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윽…….”
세류는 목이 타는 것을 느꼈다. 목구멍에 불을 가져다 데인 듯 화끈거리고 탔다. 그 뿐인가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질어질한 것이 결코 정상이 아니었다. 세류는 힘겹게 손을 뻗어 주위를 더듬었다.
“무울……. 물…….”
이 한 마디 꺼내기가 왜 이리 힘든 것인지. 목이 타고 갈라지는 것 같았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어지러운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니 운 좋게 그가 누워있던 침상 옆 탁자에는 물병이 놓여 있었다. 세류는 단번에 물병을 비웠다.
“흐아……. 좀 살 것 같다.”
물을 마시니 좀 기운이 돌았다. 세류는 지독한 숙취를 이기기 위해 눈을 감고 천천히 영인술의 호흡을 시작했다. 자연의 기운을 몸에 끌어당겨서 안에 있는 탁기를 감싸 안는다. 그리고 누에가 실 뽑아내듯 밖으로 버린다.
말로는 간단하지만 작업은 지난했다. 영인술의 목적이 애초부터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천의 기운을 가진 영인술은 느릿하지만 확실하게 주독을 배출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방에 지독한 술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후우…….”
제법 두통이 가라앉을 때 쯤 한숨을 내쉰 세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려한 비단금침(緋緞衾枕), 자단목의 탁자와, 그가 마셨던 물병조차 화려한 백문병(白紋甁)이었다.
“여긴 어디?”
처음 보는 광경에 어어, 하는 심정으로 주위를 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어제 기억. 그렇다면 이곳은 조조의 집일 것이다.
“아, 아만형님 댁이구나. 어제 그렇게 퍼마셨지…….”
어제의 술자리가 떠오르자 세류는 몸서리 쳤다. 그런 술자리는 조금 난감했다.
“거의 깡으로 술을 마신 셈이니…….”
안주가 떨어지니 더 내올 생각은 안하고 오로지 술만이 나왔다. 아마 그때 엄청나게 술을 비웠을 것이다.
“으으, 우선 나가자…….”
세류는 비틀거리면서도 용케 쓰러지지 않으면서 나갔다. 밖에 나가니 하후돈이 상의를 벗은 채, 무술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합!”
퍼퍼퍽!
하후돈의 목도가 목인형(木人形)을 무자비하게 팼다.
“핫!”
빡!
수직으로 떨어져 내린 목도가 끝내는 목인형의 모가지를 분지르고 나서야 멈췄다.
“깨어났느냐?”
“예. 참 잔인하게 패시는 군요.”
“너 깨우려고 그랬다.”
하후돈은 옆에 놓인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의 말은 진짜인지 그 옆에는 또 다른 목도가 놓여 있었다.
“한판 하자.”
“좋습니다.”
걸어온 싸움을 피할 세류가 아니었다. 특히 어제 하후돈에게 큰소리 친 것도 있고, 또한 어제 먹인 술에 대한 앙갚음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와라.”
탁!
“적당하군요.”
하후돈이 던져준 목도를 이리저리 휘둘러본 세류가 말했다. 대충 목도의 무게중심을 알아낸 후, 목도를 들어 올렸다.
하후돈은 세류의 자세를 보며 가볍게 경탄했다. 흔들리지 않는 끝. 무언가를 가만히 잡고 흔들리지 않는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탄은 경탄, 비무는 비무. 하후돈은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
“오라!”
“갑니다!”
세류는 득달같이 뛰어들어 하후돈의 명치를 향해 섬전같이 내찔렀다. 하후돈은 미리 예상했는지 목도를 사선방향으로 내리쳤다.
팡!
사선방향으로 내리친 목도로 인해 도극이 흔들린 세류의 목도를 타고 하후돈의 도가 올라왔다. 그대로 있으면 세류의 목이 그대로 강타 당할 위기.
세류는 이를 예상한 듯, 목도는 경쾌하게 찔렀지만 몸을 깊게 들어가진 않았다. 때문에 상반신을 뒤로 튕기며 목도를 피했고, 왼손으로 하후돈의 도를 더 밀며 그의 도를 그어 올렸다.
“헛!”
