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도원결의(桃園結義)
세류는 금방 떠날 것처럼 했지만 유비의 만류로 남게 되었다. 세류와 더불어 관우 역시 자연스럽게 유비의 막처(幕處) 아래 있어서 그 어떤 이도 건들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지내는 사이 모든 이들과 호형호제(呼兄呼弟)하게 되었다. 나이는 관우가 제일 많았고, 다음이 유비, 세류, 장비 순이었다.
“신원 형님! 한판 붙어 봅시다!”
세류는 한숨을 쉬며 도를 잡았다. 막하에 거하고 처음 싸울 때는 제대로 싸웠지만 유비의 간곡한 만류로 이제 세류나 장비나 둘 다 나무무기로 싸웠다.
“오라.”
“갑니다!”
몇 달 동안 지내며 거의 매일같이 싸워서 장비도 더 이상 세류를 경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모든 공격을 수월하게 막아내는 그를 약간 따라잡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
따다다닥!
목도와 목봉이 얽히며 요란한 소리를 만들었다.
“우라야!”
“하앗!”
뻐어억!
“우욱!”
“하하하핫!”
세류는 배를 쥐고 인상을 찌푸리고 장비는 통쾌하다는 듯이 웃었다. 무기가 긴 이점을 살린 장비가 세류에게 한방을 먹인 것이다.
“자비는 없다, 익덕.”
한 방 먹은 세류가 차가운 분노를 불태우며 달려들자 기세에 놀란 장비가 움찔했다.
“우아아아아!”
따다다다다다!!
쉴 새 없는 소리. 장비는 공격은커녕 수비조차 어려워져 점차 손발이 따로 놀기 시작했다.
“으아……”
마침내 발이 꼬인 장비가 균형을 잃어 뒤로 쓰러지고 세류는 인후에 도를 들이대며 싸늘하게 웃었다.
“결과는 안 바뀌지?”
“으으!”
장비가 분하다는 듯이 신음했다. 하지만 세류는 목도를 거두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묘하게 불쾌하고 사람 속을 긁는 미소.
“남자라면 졌을 때 호쾌하게 인정해라.”
“……에이, 씨!”
장비가 화를 버럭 내고는 목봉을 잡고 돌아가 버렸다. 세류는 그 모습을 보며 맑게 웃었다.
멀리서 세류와 장비가 대련하는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본 유비는 싸움이 끝난 것을 보고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것을 본 곁에 있던 관우가 의문을 표했다.
“평소에 늘 웃으시더니만……, 오늘 따라 대장부가 어인 한숨이시오?”
“관형……. 휴, 이것을 보시오. 이것을 보니 내가 무엇을 봐도 한숨 외엔 안 나오는 구려……”
챠륵!
아무렇게나 접어 가지고 온 종이를 펴보니 내용은 대략 이랬다.
의병모집(義兵募集)
……(상략)영제폐하께서 중평(中平)의 연호를 새로이 쓰신 이 해에, 감히 위로는 황제폐하를 거스르고 아래로는 민초의 고혈(膏血)을 쥐어짠 황건적(黃巾)의 역적무리가 감히 황천개세(黃天開世)를 외치며 일어났다. 이에 나 유주목사(幽州牧使) 유언(劉焉)은 황제폐하의 명을 받들어 황건적을 쳐부수고자 한다. ……(중략) 재야에 있는 의기남아(義氣男兒)여, 일어나라! 황제폐하의 성은에 보답할 지어다!
“결국 태평도(太平道) 무리가 난을 일으켰소이다. 이를 어찌할지…….”
그 때 다가온 장비가 이 모습을 보았다. 유비는 한숨을 쉬고 관우는 인상을 쓰고 있자 자못 궁금해져서 관우가 건넨 방을 읽었다.
“유형은 어쩔 계획이시오?”
“모르겠소이다. 모르겠어요…….”
그 때 다 읽은 장비가 유비의 나약한 모습에 분통이 터지는지 크게 외쳤다.
“아니, 형님! 어찌 그런 나약한 소리만 하십니까? 나가서 싸워야지요!”
“…….”
유비라고 그것을 어찌 모를까. 하지만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리라.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군. 아, 올해가 중평 원년이지?! 내가 깜빡 잊고 있었다.’
