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라비린토스 - 계약의 여기사
작가 : 라마레뜨
작품등록일 : 2017.6.7
  첫회보기
 
마담 팡디뉴의 아틀리에 (2)
작성일 : 17-06-18     조회 : 280     추천 : 1     분량 : 4758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바람결에 살랑거리는 검은 머리카락과 태양이 떠오르기 직전 서서히 어둠이 물러가는 새벽녘 하늘처럼 어둡게 빛나는 보라색 눈동자, 얼핏 보면 오만해보일 정도로 자신만만해 보이는 표정까지 그는 아리안과 처음 만났던 그 모습 그대로 그녀의 눈앞에 서 있었다.

 

 이 뜻밖의 상황에 놀란 아리안은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도 그는 분명히 레그네트 폰 에스테 공작이었다.

 

 아리안의 귓가에 그의 뜨거운 숨결이 와 닿았다. 조용히 시선을 돌리자 빛을 품은 채 조용하게 일렁이는 보랏빛 눈동자가 아리안의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차갑게 비어버린 눈동자가 아닌 생생하게 빛나고 있는 그 눈동자를 바라보며 아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레그네트의 보랏빛 눈동자가 웃음기를 머금은 채 부드럽게 휘었다.

 

 

 “괜찮다면 이만 내려놓아도 될까, 레이디?”

 

 

 그제야 아리안은 그의 단단한 팔이 아직도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죄송합니다.”

 

 

 당황한 아리안이 곧바로 레그네트의 품에서 황급히 빠져나가려고 하자 그가 더욱 강하게 아리안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아리안의 귓가에 속삭였다.

 

 

 “잠깐, 그렇게 급하게 움직이면 위험하다고.”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아리안을 계단 위에 내려놓으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죄송할 거까지야. 덕분에 이렇게 아름다운 레이디를 품에 안을 수 있었으니 오히려 내 쪽에서 감사할 일이지.”

 

 

 ...그래, 그러고 보니 이런 인간이었지.

 

 마지막에 보았던 비참한 모습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사실 레그네트는 온 제국 내에 명성이 자자한 바람둥이였다.

 에르하르트가 화려하고 섬세한 예술품 같은 미남이라면 레그네트는 그와 반대로 시원시원하고 남자다운 타입의 미남이었다. 선이 굵고 날카로운 그의 얼굴은 마치 정으로 거칠게 깎아놓은 조각상 같았으며 검은 머리카락과 어둡게 일렁이는 보라색 눈동자는 그를 더욱 차가워 보이게 만들었다.

 

 게다가 늘씬한 스타일의 에르하르트와 달리 그는 매우 키가 크고 어깨가 넓어 아리안의 가는 허리는 그의 한 팔에 안기고도 남을 정도였다.

 

 예전에 파티장에서 만났던 한 귀부인은 레그네트에게 제국에서 가장 귀족다운 사람이라고 말했었다. 아리안은 그를 볼 때마다 이 표현이 정말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레그네트는 항상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 미소가 걸린 입술은 오만하면서도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평가는 레그네트가 제국 최고의 가문이자 황제만큼이나 어마어마한 재산을 소유한 에스테 공작가의 주인이기에 나올 수 있는 것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리안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레그네트가 어두운 보랏빛 눈동자를 가느다랗게 뜨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레이디, 우리 혹시...”

 

 

 그 순간 갑자기 콰앙, 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아리안의 옆에 서 있던 나무가 시뻘건 화염에 휩싸였다.

 

 ...마법...!

 

 마치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는 불꽃은 화염 마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챙캉, 하는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와 함께 곧바로 자신의 검을 뽑아든 아리안은 마법이 날아온 쪽으로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아리안을 향해 눈부신 섬광이 마치 번개처럼 빠르게 달려들었다. 아리안이 검으로 그 섬광을 튕겨내려는 찰나, 아리안의 코앞까지 날아왔던 그 눈부신 섬광이 마치 벽에 부딪친 공처럼 순식간에 튕겨져 날아갔다.

