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찬란한 5살의 미래가 어두운 조짐을 보이는 드럽게 화창한 날이었다.
이니는 맨 뒷자리 누가 봐도 사나워 보이는 그녀가 앉아 있는 그 자리만 피해 달라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여러분 우리 반에 예쁜 친구가 전학을 왔어요. 우리 환영합시다.
인사해야지?
이 제막 엄마 젖 떼고 온 나에게 인사를 바라는 선생부터가 제일 이상했다.
유치원 선생님이라 치기엔 상당히 개성 있었다.
-이니는 저기 맨 뒤에 빈자리 친구 옆에 앉으면 되겠다. 자리는 나중에 바꿔줄게
이니는 자신의 덩치보다 한참은 큰 가방을 울러 매고 휘청휘청 나무 책상을 가로질렀다.
이니가 본 라미의 첫인상은 오늘 돌아가 엄마와 날밤을 새도 모자랄 상태였다. 자로 그었니? 네 눈? 이때까지 봐왔던 비주얼에 한참을 못 미치는 아이였다.
이니의 집안은 대대로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다.
생긴 것부터가 맘에 안 드는 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람 또한 피차일반이었나 보다.
이니는 유난히 말이 없고 행동이 느렸다. 아마 우유부단하고 낙천적인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그덕에 책상으로 가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이니가 이동을 하는 동안 몇 개의 눈들이 이니를 주시하는 것을 고스란히 느꼈다.
이니가 자리로 도착하자 수업이 시작되었다. 이니는 오늘을 기대하며 새로 산 교재를 가방에서 꺼내 책상 서랍 속에 찬찬히 넣었다. 쓸데없는 뻑뻑함이 느껴졌다.
찜찜한 기분이 들어 책을 살짝 꺼냈다. 시커먼 알알이 하얀 바지 위로 쏟아져 나왔다.
안 그래도 큰 이니의 눈에 알알이 김이 서렸다. 이내 터지고 말았다.
-무슨 일이야 뭐 때문에 그러니?
-책상에서…….책상에서…….
말을 이어가지 못한 채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도 울었다.
무릎위로 떨어진 것들과 책에 빼곡히 박힌 그 것은 검은 콩 흰 콩 이니가 태어나 보지 못했던 종류의 콩들이었다.
-어머나 세상에 이게 뭐니, 람아 (눈초리가 따갑고 말투는 가시가 있었다.)
울지마렴 이니야, 선생님이 책상을 바꿔줄게, 람아 넌 이 시간 마치고 선생님을 봐야겠구나.
그때 이니는 몰랐다. 그것이 전쟁의 서막이 될 것이란 것을, 이년과 지긋지긋하게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점심시간이 끝나고 도형학습에 들어갔다. 유난히 개성 있는 선생님은 칠판이 자기의 도화지 인 것 마냥 유창한 그림 실력을 뽐냈다.
수업에 집중하고 있을 무렵 이니는 살짝 졸음에 빠졌다.
한참을 졸다 눈총이 따가워 눈을 게슴츠레 떴다. 람이의 눈길이었다.
안 그래도 그어진 눈으로 한참을 째려보고 있었나 보다.
나무 책상에 반보다 훌쩍 금을 확 그었다. 람이는 이니를 한번 째려보더니 무겁고 특이한 중저음으로 속삭였다.
-튀어나오면 다 내꺼야. 여기로 삐져나오면 잘라갈 거야.
금방이라도 이니는 또 울 것 만 같았다.얘는 범상치 않았다 골라쓰는 단어 족족이 무서워서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니의 새로 산 지우개가 반동에 살짝 튕겨져 나갔다.
이니의 엄마가 새로운 유치원에 적응 하려 모든 새로운 것들을 사주었고 그런 소중한 지우개를 손에 꼭 쥐고 있다 잠깐 손에서 미끄러져 나갔다.
이니가 다급히 눈을 떴을 때 지우개는 이미 반동이 나있었다.
-뭐야!
이니의 찢어지는 소리에도 람이는 단호하고 앙칼지게 말했다.
-튀어나오면 내꺼라 했잖아
이니의 눈시울이 또 붉어졌다. 그러나 또 울면 진짜 지는 거라 생각해 한번을 참았다. 허벅지를 연필로 쿡쿡 찔러가며 맞지 않은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놈의 수업은 왜 이렇게 숙면을 취하게 하는 지 서러웠던 맘이 지나 금세 또 졸음이 밀려왔다.
이번엔 엎드리려 이니가 살짝 팔을 책상위로 올렸다.
-아야! 으아아…….
결국 이니의 울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이니의 팔이 넘어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람이는 가지고 있던 연필로 이니의 팔을 그어버렸다. 그 바람에 연필심이 팔뚝에 고스란히 박혔다.
-무슨일 이예요 또?
유치원 선생이 이니가 울고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람아 너 또 이니를 어떻게 한거니?
-내거를 표시했을 뿐이에요 팔이 넘어왔어요. 여긴 제자리예요
람이는 당황한 기색 없이 당연하게 말을 했다. 5살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유창하게
원장실로 들어간 이니가 팔을 소독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곤 생각했다. 내일은 유치원에 나오지 않겠다고. 첫 유치원 등굣길에 이니는 오전수업 후 내내 유치원 원장님과 함께 하루를 보냈다. 엄마가 오기를 기대하고 또 기다렸다.
수업이 마치고 돌아가는 길 모든 부모가 유치원으로 마중을 나왔다. 람이의 부모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 하루가 서러웠던 이니는 엄마의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그런 이니를 조롱하듯 람이는 혼자 신발을 척척 신더니 이니를 한껏 째려보고 유치원 대문을 박차고 나섰다.
-람이야 조심히 가야해!
유치원 선생님이 말했다.
뒤도 안돌아 보고 람이는 뚜벅뚜벅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
이니의 엄마도 이니도 그런 람이의 모습이 황당하고 신기했다. 뒷모습에서 이니는 느꼈다.
쟤가 자기 인생 첫 경험하는 생 양아치가 될 것이라는 것을.
람이는 생각했다. 이 덜떨어진 땅콩이 자기인생 최악의 진드기가 될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