하후돈이 매우 놀라 뒤로 크게 물러섰다. 기세를 잡은 세류는 그대로 밀고 들어섰다.
“하핫!”
퍽!
“윽!”
“하하 형님, 형님 오른 팔뚝 잘렸습니다!”
“이놈!”
분기탱천한 하후돈이 도를 왼손으로 옮겨 잡으며 덤벼들었다. 오른손으로 공격하는 것은 더 이상 할 수 없다. 실전이라면 진짜 잘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놈!”
세류는 하후돈에게 일격을 먹였다는 생각에 여유롭게 대처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하후돈도 수준에 이른 장수. 결코 만만히 당할 상대가 아니었다. 빈틈을 노리는 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헛!”
세류는 우연히 뒤에 있던 돌에 걸려 중심을 잃어버렸다. 순간적으로 한 번 비틀댄 것인데 하후돈은 그것은 놓치지 않았다.
퍽!
“으윽…….”
한 방 크게 얻어 맞은 세류. 그리고 그의 목덜미 한 가운데에 하후돈의 목도가 겨누고 있었다.
“흐흐, 이놈! 형님을 무시한 벌이다! 하하하!”
승자의 웃음을 지으며 하후돈이 의기양양했다. 세류는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을 밖으로 표출하진 않았다. 운도 어디까지나 실력 일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짝짝짝
“잘 싸웠다!”
하후돈과 세류가 쳐다보니 조조와 하후연이 걸어 나왔다.
“세류, 정말 많이 컸구나! 이젠 원양의 팔까지 자르고!”
‘이길 수도 있었단 말입니다!’ 라는 말은 세류의 속에서만 들리는 돌아오지 않을 메아리였다.
“조금만 더 발전하면 이길 수도 있겠어. 하하, 원양. 너무 방심한 것 아니냐?”
하후돈도 조조의 말에 웃으면서 답했다.
“술 때문에 그랬습니다. 술 때문에요! 다음에 싸우면 확실히 이길 수 있습니다!”
세류는 피식 웃었다. 실전도 아니고 단순한 비무이다. 굳이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익일 수 있었다고 소리친다 한 들 얻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어쨌든. 이번 싸움이 실전이었다면, 넌 이미 장수의 목숨을 잃었다.”
오른팔 잡이의 장수가 우수를 잃는다는 것은 확실히 장수의 생명이 다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쩝…….”
그 말에 하후돈도 아무 말 못했다. 세류는 죽었겠지만, 현재 그의 나이는 지학. 더 발전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것이다. 발전 가능성이라면 그도 만만치 않지만 당장 세류에게 한 방 먹은 게 분명하니 별 달리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더 분발하도록 하고……. 이제 조반(朝飯)을 들자.”
무언가 장엄한 말을 할 줄 알았던 나머지 셋은 그 같은 조조의 말에 피식 거리며 웃었다.
아침밥을 먹은 뒤, 조조는 세류 만을 따로 불러 그와의 독대(獨對)를 청했다.
“왜 부르셨습니까?”
“아류야.”
“예, 형님.”
조조는 세류를 부른 뒤,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말이 나온 것은 근 일각(一刻) 뒤였다.
“넌 이 한실(漢室)을 어찌 보느냐?”
이 질문은 일종의 세류에 대한 조조의 시험이었다. 그의 생각을 알아야 훗날 그가 세류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기에. 세류도 그것을 알고 침을 삼키며 생각을 정리했다.
‘아직까지 형님은 한실에 대한 충정(忠情)이 있을 것이다. 그에 따라 답을 해야겠군.’
조조를 따르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뜻과 정반대로 거스를 필요는 없었다.
“최후의 한 수가 남아있는 패가를 목전에 둔 부호 같습니다.”
“…….”
조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최후의 한 수란 중원본토 곳곳에 있는 한실에 대한 충의지사(忠義志士)를 의미하되, 그것이 늘 항상 뜻대로 되진 않는다. 마치 검과 같아서 양날의 존재. 그 검이 자신을 찌를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즉, 조조는 아직까지 충의지사지만 훗날 그가 한실을 멸망시키는 것과 진배없으니 조조의 뜻과 매우 일치 한다 볼 수 있겠다.
