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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조절장치
작가 : 오새롬
작품등록일 : 20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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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조절장치 28화 (마지막화)
작성일 : 17-07-17     조회 : 486     추천 : 0     분량 : 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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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애 많이 쓰셨습니다. 근데 이를 어쩌죠. 저 기계 없이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소설은커녕 삼류 작가 타이틀에서 영영 못 벗어날 텐데요.”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감정조절장치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어떻게 이 사실을 알게 됐는지 묻기도 전에 숨겨진 비밀들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오래 전 출판 사업이 난항을 겪자 가족과 친구, 심지어 회사 사람들까지 저를 떠나더군요. 극심한 우울증에 찾은 곳이 이 병원이었고, 이 자리에 누워있는 원장선생님이 저에게 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바로 당신을 통해서 말이죠.”

  감정조절장치를 되찾기 위해 원장이 이용한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쓰러져가는 인생을 다시 회복할 것을 핑계로 그가 갖고 있던 기계까지 노린 것이다. 아직 숨겨진 이야기가 남아있는지 점잖게 외투를 벗던 편집장이 말을 이어 나갔다.

  “당신이 쓰고 있는 글이 갑작스럽게 저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감정조절장치 때문이었습니다. 당신도 원고를 마감할 때까지 기계의 힘을 많이 빌리지 않았나요? 삼류작가가 일류가 된다는 것은 결코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겠죠. 이제 불 필요한 계획을 멈추고 원래대로 돌아가시죠.”

  잠들어있는 원장과 한 편을 이룬 편집장의 모습은 지금껏 봐온 것과 많이 달라 있었다. 돌이켜보니 글을 써내려 갈 때마다 막히는 부분 앞에선 늘 기계를 작동시키곤 했다. 단지 원고를 쓰는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이 후회로 다가온다. 한편, 조용히 자리를 지키던 그녀에게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져 곧장 얼굴을 살폈다. 가녀린 손목에 무언가 꽂혀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설마 이 여자한테 허튼 수작 부린 거라면 당신도 똑같이 만들어 주겠어.”

  떨리는 목소리가 병원을 채우자 눈을 감고 있던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는 여유롭게 그를 안심시킨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도 사람 죽이는 일에는 취미가 없으니까. 단지 잠든 것뿐입니다. 옆에 있는 원장선생님처럼 말이에요.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영원히 깨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에 놓인 또 다른 주사기가 그녀의 목을 향했다. 오래 전 원장이 사내를 죽일 때 쓰던 약품과 꼭 닮은 색깔이 불길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계를 들고 작업실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어쩌면 여기 있는 여자를 영안실로 안고 가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겠군요.”

  애초에 그녀를 혼자 두고 병원을 나서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계획을 그녀에게만 맡기고 자신은 멀찌감치 떨어져 안전하게 일을 처리하려던 두려움이 모든 것을 망친 셈이다. 고를 수 있는 답안이 하나밖에 없다는 걸 알지만 이대로 포기하기엔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많은 사람들이 눈에 밟혔다.

  함부로 몸을 움직였다가는 영영 그녀를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어떤 결정도 내리기 힘들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다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감정조절장치 쪽으로 자연스럽게 손을 움직인다. 그가 작업실로 돌아갈 것을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한 편집장이 주사기를 내려놓을 때 쯤 분노와 슬픔을 재빨리 최대치로 돌려놓았다. 긍정적인 감정을 강력하게 실행시켰을 때 오랫동안 잠에서 깨지 못한다면 좋지 않은 감정을 최대치로 느낄 때도 그에 맞는 부작용이 있을 것이다. 돌아가신 선생님은 어떠한 감정도 심하게 치우치지 않도록 적절한 균형을 준비하셨을 거라 믿는다.

