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류의 무감정하고 무기질적인 눈빛은 시리도록 무서웠다. 하지만 군중과 다수는 사람을 마비시키는 힘이 있다. 초적은 일대 다수라는 압도적인 숫자에 무서움을 극복하고 세류에게 덤비기로 결정했다.
“미친놈! 죽어 버려! 뭐해! 다들 덤비지 않고!”
무리의 대장은 부하들을 선동하며 나섰다. 부하들도 곱상하게 생긴 세류가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는지 순순히 따라 나왔다.
“나를 원망 마라. 하지만 원망하겠지.”
세류는 짧게 한마디를 하고 검을 빼들었다. 그리고 혈화(血花)가 피었다.
사선으로 날아오는 검은 흘려서 피하며 목을 쳐버렸고, 내리 찍는 검은 순간적인 도약으로 몸을 베어버렸다. 협공하는 놈들은 칼 뿐만 아니라 전신을 이용해서 박살 내버렸다.
“어…….”
순식간이었다. 어, 하고 눈 몇 번 깜빡이고 숨 좀 몇 번 들이쉬고 나니 부하 중 멀쩡히 서서 남아있는 자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
세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침묵의 무게는 압도적인 거석이 되어 초적들을 덮쳤다. 초적들은 지금까지 전하던 두려움과 공포를 느껴야 했고, 조금씩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여전히 세류의 눈동자는 시린 날을 보듯 무감각했다. 그가 무감각한 눈으로 초적들을 보는 건 간단한 이유였다. 자신의 손에 덧없이 끊어진 생명, 그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은, 아직은…….
“아아……. 아……”
초적들은 압도적인 공포와 실력 앞에 벌벌 떨었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세류 역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단지 그들에게 작은 자비를 베풀어 고통 없이 죽이는 것 뿐.
“세상을 원망해라. 세상이 정상이었다면, 우리는 만나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 아니, 만나더라도 좋은 관계였을지도 모른다. 술을 주고받고 세상에 대해 욕도 하고 그런……. 하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어. 이제는…….”
세상이 썩었기에, 망가졌기에. 세류는 초적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제압하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그러면 뒤에 지나가는 민초들이, 상행들이 피해를 본다. 그것은 힘을 가진 자로서 받은 의무를 유기하는 짓이다.
“사……살……”
피슉!
“……미안하다.”
결코 용서 받지 못할, 그리고 돌아오지 않을 사과를 하며 세류는 마지막 초적을 제거했다. 그리고 묶어 둔 말에 다가 갔다.
세류의 말은 피 냄새 짙게 풍기는 세류를 보며 호들갑 떨었다. 세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말의 뺨을 쓰다듬었다.
말은 처음에 조금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곧 익숙한 세류의 냄새와 얼굴에 반응하여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떠나기 전 세류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피비린내 나는 풍경을 다시 쳐다보고는 이내 말을 달려 다시 북쪽으로 달렸다.
세류는 말을 타고 오며 아까 자신이 했던 행동을 되새겼다. 후회하지는 않았다. 이미 수년 간 고민하던 일이다. 그리고 만나는 순간, 검을 빼어든 순간부터 굳게 결심한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이 이제 일어난 것일 뿐 다를 점은 없었다.
‘어차피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세상. 난세를 고른 순간부터 이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일군의 장수가 되었든, 주군을 섬기든 누군가는 죽여야 한다. 단지…… 단지 그것뿐이야. 그것 뿐이다.’
합리화 하고 싶었다. 죽음이 합리화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는 합리화 하지 않았다. 외면하지도 않았다. 단지, 그냥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들은 날 용서할 수 없겠지. 나도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진 않는다. 다만 내가 할 일은 그들을 잊지 않는 것 뿐.’
만일 염계에서 그들을 다시 만난다면 시대가 그들을, 그리고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노라고 말하리라. 그렇게 하리라. 세류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속에 남은 찌꺼기를 꺼내고자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크고 호쾌하다. 하지만 비어있는 세류의 웃음소리는 달리는 말의 속도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흩어져 갔다.
