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무적문주
작가 : 눈매
작품등록일 : 20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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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화
작성일 : 16-07-19     조회 : 497     추천 : 0     분량 : 5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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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운비검식이야.”

 “운비검식이라면... 설마 비검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운비검식을 다른 곳에서도 사용하던가?”

 적충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하지만 문파 하나가 멸문했습니다. 그 계집이 이 정도의 힘이 있을 거란 말씀입니까?”

 “계집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하오면... 설마 엽상섭이?”

 파검이 더욱 눈을 가늘게 떴다.

 “모를 일이지. 한 번 배신을 한 자가 두 번 배신을 하지 말란 법이 없으니.”

 “그자는 그럴 배짱이 못 됩니다.”

 적충이 단호하게 말했다.

 파검은 그의 말을 부인하지 않았다.

 적충의 말이 맞다.

 비검문의 총관 엽상섭.

 그는 한 번 사문을 배신한 자다. 그자가 이제 와서 마교에 대항할 거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파검이 하늘을 보았다.

 “비검문에서 의뢰한 자가 있는 모양이던데...”

 “표운성이라는 자랍니다. 하지만 별 볼 일 없는 자라고...”

 “엽상섭이 그러던가?”

 “......”

 “자네는 엽상섭의 안목을 확실히 믿나?”

 “그럼 장로님께선 이것이 그자의 소행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

 “하지만 지금 운비검식의 흔적이라고...”

 운비검식을 사용하는 문파는 비검문밖에 없다.

 즉, 표운성이라는 자가 원흉이라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후후. 재미있군, 재미있어.”

 파검이 웃음을 흘렸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이대로 잠시 여행이나 떠나겠네.”

 “예?”

 “어차피 구경이나 하러 왔던 게 아닌가.”

 “아, 예...”

 본래 장로들은 본교의 일에 웬만해선 나서지 않는다.

 파검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특히 여행을 좋아해서 교내에 거주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그런 그가 적수문을 찾아왔을 때는 먼저 와 있던 적충도 깜짝 놀랐다.

 어지간해서는 본교의 일에 간섭도 하지 않던 파검이 일개 문파의 멸문에 관심을 가지다니. 아무리 지나던 길에 들렸다지만 그는 이런 자잘한 일에 시간을 허비할 만큼 호기심 많은 노인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런 파검이니, 이제 갈 길을 간다는 데야 이상할 건 없었다.

 적충이 넌지시 조언을 구했다.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요?”

 “허허, 단주는 자네이지 않나.”

 “파검 장로님의 고견(高見)을 듣고 싶습니다.”

 “흐음. 천멸조에서 약삭빠른 놈들을 추려내 엽상섭을 쫓아가보는 건 어떻겠나? 그럼 엽총관이 반응을 할 게고, 의중을 알 수 있을 테지. 만약 그가 아니라면 적당히 어울리다가 빠지면 될 터이고.”

 “과연 그렇군요. 하지만 엽상섭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의 소행이란 말씀입니까?”

 “우리가 모르는 다른 자들일 수 있겠지.”

 “그럼 운비검식은 도대체 어떻게 된...”

 “허허, 나라고 어디 정확하기만 한가? 실수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적충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실수라.

 그럴 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파검을 안다면 그가 실수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정말 엽상섭의 짓일까? 아니라면 그 차설화라는 계집이? 엽상섭이 아니라면 그 계집이라는 말인데...

 어쨌거나 시간이 없다.

 놈들이 호남으로 넘어가게 되면 천멸단은 이번 일에서 손을 떼야 할 게다. 대신 호남지부에서 뒤처리를 할 것이다.

 그들이 호남으로 넘어가기 전에 천멸단은 엽상섭의 배신 여부를 확실히 판단할 필요가 있었다.

 추혼단을 부르는 것은 그 다음이다.

 파검이 걸음을 뗐다.

