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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결도왕
작가 : 천성민
작품등록일 : 20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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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화
작성일 : 16-07-19     조회 : 610     추천 : 0     분량 : 6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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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르겠습니다. 아무런 힘도 없는 절 노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흐음,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 게냐?”

 팽문기는 팽현수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역시나 아무런 감정이 읽히지 않는 무심한 눈빛. 무안해진 팽문기는 뒷머리를 슬쩍 긁었다.

 “뭐, 네가 아니라고 하니 그런 줄 알고 그냥 넘어가겠다만……. 혼자서 너무 무리하진 말거라.”

 말을 마친 팽문기는 오두막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팽현수는 도병을 꽉 움켜쥐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냥 쉽게 당해 주지는 않아.’

 

 사영은 쉽게 오두막 근처로 접근하지 못했다.

 팽문기의 기척을 느끼는 감각이 너무도 뛰어난 탓이다.

 그 결과 백여 장 밖에서 두 사람의 존재를 간신히 확인하는 정도가 지금의 사영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벌써 보름여 전 팽문기에게 당한 어깨가 다 낫지 않은 이상 섣부른 행동은 금물이다. 사영은 붉게 부어오른 어깨를 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살막의 살수들은 도대체 언제 오는 거지? 벌써 보름이나 지났건만.”

 그때였다.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소름에 사영은 저도 모르게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누구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누군가의 미세한 존재감을 느낀 사영이었다.

 팽문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낯설지 않는 느낌.

 사영은 온 신경을 집중해 정체불명의 기척을 더듬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착각이었나?”

 중얼거리며 사영은 어느새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냈다.

 순간 등 뒤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예기.

 사영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헉! 어, 어느새?”

 그대로 굳어진 채 사영은 자신의 그림자 사이에서 길게 뻗어 나온 단도에 시선을 고정했다.

 금방이라도 자신의 목덜미를 꿰뚫을 듯 서슬 퍼런 정광을 뿜어내는 단도.

 꿀꺽!

 긴장감에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어느새 사영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세 개의 인영. 그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크큭! 겨우 이런 정도로 살막 출신이라는 거냐, 사영? 하긴 도중에 포기하고 사가 계집의 개가 되었으니 당연한 건가.”

 그 순간 사영의 그림자에서 단도를 든 또 하나의 인영이 나타났다.

 잠영은신(潛影隱身).

 상대의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는 유령살막 최고의 은신술이었다.

 나타난 인영의 정체를 깨달은 사영이 소리쳤다.

 “무, 무슨 짓이냐? 너희는 의뢰를 완수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나!”

 여전히 사영의 목에 단도를 들이댄 채,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사내가 입을 열었다.

 “이자, 죽일까?”

 쇠를 긁는 듯 거친 목소리. 절로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불쾌한 음성이었다.

 “아니. 생각 같아선 확 죽여 버리고 싶지만 의뢰가 우선이니 그만 놔주라고, 무음살(無音殺).”

 “알았다.”

 사영의 목에서 단검이 사라졌다.

 단 일 푼의 살기조차도 느껴지지 않는 자들. 과연 유령살막의 일급 살수들이었다.

 사영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

 사영의 바로 앞에 있는 살수가 입을 열었다.

 “목표는 어디 있나?”

 

 유령살막의 일급 살수, 암혼살(暗魂殺)은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일급 살수 넷이 파견된 임무치고는 목표물이 너무도 초라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조금 흥미를 돋우는 것은 사영이 말한 신권 팽문기의 존재. 자신이 혼자서 팽문기를 처리한다면 특급 살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의뢰의 완수가 먼저.

 암혼살은 머릿속의 생각을 지우며 자신과 함께 온 일급 살수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같은 조직의 구성원임에도 동료애 따위는 없다.

 살수에게 필요한 것은 목표물을 제거할 수 있는 날카로운 비수뿐. 단지 일시적으로 같은 임무를 맡고 있는 것뿐이다.

 “최대한 빠르게, 손쉽게 의뢰를 완수해야 한다. 생각해 둔 바는 있나?”

 어디서 본 듯 아무런 특징도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얼굴의 소유자, 은형살(隱形殺)의 목소리다.

 “이번 의뢰가 일급 살수 넷이나 필요한 건가? 저 정도라면 나 혼자로도 충분하다.”

 거의 살이 없고 뼈만 남아 마치 시체처럼 보이는 신체를 가진 귀령살(鬼靈殺)의 걸쭉한 목소리. 말은 안 했지만 은형살도, 암혼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신권, 위험하다. 계획, 짜야 한다.”

 무음살의 딱딱 끊어지는 쇳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살수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사영도 동의했다.

