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류.”
“왜?”
“염왕께서 돌아오셨다. 뵈러 가자.”
나는 태사의 말에 놀라서 눈을 똥그랗게 떴다.
“아직 좀 더 남지 않았어요?”
“그렇지. 근데 일이 일찍 끝났나봐.”
하기사 염왕의 집이 여기일 텐데 일이 끝났다면 후딱후딱 귀환하는 것이겠지.
“지금 가자고?”
“그래. 가자.”
태사는 그렇게 나의 손을 잡고 한 걸음 걷는가 싶더니 눈앞이 바뀌었다. 이건 영법술도 아니고 뭣도 아니다. 이 세계만의 이동 방식인 것이다. 우리가 차를 타고 걸어서 움직이듯이.
“도착했다. 대왕을 뵐 것이니 조용히 하도록 해라.”
염왕을 곧 본다는 말에 긴장감으로 입이 말랐다. 긴장을 털기 위해 가볍게 농담을 던졌다.
“순간이동은 진짜 적응 안 돼……”
내가 투덜대듯이 중얼거리자 위에서 근엄한 목소리가 울렸다.
“뭐가 적응이 안 된단 말이더냐?”
“에?”
털썩
“신(臣) 태사(太司), 염왕을 뵙습니다!”
태사가 무릎 꿇으며 외쳤다. 나도 그 기백에 눌려 얼결에 무릎을 꿇었다.
“태사는 일어나라.”
“감읍하옵니다.”
태사가 일어나자 나 역시 태사와 같이 일어났다.
“그래, 네가 영혼회수를 본 아이라고 했느냐?”
“그렇습니다.”
염왕의 얼굴을 직시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놀라는 기색이 느껴졌다.
“허허, 최근 천 년간 이토록 대담한 아이는 처음인 것 같구나.”
염왕의 너털웃음에 그가 있는 대전(大殿)이 웅웅 거렸다.
“영혼회수 장면을 보았다…… 아이야, 이리와 보거라.”
염왕의 말에 나는 그의 앞으로 걸어가려 했지만 무언가가 나를 감싸며 염왕 앞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나의 머리에서 느껴지는 강한 압력.
‘윽!’
코끼리도 한방에 때려죽일 만큼 큰 손이 나의 머리를 짓눌렀다. 하지만 의외로 버틸 만 했다.
“허허…… 거참! 돌아가도 좋다.”
“뭐가 이상한가요?”
아까의 기운이 나를 데려다 놓음과 동시에 나는 질문을 했다.
“참 공교롭게 됐구나. 네가 본 그 시점은 음기가 충만하되 흩어지는 때. 그 때에 영력을 발휘했으니, 그 기운을 음기가 가려주지를 못하였다. 그랬기 때문에 네가 볼 수 있었던 것이고……. 그런데 이미 돌아가기엔 늦었으니…….”
즉, 내가 문제 있어서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건 다행스러운 일인데, 태사가 예전에 불러와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기를 인간은 살아있을 때에 영력을 느끼고 볼 수가 없다고 한다. 간혹 보는 인간이 나오는데, 그 인간은 영혼이 비정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태사는 나를 비정상 영혼이라 취급하고 염왕에게 데려온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우연’이 발생하기에 염왕이 직접 판단해 줘야 한다.
“별 수 없지. 환생을 윤허한다.”
파라라라락!!
염왕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왠 부(簿)가 나왔다.
“어떻게 태어나고 싶으냐?”
“어떻게 태어납니까?”
염왕의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이해가 안됐기 때문이다. 난 보충설명의 필요를 느꼈다.
“제 말은 제가 어른으로 세상에 나게 되느냐, 아이부터 나게 되느냐, 이 말입니다.”
“물론 출생의 과정은 전부 똑같다.”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납니까?”
“그것은 아니지. 또 묻고 싶은 게 있느냐?”
난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렇다면 후한 환제 17년에 태어나게 해주십시오.”
“후한 환제의 시절이라. 흔히 쓰던 서력으로 치면 163년이로구나.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좋다.”
“또 하나, 태어나는 곳도 정할 수 있습니까?”
“아니, 그것은 삼신할미가 정하는 것이기에 정해 줄 수는 없다.”
염왕이 대화를 끝내고 생살부로 추정되는 곳에 적으려는 찰나, 내가 다시 말했다.
“설마 이것이 끝은 아니죠??”
“그럼 뭐가 더 있어야 하느냐?”
“고쳐서 말하죠. 이걸로 끝내지 않으시겠지요?”
나의 말에 염왕의 두 눈에 의문이 떠올랐다. 분명 ‘이걸로 끝이지 더 있느냐?’ 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내가 버린 250년과 다 살지도 못하고 잃어버린 내 인생 때문에라도 더 받아야겠다.
“전 염왕님의 출타로 인해 제가 살던 생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원하지 않는 250년의 기다림을 겪어야 했죠. 염왕께서는 그 시간이 찰나일지도 모르시겠지만, 앞날이 불확실한 저에게는 긴 시간이었습니다.”
“…….”
