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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결도왕
작가 : 천성민
작품등록일 : 20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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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화
작성일 : 16-07-13     조회 : 584     추천 : 0     분량 : 6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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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황한 팽문기가 팽현수의 명문혈로 다시 손을 뻗었다.

 엄청난 기운이었다.

 엄청난 기운이 팽현수의 기해혈(氣海穴)을 향해 달려들었다. 멈추려고 해 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팽문기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사지에서 달려드는 강맹한 기운들이 기해혈에서 부딪칠 경우, 팽현수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다. 전신이 산산조각 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콰쾅!

 팽문기의 몸이 움찔할 정도로 엄청난 기운의 폭발.

 팽현수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여…… 여긴 어딥니까, 숙부.”

 맥없는 팽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찌된 일이냐?”

 “저도…… 모르겠습니다.”

 팽현수는 고개를 저었다.

 도무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분명 기력이 다해 쓰러진 것까지는 기억이 났지만 그 이후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제가…… 얼마 만에 일어난 겁니까?”

 “두어 시진쯤 지난 것 같구나. 몸은 좀 괜찮으냐?”

 팽문기의 질문에 팽현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조금 허탈한 느낌이 있긴 했지만 쓰러지기 전보다는 몸이 훨씬 가벼워진 것 같았다.

 이상했다.

 고작 두 시진 정도 만에 이렇게까지 체력이 회복될 수 있었던가. 아니, 회복된 정도가 아니라 이전까지 보다 훨씬 좋아졌다.

 “잠시 내가 살펴봐도 되겠느냐?”

 혼란스러운 표정의 팽현수에게 팽문기가 질문했다. 팽문기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의문을 느낀 것 같았다.

 팽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팽문기는 팽현수의 완맥(腕脈)을 잡고 약간의 내공을 불어 넣었다.

 조금 전 강한 반탄력으로 팽문기의 내공을 밀어내던 것과는 달리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공이 흘러들어 갔다.

 팽문기는 천천히 주입한 내공을 혈맥을 따라 이동시켰다.

 그런데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너무도 빠른 속도로 내공이 움직였다.

 ‘헛! 도대체 이건?’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팽문기는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움직이는 내공에 정신을 집중했다.

 어느새 팽문기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혈맥을 타고 흐르던 팽문기의 내공은 순식간에 임독양맥(任督兩脈)을 뚫고 더욱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내공이 전신의 혈맥을 타고 단전 어름으로 흘러들어 가는 순간, 모든 내공이 순식간에 어디론가 빠른 속도로 흩어지며 사라져 버렸다.

 팽현수의 하단전은 완전히 텅 빈 듯, 한 줌의 내공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무공을 모르는 평범한 사람처럼 내공의 그릇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팽현수의 몸은 전에 없이 튼튼하고 강하게 느껴졌다.

 팽문기는 고개를 갸웃하며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모르겠구나…….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정말 몸은 괜찮은 거냐?”

 “괜찮습니다. 아니, 전보다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흐음…….”

 팽문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껏 전혀 보지 못한 현상이었다. 주입한 내공이 단전 어름에서 완전히 흩어져 버린 데다 정작 단전에서는 어떠한 내공도 느낄 수 없으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팽문기 자신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팽문기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팽현수를 바라보았다.

 그때 팽현수도 내심 굉장히 놀라고 있었다.

 ‘이럴 수가…….’

 팽문기가 주입한 내공이 단전 어름에서 완전히 흩어지는 것을 느낀 팽현수는 경악했다.

 그동안의 수련을 통해 적게나마 쌓여 있던 내공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탓이었다.

 완전히 텅 비어 버린 단전.

 혹시나 하는 생각에 혼원벽력심공을 운용해 보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무공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간신히 형성된 내공의 그릇조차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이상했다. 탈진해서 쓰러질 정도로 지쳐 있던 상태였건만 지금은 전력으로 달릴 수 있을 정도로 몸 상태가 좋았다.

 무언가 이유가 없다면 고작 두 시진 만에 이렇게까지 상태가 회복될 리가 없었다.

 깊이 생각에 잠겨 있던 팽현수의 머릿속에 한 가지가 떠올랐다.

 쓰러지기 직전.

 가슴 언저리에서 커져 가던 강렬한 뜨거움.

 온몸을 태울 듯 커져 가던 그 정체불명의 기운.

 그것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순간 자신의 변한 표정을 눈치챈 것인지 팽문기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무언가 생각난 게 있나 보구나.”

 “확실치는 않지만…….”

 “얘기해 줄 수 있겠느냐?”