 

 이런 식으로 마법을 튕겨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마법으로 만든 방어막뿐이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아리안의 주변에는 마법으로 만든 방어막이 쳐져 있던 것이었다.

 

 상대방 마법사 역시 방어막의 존재를 눈치 챈 듯 날카로운 검을 든 채 아리안을 향해 달려 들어왔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방어막을 찢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물리적인 공격뿐이었다. 물론 8서클 마법사인 레그네트가 만든 방어막은 고작 마법사가 휘두르는 검따위에는 결코 찢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금방이라도 방어막과 자신을 찢어버릴 듯 달려드는 마법사를 바라보며 아리안은 자신의 검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리고는 눈앞의 방어막을 향해 오러가 일러이는 검을 휘둘렀다.

 

 콰앙, 하는 폭발음과 함께 아리안의 마나와 레그네트의 마나가 부딪쳤다.

 

 오러가 맞부딪치는 그 폭염 속으로 아리안은 그대로 몸을 내던졌다. 그리고는 폭염에 휩싸여있는 마법사의 심장에 거침없이 검을 쑤셔 넣었다.

 

 

 “크아아아악!”

 

 

 외마디 비명을 지른 남자의 몸이 천천히 스러지기 시작했다. 그대로 남자의 몸을 꿰뚫은 검을 잡아 뽑자 남자의 심장에서 촤아아악, 하고 분수 같은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검에 묻은 핏줄기를 털어내며 아리안이 몸을 돌리자 그녀의 시선에 공중에 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방금 전 아리안의 검에 쓰러진 마법사와 똑같은 로브를 입고 있는 그 남자는 마치 누군가에게 목이라도 졸리는 듯 괴로운 표정으로 허공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그때 아리안의 귓가에 싸늘하게 가라앉은 레그네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를 사주한 놈이 누구냐.”

 

 

 허공에 뜬 남자가 힘겹게 고개를 돌리자 레그네트의 오른손이 밝게 빛났다. 그 순간 뚜둑, 하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기괴한 방향으로 비틀어졌다.

 

 

 “으아아아아아악!”

 

 

 고통에 가득 찬 남자의 비명소리가 푸른 하늘에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캐스팅 한마디 없이 이렇게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를 아리안은 레그네트 외에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역시 볼 때마다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레그네트의 입술 끝이 천천히 비틀어져 올라갔다.

 

 

 “뭐, 대답하고 싶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아. 오히려 대답하지 않는 편이 나로선 좋으니까.”

 

 

 허공에 매달린 남자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서리는 것과 함께 그의 양팔이 뒤쪽으로 거세게 비틀어졌다.

 

 

 “크아아아아악!”

 

 

 무시무시한 남자의 비명 사이로 레그네트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네놈이 끝까지 대답하지 않으면 내 마음대로 배후를 지정하면 되는 일이니까.”

 “...그, 그런...”

 

 

 경악한 남자가 그렇게 말을 내뱉는 찰나, 그의 목이 엄청난 속도로 180도로 홱 하고 꺾여버렸다. 그와 동시에 숨이 멎은 남자의 몸이 그대로 땅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간단하게 남자를 처치한 레그네트가 곧바로 아리안 쪽으로 몸을 돌렸다.

 

 

 “레이디, 몸은 괜찮...!”

 

 

 이렇게 입을 연 레그네트의 보라색 눈동자가 잠시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가 작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디서 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리베이드 경이었군.”

 “제 이름을 어떻게 아시는 거죠?”

 

 

 아리안의 질문에 레그네트가 아리안이 들고 있는 검을 가리켰다.

 

 

 “그런 대단한 오러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 그대 외에 또 누가 있겠어.”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에 아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들고 있던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제 얼굴은 어떻게 아시는 거죠?”