자, 밑밥은 다 깔았다. 이제 몸통을 만들 차례!
“앞날이 불확실한 가운데 전 염왕……폐하만을 기다렸습니다. 제 영혼이 비정상 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가지고요…….”
‘비정상’이란 부분에서 조금 강하게 발음하며 나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런데 염왕폐하께서 고작 환생만 시켜주시고 판결을 끝내시진 않으시겠지요? 천하의 염왕폐하께서 말입니다.”
난 최대한 염왕을 강조했다. 염왕이라면 그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냐는 나의 무언의 압력이었다.
“크……크하하하하하!!”
염왕이 대전이 부서져라 웃었다. 기쁨이라는 감정은 염왕의 영력을 움직였고, 그에 귀는 찢어질 듯 아팠다. 태사도 아픈 건 마찬가지였는지 술법을 펼쳤다.
‘아, 나도 술법 할 수 있잖아!’
나는 아픔을 참고 수인을 맺었다.
‘술의 술, 인(人) 침평(沈平)!’
주위를 깊은 산속 골짜기, 새벽 토끼가 물 떠먹는 옹달샘 근처보다 조용하게 만들 수 있는 침평이었지만, 염왕의 영력이 얼마나 강한지, 귀의 고통을 조금 감소시키는 것으로 끝낼 수밖에 없었다.
“하하, 하하하!! 삼천 년 만에 날 이렇게 웃기게 만든 놈도 처음이로구나! 좋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한 가지 들어주마. 말해 보아라.”
난 한가지 밖에 안됐지만 빙긋 웃었다. 이것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시도해 봐서 나쁠 건 없겠지.
“염왕폐하께서 약속하신다 했으니 그것은 폐하의 이름을 걸고 지키실 것을 믿겠습니다.”
“물론이다!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보아라.”
나의 미소가 좀 더 진해졌다.
“제 소원은 염왕폐하께서 들어주실 소원을 다섯 개로 늘리는 것입니다.”
순간 염왕의 웃음이 사라졌다. 너무 어이없는 요구라 생각된 걸까. 하지만 나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자, 이제 빌 수 있는 소원이 5개로 늘었군요.”
“좋다. 단 이번 한번만이다.”
염왕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피식 웃으면서 답했다.
“호쾌해서 좋습니다, 폐하. 우선 첫 번째 소원은 저를 패국 초현에 태어나게 해주십시오.”
“좋다. 다음은?”
그 정도는 매우 쉬운지 염왕이 흔쾌하게 허락했다.
“두 번째 소원은 제가 가진 모든 지식을 가지고 태어나게 해 주십시오.”
“모든 기억을?”
나는 모든 기억 이라는 것을 강조했고, 염왕은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흠…… 좋다. 다음은?”
확실히 첫째 것이 어려웠는지 두 번째는 매우 쉽게 답이 나왔다.
“세 번째는 산 육신으로 영법술을 쓰게 해 주십시오.”
“뭐라! 영법술!”
염왕이 놀라서 대꾸했다. 다시금 천둥이 치는 듯 우렁우렁한 소리가 대전을 울렸다.
“태사! 영법술을 가르쳤느냐?”
염왕의 질문에 태사가 한숨을 살짝 내쉬며 답했다.
“예, 염왕이시여.”
“이미 가르쳤다라……. 태사, 그대가 이유 없이 하진 않았을 터. 하지만 인간의 육신으로 영법술을 쓸 수는 없다. 아니 어렵다.”
영법술은 육신의 몸으로 쓸 수 없다. 난 그것을 알지만 요청한 것이다. 영법술이 있다면 군웅할거의 역동기에 한 명의 남자로서 당당히 설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영법술을 이미 배웠다면 내게 허락을 구할 필요도 없다. 너는 언제든 쓸 수 있을 게다.”
어라? 그러면 나는 그냥 소원을 하나 낭비한 셈인가? 계산 밖인데?
내가 당혹스런 표정을 짓자 염왕이 말을 덧붙였다.
“다만 한 가지를 알려주마. 소원에 대한 대가라고 하지. 네가 영법술을 쓸 때마다 네 생명이 깎여 나갈 것이다. 본디 영법술은 육의 몸을 가진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닌 법. 그것을 억지로 끌어 쓰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하지. 네가 받을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다만, 영법술을 쓰려거든 명심하도록 해라.”
생명이라니!! 이런 젠장 할! 있어도 못 쓰는 거랑 차이가 없잖아!
염왕의 말에 나는 다음에 요구할 것이 더욱 간절해졌다.
“그렇다면 네 번째로는 제게 호신무술을 가르쳐 주십시오.”
“푸……푸하하하하!!”
엄청난 염왕의 웃음이 다시금 대전을 울렸다. 만약 고막이 나갈 수 만 있다면 웃음이 터진 숫자만큼 나갔을 것이다.
“크크큭……. 영법술을 요구했을 때, 수명이 대가라는 걸 몰랐겠지? 그럼에도 무술을 요구하다니! 하하, 참 재밌는 놈이로구나! 좋다. 마지막은 뭐냐?”
