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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디버스
작가 : 풍령인
작품등록일 : 20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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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화
작성일 : 16-07-19     조회 : 605     추천 : 0     분량 : 6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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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순간이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날아들어온 빛살 같이 검이 잡배의 목에 닿았다. 패악을 부리던 잡배는 갑작스런 세류의 검에 깜짝 놀라 미동도 못했다.

 “헙……!”

 “누구 맘대로 사람을 치래?”

 세류의 검이 잡배의 목을 조금씩 파고들었다. 주르륵,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그만큼 잡배의 얼굴은 창백하고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세류는 옆집 아저씨에게 인사하듯,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여기서 두 치만 그어 볼까? 조금 빨간 게 보고 싶은데…….”

 “……!”

 세류의 농밀한 살기에 이름도 모르는 잡배는 벌벌 떨기만 했다. 입과 혀가 붙어버린 듯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세류는 날카로운 눈으로 쥐상의 남자를 주시하고는 쓰러진 소쌍에게 말했다.

 “소 대인, 일어나시오.”

 “아, 고맙소이다.”

 소쌍이 먼지를 털고 일어나자 세류도 검을 거두며 싸늘하게 쳐다봤다.

 “꺼져.”

 “으으……! 두고 보자!”

 잡배는 그렇게 말하고는 뒤돌아서 도망쳐 버렸다. 세류는 그런 모습을 보며 괜스레 짜증만 났다. 이 거리의 유협을 건드렸으니 이제 좀 귀찮아 지겠거니, 생각했기 때문에.

 소쌍은 잡배가 완전히 간 것을 보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신원 덕분에 더 큰 욕을 면했소이다. 감사하오.”

 “아니오. 호의를 받았으니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일 뿐.”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며 예를 차리는 사이 대중은 점차 흩어졌다.

 쿵쿵

 “응?”

 “어떤 놈이냐!”

 화통을 삶아 먹은듯한 목소리. 8척의 신장에 범과 같은 체구. 고리눈의 사내. 장비(張飛) 익덕(益德)이었다.

 “…….”

 세류는 조금 당황했다. 어디서 많이 본 상황이기도 했고, 조금은 기대했던 유비와의 만남이 불화로 시작될 것 같아서이다.

 “네 놈이 건드렸냐?”

 사모(蛇矛)를 꼬나 쥐고 말하는 모습은 당당했다. 세류는 속으로 조그맣게 한숨 쉬며 얘기를 꺼냈다.

 “이곳은 국법이 정한 마시장이오. 그런데 누가 감히 그 곳을 독점할 수 있단 말이오?”

 “흥, 여긴 유형의 것이다.”

 “말로는 안 되겠군.”

 세류가 먼저 도발하고 나섰다. 어차피 얘기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도발하고서 이겨버리는 게 끝이 좋다.

 “좋다. 네놈도 보아하니 무기 좀 쓰는 것 같은데, 어디 가서 붙어보자!”

 장비는 그렇게 말한 뒤 앞장서서 걸어갔다. 세류도 나직하게 한숨을 쉬며 따라갔다.

 ‘이건 아닌데…….’

 연의에서 보면 지금의 상황은 세류가 아닌 관우가 맡아야 할 부분이다. 그런데 뭔가가 묘하게 어긋나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뭐, 어때?’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유비의 진형에 합류하기로 결정한 것도 아니고. 만일 세류가 유비의 진형에 들어가기로 했어도 한 번쯤은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터이니 나쁠 것도 없었다.

 소쌍은 휘하 상인에게 시켜 무언가를 지시하더니 이내 소쌍과 장비를 쫓아갔다.

 

 

 

 장비가 세류를 데려간 곳은 그의 거처로 추정되는 집의 공터였다.

 쿵!

 “덤벼라!”

 창대를 바닥에 찍으며 장비가 소리쳤다. 비록 연의에서 보듯이 전신에 갑주를 쓰고 있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압감을 주었다.

 “…….”