세류는 장비가 온 직후에 와서 장비가 던져놓은 방의 ‘모집’자만 보고서 바로 짐작했다.
“으이구! 형님! 만약 형님께서 원하시면 내, 군자(軍資)를 대겠소! 그러니까 우리 한번 의병을 일으킵시다!”
말은 제안처럼 했지만 끝은 확정이었다. 유비 역시 장비의 말에 놀랐지만 동의했다.
“네가 그렇게 까지 한다면 좋다. 그런데 어디서 군자를 얻었느냐?”
“내가 늘 술만 퍼마시는 줄 아셨소? 나도 이런 때를 대비해서 돈을 모았고, 또한 내 양부께서 남겨주신 돈이 조금 있습니다.”
유비는 장비의 말에 고개를 깊이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좋다. 우리 한번 의병을 일으키자!”
유비의 외침에 장비는 무언가 떠오른 듯, 갑자기 정색을 했다.
“이런 거사를 논의하는 자리는 여기 적당치 않은 것 같습니다. 제 집 뒤 복숭아밭에 꽃이 만발하였는데, 거기서 우리 의형제(義兄弟)를 맺고 나아가 싸우는 게 어떻겠습니까?”
갑작스런 장비의 제안에 유비와 관우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으나 곧 얼굴을 굳히며 동의의 뜻을 나타냈다.
“난 좋다.”
“나도 동의하외다.”
“…….”
유비와 관우가 차례로 동의를 표하고 세류가 아무 말도 없자 이내 좌중의 시선이 세류에게 쏠렸다. 세류는 멋쩍게 웃으며 이유를 설명했다.
“제게는 이미 의제(義弟)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너의 의제까지 함께하자. 너와 함께한 이라면 결코 탁하지는 않을 터.”
관우가 그렇게 말하자 유비와 장비 역시 동의의 뜻을 나타냈다. 하지만 세류는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그놈은 아닐 겁니다. 세상에 나오길 싫어할 테니까요.”
세류가 그렇게 말하며 단호한 어투로 말하자 유비와 관우, 장비 역시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단지 아쉬워 할 따름이었다.
‘별로 완벽하진 않지만 나름 괜찮은 조합이니까. 끼고 싶지도 않고, 이들끼리 잘 해나갈 것을 내가 바꾸고 싶지 않고.’
이것이 세류가 근원적으로 의형제를 거부한 원인이었다. 불완전하지만 나름 괜찮은 유비의 삼형제. 그것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뜻도 따로 있었고.
‘한 세상, 살다 가는 것. 내가 보고 싶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같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삼형제는 그런 점에서 아쉽지만 제외. 유, 관, 장 삼 형제가 가장 완벽한 조합일 테니까. 하하!’
유비 삼형제가 나름 멋진 조합인 것은 세류도 인정하는 바였고, 그 외에 정한 원칙이 있으니, 주류(主流)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의형제에 끼는 것, 조조를 죽이거나 수하로 삼는 것, 손씨 일가를 몰살 시키는 것 등이다. 그들과 함께 세상을 질타하고 싶어서 이 세계에 왔는데, 그걸 변하게 만든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아쉽기는 하지만 아깝네. 그래도 나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으니까.’
세류는 속으로 입맛을 다셨지만 그가 의제로 삼겠다고 한 인물을 떠올리며 웃었다.
‘등가교환이라 생각하자.’
아쉬움을 달래며 세류는 유비 등을 따라 도원으로 갔다.
장비는 도원에 도착하자마자 사람을 시켜 검은 소[烏牛]와 흰말[白馬]을 데려오게 했다.
하인이 그 두 마리 짐승을 데려오자 한칼에 목을 베어 피를 섞어 나눠마셨다. 제단에 꽂힌 향을 사르고, 맹세의 글[誓文]을 읽어나갔다.
“고하건 데 여기선 유비, 관우, 장비는 비록 날 때가 다르고 난 시간이 다르지만 큰 의[大義]와 두터운 정[厚情]에 의지하여 의형제가 되나이다.”
거기까지 읽은 유비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그리고 힘 있게 읽어나갔다.
