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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문주
작가 : 눈매
작품등록일 : 20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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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화
작성일 : 16-07-13     조회 : 569     추천 : 0     분량 : 5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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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영대주라.

 흑영대라는 조직이 어디에 속한 곳이었던가?

 알만한 곳을 떠올려봤지만 도무지 소속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실례이오나 어디서 오신 분이오?”

 “구룡문(九龍門)이오.”

 구룡문의 흑영대.

 역시 처음 듣는다.

 단혁상이 한참 기억을 더듬는데 사내가 몸을 돌렸다. 순간 단혁상은 저도 모르게 움찔 떨고 말았다.

 사내는 창백하리만치 새하얀 피부의 중년인이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콧수염이 고르게 돋아 전체적으로 볼 때 미중년의 인상이었다.

 하나 피부만큼은 마치 저승사자의 그것처럼 창백했다.

 때문에 단혁상은 정말로 자신 앞에 사자(死者)가 와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마저 일 정도였다.

 그가 바로 흑영대주 위극신(威極迅)이었다.

 “다른... 문도들은 어찌됐소?”

 “죽었소.”

 극신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단혁상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이미 짐작하고 있던 바였다.

 상대는 대주라 했다.

 그렇다면 어지간해서는 그 혼자 이런 곳에 들어왔을 리는 없다. 그를 따르는 흑영대 무사들이 밖에 있으리라.

 짐작을 했다지만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3년 전 그날 명예롭게 싸우다가 마인들에게 죽을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정파에서 오셨소?”

 극신이 고개를 저었다.

 “하면 마교?”

 그럴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몰라 물었다.

 역시 극신은 고개를 저었다.

 단혁상이 더욱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대체 어디요?”

 “어디에 속하지도 않으면서 어디에나 속하는 곳이오. 하니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소. 단지 이 모든 것은 우리 문주님의 뜻이오.”

 도대체 구룡문이 어디란 말인가.

 어디기에 마교에 편입된 적수문을 이리도 과감히 건드린단 말인가. 이들은 마교를 적으로 돌리고도 무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단혁상이 천천히 일어났다. 그가 침상 옆에 놓인 검을 집어 들었다.

 “그럼 날 기다린 이유나 들어보지.”

 그가 말을 놓았다.

 상대에게 살기를 겨누면서까지 말을 높일 필요는 없다 판단했다. 이미 그는 죽음마저 각오하고 있었다.

 잠이 든 자신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린 것은 이유가 있을 터. 단혁상은 서서히 기를 끌어 올리며 극신의 말을 기다렸다.

 “앞으로 적수문에 찾아올 자는?”

 “사흘 후, 마교에서 사람이 올 것이다.”

 극신은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났다.

 이것으로 용무는 끝났다.

 앞서 물어본 적수문의 무인과 같은 대답이었다.

 그렇다면 사흘의 시간은 벌 수 있으리라.

 “볼 일이 끝났나보군.”

 “미안하게 됐소.”

 단혁상의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찰나,

 슈아아앙!

 그의 검이 대각선으로 올라가며 붉은 빛깔의 검기를 뿜어냈다.

 적수검기(赤水劍氣)였다. 붉은 빛깔의 검기가 마치 세찬 물줄기처럼 극신을 향해 날아갔다.

 파앙!

 요란한 충격음과 함께 극신이 문짝을 부수며 밖으로 날아갔다.

 “죽어라!”

 단혁상이 곧바로 극신을 쫓아 몸을 날렸다. 허공으로 뛰어오른 그가 인정사정없이 검을 아래로 내리그었다.

 콰자자작!

 벽력과 같은 소리가 울리며 붉은 검기가 그대로 수직하강했다.

 단 한 번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도 검기는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처럼 같은 자리에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것이 장문무공인 낙수절검(落水絶劍)의 강점이었다.

 하지만 극신은 자세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상대의 검공을 막아냈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검기가 그치자 극신이 훌쩍 물러나며 입 꼬리를 올렸다.

 “과연 장문인답소. 이들보단 한결 낫군.”

 그제야 단혁상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적수문의 무인들이 곳곳에 싸늘한 시체로 널브러져 있었다.

 순간 단혁상의 눈이 뒤집혔다.

 짐작을 했다지만 문도들의 참상을 눈으로 확인하자 감정이 주체되지 않았다.

 “노옴!”

 그가 노호성을 터트리며 극신을 향해 짓쳐들었다.

