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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문주
작가 : 눈매
작품등록일 : 20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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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화
작성일 : 16-07-13     조회 : 526     추천 : 0     분량 : 5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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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그런 사람이 아닌데... 이건 그냥 궁금하니까 물어나 봅시다. 요즘 해결사들한테 그런 부탁하려면 얼마나 준답디까?”

 죽립 아래로 사내의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가 품에서 비단에 쌓인 무언가를 꺼냈다.

 “이게 그 대가네. 물론 착수금일세.”

 점소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요즘 같은 어려운 시기에 현금박치기도 아니고.

 보자기 안에 든 물건이 무엇이건 점소이로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점소이가 다시 휙 돌아섰다.

 “에이, 저 같으면 그런 것 받고는 일 안하겠습니다요.”

 사내가 희미하게 웃으며 천천히 비단을 풀었다.

 점소이가 힐끗 쳐다보았다. 그리고 비단에 쌓여 있던 물건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을 때,

 “허억!”

 점소이가 화들짝 놀라며 물러났다.

 탁자 위에 놓인 그것은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한 마리의 말이었다. 마치 탁자 주위로 바람이 분다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는 조각상.

 “오색풍마상(五色風馬像)일세.”

 “오오...”

 “시가로 천 냥은 족히 나갈 걸세.”

 “......!”

 천 냥!

 점소이가 침을 꿀꺽 삼키고 진지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랍니까?”

 “한 사람을 보호하는 일이네. 어떤가?”

 점소이가 이맛살을 살짝 구겼다.

 사람을 보호하는 일.

 그것은 분명 죽이는 일보다 어려운 쪽이었다.

 “그럼 잔금은 얼마나 된답니까?”

 “이천 냥을 드리지.”

 “이... 이천 냥!”

 “할 수 있겠는가?”

 “물론입지요! 하고말고요! 아,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그분이 분명히 하려고 하실 겁니다!”

 “그럼 자네가 좀 전해주게. 참, 내 이름은 강무라고 하네.”

 “알겠습니다요! 제가 분명히 전해드리겠습니다요!”

 “그리고 그자에게 이곳으로 오라고 전해주게나.”

 강무가 작게 접힌 서신을 내밀었다.

 점소이가 넙죽 받았다.

 “예, 나리!”

 강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입구로 나가면서 은자 한 냥을 던져 주었다.

 “음식 값이네. 잔돈은 필요 없네.”

 “헤헤, 감사합니다요. 그런데 저...”

 “뭔가?”

 “저희가 좀 비싼 편이라... 제일 비싼 요리는 은자 두 냥은 주셔야...”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었다.

 물론, 마도가 천하를 재패하면서 물가가 급상승했다곤 하지만,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말도 안 되는 바가지였다.

 하지만 강무는 말없이 은자 한 냥을 더 던져주었다.

 은자를 낚아채듯 받아낸 점소이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복 많이 받으십쇼, 무사님!”

 강무가 사라지자 점소이는 오색풍마상을 다시 비단에 고이 싼 다음 주방으로 향했다.

 후끈한 열기가 가득한 주방으로 들어서면서 점소이가 목 언저리를 긁었다. 그리고 태연히 살 껍데기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인피면구(人皮面具)를 벗자 놀랍게도 좀 전과는 완전히 다른 미청년의 얼굴이 드러났다. 게다가 어느새 체형까지 늘씬하게 변해 있었다.

 만약 다른 이가 보았다면 그야말로 혀를 내두를 역용술(易容術)이었다.

 미청년이 주방장을 향해 오색풍마상을 던졌다.

 “극신(極迅), 일거리가 생겼어.”

 

 ***

 

 사천(四川)과 귀주(貴州)의 경계쯤에 위치한 흥문(興文)의 어느 숲 속.

 “하앗!”

 여인의 날카로운 기합성이 정원을 가로질렀다.

 칼끝에 꽃이 피었다.

 곧게 내뻗어진 칼은 하늘을 그어 내리는 유성처럼 대각선으로 흘렀다.

 칼끝에 핀 꽃잎이 우수수 흩어지며 비산하는 듯하다. 이에 화향(花香)도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만약 검이 머문 자리에 누군가 서 있었다면, 어김없이 혈화(血花)가 피었으리라. 또한 사방으로 퍼져 나간 것은 혈향(血香)이 되었으리라.

