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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린토스 - 계약의 여기사
작가 : 라마레뜨
작품등록일 : 20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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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팡디뉴의 아틀리에 (1)
작성일 : 17-06-17     조회 : 295     추천 : 1     분량 : 4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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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가씨, 황자님과 이야기는 잘 나누셨어요?”

 

 

 에르하르트가 황궁으로 돌아가고 난 후, 응접실 탁자에 쓰려져 있던 아리안에게 매리앤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모르겠어.”

 

 

 아리안이 완전히 지친 목소리로 맥없이 대꾸하자 매리앤이 어이가 없단 얼굴로 되물었다.

 

 

 “아니, 잘된 거면 잘된 거고, 안된 거면 안 된 거지 모르겠다는 건 뭐에요?”

 

 

 ...그렇지만 진짜 모르겠는걸.

 

 에르하르트와 만나기 전, 아리안은 예전과 다른 대화를 통해 그의 반응을 살피려고 마음먹었었다. 그녀의 의도대로 그는 예전과 사뭇 다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어쩐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에르하르트보다 아리안 본인이 더 이상한 태도를 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본인을 에른으로 불러달라니...!

 

 이전 생에서 아리안이 에르하르트를 에른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지 3년이 넘었을 때였다.

 

 도대체 에른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리안이 깊게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였다. 그녀의 귓가에 다시 매리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나저나 아가씨 이건 뭔가요?”

 

 

 지친 고개를 겨우 들고 쳐다보자 매리앤의 손에 들린 황금빛 편지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아, 그건 파티 초대장이야.”

 “파티 초대장이요?”

 “일주일 뒤가 건국 기념일이잖아. 황궁에서 그 기념으로 파티를 여는 모양이야.”

 “어머?! 건국 기념 파티면 황궁에서 여는 파티 중에서 가장 큰 파티잖아요! 황자님께서 그 파티에 아가씨를 초대하신 거예요?!”

 

 

 호들갑을 떨며 외치는 매리앤에게 아리안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 파티 초대장은 떠나기 직전 에른이 아리안에게 주고 간 것이었다.

 

 

 “이번 건국 기념 파티에서 아버님께 군대를 지휘하고 싶다고 말씀드려볼 생각이네.”

 “좋은 생각이신 것 같네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곳에서 말씀드린다면 폐하께서도 쉽게 거절하지 못하실 테니까요.”

 “그래, 그러니 아리안 그대도 꼭 파티에 참석하도록.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소드마스터인 그대와 함께 전쟁터로 나가겠다고 하면 아버님께서 더더욱 거절하지 못하실 테니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에른이 내민 황금빛 파티 초대장을 아리안은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정말이지 생각하면 할수록 에른에게 휘둘리기만 한 것 같다는 생각에 아리안은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런 아리안의 심정을 알 리 없는 매리앤은 여전히 호들갑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어머! 어머! 다른 것도 아니고 건국 기념 파티에 초대 받으시다니! 그것도 황자분들 중에서 제일 잘생겼다고 소문이 자자한 에르하르트 황자님께 초대를 받으시다니! 이게 꿈이에요, 생시에요?!”

 “...제국에서 제일 큰 파티에 초대받은 거보다 잘생긴 황자님께 초대받은 게 더 중요한 거야?”

 

 

 매리앤의 반응에 어처구니가 없어진 아리안이 그렇게 되묻자 매리앤이 싱글 싱글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렴 어때요 아가씨! 중요한 건 아가씨가 이 파티에 초대받으셨다는 거죠! 살다 살다 리베이드 남작가문에 이런 경사가 생기다니! 아가씨도 엄청 기쁘시죠?!”

 

 

 매리앤의 이 말에 아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금방이라도 기뻐서 죽을 것 같은 매리앤과 달리 아리안은 이 상황이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어차피 파티라면 이전 생에서 질리도록 많이 가보았다. 게다가 아리안은 파티를 그다지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귀족들의 험담들과 귀부인들의 질시어린 시선들까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파티에서 좋은 거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던 것 이었다.

 

 ...아니, 생각해보면 하나쯤은 좋은 게 있을 지도.

 

 황실 파티에서 먹었던 수많은 디저트들을 떠올리며 아리안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였다. 한참동안 호들갑을 떨던 매리앤이 갑자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아가씨. 파티에 참석하시는 건 좋지만 그러려면 드레스를 입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게나 말이야.”