  기계의 사용법을 모르는 편집장이 벌어진 일들에 대해 확실히 알지 못한 상태였기에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길 재촉했다. 기계가 효과를 내기까지의 시간을 계산하며 재빨리 입원실 밖으로 뛰쳐나와 입구를 봉쇄한다. 의사가 잠에서 깨어날 시간까지 계산한다면 대략 5분 동안은 그들을 막아야 했다. 어쩌면 그녀를 영원히 깨지 않게 만들어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이 염려되지만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그치지 않는 비명소리와 입원실을 빠져나가기 위한 편집장의 몸부림은 계속 되었고 잠에서 깨어난 듯한 원장의 신음소리까지 귓가를 스친다. 있는 힘껏 손잡이를 붙들고 있던 양손 사이로 부러진 손톱이 바닥에 떨어졌다. 두 남자를 묶어놓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펼치고 있는 그의 눈에선 눈물과 고통이 교차한다. 요란하게 울리던 울부짖음이 잦아들자 서서히 문을 열고 입원실 안으로 들어섰다.

  분노와 슬픔에 사로잡힌 두 남자가 서로를 공격하다 차가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옆 침대에서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그녀를 들쳐 업고 사람이 없는 입원실로 향한다. 죽지 않았기를 고통 속에 기도하며 내달리는 걸음이 바닥에 흐르는 피와 함께 범벅이 되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침대에 그녀를 눕혀 곧장 간호사에게 연락을 취한다. 의식을 잃은 와중에 받았을 괴로움을 떠올리면 자신의 선택이 옳은 지 확신 할 수 없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오늘밤까지 병원 입구를 지키고 있던 간호사가 재빨리 그녀의 호흡을 체크한다. 아직까지 분명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 가슴을 내칠 만큼의 슬픔이 되어버렸다. 한창동안 호흡과 맥박을 체크하며 정신없이 움직이던 간호사가 그를 바라보며 중요한 말들을 남긴다.

  “처음부터 단순한 수면제를 주입한 상태라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거예요.”

  다른 무엇보다 그녀의 생명이 무사하다는 사실이 격정의 눈물로 다가와 그의 눈을 덮는다.

  “제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많이 불안하고 괴로운 상태였나 봐요. 잠에서 깨어나도 외상 후 스트레스가 환자를 많이 괴롭힐 거예요. 옆에서 잘 지켜봐 주세요. 여기까지가 제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네요.”

  자신이 관여 할 수 있는 부분 외에는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지 않은 채 곧장 병원 밖을 떠난다. 밤새 병원 앞을 지키고 있겠지만 부디 간호사를 다시 부를 일이 없길 바라며 잠든 그녀의 곁을 지켰다.

  창밖으로 내리는 빗줄기가 다음 날 아침이 된 것을 알렸지만 좀처럼 움직임이 없는 그녀가 그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있을 입원실로 가보려 했지만 다시는 혼자서 떠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무거워진 마음을 달랬다. 며칠 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그의 몰골이 막바지로 다다를 쯤 조금씩 그녀의 손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파르르 떨리는 양 쪽 눈꺼풀도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정신이 좀 드세요? 더 이상 혼자 내버려두지 않을게요. 빨리 눈 좀 떠보세요.”

  그의 말이 의식의 흐름에 관여 했는지 조금씩 떨리던 눈동자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 움직인다. 아직 온전히 회복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죽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안도감이 밀려왔다. 힘없이 말라버린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눈동자가 옆에 놓인 물 잔을 향한다. 서둘러 물 한 컵을 입에 가져다 준 후 말라버린 자신의 목까지 축이자 완전히 회복되어가는 과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며칠간의 시간이 흐르고 병원 출입을 완전히 통제한 뒤 천천히 걸음을 옮겨본다.

  다행히 그녀의 몸은 빠르게 회복 되어갔고 가끔씩 찾아오는 불안 증세와 숨통이 막힐 듯한 고통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순리대로 진행되는 것 같았다. 서로를 의지하며 며칠 전 마지막 사람들을 처리했던 옆 병실로 향한다. 입구에서부터 떨어져 있던 핏자국이 그의 것이라는 걸 알아 챈 그녀가 천천히 그의 손을 잡아 주었다. 병실 안으로 들어서자 아직도 가슴에 꽂혀있는 주사기와 의료용 칼이 각자 자신의 몸을 향해 있다. 분노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한 이들의 선택은 결국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어내는 것뿐이었다.