 잠시 고민하던 팽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느낀 거대한 기운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은 팽문기가 문득 질문을 던져 왔다. 무언가 짚이는 게 있는 듯 보였다.

 “혹여 문협 형님께서 네게 영약을 복용시키지 않았더냐?”

 “그렇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영약을 먹었습니다. 하나 제 모자람 탓인지 그 효과는 거의 없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팽현수는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네 심장이 오른쪽에 있는 것과 대맥의 일부가 미묘하게 다른 위치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느냐?”

 “심장 때문에 혈도의 좌우가 바뀌어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맥의 일부가 다른 위치에 있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몰랐던 게로구나. 하긴…… 나도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이니……. 혈맥을 읽는 능력이 신의라 불릴 정도로 특출 난 자가 아니라면 아무도 알지 못했을 게다.”

 팽문기의 말에 팽현수는 깨닫는 바가 있었다.

 아무리 심법을 수련해도 자신이 내공을 쌓을 수 없었던 이유.

 그것은 오른쪽의 심장으로 인해 혈도의 좌우가 뒤바뀐 것뿐만 아니라 혈도의 위치마저 조금 달랐기 때문이었다.

 무공을 펼칠 때마다 느껴졌던 가슴의 통증, 좌수도로 바꾸고도 오랫동안 오호도를 펼칠 수 없었던 이유는 모두 그 때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좌수에 맞춰 변형된 오호도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반응해 내공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네 몸의 상태가 극한에 이르자 그동안 복용했던 영약의 기운이 터져 나온 게 아닌가 싶구나. 혈도의 위치가 미세하게 다른 것을 몰랐으니, 영약의 기운이 흡수되지 않았던 게 당연하지. 그것밖에는 설명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구나.”

 팽문기의 말에 문득 팽현수는 과거의 생이 떠올랐다.

 도귀라 불리던 그 시절, 팽현수는 몇 번이나 죽을 고비에 처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알 수 없는 이상한 기운이 솟아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몸속에 남아 있던 영약의 기운으로 인한 것이라면?

 “그럴…… 지도 모르겠군요.”

 팽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이 들지는 않지만 그것밖에 지금의 상태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네 단전은…….”

 팽문기의 조심스러운 질문.

 대답 대신 팽현수는 자신의 몸을 관조(觀照)했다.

 완전히 사라져 버린 내공의 그릇.

 하나 무의식중에 무결진해의 내용을 떠올린 것만 같다.

 넘치도록 쌓인 그릇을 버리고, 깨는 것이 대기의 시작.

 그리고 전신으로 흩어지는 내기.

 ‘설마……?’

 그랬다.

 무결진해의 이룸을 위한 첫 번째 단계.

 일기(一基)를 이룬 팽현수였다.

 

 

 

 四章. 은밀한 위협

 

 

 

 팽현수는 호흡을 고르며 도를 휘둘렀다.

 후웅!

 그저 가볍게 휘둘렀을 뿐임에도 공기를 가르는 파공성이 귓가에 들릴 정도였다. 그 어느 때보다 몸이 가벼웠다.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팽현수는 계속 도를 휘둘렀다.

 오호도의 마지막 초식인 오호패천(五虎覇天)이 팽현수의 손에서 펼쳐질 즈음, 팽현수의 도에는 파르스름한 기운이 맺혔다.

 하지만 이미 무아지경에 빠진 팽현수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손이 움직이는 대로 도를 휘두를 뿐.

 후우우웅!

 어깨가 떨려 올 정도의 파공성과 함께 팽현수는 천천히 도를 내렸다. 어느새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며 도를 갈무리하고 돌아서자 놀란 표정의 팽문기가 눈에 들어왔다.

 “너 어떻게 된 게냐?”

 

 후우웅!

 고막을 자극해 오는 커다란 파공성에 팽문기는 잠에서 깨어났다. 어젯밤 혼절한 팽현수를 깨우기 위해 좀 무리를 한 듯 쉬이 피곤함이 가시지 않았다.

 “으하암! 뭐지?”

 길게 하품을 하며 팽문기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직은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팽문기는 잠이 덜 깬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바로 옆에서 잠이 들었던 팽현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후우웅!

 다시 들려오는 파공성.

 팽문기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닫힌 문을 천천히 열었다. 새벽의 찬 공기가 방 안으로 들어오자 조금은 잠이 깨는 듯했다.

 눈곱이 낀 눈을 비비며 팽문기는 밖으로 나섰다.

 오두막 앞의 작은 공터에서 작은 인영이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팽현수였다.