“이제 저희가 형제가 되어 마음을 합하고 힘을 모아 어려울 때는 서로 구하고 위태로울 때는 서로 의지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고 아래로 백성을 평안케 하고자 합니다. 비록 난 시간과 살아온 일생이 다르다 할지라도 죽는 시간은 같은 달, 같은 날이길 바라오니 황천후토(皇天后土)여 굽어 살피소서. 그리고 만일 우리 중에 형제의 의를 저버리는 자가 있다면 하늘에게 저주를 받고 인간에게 베임을 당하여 그 욕된 이름이 만세에 이르게 하소서.”
세류는 유비가 서문을 읽는 순간 전신에 흐르는 전율에 몸을 떨었다. 비록 글로는 수십 번도 더 읽은 장면이었지만 막상 곁에 있으니 무척 멋있는 장면이었다.
‘생각해 보니 도원결의도 나관중의 극적인 장치 아니었나? 그런데 실제……네. 멋있으니 됐다.’
세류가 그렇게 생각할 때 유비와 관우, 장비는 다 같이 제단에 절을 세 번 한 뒤 물러났다.
마지막 의식으로 큰 술잔에 각자의 약지를 베어 술잔에 피를 떨궜다. 그리고 유비, 관우, 장비의 순서대로 한잔씩 나누어 마셨다.
세 사람이 맹세의 술을 마시고 세류에게 다가왔다. 그들의 눈에는 ‘너도 같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세류도 그들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으나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그럼 누가 형이 되시겠습니까?”
세류의 질문에 삼형제가 서로를 둘러보았다. 의형제를 맺자고 만 하였지, 누가 형이 될지는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난처하게 있을 사이 세류의 질문이 떨어졌다.
“유비 님께서 품은 뜻은 무엇입니까?”
유비는 난데없는 질문이었지만 곧 마음에 품은 뜻을 말했다.
“장부가 품은 뜻 중에 제일 크고 환한 것이 제세안민(濟世安民) 외엔 무엇이 있겠나?”
세류는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묘당에 올라 위로는 예악을, 아래로는 오형(五刑)을 말하시겠습니까?”
“세상을 평안케 하는 것이 어디 그것뿐이겠냐 마는 그 길 뿐이라면 마다하지 않겠네.”
“허리에는 대장인(大將印)을 차고 황상께 부월(斧鉞)을 받들어 삼군과 오병을 몰아 밖으로는 사이(四夷)를 안으로는 역적을 주멸하시겠습니까?”
“그것으로 백성이 즐거이 누릴 수 있다면 피하지 않겠네.”
세류가 빙긋 웃었다. 유비도 대강 그 뜻을 짐작하고 살짝 웃었다. 세류는 이제 쐐기를 박을 때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제 짐작이 틀리지 않다면 유비 님께서는 한의 종친(宗親)이시군요. 맞습니까?”
유비 역시 빙긋 웃으며 답했다.
“열성조(列聖祖)의 피가 내 몸에 흐르고 있으니 거한 곳은 빈궁해도 마음은 궁궐에 있듯 하라는 어머님의 말씀을 내 잊지 않았네.”
말이 거기까지 흐르자 세류와 유비의 알 수 없는 대화를 이해 할 수 없었던 관우와 장비도 그 뜻을 이해했다.
“나이가 중하다 하나 하늘로 받은 피의 무게를 줄이지 않는 법. 이 관 아무개, 유비 님을 형님으로 모시리이다.”
관우가 그렇게 말하며 유비에게 절을 올렸다. 관우가 그렇게 하자 장비 역시 엄숙한 표정으로 절을 올렸다.
‘어차피 실제 역사에서 있지도 않은 거, 내가 정하는 것에 도움을 준다고 한들, 크게 영향은 없겠지.’
관우와 장비가 절을 끝내고 일어서자 세류가 던지듯이 말했다.
“관우 님은 연희 2년에 태어나셨죠?”
관우도 그 뜻을 알고 웃으며 답했다.
“그렇지.”
장비는 관우의 말을 듣고 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외쳤다.
“형님, 아우 절 받으십시오!”
장비가 그렇게 말하고 절하자 유비, 관우, 세류는 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