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무적문주
작가 : 눈매
작품등록일 : 20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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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화
작성일 : 16-07-19     조회 : 535     추천 : 0     분량 : 5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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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화는 검을 고쳐 잡고 심호흡을 했다.

 왜 이들을 이길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는지 이제 알았다.

 이들은 단순한 도적떼가 아니다. 상당한 수준의 무공을 익힌 자들이다.

 하나 무공을 익혔다고 이상할 것은 없다.

 마도천하의 시대가 되면서 한때 사파의 무인이었던 자들이 문파를 잃고 산적이 되는 경우도 꽤 많았기 때문이다.

 이때, 운성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실전 부족이라는 거야.”

 “뭐?”

 설화가 여전히 애꾸를 주시하면서 반문했다.

 운성이 귀를 파며 태연히 대꾸했다.

 “실전에서는 정석이 안 먹힌다고. 비무를 한다면 네가 이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목숨을 걸고 싸우는 대결에서는 네가 불리해. 수많은 변초(變招)와 허초(虛招)가 난무하는 게 실전이야. 싸우는 어느 순간이라도 상대의 빈틈이 보인다면 과감히 초식을 깨트려야 하지. 한데 넌 아직도 초식에만 얽매여 있어. 무공 수준에 비해 터무니없을 정도로 멍청한 싸움을 한다는 거야.”

 “뭐야? 너 지금 말 다했어?”

 이때 애꾸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어이, 애송이. 싸우는 도중엔 한 눈 파는 게 아니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애꾸가 땅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달빛을 받아 빛나는 낫이 시퍼런 섬광을 뿜어내며 설화에게 날아들었다.

 카창! 깡!

 ‘빠, 빨라!’

 설화는 애꾸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막아내기에만 급급했다.

 확실히 애꾸의 움직임은 빨랐다. 범인이 보기에는 그의 낫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초식을 깨트리라고?’

 운성으로부터 그런 충고를 듣는 것이 왠지 분했지만, 그녀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다는 것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죽여본 적이 없었으니까.

 계속 물러나며 방어만 하던 설화가 어느 순간 눈빛을 반짝였다. 극히 짧은 순간, 상대의 겨드랑이가 비어있다는 것을 확인한 게다.

 행동은 생각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슈아아악!

 물러서기만 하던 그녀가 잽싸게 검을 대각선으로 올려쳤다.

 “크웃!”

 애꾸가 움찔 놀라 뒤로 물러났다.

 설화가 그대로 애꾸의 품을 파고들며 재차 이어서 검공을 펼쳤다. 시퍼런 검광(劍光)이 연이어 애꾸의 몸을 향해 날아들었다.

 깡! 까강!

 기세가 반전됐다.

 이번에는 설화가 신들린 듯 공격했고, 애꾸가 물러나며 막는 것에만 급급했다.

 ‘치익! 이 놈 갑자기 왜 이렇게...!’

 애꾸는 갑작스럽게 변한 상대의 검술에 당황하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하지만 그것은 검술이 바뀐 것도, 설화가 강해진 것도 아니었다.

 짐짓 다른 검술처럼 보이지만, 처음부터 그녀는 지금까지 줄곧 운비검식(雲飛劍式)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는 틀에 박힌 동작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변형된 검식이었다.

 그야말로 부는 바람에 따라 몸을 맡긴 구름 같은 움직임이었다.

 ‘이게 실전이라는 거구나!’

 설화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비무할 때의 두근거림과는 차원이 달랐다.

 목숨을 내건 싸움.

 지금의 두근거림은 설렘이나 기대 같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는 절박감에 더 가까웠다. 한데도 그 절박감이 묘한 흥분으로 바뀐다.

 한편 애꾸는 상황이 여의치 않자, 설화를 있는 힘껏 밀어내고는 훌쩍 물러났다.

 장기춘도 상황이 반전되자 이맛살을 구기며 나섰다.

 “이거 몸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군.”

 “죄송합니다, 형님.”

 애꾸가 고개 숙이며 사죄했다.

 장기춘은 애꾸에게 대답도 하지 않고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가 도를 앞으로 내밀자 시퍼런 도광(刀光)이 금방이라도 살을 엘 듯이 빛났다.