 세류가 올 생각을 안 하고 가만히 있자 장비는 더욱더 열이 뻗치는지 고리눈을 부라렸다.

 “안 오면 내가 가지!”

 결국 먼저 덤벼든 것은 장비였다. 오른손으론 창대를 받치고 왼손으로는 창대의 중간을 잡아 찌르는 모습은 매우 위협적이었다. 또한 빨랐다.

 세류는 빠른 만큼 단조로운 공격. 본래 이런 공격은 속도가 생명이기에 가볍게 생각할 것이 못 된다. 일반 사람이라면 어, 하는 사이에 몸에 바람구멍 하나가 시원하게 뚫려 있을 테니까. 하지만 세류는 단련한 무인이기에, 또한 미리 긴장하고 있었기에 몸을 살짝 트는 것만으로 피했다. 그리고는 창을 잡고 뒤돌려 차기를 먹였다.

 퍽!

 가슴부위에 정통으로 맞은 장비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다시 자세를 잡은 장비는 더욱더 분이 터지는지 그 기세가 활화산 타오르는 듯 했다.

 “이 놈!”

 장비도 한방 얻어맞자 세류를 경시하는 마음을 버렸는지 처음과 같은 단조로운 공격은 하지 않았다. 하긴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처음 공격으로 이미 어깻죽지에 입은 상처로 한 달을 쉬어야 할 테니까.

 쌔엑!

 사모의 진행방향에 있던 공기가 갈라지며 소름끼치는 소리를 냈다.

 세류는 그 모습에 감히 달려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피하면서 공세의 틈을 노렸다.

 “어딜 피하느냐! 어서 덤벼라!”

 세류의 모습이 방정맞아 보였는지, 장비가 일갈했다. 하지만 세류라고 해서 그러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게 마음 같이 쉽나. 잘못 맞으면 많은 것이 어그러진다고. 그렇다고 더 피하기만 하는 것도 자존심 상하니까……!’

 세류는 기수식도 취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갑자기 불 맞은 멧돼지 마냥 달려드는 무모한 공격에 순간 장비는 움찔했다.

 “하압!”

 차앙!

 세류의 칼이 호쾌하게 뽑히며 그린 듯한 궤적을 그렸다. 그의 칼은 날카롭게 장비의 사모를 강타했다.

 깡!

 ‘보통은 아니구나!’

 공격에 담긴 무게는 상상 이상이었다. 호리호리한 몸 때문에 경시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상상을 뛰어넘는 묵직함이란! 장비는 대경하며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놓아줄 세류가 아니었다.

 “핫!”

 세류는 기세를 타고 더욱더 장비를 압박했다. 기세에 눌린 장비는 어지러운 손을 주체 못하고 되는 대로 막기만 할 뿐이었다.

 채채챙!

 순간의 격돌, 세 번의 파열음. 이들의 공속이 얼마나 빠른지 보여주는 듯하다. 후려치고 패고, 막고, 당기기를 수십 차례.

 “으윽……!”

 장비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떨치지를 못했다. 강하게 후려치면 세류는 유능제강(柔能制剛)의 수법으로 부드럽게 밀려들어왔고, 끊어 치면 오히려 타고 들어왔다.

 장비는 속이 탔다. 정말 속에서 열불이 끓어올랐다. 그것을 풀려면 수세를 공세로 바꿔야 하는데, 하지만 그의 뜻대로 공격을 풀리지 않고 수세만 하고 있으니 화는 더욱더 커지기만 했다. 이제 겨우 열여덟의 장비이지만 폭급한 성격은 이미 뿌리를 갖추고 있었다.

 ‘이제 슬슬 끊어야 하는데…….’

 한참 장비를 공격하던 세류가 주위를 흘깃 쳐다봤다.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한 번 쯤 호흡을 가다듬고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한 일이니까. 장비나 자신이나 목숨을 걸 생각까지는 없었으니까.

 ‘왔다!’

 그의 시야에 팔이 길고 귀가 크며, 환한 광채를 내뿜는 것 같은 인물이 들었다.