 하나 비록 피를 부른다고 할지라도 그녀의 검술은 아름답다. 일로(一路)에 꽃이 피고, 다시 일로에 꽃잎이 비산한다.

 마치 선녀가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허공에서 검무(劍舞)를 추는 듯하다. 무술도 예술이 될 수 있다면 바로 이러한 모습을 두고 이르는 말이리라.

 그 화려한 검술 실력만큼이나 여인의 용모는 아름다웠다.

 맑고 영롱한 눈동자와 긴 속눈썹, 오뚝한 콧날과 홍초처럼 붉은 입술. 백옥 같은 피부는 비단결처럼 고왔다.

 “후우.”

 초식을 끝낸 여인이 자세를 바로 하며 심호흡을 했다.

 비검문(飛劍門)의 독문무공인 천비검법(天飛劍法) 중 비화검(飛花劍)이라는 초식이었다.

 짝. 짝. 짝.

 어디선가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과연 설화 아가씨의 비화검을 보자면 눈이 황홀할 지경입니다.”

 설화라 불린 여인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터 지켜보셨나요?”

 “조금 전 근처를 지나다가 아가씨의 검술에 저도 모르게 이끌려 왔습니다.”

 “엽총관님도 참.”

 설화가 부끄러운 듯 양 볼에 홍조를 띠었다.

 엽총관이라 불린 남자가 칭찬을 이어갔다.

 “아가씨의 검술을 보자면 정말이지 지금이 마도의 시대인지조차도 잊게 되는군요.”

 “절 너무 부끄럽게 만들지 마세요. 아직은 한참 부족한걸요.”

 이때,

 “알긴 잘 아네?”

 어디선가 불쑥 들려온 낯선 목소리.

 엽총관과 설화가 화들짝 놀라서 몸을 돌렸다.

 “누구냣!”

 인자해 보이기만 하던 엽총관이 날카롭게 소리치며 검을 뽑아들었다.

 설화 역시 긴장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폈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두 사람은 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정원을 둘러 싼 돌담 위에 한 미청년이 버드나무 줄기를 입에 물고 앉아 있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줄기만큼이나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도, 도대체 어떻게!”

 엽총관이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이곳은 숲속 깊은 곳에 위치한 비검문의 비밀 별장이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인근에 기관 장치를 설치했음은 물론이고, 혹여 무사히 들어온다고 해도 일급 무사들이 곳곳에 은신한 채 침입을 대비하고 있었다.

 한데 새파랗게 어린 청년이 사지육신 멀쩡하게 들어와서 정원의 돌담에 앉아 있다니!

 청년이 정원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그 순간, 정원 곳곳에서 열두 명의 무인이 쏜 화살처럼 설화의 주위로 내려섰다. 바로 설화를 보호하는 호신위, 십이귀(十二鬼)였다.

 “우와. 멋있다.”

 청년이 홍의(紅衣)를 착용한 호신위들을 보며 박수를 짝짝 쳤다.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행동이었다.

 찰나, 호신위들이 일제히 청년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그야말로 전광석화(電光石火)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쉬쉬쉭!

 “헉!”

 당황한 청년이 엉거주춤 뒤로 물러났다.

 하나 이미 검을 뽑아든 십이귀들은 망설임이 없었다. 가장 앞서 움직였던 일귀(一鬼)가 검을 내찌른 순간,

 쒜액!

 검이 허공을 갈랐다.

 피했다?

 동시에 청년이 바닥을 구르며 앓는 소리를 냈다.

 “아야야...!”

 청년이 엉덩이를 만지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제야 일귀도 상황을 파악했다.

 ‘피한 게 아니다.’

 청년은 뒤로 물러서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만 것이다.

 그 결과 우연히 자신의 검을 피한 것이리라. 우연이라지만 일귀로서는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십이귀가 순식간에 청년을 에워쌌다.

 이윽고 그들의 검이 피를 보려는 순간.

 “물러나세요.”

 맑은 음색이 그들의 행동을 잡아끌었다.

 십이귀들이 일제히 적당한 거리를 두고 물러났다.

 설화와 엽총관이 그들을 지나쳐 청년에게 다가갔다. 청년은 여전히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눈살을 구기고 있었다.

