지 못해서는 앞으로 아무것도 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으, 으아아아!”

 절로 터져 나오는 기합성.

 떨리는 다리가 쇳덩이처럼 무거웠다.

 온 힘을 다해 억지로 들어 올린 다리가 바닥에 닿은 순간, 찌르르한 충격과 함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한 걸음을 옮기는 시간이 수천 년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다시 한 걸음 내딛자 심장의 떨림이 더욱 강해졌다.

 두근두근!

 그리고 동시에 가슴속에 맺혀 있던 무언가가 커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팽현수는 동상이라도 된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드드드드!

 점점 커져 가는 무언가는 어느새 거센 파도처럼 팽현수의 전신을 강타해 갔다.

 혈맥을 타고 마구잡이로 흐르는 거센 기운에 팽현수의 전신이 타오르듯 뜨거웠다.

 엄청난 통증이었다.

 전신을 북처럼 두드리는 것처럼 아려 왔다.

 그리고 녹아내릴 것만 같은 강렬한 열기.

 혈맥을 타고 흐르는 거대한 기운에 팽현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크아아아!”

 영혼이 찢어지는 듯 엄청난 비명을 토해 내며 팽현수는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몸을 감춘 채, 팽문기는 팽현수를 바라보았다.

 이미 체력이 한계에 달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걸음을 옮기는 모습에 팽문기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역시 보통 놈이 아니야.”

 그때였다.

 팽현수가 걸음을 멈췄다. 아니, 멈춘 것이 아니라 멈춰진 것처럼 보였다.

 무언가의 이변을 감지한 팽문기는 안력을 돋웠다.

 “크아아아!”

 엄청난 비명이었다.

 팽현수가 있는 곳과는 거리가 있음에도 심장이 떨릴 정도로 엄청난 비명이 들려왔다.

 곧 팽현수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붉게 달아오른 팽현수의 몸이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듯 허연 김을 뿌려 대고 있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팽문기는 당황했다.

 “대, 대체 무슨 일이……?”

 의문을 떠올리며 팽문기는 몸을 날렸다. 고통에 찬 표정으로 그 자리에 쓰러지는 팽현수의 얼굴이 크게 확대되어 눈에 들어왔다.

 “이런……!”

 팽문기는 혀를 차며 다급히 손을 뻗었다.

 쓰러지는 팽현수의 몸에 손이 닿은 순간, 팽문기는 저도 모르게 움찔하며 그대로 손을 빼냈다.

 화상을 입을 정도로 화끈한 화기(火氣)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팽현수의 몸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팽문기는 내공을 끌어 올려 강한 화기에서 자신의 몸을 보호했다.

 그럼에도 화끈한 열기가 전해졌다.

 이상한 것은 엄청난 열기가 느껴짐에도 주위의 풀이나 나무 따위는 전혀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팽문기는 잠시 고민했다.

 무언가 큰일이 팽현수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괜히 잘못 건드렸다간 더욱 큰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결국 팽문기는 그대로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어느새 한 시진이 흘러 태양이 산봉우리 사이로 모습을 감추려 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팽현수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엄청난 열기는 차츰 가라앉았다.

 하지만 팽현수는 깨어나지 않았다. 전신이 땀에 흠뻑 젖은 채, 축 늘어져 있었다.

 한참을 가만히 팽현수를 살피던 팽문기는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쓰러진 팽현수의 등에 손이 닿자 팽문기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뭐, 뭐야! 이 기운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열기는 가라앉았건만 몸속의 기혈은 미친 듯 날뛰고 있었다.

 ‘설마…… 주화입마(走火入魔)?’

 팽문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통 사람보다 조금 나은 정도로 미약하기 그지없는 내공을 가진 아이가 무슨 주화입마란 말인가.

 하지만 자신이 느낀 기운의 흐름은 분명…….

 팽문기는 더 이상 생각하기를 멈추고 조심스레 팽현수를 들쳐 업었다.

 주화입마이든 아니든 이대로 놔뒀다간 목숨이 위험했다.

 최대한 아무런 방해가 없는 조용한 곳으로 가 날뛰는 기혈을 진정시켜야 했다.

 “조금만…… 조금만 버티거라, 현수야!”

 나직이 중얼거리며 팽문기는 전력을 다해 몸을 날렸다.

 

 뜨겁다…… 뜨거워…….

 불타오르는 지옥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만 같다.

 버틸 수 없는 강대한 기운이 전신을 헤집고 있었다. 전신이 갈가리 찢기는 듯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다.