 ‘관우도 왔군!’

 세류는 속으로 웃었다. 이제 슬슬 이 지리멸렬한 싸움을 끝낼 때가 온 것이다.

 세류는 간극을 계산하다가 적당하다 싶은 때에 크게 기합을 질렀다.

 “하앗!”

 세류의 거센 칼질에 장비는 결국 물러서야 했고, 세류는 그 때를 맞추어 뒤로 훌쩍 물러섰다. 누가 보아도 손속에 이득을 본 것은 세류였다. 그것에 자존심이 상한 장비가 소리쳤다.

 “이 놈!”

 장비가 폭급한 성격을 주체 못하고 다시 달려들려 할 때였다.

 “비! 멈춰라!”

 막 달려들던 장비가 한쪽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씩씩거리며 멈췄다.

 “형님!”

 “뭐하는 짓이더냐!”

 유비는 장내 한 복판에 나와서 장비를 말렸다. 장비도 그런 유비를 밀쳐내지 않았다. 다만 세류를 쏘아 볼 뿐이었다.

 유비는 장비가 조금은 진정된 모습을 보이자 몸을 돌려 세류를 쳐다봤다.

 ‘대장부로다!’

 유비가 세류를 본 순간 전율을 느꼈다. 타고난 직감이 눈앞의 사내가 자신의 야망에 큰 도움이 될 귀인이라고 속삭였다.

 “저는 유비(劉備)라고 합니다. 귀하는 뉘신지요?”

 유비가 매우 공손하게 말하자 세류도 맞서 인사하며 말을 꺼냈다.

 “전 세류 신원이라는 자로 패국 초현 출신입니다.”

 “그런데 어인 일로 비와 싸우게 되셨는지……?”

 세류가 머뭇거리며 답을 하려고 할 때 나서는 이가 있었다.

 “그건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유비가 고개를 돌리자 나선이, 소쌍은 인사를 했다.

 “전, 중산국(中山國)의 호상(豪商) 소쌍입니다. 평소부터 유대협의 영명을 들어왔습니다.”

 “과분한 칭찬은 이 비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어인일로?”

 자신을 공손히 낮추며 물을 것은 확실히 하는 유비다운 화법이었다. 소쌍은 거만하지 않은 유비에게 더욱 존경심을 느끼며 말했다.

 “제가 이번에 말을 팔려고 왔지만 그곳에 있는 유협 분들께서 이곳은 장대인에게만 허락된 곳이라고…….”

 소쌍이 말을 흐렸다. 그럼에도 유비는 단숨에 알아차렸다. 평소부터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견되었기 때문이다.

 “자자, 우선 자리를 옮기시지요.”

 유비는 그 길로 탁군의 저잣거리에서 제일 큰 객점으로 옮겼다. 객점 주인은 유비가 오자 바로 손님들을 내보내고 더 이상 장사를 안 하겠다는 패를 달았다.

 쪼르륵……

 몇 순배의 술이 돌자 자리도 많이 풀렸다. 특히 아까부터 계속 세류만 쏘아보던 장비가 술 때문에 많이 누그러지자, 자리는 더욱 화기애애해 졌다.

 “어찌 된 일인지 알겠군요.”

 그 때까지 입을 다물던 유비가 말했다. 소쌍은 유비의 말에 자신이 탁군에서의 마판(馬板)이 달렸다는 것을 직감하고 경청했다.

 “비. 장 대인을 모셔 와라.”

 몇 잔의 술을 연거푸 비운 유비가 말했다. 장비는 유비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유비를 쳐다봤다.

 “예? 형님! 하지만……”

 “불러 오라 하지 않느냐!”

 유비가 낮지만, 위엄 있게 소리치자 장비도 별 말하지 않고 바로 나섰다.

 술을 다시금 비운 유비는 고개를 돌려 한명씩 찬찬히 살렸다.

 ‘흠……. 세류라……. 음?’