 설화는 검을 고쳐 쥐고는 장기춘을 마주 보았다.

 ‘이자들을 혼자 상대할 순 없겠어.’

 그녀는 냉정하게 판단했다.

 인정하긴 싫지만 운성의 안목은 꽤 정확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어쩌면 운성의 진짜 실력을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를 터.

 “운성.”

 “응?”

 “수당 줄게.”

 “엇! 정말?”

 “그래. 초과근무수당, 위험수당. 줄게.”

 “좋았어!”

 운성이 성큼성큼 나섰다.

 장기춘이 운성을 힐끗 보았다.

 “제 죽을 자리도 모르고 설치는구나.”

 “그러게 말이야.”

 운성이 히죽 웃으며 맞받아쳤다.

 찰나, 장기춘이 일갈을 터트리며 날아올랐다.

 “건방진 놈!”

 그 순간,

 쒜에엑!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와 장기춘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피슛!

 장기춘이 얼른 몸을 뒤틀며 훌쩍 물러났다.

 그를 스쳐지나간 화살이 나무 기둥에 꽂혀서 부르르 떨었다.

 장기춘이 피를 닦아내며 고개를 들었다.

 “웬 놈이냣!”

 그의 목소리에 대답이라도 하듯 어디선가 홍의를 입은 무사들이 바닥에 내려섰다.

 갑작스런 무사들의 등장에 악사파가 당황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곧이어 무사들 사이로 한 중년 사내가 내려섰다.

 설화가 반가움에 소리쳤다.

 “엽총관님!”

 “아가씨, 무사하셨습니까?”

 엽상섭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안부를 물었다.

 설화가 눈시울을 붉히며 엽상섭에게 달려왔다.

 “네, 저는 무사해요. 그런데 할아버지는요?”

 엽상섭의 표정에 그늘이 졌다.

 설화가 우뚝 멈췄다.

 엽상섭의 입에서 그녀가 가장 듣기 싫은 말이 흘러나왔다.

 “돌아가셨습니다.”

 “아아...!”

 설화가 그대로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주위에 있던 홍의 무사들이 얼른 그녀를 부축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다니.

 엽상섭이 착잡한 표정으로 설화를 내려다보았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아니에요. 총관님 잘못이 아닌걸요.”

 “태상문주님께서는 마지막까지 아가씨를 지켜달라고 저에게 당부하셨습니다.”

 설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복잡한 심경이었다.

 맘 같아서는 왜 목숨을 다해 할아버지를 지키지 않고 혼자만 살아왔냐고 따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시던 주인을 버리고 그 손녀를 보살피기 위해 달려온 그의 심정도 오죽할까.

 엽총관이 몸을 돌리고 악사파를 노려보았다. 그의 두 눈에서 섬뜩한 살기가 폭사됐다.

 “네놈들이 감히 아가씨를 능멸하고도 살아남을 줄 알았더냐?”

 그의 외침에 숲속의 밤새들이 푸드득 날아올랐다.

 동시에 그의 주위에 선 홍의 무사들도 무자비한 살기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숨 막힐 듯한 살기가 악사파에게 쏟아지자 그들은 하얗게 질린 표정이 되고 말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위풍당당하던 장기춘도 그 기세에 눌렸는지 더듬거리며 말했다.

 “잠, 잠깐... 이건... 계획한 거랑...”

 “닥쳐라! 네놈들은 이제 살아 돌아가길 포기하라!”

 엽상섭이 쏜살같이 몸을 날렸다.

 이어서 홍의 무사들도 붉은 바람처럼 악사파를 휩쓸어갔다. 그들은 엽상섭의 직할 부대인 신주대(神朱隊) 무사였다.

 인원은 스무 명에 불과하지만 무공만큼은 일류급이었다.

 “제기랄! 이게 무슨 짓이야!”

 장기춘이 미친 듯이 도광을 뿜어내며 맹렬히 저항했다.

 하지만 그들로서는 명문 정파인 비검문의 신주대를 당해내기가 힘들었다.