 적충이 뒤를 따랐다.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허허, 흘러가는 구름이 어디 정해진 곳이 있던가?”

 파검은 마냥 사람 좋은 미소만 지으며 대문을 나갔다.

 

 파검이 떠난 후, 적충은 곧바로 천멸조장을 불렀다.

 “호엽(呼燁)!”

 “예, 단주님.”

 천멸조장 호엽이 하늘에서 떨어지듯 적충 옆으로 내려섰다.

 “천멸조에서 발 빠른 애들을 스무 명 정도 추려라. 우린 이 길로 엽상섭을 쫓는다.”

 “존명.”

 대답과 동시에 호엽이 어디론가 몸을 날렸다.

 적충은 마른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기분이 좋지 않아.’

 시골 방파 하나가 멸문했을 뿐인데,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사소한 사건일 텐데.

 이번만큼은 이상하게 마음 한 구석이 찝찝했다.

 

 ***

 

 마차는 쉬지 않고 달렸다.

 밤에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달렸다. 식사도 마차를 타고 가면서 했다.

 이 모든 것이 설화의 요구였다.

 물론, 그 대신 모든 경비를 설화가 지불하겠다고 약조했다. 꼭 그런 약조가 아니더라도 주진석은 설화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었다.

 그녀가 서두르고 싶다면 천리 길도 한 달음에 달려갈 기세였다.

 하지만 운성은 그런 주진석의 행동을 곱게만 보지 않았다.

 “감동을 잘 하는 사람은 배신도 잘 하는 법이야.”

 “남의 호의를 그런 식으로 매도하지 마.”

 설화가 냉랭하게 대꾸했지만 운성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단 말이지.”

 “언제는 아무도 믿지 말라는 총관님을 흉보더니?”

 “난 믿어도 된다니까.”

 “우리 아버지가 그러셨어. 나만 믿으라는 남자는 절대 믿지 말라고.”

 “아니. 나도 믿지 마라는 남자가 더 무서운 법이야. 넌 그걸 모르는구나.”

 “어째서?”

 “그런 남자들은 세상에 믿을 남자 아무도 없다고 말하면서, 그런 사실을 가르쳐준 자신만큼은 믿어도 된다고 역설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그런 자들이야말로 비겁한 자들이지. 아무도 믿지 말라고 말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배신을 은연중에 정당화시키거든. 즉, 양심을 속이기 쉬운 방법이야.”

 하여튼 말은 잘한다.

 설화는 대꾸할 말이 없어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운성이 말을 이었다.

 “자신을 믿으라는 말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말 중 하나야. 잊지 마.”

 “아, 예~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그렇지? 그럼...”

 “또 은자 타령 하면 때린다.”

 “쳇, 좋은 가르침을 줬더니 공짜로 들으려고 하다니.”

 “그딴 게 가르침이면 네 재채기 소리만 들어도 돈 내야겠다!”

 “오오, 그것도 좋은데?”

 “어휴! 말을 말지!”

 설화가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휙 돌렸다.

 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왔다.

 하늘은 먹구름이 끼어 잔뜩 낮아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만 같았다.

 

 쏴아아아.

 한 두 방울씩 떨어지던 비가 이제는 제법 굵어졌다. 조금만 더 가면 호남으로 들어서는데, 마지막 길목에서 비가 발목을 잡았다.

 길이 진흙으로 바뀌니 자연 이동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갔을까?

 설상가상으로 마차의 바퀴가 진흙에 빠지고 말았다.

 “힘쓰기 싫은데.”

 운성은 울상을 지으며 마차에서 내리길 거부했다. 하지만 일부러 은신하면서 호위를 하는 엽상섭과 신주대를 이런 일로 부를 수는 없었다.

 연신 투덜거리며 마차에서 내린 운성이 마차를 밀려다가 문득 바닥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아! 은자다!”

 찰나,

 쒜에엑! 타악!

