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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린토스 - 계약의 여기사
작가 : 라마레뜨
작품등록일 : 20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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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팡디뉴의 아틀리에 (3)
작성일 : 17-06-20     조회 : 278     추천 : 0     분량 : 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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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습니다.”

 

 

 처음 보는 사이에 덜컥 옷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아리안이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자 레그네트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리베이드 경 그대는 소문대로 강직하고 청렴결백한 기사로군. 하지만 청렴함도 좋지만 이번에는 내 입장도 좀 이해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무슨 입장 말이죠?”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말에 아리안의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자 레그네트가 입 끝을 살며시 올렸다.

 

 

 “잘 생각해보라고. 지금 그대는 내게 아주 큰 도움을 줬지. 그런데 그런 그대에게 아무런 사례도 하지 않는다면 황실 마법사 단장인 내 체면이 뭐가 되겠어, 안 그래?”

 “...글쎄요. 전 그렇게 큰 도움을 드린 것 같지 않은데요.”

 

 

 아리안이 방금 전 레그네트에게 목이 꺾여 죽은 마법사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하자 레그네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럴 리가. 그대는 정말 큰 도움을 줬다고. 그대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이렇게 간단하게 놈들을 처리할 수 없었을 거야.”

 

 

 ...아니, 누가 봐도 엄청나게 간단히 처리하던데.

 

 암살자가 달려드는 긴박한 상황에도 자신에게 방어막까지 쳐주던 레그네트의 모습이 떠올라 아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살며시 눈살을 좁혔다. 그런 아리안에게 레그네트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더구나 그대가 그 상태로 순찰대에게 잡혀가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되겠어. 결국 내 체면은 더욱 더 바닥에 떨어질 텐데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겠어?”

 

 

 확실히 부정할 수 없는 이야기에 아리안은 좁혔던 눈살을 더욱 좁혔다. 레그네트의 말대로 그녀가 지금 이 상태로 거리를 돌아다닌다면 십중팔구 순찰대에 잡혀갈 것이 분명했다. 물론 상황 설명을 하면 간단하게 풀려날 테지만,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레그네트의 이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레그네트 폰 에스테 공작이 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재력가라는 사실이었다. 그런 레그네트가 자신을 도와준 여자를 피투성이로 돌아다니게 내버려뒀다는 소문이 돈다면 레그네트가 말한 대로 그의 체면이 엉망진창이 될 것은 불 보듯 뻔 한 일이었다.

 

 ...그래, 옷 한 벌 쯤 받는다고 큰일이야 나겠어.

 

 그런 생각을 하며 아리안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레그네트는 돈이라면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은 사람이었다. 그깟 드레스 한 벌쯤은 그에겐 티끌만한 부담도 되지 않을 터였다.

 그때 그런 아리안을 바라보고 있던 레그네트가 장난스럽게 허리를 숙이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제 체면을 위해 함께 가실까요, 레이디?”

 

 

 진지함이라고는 단 한조각도 찾아볼 수 없는 그 태도에 아리안은 다시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결국 아리안은 자신을 향해 내밀어진 그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레그네트의 손을 잡고 천천히 가게 문을 열자 딸랑, 하고 작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가게 안쪽에서 머리를 높게 틀어 올리고 연한 초록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걸어 나왔다.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그 여자는 키가 크고 풍만해 보이는 스타일로 표정 하나하나에 당당함과 자신감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어서 오...어머...!”

 

 

 부드러운 영업용 미소를 띠고 아리안과 레그네트를 향해 걸어오던 그녀는 피투성이가 된 아리안의 옷을 보자마자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한동안 멍하니 아리안을 바라보던 그녀는 아리안의 옆에 서 있는 레그네트에게로 서서리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고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공작 각하, 이번엔 또 무슨 사고를 치신 건가요? 우리 가게에서 나가신지 십분도 채 안되신 거 같은데 그새 또 이런 사고를 치시다니 정말 대단한 능력이시군요.”

 

 

 그러자 레그네트가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런, 마담 팡디뉴. 누가 들으면 내가 항상 사고만 치고 다니는 줄 알겠군, 그래.”

 “어느 모로 보나 사실인 거 같은데요.”

 

 

 마담 팡디뉴가 다시금 아리안을 훑어보며 말하자 레그네트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미안하지만, 마담. 이건 내가 친 사고가 아니라고. 뭐 굳이 따지자면 나와 관련된 사고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럼 결론은 같은 거 아닌가요?”

 “그래서 이렇게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마담에게 레이디를 데려온 거 아닌가.”