 

 

 그러고 보면 이것도 문제였다. 지금껏 아리안은 파티에 참석할 때도 드레스를 입은 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수많은 귀족들과 귀부인들이 뒤에서 그녀를 욕했지만 그딴 것 따위 아리안에게는 알바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어쨌건 아리안은 에른에게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어필해야만 했다.

 

 ...물론 그게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이왕 시작한 여기서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이번 건국 기념 파티에는 레그네트가 참가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아리안은 더더욱 드레스를 입어야만 했다.

 

 다만 문제는 그녀가 가진 드레스가 지금 입고 있는 모슬린 드레스뿐이라는 것이었다. 모슬린 드레스는 평소에 입기에는 그닥 문제가 없었지만 건국 기념 파티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아리안의 기억 속 귀부인들은 이런 파티에서는 보석과 레이스로 치장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곤 했었다. 그 정도로 화려한 드레스를 입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모슬린 드레스 보다는 화려한 걸 입어줘야 했다.

 

 하지만 아리안의 수중에는 그 정도로 화려한 드레스를 살 돈이 없었다. 게다가 드레스를 만들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건국 기념 파티까지는 고작 1주일이 남아 있었다. 수도의 유명 드레스샵들은 이미 예약받은 드레스들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을 터였다. 뭐, 돈을 잔뜩 쥐어준다면 하루만에도 드레스를 만들 순 있겠지만 가뜩이나 부족한 예산으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다.

 도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아리안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껄끄러운 위화감에 신경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이상한 느낌...

 

 그 순간 아리안은 앉아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가씨?!”

 

 

 매리앤이 그녀를 부르는 것과 동시에 아리안은 섬광처럼 응접실 창문 밖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녀의 신경을 거스르는 이물감.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마나가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창문 밖으로 빛처럼 쏘아져 나온 아리안은 그대로 들고 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푸른 번개처럼 번쩍이는 오러가 검 끝에서 일렁였다.

 

 하지만 아리안의 검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베어 넘겨야 할 상대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여전히 푸른 오러가 일렁이는 검을 든 채 아리안은 조심스레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녀에게 이상한 위화감을 주었던 마나는 아직까지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적은 마나의 흔적뿐이었다. 만약 그녀가 소드마스터가 아니었다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흔적뿐이었다. 그 외에는 어떤 이상한 점도 감지되지 않았다.

 

 결국 한참 동안 주변을 쏘아보던 아리안은 조심스럽게 다시 검집에 검을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미세하게 남아있던 마나의 흔적은 어느새 공기 중으로 흩어져 버렸다.

 

 왜 이곳에 다른 사람의 마나가 나타난 것인지, 그리고 이것이 과연 누구의 마나인지 아리안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 * *

 

 

 에르하르트를 만난 지 정확히 이틀 뒤, 아리안은 깊은 한숨을 쉬며 멋들어진 은색 간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에 조용히 흔들리고 있는 그 간판에는 반짝이는 황금색 글씨로 ‘팡디뉴의 아틀리에’ 라고 쓰여 있었다.

 

 팡디뉴의 아틀리에는 카스티야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드레스 샵이었다. 아리안은 예전에 참가했던 파티에서 이곳의 이름을 들었었다. 삼삼오오 둘러 앉아 부채를 팔랑이던 귀부인들은 모두들 입을 모아 팡디뉴의 새 드레스를 칭찬하곤 했었다.

 

 그곳의 간판을 바라보며 아리안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평생 동안 한 번도 드레스를 사보지 않았던 아리안은 도대체 드레스 가격이 어느 정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곳은 수도에서 가장 이름 높은 드레스 샵이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가격 역시 수도에서 가장 높을 것이 틀림없었다.

 

 ...차라리 덜 유명한 다른 드레스 샵을 가볼까...

 

 아리안의 머릿속에 잠시 이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곳도 한참 동안 기억을 더듬어 찾은 곳이었다. 그녀가 다른 드레스 샵을 알고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되건 안 되건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리안은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천천히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문이 바깥쪽으로 확, 하고 열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아리안이 그대로 계단 밑으로 떠밀리려는 순간, 단단한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강하게 감싸 안았다.

 

 

 “이런, 실례.”

 

 

 귓가에 속삭여지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아리안은 고개를 들고 자신을 붙잡은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아리안은 그대로 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한 팔로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의 전남편인 레그네트 폰 에스테 공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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