 “신권을 쉽게 보다간 큰코다칠 거다. 그는 오십 장이 넘게 떨어져 있던 내 미세한 기척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다.”

 “그거야 사영, 네놈이 어설퍼서 그런 거지. 고작 삼급 살수 정도밖에 안 되는 녀석이……. 그러니 살행이 아닌 정보 수집 같은 뒤치다꺼리나 하는 거겠지만 말이야.”

 사영을 비웃던 암혼살이 무언가 생각난 듯 이어 말했다.

 “아니, 잠깐……. 네놈도 쓸데가 있긴 하겠군. 최소한 신권의 발목 정도는 잡고 늘어질 수 있겠지? 딱 일각만 버텨 보라구, 크크크.”

 사영을 바라보는 암혼살의 눈길이 서늘하기 그지없다.

 

 ***

 

 덜컹!

 조심스럽게 오두막의 문이 열리고 팽현수가 나왔다.

 혹시라도 잠든 팽문기가 깰까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며 밖으로 나온 팽현수는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잠이 확 깰 정도로 차가운 공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가문을 떠난 지 벌써 한 달여.

 지난 한 달 동안 팽현수는 단 하루도 빼지 않고 해가 뜨기 전의 어두운 새벽에 몸을 일으켰다. 약한 몸을 단련하기 위해서였다.

 잠들어 있던 만물이 서서히 잠에서 깨어날 시간.

 팽현수는 기지개를 켜며 길게 하품했다.

 “으하암, 오늘도 시작해 볼까? 후읍!”

 팽현수는 짧게 호흡을 들이쉬며 허리를 활처럼 뒤로 휘게 만들었다. 그리고 호흡을 살짝 내뱉으며 몸을 펴는 탄력을 이용해 튕기듯 앞으로 달려 나갔다.

 순식간에 십여 장이나 전진한 팽현수의 다리는 무영신보의 구결대로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목표지는 오두막에서 팔십여 장 떨어진 작은 냇가.

 넓은 공터가 있어 조용히 심법을 수련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여느 때처럼 팽현수는 냇가의 커다란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결가부좌를 한 채 가만히 두 눈을 감고 천천히 변형된 혼원벽력심공에 따라 진기를 도인했다.

 하지만 채 반 각도 지나기 전에 팽현수는 눈을 떴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평소라면 잠에서 깬 산짐승들이 물을 마시기 위해 냇가로 찾아올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텅 빈 방 안에 혼자 앉아 있는 듯 공허한 느낌.

 너무도 인위적인 느낌이었다.

 팽현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도병을 움켜쥐었다.

 짧게 호흡을 고르며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습관처럼 해 둔 자신만의 표식이 몇 군데 흐트러져 있었다.

 산짐승들은 아니다. 산짐승이라면 분명 자신에게 기척이 느껴졌을 테니.

 분명 누군가 침입해 있다는 증거.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살수다.’

 팽현수는 확신했다. 이렇게까지 기척을 없앨 수 있는 자들이라면 최소한 일급 살수 이상일 것이다.

 문제는 자신의 근처에 숨어 있는 살수가 몇이냐는 것.

 꿀꺽!

 팽현수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긴장으로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이마를 타고 천천히 흘러내린 땀방울이 눈가에 떨어져 팽현수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 순간.

 슈슉!

 등 뒤에서 들려오는 미약한 파공성.

 팽현수는 다급히 앞으로 몸을 날리며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그림자에서 길게 뻗어 나오는 날카로운 단검이 팽현수의 눈을 어지럽혔다.

 ‘여, 역시나!’

 

 팽문기는 문밖을 나서는 작은 인기척에 천천히 눈을 떴다.

 ‘녀석, 오늘도 일찍부터 나서는구나.’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팽현수의 기척이 오두막에서 멀어지는 것이 느껴지자 팽문기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약 한 시진.

 팽현수가 돌아오기 전까지 수련을 위해 몇 가지 준비해 둘 것이 있었다. 밖으로 나선 팽문기는 차가운 새벽 공기에 저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

 “거참, 조카 녀석 하나 때문에 내가 이렇게 일찍 일어나다니.”

 입으로는 불평을 하면서도 팽문기의 표정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때였다. 팽현수가 달려 나간 곳과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미약한 살기가 느껴졌다.

 “그 쥐새끼인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팽문기는 몸을 날렸다.

 자신의 움직임을 눈치 챈 것일까. 팽문기가 느낀 기척이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갔다.

 “이번엔 쉽게 도망가지 못할 거다.”

 팽문기는 짧게 호흡을 토해 내며 땅을 디디는 발에 더욱 힘을 주었다.