 “아, 그럼 공작님께선 이 레이디의 옷을 사주시기 위해 돌아오신 건가요?”

 “나 때문에 옷이 저렇게 됐으니 당연히 사줘야하지 않겠어? 그러니 마담이 특별히 힘 좀 써달라고.”

 

 

 마담 팡디뉴에게 그렇게 말한 레그네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아리안에게 시선을 돌렸다.

 

 

 “리베이드 경, 마담 팡디뉴를 소개하지.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드레스 디자이너야. 그대가 어떤 드레스를 원하건 상상하는 그대로 만들어주는 최고의 실력자지.”

 “처음 뵙겠습니다, 리베이드 경. 그동안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렇게 만나 뵐 줄은 몰랐네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마담 팡디뉴에게 아리안 역시 인사를 간단하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에스테 공작께서 과도한 칭찬을 해주셨는데요.”

 

 

 여기까지 말한 마담 팡디뉴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하지만 공작님의 말은 모두 사실이랍니다. 리베이드 경께서 어떤 옷을 원하시던 완벽하게 만들어 드릴 테니 원하시는 옷을 말씀해보세요.”

 

 

 사실 아리안이 원하는 옷은 건국 기념 파티에 입고 갈 드레스였다. 하지만 지금 마담 팡디뉴가 물어보는 옷은 레그네트가 아리안에게 사줄 옷이었다.

 오늘 처음 만난 레그네트에게 건국 기념 파티 드레스를 사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아리안은 일단 지금 입고 있는 피투성이 옷 대신 입고 갈 간단한 옷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건국 기념 파티에 입고 갈 드레스는 레그네트와 헤어진 이후에 다시 사면 될 일 이었다.

 

 

 “그냥 간단하게...”

 

 

 아리안이 그렇게 말을 꺼내는 순간,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레그네트가 무언가 생각이 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참, 그러고 보니 그대도 이 가게에 오는 길이었지? 무슨 옷을 사려고 오는 길이었나?”

 

 

 그러자 마담 팡디뉴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아리안을 쳐다보았다.

 

 

 “어머, 리베이드 경이 우리 가게에 오는 중이었다고요? 제가 듣기로는 평소 드레스를 잘 입지 않는 분이라고 하던데 어떤 옷을 사려고 하셨던 건가요? 설마 제 아틀리에에서 기사단복을 맞추려고 하신 건 아닐 테니 말이에요.”

 

 

 자신의 생각과 영 다르게 돌아가는 상황에 아리안 몹시 당황했다.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이 두 사람의 관심을 일상복으로 돌릴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이 마담 팡디뉴가 손뼉을 짝, 하고 마주쳤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그러고 보니 건국 기념 파티가 며칠 안 남았잖아요!”

 “아, 그랬지 참. 리베이드 경이 이곳에 온 이유를 이제야 알겠군.”

 

 

 레그네트 역시 이제야 이유를 알겠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마담 팡디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이에요. 이 시기에 제 아틀리에를 찾는 분들의 목적은 단 하나 뿐이죠. 급히 건국 기념 파티에 입고 갈 드레스를 사는 것. 맞죠, 리베이드 경?”

 “아니, 그건 그렇지만 일단 제가 사려는 건...”

 

 

 정신없이 돌아가는 사태를 멈추기 위해 아리안은 미간을 좁히며 말을 꺼냈다. 그러나 마담 팡디뉴는 그런 아리안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리안의 주변을 한 바퀴 돌더니 흐음, 하고 작게 콧소리를 냈다.

 

 

 “시간이 몹시 다급하긴 하지만 그래도 특수 사이즈는 아니니까 원래 가게에 있던 드레스를 조금씩 손보면 될 거 같네요. 밤샘 작업을 하면 충분히 시간에 맞춰서 드레스를 완성할 수 있을 거에요.”

 “아니, 밤샘 작업 까지 할 필요는...”

 

 

 그런 돈을 낼 여유는 전혀 없었기에 아리안이 다시금 입을 열었지만 이번에도 마담 팡디뉴는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레그네트에게 질문을 던졌다.

 

 

 “에스테 공작 각하, 밤샘 작업 비용은 당연히 따로 챙겨 주시겠죠?”

 

 

 그러자 레그네트가 당연한 소리도 한다는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여부가 있나. 내가 신세를 진 레이디인데 그 정도도 못해줄까. 돈은 걱정하지 말고 마담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드레스를 만들어 달라고.”

 

 

 레그네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담은 아리안의 손을 잡으며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전쟁을 시작해 볼까요?”

 

 

 그리고는 아리안이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대로 아리안을 가게 안쪽으로 끌고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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