 한창 고개 돌려 인물들을 살피던 유비의 눈에 새로운 인물이 띄었다. 말단에 자리 잡았지만 기개 있는 풍모.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 관우였다.

 “그런데 저분은 뉘신지……?”

 유비가 참지 못하고 소쌍에게 물었다. 소쌍은 유비가 관우에게 관심을 갖자 기뻐하며 소개시켰다.

 “아 이분은 관가(關家)에 휘(諱)는 우(羽)자가 되십니다.”

 소쌍의 소개가 끝나고 유비가 뭐라 말을 붙일 려는 찰나에 장비가 들어섰다.

 “유대협! 아니, 저 놈팽이가 왜……!”

 “일단 앉으시오.”

 유비가 나직하게 말하자 장세평(張世平)도 뭐라 말하지 못하고 고분고분 앉았다.

 “이제부터 장대인과 함께 같은 일을 하실 분이외다. 인사하시구려.”

 “결국……, 유 대협! 제가 무엇을 잘못한 겁니까? 제가 뭘 했기에…….”

 거의 애걸하다 시피 말하는 장세평에게 유비는 딱 잘라 말했다.

 “장대인께서 잘못하신 것은 없소이다.”

 “그럼 왜……”

 “지금까지 했던 게 잘못일 뿐이지요.”

 유비의 나직하지만 단호한 말에 장세평은 낙담했다. 그의 어투로 보아 철회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더 매달렸다.

 “유대협! 한번만 더 헤아려 주십시오……. 제발!”

 장세평의 모습을 지켜보던 소쌍이 끼어들었다.

 “전 장대인의 이익을 헤치러 온 게 아닙니다.”

 장세평은 화가 난 얼굴로 소쌍을 노려봤다. 당장 유비와 장비에게 대들 수는 없으니 갈 길 없는 분노가 소쌍을 향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헤치러 온 게 아니라고! 네놈! 혼자서 먹던 것을 둘이 먹는데 어찌 헤치지 않겠느냐!”

 장세평이 길길이 날뛰자 소쌍은 외려 빙긋 웃었다.

 “그렇다면 저와 동업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탁군에서 얻는 이익을 알려주시면 그 몫은 반드시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소쌍의 말에 날뛰던 장세평도 잠시 헤아려 보았다. 반드시 보장한다는 뜻은 소쌍이 손해를 봐서라도 자신의 이익은 보장받는 다는 것이다. 절대 손해가 아니었다.

 순간적인 판단을 한 장세평은 점차 가라앉았다. 냉큼 동업하고 싶었지만 방금 전까지 날뛰던 자신의 모습이 생각나 날름 먹기도 뭐했다. 별 수 없이 튕겨봐야 했다.

 “뭘 믿고 동업을 한단 말이냐?”

 “흠……. 여기 있는 유비님께서 증인이 되어주신 다면 어떻겠습니까?”

 장세평은 뛸 듯이 기뻤다. 튕기면서도 소쌍이 철회할까 저어했건만, 이젠 확실한 보증인까지 얻은 것이다.

 “그렇다면…… 좋다.”

 장세평은 마지막까지 최대한의 상술을 발휘해 자기가 손해 보는 인상을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런 장세평을 보며 소쌍은 웃었다.

 “좋습니다. 제가 보장해 드리지요.”

 유비의 확언까지 있자, 장세평은 몇 잔의 술을 마신 뒤,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드립니다.”

 “별 말씀을. 그런데 소대인께서는 글을 하신 분 같은데 어찌……?”

 소쌍은 유비의 질문에 빙긋 웃기만 했다. 소쌍의 대답은 한참 뒤에 나왔다.

 “작게는 일신의 안위요, 크게는 기화(奇貨)를 얻기 위해섭니다.”

 소쌍의 말에 유비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술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비워진 술잔을 채우며 유비는 주위를 훑어보며 생각했다.

 ‘기화는…… 내가 얻은 것 같소이다.’

 그의 시선의 끝에는 관우와 세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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