 스사사삭!

 극도로 기감을 끌어 올린 팽문기의 귓가에 수풀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두막으로부터 약 삼백여 장 떨어진 곳에서 팽문기는 상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며칠 전 조우했던 복면인이었다.

 “거기까지다! 이제 더 이상 달아날 수는 없을걸.”

 팽문기의 나직한 외침에 앞서 나가던 복면인이 걸음을 멈췄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독분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며칠 전에는 자신에게서 무사히 빠져나갈 정도의 경공의 소유자였던 복면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지금은 왜……?

 ‘설마?!’

 다급히 오두막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복면인이 날카로운 비수를 날려 왔다.

 “어딜 한눈을 팔고 계신가, 신권?”

 반사적으로 비수를 쳐 낸 팽문기는 복면인을 지그시 노려보며 내공이 가득 담긴 주먹을 들어 올렸다.

 “날 유인하기 위해서였나?”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 복면인, 사영은 자신의 반검을 들어 올렸다.

 사영이 팽문기를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살수들이 팽현수를 암살하는 데 드는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퍼퍽!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양팔 사이를 뚫고 날아드는 팽문기의 주먹.

 정확하게 턱을 강타 당한 사영은 그대로 몇 장이나 허공에 떠올랐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쿵!

 밀려오는 엄청난 통증에 사영은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절로 감기려는 눈꺼풀에 억지로 힘을 주자 어느새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달려 나간 팽문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일각은커녕 시간 벌기도 불가능하단 말인가…….’

 

 슈칵!

 동시에 세 방향에서 날아드는 날카로운 검. 도저히 피할 틈이 없어 보였다.

 팽현수는 짧게 호흡을 토해 내며 눈앞으로 날아드는 두 개의 검 사이로 몸을 날렸다.

 아슬아슬하게 팽현수의 뒷머리와 옆구리 사이를 스쳐 지나치는 두 개의 검. 잠깐의 틈을 얻은 팽현수는 빠른 속도로 도를 뽑아냈다.

 ‘살수가 셋. 아니 최소 넷이라고 봐야 하나?’

 자신에게 날아든 검의 숫자는 모두 셋.

 하지만 둘 이상이 살행을 할 때 마지막까지 하나는 은신(隱身)해 임무를 수행하는 살수들의 특성을 생각할 때 최소한 하나 이상은 더 있다고 생각해야 했다.

 “포기해라. 너에게 남은 건 죽음뿐.”

 기분 나쁠 정도로 싸늘한 목소리. 팽현수는 긴장을 풀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모습을 드러낸 살수는 모두 셋.

 ‘일단 나타난 자부터 최선을 다해 쓰러트린다!’

 결정을 내린 팽현수는 가장 호리호리해 보이는 살수에게로 달려들었다.

 파캉!

 전력을 다한 일격을 너무도 쉽게 흘려 내는 살수.

 팽현수는 혀를 차며 연속적으로 도를 내리그었다. 하지만 마치 자신을 농락하듯 가볍게 공격을 피해 냈다.

 연이어 공격을 퍼부었지만 살수는 미꾸라지처럼 팽현수의 공격을 손쉽게 피해 냈다. 이대로 가다간 자신이 먼저 지쳐 쓰러질 것 같았다.

 다급히 뒤로 물러선 팽현수는 전신의 감각을 극도로 끌어 올렸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 정도 몸에 익은 무영신보를 밟아 가기 시작했다.

 꺼지듯 살수들의 눈앞에서 사라지는 팽현수의 신형.

 순간 움찔하며 살수 하나가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채챙!

 순식간에 살수의 뒤를 점한 팽현수. 그리고 그의 도를 막은 살수의 반검.

 자신의 공격이 막히자 또다시 팽현수의 몸은 살수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무영신보를 익히기 시작한 지 보름 정도의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요체를 깨달은 팽현수였기에 살수들의 눈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 반해 부족한 공격력 때문에 살수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목표, 제거한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괴한 쇳소리.

 저도 모르게 움찔한 팽현수는 발바닥을 타고 들어오는 강한 통증에 신음성을 토해 냈다.

 “큿!”

 팽현수의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비수가 발바닥을 뚫고 솟아나왔다.

 팽현수는 그대로 균형을 잃고 바닥을 뒹굴었다.

 그토록 경계하고 있었음에도 단 한순간의 기척조차 느끼지 못한 일격이었다.

 일격을 성공시킨 살수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 이어졌다.

 아니다.

 살수들의 움직임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팽현수의 반응이 느려진 탓이다.

 비틀거리며 팽현수는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시야가 점점 흐려지며 의식이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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