난 염왕의 물음에 빙긋 웃으며 답했다.
“그것은 제가 다음 번 폐하 앞에 섰을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하하하! 재미는 놈이로세. 가 보아라! 태사, 네가 적당한 무술 하나 가르쳐주도록 하고. 이제 삼신할미에게 가봐야겠군…….”
염왕은 소태 씹은 표정을 지으며 대전을 나섰다.
염왕이 나서자 태사는 날 보며 웃었다.
“영법술을 사용하겠다니. 간도 크구나. 내가 가르친 것은 긴 시간에 무언가 집중할 것을 제공하기 위함이었는데, 일이 이상하게 꼬였어. 하하,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지. 어쨌든 염왕께서 그렇게 웃으시는 것은 처음 본다. 너 덕분에 진귀한 구경했다. 고맙다, 가자.”
태사는 내 손을 잡았고 눈을 깜빡이기 전에 내 앞은 다시 변해있었다. 내가 살아가는 익숙한 나의 집. 이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겠지.
내가 감상에 빠져있을 때 어느새 옷을 변화시킨 태사가 물었다. 참고로 그의 옷은 무인들이 훈련할 때 쓰는 무복이었다.
“얼마나 강한 것을 가르쳐 줄까?”
“적당히 강한 거요.”
“강한 거면 아주 강한 거지, 적당히는 왜?”
“너무 쉽게 이기면 재미없잖아요?”
나의 말에 태사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세상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곳이지. 영법술도 가진 놈이 욕심을 안 부려서 좋구나. 흠……. 그렇다면 여포 정도면 되겠지?”
여포? 삼국지 최강의 무장? 그건 너무 강한데? 내가 그 보다 조금 낮은 수준을 바란다고 말하려 할 때 태사가 내 마음을 헤아린 듯 말했다.
“물론 정공으로는 못 이긴다. 편법을 써도 이길까 말까 하지. 아마 여포가 창칼을 맞은 상태에서 네가 운이 따라준다면…… 글쎄, 이길 수 있을까.”
여포 같은 괴력난신(怪力亂神)급의 무장들은 창칼 맞기를 주사 맞듯 하고 힘을 쓰니 아주 못난 것은 아니었다. 꽤 마음에 드는 조건인 걸? 난 내 마음을 헤아려 답해주는 태사에게 감사했다.
“그 정도면 좋겠군요.”
“자, 시작하자.”
“그러죠.”
그렇게 나의 수련은 시작되었다.
“이제 가는구나.”
“그렇죠.”
“…….”
“…….”
둘 다 말이 없었다. 근 삼백년 가까이 지내오며 정이 많이 붙었기 때문이다.
“이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충고하나 하마. 너 혼자서도 잘 헤쳐 나가겠지만, 세상은 무력으로 끝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것을 잘 기억하길 바란다.”
“예.”
다시금 나와 태사는 말이 없었고 조용한 침묵의 강만이 흐를 따름이었다.
“가자.”
“예. 태사, 근데 질문 하나 해도 되요?”
“뭔데?”
“정말 이름이 태사(太司)에요? 태사는 큰 관리란 뜻이잖아요?”
나의 질문에 태사는 씁쓸하게 웃었다. 난 그것을 보고 직감적으로 괜한 질문했다며 자책했다.
“답하기 곤란하면 안하셔도 되요.”
“아냐. 나에게는 이름이 없다. 아니 없는 중이다, 겠지.”
“예?”
“그 이상은 말해 줄 수 없다. 단지 그것 뿐. 내가 예전에 말한 거 기억하지?”
무슨 말? 나는 태사가 했던 말을 떠오르려 애썼다.
“애쓰지 않아도 돼. 나중에 떠오를 테니까. 그래서 나는 나의 직함인 태사(太司)라고 불리는 거다.”
“예…….”
“녀석……. 가자.”
나의 눈앞이 캄캄해지며 나타난 곳은 대전이었다.
“왔느냐?”
“예, 염왕이시여.”
태사가 절하며 답했다.
“오랜만이다. 그럼 환제 17년이라고 했지?”
“예.”
이제 삼국지의 시대, 영웅호걸들이 무장봉기(武裝蜂起)하고, 군웅할거의 시대가 일어나는 때에 간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주체할 수 없었다.
“알겠다. 그럼 시작하지.”
염왕은 손을 맞잡고 수인(手印)을 그렸다. 빨갛고 파란 선이 염왕의 손을 따라 허공에 그려졌다. 그리고 그려진 인(印)은 이내 하얀 빛을 뿜었다. 눈이 부실만큼 강한 빛.
“……!”
위엄 있는 목소리로 염왕이 무어라 말했다. 하지만 대체 무어라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인에서 터져 나온 빛은 내 전신을 포근하게 감싸 안았고, 그 순간 나는 아까 태사와의 대화를 생각하고 있었다.
‘뭔 말이지……. 아, 혹시!’
내가 고개 돌려 태사를 봤을 때에는 그도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잊지 말라는 듯이.
나는 뭐라고 태사에게 말해주고 싶었으나, 나의 정신은 순식간에 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