 

 

 아리안이 알기로 그와 아리안이 처음 만난 것은 그를 자신들의 편으로 설득하기 위해 아리안이 에스테 공작가로 그를 찾아갔을 때였다. 그 전까지 아리안은 그를 만나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늘 그를 이곳에서 만난 것도 완벽한 우연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자신의 얼굴을 알고 있다니 아리안으로서는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이거 엄청 섭섭한데 그래. 난 그대를 기억하는데 그대는 날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니 말이야.”

 “우리가 언제 만난 적이 있었습니까?”

 

 

 너스레를 떠는 레그네트에게 아리안이 다시 질문을 던지자 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 신년 파티장에서 만났었는데 기억이 안나나 보지?”

 

 

 아리안 역시 그 파티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파티는 아리안이 황실 기사단에 임명되었던 파티였기 때문이었다.

 

 

 “...그때 전 파티장에 30분도 채 있지 않았는데 대체 우리가 언제 만났다는 거죠?”

 

 

 그때 아리안은 황제에게 기사단 서임을 받자마자 곧바로 파티장을 떠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레그네트와 만난 기억이 없던 아리안이 이렇게 되묻자 레그네트가 당연한 것도 묻는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야 물론 황제 폐하께서 그대에게 기사 서임을 내릴 때 만났지. 그때 황제 폐하의 옆에 나도 서 있었는데 기억나지 않나 보지?”

 

 

 ...기억을 하면 그게 더 용하겠다.

 

 정말로 택도 없는 소리에 아리안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레그네트는 그런 아리안의 심정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다시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안타깝게도 그대는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다시 내 소개를 하도록 하지. 내 이름은 레그네트라고 하네. 레그네트 폰 에스테.”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동안 성함은 익히 들었습니다.”

 “그래? 그대가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니 놀라운데. 내 이름을 어디서 들은 거지?”

 “그야 물론 황실 마법사들에게서 들었지요. 황실 기사단 출신인 제가 황실 마법사단의 단장 이름도 모른다면 그 편이 더 이상한 일 아닙니까?”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레그네트에게 아리안이 그렇게 대꾸해주자 레그네트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듣고 보니 확실히 그대가 내 이름을 모르는 편이 이상하긴 하겠군. 그나저나 나 때문에 옷이 완전히 엉망이 됐군 그래.”

 

 

 레그네트의 그 말에 아리안이 고개를 숙이자 온통 피범벅이 된 자신의 옷이 보였다. 아마도 조금 전 마법사를 처치할 때 핏줄기를 뒤집어 쓴 모양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놈이 다 쓰러진 다음에 검을 뽑을 걸 그랬다고 아리안은 마음 속 깊이 후회했다.

 

 

 “그런 상태로 돌아다니면 순찰대에게 곧바로 잡혀갈 거 같은데.”

 “상황 설명을 하면 괜찮겠지요.”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레그네트에게 아리안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꾸하자 그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지 말고 마침 옷가게 앞이니 새로 옷을 사는 게 어때? 그대가 이렇게 옷을 망치게 된 건 모두 나 때문이니 내가 새 옷을 사주도록 하지.”

 

 
 

맨위로맨아래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18 전야제 (3) 6/29 314 0
17 전야제 (2) 6/27 362 0
16 전야제 (1) 6/23 298 0
15 마담 팡디뉴의 아틀리에 (4) 6/21 302 1
14 마담 팡디뉴의 아틀리에 (3) 6/20 278 0
13 마담 팡디뉴의 아틀리에 (2) 6/18 281 1
12 마담 팡디뉴의 아틀리에 (1) 6/17 296 1
11 은빛 머리카락의 황제 (4) 6/16 292 1
10 은빛 머리카락의 황제 (3) 6/15 294 1
9 은빛 머리카락의 황제 (2) 6/14 310 2
8 은빛 머리카락의 황제 (1) 6/13 320 2
7 귀환 (6) 6/12 319 3
6 귀환 (5) 6/11 343 3
5 귀환 (4) 6/10 316 3
4 귀환 (3) 6/9 283 3
3 귀환 (2) (1) 6/8 375 4
2 귀환 (1) 6/8 339 3
1 프롤로그 6/7 56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