  두 사람을 침대에 태워 영안실로 옮긴 뒤 핏자국을 닦아 내기 위해 서둘러 몸을 움직인다. 굳어버린 핏덩어리들을 닦아내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서로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큰 의지가 되었다. 그렇게 수년에 걸친 전쟁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새겨졌지만 무언가를 지켜냈다는 성취감이 곧장 두 사람의 어깨를 다독인다.

  더 이상 병원에 머무르는 것은 무의미 한 일 같아 아파트에 혼자 있던 아저씨를 만나기 위해 서둘러 이동한다. 며칠 동안 집에 놓인 식수와 음식들로 허기를 채웠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한 모습이 자신들의 승리를 알려주고 있었다. 두 사람이 무사하게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 아낌없는 위로를 쏟아낸다.

  “무사히 돌아왔군. 굳이 잠금장치를 설치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안전하게 지내고 있었네. 미안하지만 다음에 날 가둘 일이 있다면 최소한 비밀번호쯤은 바꿔두는 게 좋겠어.”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 된 상태라고 생각했지만 기계를 능숙하게 다루던 아저씨에게 이 정도 잠금장치는 지퍼로 잠긴 책가방 정도의 난이도였다. 그럼에도 집밖으로 빠져나갈 생각조차 하지 않은 걸 보니 이제 자신들과 완전한 팀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욕심을 부리지 않은 채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났지만 감정조절장치에 대한 미련은 온전히 떨치지 못한 듯 했다. 마지막까지 굳게 잠긴 방문을 바라보며 별 다른 인사말 없이 두 사람 곁을 떠난다.

  원장의 가짜 딸로써 살아 온 수년의 세월까지 합치면 꽤 오랜 시간 감정조절장치에 대한 전쟁은 계속 되어왔다. 의도치 않게 몇몇의 희생자가 생기기도 했지만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한 싸움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자신들의 편이 되어 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전쟁의 대가는 생각보다 달콤했다. 돌아가신 의사선생님이 계신 곳을 찾아가 지금껏 하지 못한 말들로 감사를 전하고 싶은 맘이 밀려온다.

  푸르른 하늘 밑에 피어난 꽃들 사이로 처음 찾아온 묘지가 보인다. 오랜 시간 마음으로 각자의 마음을 이야기 하다 자리에 앉아 시원한 공기를 맡는다.

  “이제야 모든 게 끝난 것 같네요. 아버지 이후로는 더 이상 아무도 죽지 않길 바랐는데, 인간의 욕심에서 시작 된 싸움은 어쩔 수 없는 걸까요?”

  아무래도 몇몇 사람들의 죽음이 마음에 걸렸는지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속죄하던 그녀가 눈물을 흘린다. 비록 그들이 직접 죽인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 할 수도 없었기다.

  “욕심에서 비롯된 싸움이라면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큰 쪽이 살아남는 것 같아요. 이번 싸움에선 우리가 지키고 싶은 게 더 많았던 거고요.”

  잠시 동안 치열하게 살아 온 순간이 자신의 앞을 스칠 때마다 이 전의 자신은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이제 감정조절장치가 없는 곳에서 자신의 글을 써내려가며 살 생각을 하니 조금은 막막하기도 하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사람의 감정은 그 어떤 기계로든 인위적으로 조절되어서는 안 되며 한 가지 감정에 지나치게 치우칠 때 견디지 못할 괴로움이 동반된다는 것이었다. 이미 그 정답을 깨달은 두 사람은 자신의 얼굴에 스치는 바람결을 만끽하며 기분 좋은 행복감에 빠져 들었다.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감정조절장치에 대한 열망이 잠시나마 잠잠해 지는 순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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