 처음 자신이 팽현수를 보았을 때처럼 좌수에 도를 들고 오호도를 수련하고 있는 중이었다.

 도를 휘두르는 팽현수의 모습은 무아지경에 빠진 듯했다.

 “제법이로구나, 녀석.”

 기특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팽문기의 눈빛에는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아무리 수련을 한들 팽현수는 내공을 쌓을 수 없었다. 어제의 일로 기의 바다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한 번 깨진 그릇을 다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공을 얻기 위해서 하단전의 그릇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상식. 하단전의 그릇 없이 내공을 쌓는 방법은 신선이 되지 않는 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애석했다.

 내공을 쌓지 못한다는 것은 무인으로서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가문의 아집과 욕심이 아이를 망쳐 놓은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팽문기는 저도 모르게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

 후우우웅!

 엄청난 파공성이 귓가를 울렸다.

 고개를 들자 팽현수의 도에 맺혀 있는 파르스름한 기운이 보였다.

 ‘헛! 도, 도기(刀氣)? 어떻게?’

 팽문기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내공의 그릇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팽현수였다.

 그런데 어떻게 도기를 품을 수 있단 말인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팽현수의 도는 오호도의 마지막 초식인 오호패천을 펼치고 있었다.

 파카칵!

 도가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며 바닥에 닿은 순간, 커다란 소리와 함께 바닥이 움푹 파였다. 그와 동시에 도에 맺힌 도기는 사라져 버렸다.

 “후우…….”

 자신이 무엇을 한 것인지 제대로 인식을 못하고 있는 듯 팽현수는 그저 길게 한숨을 토해 내며 도를 갈무리했다.

 팽문기는 저도 모르게 팽현수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너 어떻게 된 게냐?”

 “무슨 말씀이신지……?”

 팽문기는 말없이 깊이 파인 땅바닥을 가리켰다.

 자신의 도가 만들어 놓은 구덩이를 본 팽현수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제가 한 일입니까?”

 팽문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팽현수를 향해 팽문기는 다시 한 걸음 다가섰다.

 “어찌된 일이란 말이냐? 분명 하단이 사라졌던 것 아니었더냐? 그런데 어찌 도기를……?”

 팽현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무결진해의 일기를 이룬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몰랐던 탓이었다.

 다가온 팽문기는 도를 잡고 있는 팽현수의 왼손을 낚아챘다. 동시에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기운이 팽현수의 혈맥을 타고 들어왔다.

 빠른 속도로 팽현수의 혈맥을 타고 흐르는 팽문기의 내공.

 팽현수는 그것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자신의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확실히 알고 싶었다.

 혈맥을 몇 바퀴 돈 팽문기의 내공은 천천히 그릇이 사라진 단전 어름으로 흘러들어 갔다. 움직임을 멈춘 내공은 천천히 그 크기를 늘려갔다.

 그리고…….

 앗차 하는 순간, 뭉쳐진 내공은 동시에 사지백해(四肢百骸)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얼핏 보기에는 완전히 흩어져 버린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단전을 거쳐 전신으로 뻗어 나간 내공은 아주 자연스럽게 팽현수의 세맥을 타고 흘러갔다.

 어느 한곳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전신의 혈맥에 진기가 흐르고 있었다.

 놀라웠다. 오랜 세월 무공을 익혀 왔음에도 이런 현상은 단 한 번도 본 일이 없었다.

 하단전의 그릇이 사라졌음에도 체내에 내공이 존재하다니.

 팽문기는 놀람을 감추지 못한 채 잡았던 손을 놓았다. 그는 너무도 큰 놀라움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팽현수도 자신의 상태에 놀라고 있었다.

 ‘이것이 일기! 그런 것이었구나.’

 팽현수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팽문기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네 몸 전체가 내공을 담는 그릇이 된 것 같구나. 그러니 하단전이라는 그릇이 필요가 없어진 걸 테지. 하나 이런 식으로 내공을 쌓을 수 있다니, 놀랍구나. 혹여 네가 따로 얻는 기연이라도 있었던 것이냐?”

 대답할 수 없었다.

 팽현수는 굳게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팽문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역시 아무런 말도 해 주지 않는구나. 뭐, 그럴 줄은 알았다만……. 그나저나 이제 어쩔 셈이나?”

 “무얼 말입니까?”

 “그릇을 얻었으니 무공을 익혀야 할 것 아니더냐? 어떠냐, 내 권(拳)을 배워 보는 것이. 어차피 그럴 생각으로 널 데려온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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