‘아류, 이 아이는 충의 검이 될 것인가, 반의 검이 될 것인가……. 아직까지 그의 뜻을 모르겠구나.’
조조는 한 번 더 세류를 떠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어찌 보느냐?”
해석에 따라 매우 직설적일 수도, 은유적일 수도 있는 질문이었다.
“작고, 큰 바람이 일기 전의 바닷물 같습니다.”
“작고, 큰 바람이 일기 전의 바닷물?”
“예.”
세류는 부연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을 어찌 해석할 지는 전적으로 조조에게 있는 일. 그가 관여할 바가 아니었다.
‘작고, 큰 바람이 일기 전의 바닷물이라……. 평상시에는 잔잔하지만, 풍랑이 일면 그 무엇보다 크게 일어 난다……. 작고, 크다는 것은 무엇인가…….’
작은 바람은 황건적의 난을, 큰 바람은 군웅할거(群雄割據)의 시대를 말함이었다. 하지만 앞날을 알지 못하는 조조에게는 의미심장하기만 했다.
‘그의 앞날을 알기 힘들구나. 지켜보는 수 외엔 없는 건가.’
조조는 세류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다. 아직까진 때가 아닌 듯 하고, 그의 진의를 알기 힘들었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조조도 굳어진 공기를 풀고자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내 질문은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그럼 이제 네 나이도 지학인데 어찌 할 계획 이냐?”
조조의 물음에 세류는 신중히 생각했다.
‘지금은 유비의 나이가 열일곱. 지금은 노식의 휘하에서 공손찬과 교우를 쌓으며 천하의 호걸들과 땅따먹기 할, 이 혼란한 현실을 이리저리 재고 있겠지. 그리고 그 날의 비바람이라 할 수 있는 황건적의 난은 육 년 남았다.’
만일 세류가 누군가를 찾아본다면 우선 유비부터 찾아볼 생각이었다. 누건촉한(淚建蜀漢 - 눈물로 촉한을 세우다)이란 별명을 가진 유비. 말도 많은 인물이고, 궁금한 인물이기도 했다.
연의는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에 빠져 유비를 매우 정통화하고 정의의 사자이자 진정한 정통으로 좋은 측면만 부각하고 있다. 또한 실제 역사에 가까운 진수의 삼국지의 경우 유비를 관후하고 지인, 대사하고 있다 하여 사람 봄이 옳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이릉 전투로 인해 잃은 수많은 군사가 그의 기반을 없앤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인물. 그래서 세류도 직접 유비를 겪고 판단해 보고 싶었다.
“글쎄요……. 때가 되면 언젠가 한 번쯤 세상을 둘러볼 생각입니다.”
세류는 말을 아꼈다. 조조가 인재에 대한 욕심이 얼마나 커다란지 알고 있으니까. 만일 약관이라 하면 그 때 몸소 내려와 자신을 데려가려고 할 사람이었다. 이립이라고 해도 그러하고. 만일 조조가 몸소 그리 나온다면 자신은 거절할 자신이 없었다. 이미 조조란 인물의 그릇을 겪어봤었기에.
“그래? 그 때가 기다려지는구나.”
쪼르륵!
조조는 옆에 준비됐던 술잔과 술병을 가져왔다. 또 빈속에 술을 마셔야 되는 것이다.
“나는 얼마 뒤면 다시 떠난다.”
“어디로 말입니까?”
“글쎄……. 낙양 어딘가 이겠지. 이번에 올라가면 쉽게 못 내려온다. 이게 훗날 너와 내가 다시 만나기 전의 마지막 술이다.”
조조는 그와 세류가 다시 만날 것은 확실시 했다. 세류도 조조가 따라주는 잔을 받아 조심스럽게 마셨다.
“아버지께서 날 다시 올려 보내시겠다니……. 나도 별수가 없다. 가야지.”
확실히 그의 말대로 그는 이번에 올라간 뒤 황건적의 난을 거치고 동탁과 반(反)하며 하나의 군벌(軍閥)이 될 것이다.
“자, 마시자! 우리들의 의(義)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