 하나 철저한 이성을 유지하면서도 이기기 힘든 상대다. 하물며 분노로 이성을 상실한 그가 극신을 이기기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사실 이 부분을 계산한 극신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몸을 튕겨 침실 밖으로 단혁상을 끌어낸 것이다.

 대저 배신을 잘 하는 자들은 지조가 굳지 못하고 감성에 잘 휘둘리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은 오히려 흥분하기가 쉬운 법.

 역시나 부하들의 죽음을 본 단혁상은 눈에서 불을 뿜었고, 금방 손발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극신은 휘몰아치는 단혁상의 검을 연신 흘려보내다가 어느 순간 눈을 부릅떴다.

 ‘지금!’

 극신이 단혁상을 스치는 순간 섬광이 일어났다.

 슈아악!

 “커억!”

 단혁상의 현란하던 움직임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굳었다. 두 사람의 자리는 서로 바뀌어 있었다.

 극신이 천천히 검집에 검을 집어넣었다.

 철컥.

 털썩.

 단혁상이 무릎을 꿇었다.

 “후후. 세상은 아직도 넓구나.”

 “당신에겐 아무런 원한이 없소.”

 극신이 무뚝뚝하게 말하고 걸음을 옮겼다.

 단혁상이 힘겹게 말을 뱉어냈다.

 “죽기 전에... 하나만 묻지.”

 “......”

 “목적이 무엇인가?”

 “죽음.”

 극신의 대답은 짧았다.

 그렇기에 단혁상은 죽어가면서도 알 수 없었다.

 죽음이라니.

 마교의 죽음을 말하는 것인가? 정파의 죽음을 말하는 것인가?

 수수께끼 같은 대답.

 단혁상은 죽어가면서까지 그 ‘죽음’에 대해 고민하며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

 

 다음날, 운성과 설화는 다시 주진석의 마차에 올랐다.

 어제 저녁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만큼 주진석은 아침부터 부지런히 길을 서둘렀다.

 “흐아암~”

 짐칸에 앉은 운성이 기지개를 켜며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설화가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러게 왜 길바닥에서 자니?”

 “시끄러.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운성이 중얼거리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온 삭신이 쑤셨다.

 어젯밤, 추양문을 비롯한 적수문의 무인들을 상대하고 나서 그 뒤처리를 하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이었다.

 ‘아, 생각만 해도 열 받네. 흑영대 놈들 군기가 쏙 빠졌어!’

 한편 그런 속사정을 알 리 없는 설화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그럼 그게 나 때문이라는 거야?”

 “당연한 걸 묻는군.”

 “기가 막혀! 애초에 밖에서 자겠다고 한 사람이 누군데?”

 “거기까진 좋았지.”

 “그럼?”

 “네가 어제 사고 쳤잖아.”

 “그래서?”

 “그것 때문에 밤새 한 숨도 못 잤다고.”

 그제야 설화는 당황한 표정으로 머뭇거렸다.

 운성이 어제 일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하니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든 게다.

 “그, 그럼 혹시 어제 계속 밖에서 그놈들 쳐들어올까봐 경계했던 거야?”

 “당연하지. 그런 파락호 같은 놈들은 확실히 처리하지 않으면 앙심을 품고 다시 오기 마련이라고.”

 ‘의외로 책임감은 있네?’

 설화가 조금은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도 조용히 넘어갔잖아. 무사히.”

 “뭐?”

 “아무 일도 없었잖아. 네가 밤새 신경을 곤두세운 건 뭐... 미안하게 된 일이지만, 결국 내 말대로 조용히 넘어갔잖아?”

 이번에는 운성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너, 설마 아직도 그놈들이 너한테 졸아서 나타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럼?”

 “하!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럼?”

 “너 바보지.”

 “죽는다. 빨리 할 말을 해.”

 “그놈들 어제 떼거지로 쳐들어왔었어.”

 “뭐?”

 설화가 깜짝 놀라 반문했다.

 “어제 네가 벤 추양문이라는 자식이 사형들이랍시고 우루루 사람들을 끌고 나타났단 말이지.”

 “정, 정말이야?”

 “내가 그딴 걸로 왜 거짓말 하냐? 난 거짓말 안 해. 조금 치사해서 그렇지.”

 “알긴 아는구나.”

 “암, 난 나 자신을 잘 알아.”

 어라? 이런 말 하려는 게 아닌데.