 신음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통증이다. 통제할 수 없는 엄청난 기운이 전신의 혈맥을 빠른 속도로 맴돌았다.

 이대로 놔두다간 큰일이다.

 하지만 기운의 흐름을 따라잡을 만한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순간 뇌리에 번뜩이는 한 문구.

 

 모든 것은 의념(意念)으로 시작해 의념으로 끝나니, 강한 의념이 모든 것을 다스리리라.

 

 무결진해의 가장 앞에 나오는 문구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날뛰는 강대한 기운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조금씩이지만 기운이 혈맥의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한 바퀴, 두 바퀴.

 혈맥을 돌 때마다 기운은 점점 더 강대해져 갔다. 몸이 터져 나갈 것만 같다.

 하지만 버텨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죽음뿐.

 죽음을 인식하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평온해졌다. 몸의 통증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만 같았다.

 그대로 기운의 흐름에 모든 것을 맡긴다.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은 채 그저 기운의 흐름을 따를 뿐.

 순간 강대하지만 부드러운 기운이 새로이 느껴졌다. 마치 날뛰는 다른 기운들을 이끌 듯 천천히 움직이는 기운이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혈맥을 타고 흐르던 기운은 전신의 세맥에 퍼져 나갔다. 그제야 날뛰던 기운이 진정되는 듯했다.

 

 쌓아라. 그릇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넘치도록 쌓아라.

 쌓은 것이 모래처럼 사라지고 그릇이 깨어질 때, 새로운 그릇이 생기리니.

 그것이 대기(大器)를 이룰 시작이라.

 

 의념 속에서 절로 떠오르는 무결진해의 구절.

 세맥에 퍼진 기운이 갑작스레 폭발할 듯 터져 나왔다. 일제히 기의 바다(氣海)로 달려드는 기운. 작기만 하던 기의 그릇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콰쾅!

 

 다행히도 산속의 버려진 오두막을 발견한 팽문기는 팽현수를 등이 보이도록 눕혔다.

 천천히 호흡을 조절하며 팽문기는 손을 뻗어 팽현수의 명문혈(命門穴)에 댔다.

 여전히 미친 듯 들끓고 있는 기운을 진정시키기 위해 조심스레 진기를 주입했다.

 ‘큭! 반탄력이……!’

 팽현수의 몸이 팽문기의 진기를 받아들이지 않고 강하게 튕겨 냈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둘 수는 없는 일.

 팽문기는 조금씩 명문혈로 주입하는 진기를 늘려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반탄력이 약해지며 팽문기의 진기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제 기운의 흐름을 이끌어야 할 때였다.

 그런데…….

 ‘뭐지? 이 흐름은?’

 이상했다.

 팽문기 자신이 알고 있는 혈맥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억지로 바로잡을 수 없는 움직임.

 팽문기는 진기의 흐름을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군. 심장이 오른쪽에……! 그리고 대맥의 일부가 미묘하게 다른 위치에 있었군. 어쩐지.’

 진기가 일주천하자 팽문기는 몇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제법 뛰어난 초식의 운용에 비해 너무도 미약한 내공.

 그것은 아마도 뒤틀린 혈맥으로 인한 것이리라.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팽문기는 온 신경을 집중해 팽현수만의 혈맥으로 진기를 이끌었다. 이마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얼마지 않아 날뛰던 기운이 가라앉았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팽문기는 팽현수의 명문혈에서 손을 뗐다. 날뛰던 기운이 진정되었으니 이제는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순간.

 드드드!

 팽현수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맨위로맨아래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25 제 25 화 7/19 569 0
24 제 24 화 7/19 604 0
23 제 23 화 7/19 558 0
22 제 22 화 7/19 570 0
21 제 21 화 7/19 554 0
20 제 20 화 7/19 557 0
19 제 19 화 7/19 576 0
18 제 18 화 7/19 573 0
17 제 17 화 7/19 587 0
16 제 16 화 7/19 567 0
15 제 15 화 7/19 577 0
14 제 14 화 7/19 586 0
13 제 13 화 7/19 599 0
12 제 12 화 7/19 619 0
11 제 11 화 7/19 609 0
10 제 10 화 7/13 592 0
9 제 9 화 7/13 601 0
8 제 8 화 7/13 584 0
7 제 7 화 7/13 608 0
6 제 6 화 7/13 614 0
5 제 5 화 7/13 594 0
4 제 4 화 7/13 583 0
3 제 3 화 7/13 563 0
2 제 2 화 7/13 586 0
1 제 1 화 7/13 849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