 신주대원들은 흥문에서 당한 수모를 여기서라도 갚겠다는 듯 매섭게 몰아쳐갔다.

 욕이 튀어나오고, 비명이 터지고, 피가 솟구쳤다.

 

 싸움이 벌어진지 일각도 채 지나지 않아 악사파는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시체 또한 참혹했다.

 이것이 명문 정파가 저지른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순식간에 적을 섬멸한 엽상섭이 설화에게 다가왔다.

 “아가씨. 이제 염려놓으십시오.”

 “네, 총관님. 고마워요.”

 설화는 힘없이 대꾸했다.

 눈앞의 적을 물리친 것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컸다.

 아버지를 잃고 나서 이젠 할아버지까지 잃은 것이다. 장사에 숙부가 있다지만, 지금까지 몇 번 만난 적도 없는 친척이었다.

 세상에 홀로 남았다는 고독감이 무섭게 밀려왔다.

 그런 마음을 짐작한 것인지 엽상섭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러났다.

 그가 오들오들 떨고 있는 주진석과 소영에게 다가갔다.

 “아가씨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가씨라니... 그럼...?”

 주진석이 놀란 표정으로 설화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사내치고는 너무 곱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목소리도 조금 이상하지 않았던가.

 주진석이 황망히 고개를 숙였다.

 “아, 아닙니다. 저희가 오히려 매번 은혜를 입습니다.”

 “앞으로는 저희가 여러분들을 은밀히 호위하면서 함께 하겠습니다.”

 엽상섭이 부드럽게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이때, 운성이 그에게 다가왔다.

 “이보슈.”

 “아, 자넨가?”

 “왜 하필 지금 나타난 거요?”

 “미안하네. 내가 좀 늦었지?”

 “아니. 나타나려면 조금 더 있다가 나타나던지. 이제 막 수당을 더 받을 수 있었는데. 당신들이 내 일거리를 전부 가로채 가면 어떻게 합니까? 난 뭐 먹고 살라고?”

 엽상섭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게 됐네. 하지만 이제부터 자네는 돌아가도 좋네.”

 “뭐라고요?”

 “여기부터는 우리가 아가씨를 호위할 테니 자네는 돌아가도 되네. 물론 선금은 돌려주지 않아도 되네. 지금까지 고생한 것으로 쳐주겠네.”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럼 완수금은요?”

 “완수금이라니?”

 “이 일을 완수했을 때 이천 냥을 더 받기로 했잖습니까?”

 “그건 당연히 줄 수 없네만. 그래도 자네로서는 더 이득이지 않나? 이 정도로 천 냥을 벌었으니 말이네.”

 엽상섭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처음부터 운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초면에는 태상문주의 체면을 생각해서 그에게 경어를 사용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었다.

 하나 운성은 그의 생각과 다른 대답을 내뱉었다.

 “그건 받아들일 수가 없소.”

 “어째서지?”

 “의뢰를 취소할 수 있는 건, 의뢰자 본인에 한해서요.”

 “하지만 태상문주님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으니...”

 “그렇다면 내가 맡은 의뢰를 취소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없는 거요.”

 엽상섭이 눈살을 구겼다.

 “자네, 왜 이렇게 말이 안 통하는 건가?”

 “말이 안 통하는 건 당신이지.”

 “뭐라?”

 운성이 그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잘 들어. 난 이미 의뢰를 맡았고, 이 의뢰를 완수한 다음 반드시 완수금 이천 냥을 받아야겠어. 그리고 의뢰자가 죽은 이상 의뢰를 취소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마지막으로... 나한테 왜 반말해?”

 “뭐?”

 “혹시 내가 계속 의뢰를 수행하면 계획에 무슨 차질이라도 생기는 거야?”

 엽상섭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무슨 헛소리냐!”

 “그런 게 아니라면 불편한 동행이겠지만 서로 기분 좋게 가자고.”

 “이놈...”

 “그리고 네가 말 놓으면 나도 말 놓을 거야. 나이는 내가 더 어린데 누가 더 손해인지 생각해봐.”

 운성이 몸을 돌리고 저벅저벅 걸어갔다.

 엽상섭은 그런 운성의 등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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