 화살 하나가 빗줄기를 뚫고 날아와 마차에 박혔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운성이 자갈을 들고 투덜거렸다.

 “쳇, 은자가 아니잖아. 하긴 이런 곳에 떨어져 있을 리가 없지.”

 그러나 엽상섭과 신주대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어느새 마차 주위로 홍의 무사들이 병풍처럼 둘러싸며 나타났다. 설화 역시 화살이 날아온 것을 확인하고 검을 빼들며 그들 사이에 섞여서 섰다.

 운성이 뒤늦게 놀라 소리쳤다.

 “옴마! 다들 왜 그래?”

 엽상섭이 대답 대신 한 걸음 나서며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웬 놈들이냐!”

 “후후! 귀주 지역을 안전하게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가?”

 숲속에서 흑의를 두른 자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대략 스무 명 정도 되는 자들이었는데 마기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엽상섭의 표정이 꿈틀거렸다.

 ‘천멸단주? 이자가 여길 왜?’

 그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의 기억으로는 이러한 상황은 미리 약조되어 있지 않았다.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

 엽상섭이 검을 뽑아들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마교 놈들! 기어이 여기까지 쫓아왔구나! 내 네놈들의 머리를 베어 태상문주님의 한을 풀어드리겠다!”

 적충이 미간을 찡그렸다.

 뭔가 이상하다.

 분명 엽상섭은 흉흉하게 소리치고 있지만 전혀 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만약 그가 적수문을 멸문시키고 마교를 배신했다면 지금쯤 이렇게 소리치고 있을 일이 아니라 당장 치고 들어왔어야 했다.

 그렇다면 조금 더 지켜볼 수밖에.

 적충이 마주 소리쳤다.

 “닥쳐라! 본교가 무서워 도망친 애송이 주제에 말이 많구나!”

 적충이 수신호를 내렸다.

 일순간 천멸조가 새카맣게 날아올랐다.

 동시에 신주대도 검을 뽑아들고 마주쳐갔다.

 곧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엽상섭이 설화를 향해 말했다.

 “아가씨. 여긴 저희에게 맡기시고 마차에 계십시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저들의 인원이 많지 않으니 신주대로 충분히 상대할 수 있습니다.”

 과연 신주대는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해보이듯 훌륭하게 싸우고 있었다. 오히려 먼저 공격한 마교가 조금씩 밀리는 상황이었다.

 설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 나섰다가는 신주대가 자신을 호위하기에 급급해 싸움에만 집중을 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설화가 뒤로 물러나자, 엽상섭이 노호성을 터트리며 몸을 날렸다.

 “이놈들!”

 과연 그의 실력은 신주대의 무인들에 비해 단연 돋보였다.

 그가 가세하자 싸움은 점점 신주대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허무할 정도로 마교가 약해 보였다.

 ‘마교가 원래 저렇게 약한 곳이었나?’

 단 한 번도 마교의 싸움을 본 적이 없는 그녀로서는 당연히 드는 의문이었다.

 어쨌거나 마교를 이대로 물리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된 설화는 먼저 주진석과 소영에게 다가갔다.

 “걱정 마세요. 총관님과 신주대가 우리를 지켜줄 거예요.”

 “아, 예...”

 주진석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지만, 아직 놀란 마음은 채 가시지 않은 듯했다.

 산적에 이어 이번엔 마교까지!

 마교라면 지금까지 시비를 걸어오던 자들과는 급이 다르지 않나.

 “그런데... 혹시 표운성 보지 못했나요?”

 설화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운성이 보이지 않았다.

 “글쎄요. 저희도 너무 놀라서...”

 마교가 치고 들어온 상황에 남을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겠나? 지금도 너무 놀란 나머지 혼이 나갈 마당인데.

 설화가 습관처럼 한숨을 쉬었다.

 ‘보나마나 또 어디로 도망쳐서 숨었겠지!’

 그녀는 운성이 나타나면 단단히 따지겠다고 마음먹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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