스무 날을 달려 하북성에 도착한 세류. 그리고 닷새를 소모하여 탁군(啄郡) 탁현(啄縣)에 도착했다. 이제 누상촌을 찾을 일만 남은 것이다.
“언제 찾는 담……”
확실히 이 넓은 현에서 찾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이 넓은 하북 초원 지대에서 아무 대나 돌아다니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밖에 할 수가 없다.
“별 수 없지.”
하지만 방법이 없다. 세류도 그것을 알기에 대충 느낌이 오는 방향으로 찍어서 가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푸른 초원지대를 천천히 거닐면서 주위를 살피다가 이색적인 것이 세류의 눈에 띠었다.
“마상인(馬商人)? 누상촌이 어딘지 알지도 모르겠다.”
세류는 말을 달려 마상인들에게 달려갔다. 마상인들도 그것을 알았는지 행렬을 멈추고 다가오는 세류를 쳐다봤다.
“워워!”
세류는 육안으로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지자 말을 멈췄다. 적의가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그대는 누구시오? 정체를 밝히시오!”
행렬 중 누군가가 물었다. 혹시라도 도적의 척후병일 수가 있기에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지나가는 행인이올시다.”
“지나가는 분이 왜 여기에 들리셨소?”
세류의 목소리가 선히 들리자 상인들도 많이 누그러진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긴장은 여전히 늦추지 않았다.
“지금 누상촌에 찾아가는 길인데, 누상촌이 어딘지 몰라서 그러오. 어딘지 안다면 길을 알려주면 고맙겠소이다.”
“누상촌으로 가는 길이오?”
“그렇소이다.”
세류에게 물어본 상인은 잠시 저들에게 돌아가더니 다른 상인들과 토론하기 시작했다. 몇몇 상인이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상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토론이 끝났는지 다시 나왔다.
“나는 소쌍(蘇雙)이란 상인이오. 그대는 누구시오?”
“세 신원(世新元)이란 사람이외다.”
세류는 소쌍이란 말에 약간 놀랐다. 그가 바로 유비 삼형제의 거병에 일조를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소쌍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우리도 누상촌으로 가고 있소. 그대가 급하지 않다면 동행해도 좋소이다.”
세류는 급하지도 않고 혼자 여행하길 싫어하진 않지만 좋아하지도 않았다. 소쌍의 제안은 그로서는 매우 고맙고 적절한 제안이었다.
“고맙소이다.”
세류는 말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갔다. 고삐를 잡는 손을 오른손으로 하여 의심을 적게 하였다.
세류가 소쌍 일행에 합류하자 주위에서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세류는 그 시선이 불편했지만 확실히 외부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자위하며 참았다.
“어디 사람이오?”
“패국 초현 사람이오. 이곳 사람들이 날 거북해 하는 것 같으니 행렬의 맨 뒤에서 따라오겠소이다.”
세류는 그 말만 하고는 대화를 끊고 맨 뒤쪽으로 갔다. 소쌍은 더 잡고 싶었지만 그의 태도에 별 수 없이 포기했다.
‘여기나, 앞이나…….’
그래도 뒤쪽은 말이 있기에 사람들의 숫자는 적었지만 의심은 더욱 증폭되었다. 세류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아예 말 뒤쪽으로 나아갔다. 뒤로 물러나니 주위에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에 따라 의심의 눈초리도 많이 거두어졌다.
세류는 딱히 어딘가에 시선을 두지 않고 인마의 흐름을 따라 움직였다. 꽤나 적잖은 시간 동안 무료하게 앞만 보고 움직이려니 과히 답답했다. 때문에 주위의 사람들의 얼굴이라도 익히려고 둘러보다가 깜짝 놀랐다.
구척의 장신에 강대한 기골, 대춧빛으로 불그스름한 얼굴, 제법 태가 나기 시작하는 되는 수염……. 분명히 관우(關羽)였다.
‘관 운장……. 여기서 처음 보게 되는군. 나보다 20cm는 더 크겠는데?’
지금 시대에 한 척이 24cm정도 되니 구척의 신장이면 과거 살아가던 측량법으로 이 미터가 넘는 엄청난 장신이다. 그런 인물이 괴력으로 말 위에서 청룡도를 휘둘렀으니 몸통이 반으로 쪼개진다는 표현이 나와도 그리 이상하진 않으리라.