 운성이 고개를 흔들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내가 그놈들 처리하느라고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밤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다니.’

 설화는 미안한 마음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물론, 어제의 행동에 대해서 후회는 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복수하러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이 편히 잠을 자는 동안, 운성이 그들을 막았다니 미안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한참 후에야 설화가 넌지시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 다 처리했지.”

 “그럼 적수문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괜찮아.”

 “어째서?”

 “멸문시켰으니까.”

 “멸문...이라니?”

 “말 그대로. 적수문은 이제 강호에 존재하지 않아.”

 “......”

 설화가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돌렸다.

 ‘저 놈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내가 바보지.’

 멸문이라니.

 가당키나 한 소린가?

 아무리 시골 방파라곤 하지만 그래도 정파에서 인정을 받은 하나의 문파다. 그런 문파를 멸문시켰다고? 하룻밤 사이에?

 저런 장난을 치면 재미있는 걸까?

 도대체 정신연령이 몇 살일까?

 설화가 운성에게 무한한 불신을 가지는 동안, 운성은 태연히 다음 말을 이어갔다.

 “마교에서 사흘 후에 적수문을 방문한다고 했으니, 사흘은 여유가 있을 거야. 아마 그 후라도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을 테니 곧장 우리를 추격하긴 어려울 거야.”

 “네에, 네, 어련하시겠어요.”

 “어째 빈정거리는 것 같은데?”

 “몰라. 피곤해. 그만 얘기하자.”

 설화가 등을 기대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운성이 발끈했다.

 “네가 왜 피곤해? 그놈들 멸문은 내가 시켰는데.”

 “알았다구, 알았어.”

 “알면 다냐? 이건 은자 삼백 냥 정도는 더 받아야 한다고.”

 결국 설화도 참다못해 버럭 소리쳤다.

 “그만 좀 해! 도대체 언제까지 은자 타령이나 할 거야! 네 장난에 놀아줄 기분이 아냐! 그래, 백번 양보해서 멸문시켰다고 치자. 누가 멸문 시키랬어? 네가 날 보호하려고 그랬다며? 그럼 그건 네 임무잖아? 이미 계산된 부분이라구!”

 설화가 매섭게 몰아치자 운성이 벙 찐 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뭐라고 따지고 싶어도 그녀의 말이 구구절절 옳은 말이니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운성이 입을 비죽 내밀고 시선을 돌렸다.

 “생각보다 똑똑하군.”

 “뭐야?”

 설화가 도끼눈으로 소리쳤다.

 두 사람은 그러고도 한참동안 서로 말도 나누지 않은 채 마차에 몸을 맡겼다.

 얼마나 갔을까?

 설화가 먼저 침묵을 깼다.

 “그 도(刀)는 뭐야?”

 그녀가 가리킨 것은 운성이 허리춤에 차고 있는 두자가 좀 넘는 길이의 도였다.

 “이제부턴 필요할지도 몰라서.”

 “어디서 난 건데?”

 “극신한테 달라고 했어.”

 “극신?”

 “있어. 내 부하.”

 설화가 눈을 지그시 감으며 물었다.

 “넌 지치지도 않니?”

 “뭐가?”

 “장난치는 것 말야.”

 “무슨 장난?”

 “허풍 말이야! 허풍!”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허풍을 쳤다고 그래?”

 운성이 시큰둥하게 대꾸하자 설화는 기가 막혔다.

 “그러니까 네 말은 이곳 적수까지 귀신처럼 따라붙은 부하가 있고, 그 부하한테 어제 그 도를 받았단 말이지?”

 “맞아.”

 “좋아, 그럼 그 부하를 불러봐.”

 “지금?”

 “그래.”

 “안 돼.”

 “왜?”

 “사군자(死軍者)들은 낮엔 나오기 힘들어.”

 “사군자? 죽은 군사라는 뜻인가?”

 “대충 비슷해.”

 “왜 낮엔 나올 수 없는데?”

 “빛을 보면 별로 안 좋아.”

 “흥! 정말 귀신이라도 되는 모양이네.”

 “귀신은 아냐. 엄연히 사람이야.”

 순간, 운성의 표정에 아주 잠깐 씁쓸한 기색이 스쳤다. 그 모습이 너무 서글퍼 보여 보는 사람도 가슴이 시큰할 정도였다.

 하지만 워낙 찰나지간에 지나간 표정이었기에 설화는 자신이 잘못 보았나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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