 불과 조금 전 황천길을 건너갈 뻔 했다는 사실도 모르는 듯.

 “누구냐?”

 엽총관이 나서서 물었다.

 그제야 청년이 몸을 일으키며 투덜거렸다.

 “사람 대접이 이게 뭐랍니까?”

 “대접? 누가 보내서 왔느냐?”

 “제 발로 왔습니다만.”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것이지?”

 “그냥 걸어서 왔습니다.”

 엽총관이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어쩐지 이 청년은 사람의 속을 긁어 놓는 재주가 있나보다.

 결국 그가 버럭 소리쳤다.

 “그럼 왜 여기까지 들어온 것이냐!”

 “저 귀 안 먹었거든요? 조용히 얘기해도 알아듣습니다. 이런 걸 받고 왔수다.”

 청년이 서신을 불쑥 내밀었다.

 엽총관이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서신을 받았다. 서신을 읽은 그가 놀라운 표정으로 청년을 다시 보았다.

 “표운성?”

 “그렇소만.”

 엽총관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서신의 내용에 의하면 분명 태상문주의 초대로 온 사내였다.

 ‘태상문주님이 고작 이런 애송이에게?’

 태상문주가 불렀다면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설화 아가씨를 보호하는 것.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서신은 분명 가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자가 여기까지 걸어서 들어왔다는 말도 납득이 된다. 서신만 보인다면 길은 자연히 열릴 테니까.

 그가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운성이 설화에게 말했다.

 “아까 그 춤 또 춰봐. 보기 나쁘진 않던데.”

 설화가 미간을 좁혔다.

 초면부터 격식 없는 반말이다. 이런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행동하는 남자는 딱 질색이다. 게다가 춤이라니. 도대체 무슨 소린가?

 ‘혹시 비화검을 말하는 건가?’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설화는 수치심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이 남자는 자신의 검술을 깔보지 않았던가.

 설화가 한 마디 하려는데, 마침 엽총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크흠. 실례가 있었소. 진작 말씀을 해주셨더라면.”

 “말할 기회를 줘야 말이죠.”

 “커험!”

 엽총관이 불편한 기색으로 헛기침을 내뱉고는 말을 이었다.

 “하나 정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이렇게 담장을 넘어 들어온다면 누구라도 이럴 것이오. 난 총관직을 맡고 있는 엽상섭(葉上涉)이라고 하오. 우선 태상문주님께 안내해드리겠소이다.”

 “잠깐.”

 “뭡니까?”

 “아까 그자들이 갑자기 날 공격하는 바람에 이게 이렇게...”

 운성이 소맷자락을 들어보였다. 과연 소매부분이 날카롭게 찢어져 있었다.

 “이게 이래 뵈도 꽤 비싼 거라서... 어떻게 보상을 좀 해주셔야겠는데...”

 엽총관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얼마요?”

 “은자 한 냥은 족히 나가는지라...”

 ‘이게?’

 아무리 봐도 싸구려 옷에 불과해 보였지만 본인이 그렇다니 어쩌겠나?

 “있다가 보상하도록 하겠소이다.”

 “헤헤, 그럼 감사하지요. 그리고 또...”

 “또 뭡니까?”

 아무리 태상문주의 손님이라지만, 엽상섭은 도무지 이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방금 공격으로 제가 정신적으로 충격을 심하게 받아서 그에 대한 피해 보상도...”

 기가 찬 요구다.

 그렇게 따지면 갑자기 나타나서 놀란 이쪽은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엽총관은 꾹 눌러 참고 물었다.

 “얼마면 되겠소?”

 “제가 좀 예민한 체질이라... 역시 은자 한 냥은 되어야...”

 “끄음...”

 “이게 한 번 놀라면 막 두통도 오래가고, 괜히 밥 먹고 소화도 안 되고 그렇거든요.”

 “...알겠소. 나중에 드리도록 하겠소.”

 “헤헤, 고맙습니다.”

 “그럼 날 따라오시오.”

 엽총관이 앞장을 섰다.

 운성이 그 뒤를 따르며 설화를 보고 싱긋 웃었다.

 “다음에 봐.”

 설화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마디도 꺼낼 수가 없었다.

 ‘다음에 보자고? 절대 그럴 일 없을 거야!’

 하지만 운명은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게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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