‘내가 먼저 나서?’
관우와는 친분을 유지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관우의 표정으로 보아하니 자신에게는 일절 관심도 없는 듯싶다. 결론은 그가 직접 다가가야 했다.
“안녕하십니까?”
“……?”
세류의 인사에 관우는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세류는 빙긋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저는 세류 신원이라 합니다. 누상촌에 갈길 동안 같이 가게 될 것 같은데, 존장의 성함을 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세류의 작전은 관우가 자만심이 매우 높다는 데서 착안하였다. 하지만 관우는 콧방귀도 뀌지 않고 손가락을 들어 가리켰다.
세류도 그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니,
누상촌(樓桑村)
의 이정표가 보였다.
“이제 다 왔소이다. 그럼 수고하시오.”
그의 계획에 삐걱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류는 소쌍과 헤어지며 아까의 어이없는 상황을 떠올렸다. 면박 당한 것도, 외면당한 것도 아닌데 정말 시기가 공교로웠다.
“설마 그렇게 가까울 줄이야.”
정보의 부재였다. 며칠은 걸릴 줄 생각했지만, 하루도 안 되서 도착해 버릴 줄은 누가 알았던가?
웅성웅성!!
세류는 현재 시장에 있다. 비록 작은 마을이긴 하지만 시장도 활발하고 주민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감돌았다.
“에이…….”
세류는 혹시 유비가 돗자리를 팔고 있지 않을까 해서 시장을 전전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발견하면 다시 어떻게든 비벼볼 생각을 하고.
“어? 세 신원 아니시오?”
누군가가 세류를 부르자, 세류도 자연스럽게 소리의 근원을 향해 고개가 돌아갔다. 그를 부른 이는 소쌍이었다.
“안녕하시오?”
“하하, 여기서 만나 뵈니 반갑구려.”
헤어진 지 한 시진도 안됐건만 반갑다고 웃는 소쌍. 세류도 굳이 그런 소쌍이 가식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의 성품이 그런듯 싶으니까.
“이렇게 작은 곳에서 말을 파시오?”
“그렇소이다. 조금 힘들긴 하지만…….”
세류는 힘들다는 말에 뭣 때문일까 고민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혹시……”
“어이, 여기서 누가 장사하래?”
세류가 자신의 말을 끊고 등장한 이를 불쾌한 눈으로 쳐다봤다. 나타난 놈은 하관이 얄팍하고 미간이 좁은 전형적인 쥐상의 남자였다. 그리고 이런 관상의 남자들은 나름 전문직에 종사했다. 남들은 쉽사리 못하는 하류잡배니까.
‘나라가 어지러워지니 하루살이가 많이 들끓네.’
세류는 귀찮다는 생각만하지 곤란하다는 생각은 안했다. 곤란할 일은 안 생길 테니까.
“엉? 누가 해도 좋데?”
“엄연히 여기는 국법에서 정한 마시장(馬市場)이오. 누가 나에게 감히 허락을 논한단 말이오?”
소쌍이 논리로 덤벼들자 잡배는 코웃음만 쳤다.
“흥, 여기는 유비(劉備) 형님이 장대인(張大人)에게만 허락한 곳이란 말이지. 근데 국법? 흥!”
잡배는 침까지 뱉어가며 말했다.
‘유비가 역시 유협(遊俠)들의 머리라더니…….’
유협의 대장이라는 말은 듣고 생각은 해봤지만, 이정도로 행악이 심할 줄은 몰랐다.
“어이. 그러니까, 당장 나가라고!”
“윽!”
하류잡배가 소쌍을 강하게 밀쳐내었다. 소쌍은 갑작스레 당한 공격으로 인해 균형을 잡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그 모습에 세류가 나섰다. 마상인들과 합류할 때 소쌍에게 은혜 받은 게 있었으니까.
“어이.”
세류의 개입에 잡배가 인상을 쓰며 세류를 보았다. 그러다가 당당한 세류의 풍채를 보고 움찔했다. 세류는 기세를 일으켜 기선을 제압하며 말했다.
“거기까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