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름 지성이 있는 마족이다. 마왕이란 이름으로 무조건 폭정을 일삼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용사가 약을 했다는 점을 고발하고 싶다.
“약이 분명해. 그러지 않고서야.”
이건 용사의 세력에 의의를 제기하는 것도 인간계에 헛된 소문을 퍼트리는 계략도 아니다. 엄연히 용사는 약을 했음이 분명하다.
그 증거로 용사는 이상한 말을 하고는 한다.
“C부럴, 이놈의 버그. 작작 좀 하란 말이다.”
본래 이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욕을 스스로 만들어서 하곤 한다. 욕이란 자고로 상대방이 알아 들을 수 있어야 그 모욕감과 충족감을 만족시킬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소인배이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대놓고 알아듣지 못하는 욕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굳이 이 세상을 욕하기 위해서 없던 욕을 만들어서 해야 할까?
C부럴.
그것의 뜻이 궁금하다. 용사에게 직접 묻고 싶지만 궁금하다고 물어보는 것도 이상하니 관두기로 하고 ‘버그’란 것에 대해 고찰해보자.
버그란 충, 즉 벌레이다. 하지만 용사의 어휘능력 부족과 비유적인 표현 두가지 측면에서 보자면 다리가 아예 없는 샌드웜이나 수많은 다리를 지닌 거대지네는 물론 펜넬숲의 하늘소, 사막병정개미같은 곤충도 포함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나를 보자마자 ‘C부럴, 이놈의 버그. 작작 좀 하란 말이다.’ 란 말을 꺼냈다. 홧김에 죽여버리니 과거로 되돌아와 있었다.
시간마법에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이건 명백히 이상한 일.
나는 이것이 용사의 능력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사망희귀. 시간희귀. 기회. 이름을 붙이자면 얼마든지 멋들어진 이름을 붙일 수 있지만 난 용사가 말한 ‘처음부터’를 선호할 생각이다. 지식이 없는 나보다 능력의 주체가 더 잘 알테니까.
내가 그 ‘처음부터’를 겪은 것은 세상에 용사가 탄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다. 싸워서 쟁탈함으로서 용사의 호칭을 손에 넣은 이들과 달리 신이나 나라가 점찍어준 용사. 끝내 마왕을 쓰러트리는 용사의 이야기는 마계에도 유명하다.
그야 당연하다.
평화롭게 지내고 있는 우리 마계에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쳐들어온다. 인간계를 침공한 적이 마계에서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의 선조들 아닌가. 게다가 선조들의 기록에 따르면 인간들이 먼저 싸움을 걸었다.
싸움을 거니 선조들은 평화롭게 싸웠다. 다만 인간이 너무 약해서 죽어버린 것이다. 애초에 뿔이나 날개만 보고 괴물이니 뭐니 도발을 하였기에 평화로운 결과라고 생각했다. 싸움을 일부러 걸어 죽인다면 그건 폭력이지만 도전이나 대결을 신청 받아 상대를 죽이는 건 어디까지나 명예로운 결투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죽은 인간에 대해 분노를 하며 다시 싸움을 걸고 죽거나, 겁을 먹고 도망친 다음 다른 자를 끌여들어 싸움을 벌인 모양이다.
그것의 규모는 점차 커졌다.
사실 일도 해야 하고 유흥거리도 없는 곳. 쉽사리 말해 인간의 군대란 곳을 수백년이상 지내다 보면 재미랄 게 없다. 그런 마계에 인간들과 마족과의 싸움은 좋은 구경거리였다.
그래서 선조들은 하나둘 구경을 하러 나갔다. 나가니 그들에게도 싸움을 걸어왔고 관전자보다는 직접 싸우는 쪽이 재밌으니 싸운다. 그 심정은 같은 마족으로서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 나만 해도 하릴없이 서류만 결제 하고 급이 안 맞으니 대련도 하기 힘들지 않은가.
핸디캡을 준다고 해도 부상을 입히면 그자의 몫까지 책임져서 일을 해야 한다. 장교가 해야할 일을 말단 병사에게 맡길 순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나도 이렇게 지루하다.
그런데 신명나는 싸움판이 있으니 참여하지 않고는 몸이 배기질 못하겠지.
어쨌든 마계에서 대량의 휴가자들이 생겨났다. 선대 마왕도 유혹을 참지 못하고 무단이탈을 했다. 그 일로 집사는 마왕의 대리임무를 수행해야 했으며 아직도 선대마왕의 가출을 궁시렁거리고 있다.
인간계라서 힘도 약해지는 상황이었지만 어차피 인간들은 약했다. 그리고 용사도 약했다. 아니 많이 약했다. 중간급 간부정도만 나서도 손쉽게 이길 수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싸움이 끝나는 걸 아쉬워했다. 이것은 인간들이 손수 마련해준 축제의한복판이다. 그리하여 마침 있는 마계의 최고 지위자 마왕의 주도하에 계획을 세운다.
일명 용사 육성 계획.
가장 약한 자부터 가서 일부로 정보도 흘리고 강해질 기회를 준다.
싸우다가 죽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니 그것을 거부하는 마족도 없었다. 오히려 마계에서 가장 약했기에 마땅한 대적수도 없던 이들은 환영했다.
그런 그들이 가서 경험을 쌓아주고, 마음의 원동력을 심어주고, 제 목숨까지 받쳤다.
그러는 동안 위의 존재들은 이기적인 인간을 유혹해서 뒷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정보와 재력 및 권력을 바탕으로 용사를 세상의 희망으로 만들어서 싸움의 불씨가 꺼지지 않게 했다. 또한 용사에 힘이 되어줄 만한 온갖 전설과 신화들을 조사했다.
이름 높은 무구들은 마계에도 소문이 돌았기에 실체가 확고하니 그 효능을 짐작하여 수색만 하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이야기 짓기가 취미인 마족들이 모여서 거짓된 동화나 전설등을 만들어내서 용사를 인도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협곡을 깎고, 없던 숲을 만들어내고 마을 뚝딱 지어서 납치한 인간들로 연기를 시키게 했다. 겸사겸사 용사에 육성에 도움이 될 만한 강한 존재를 포섭해서 갖다 놓기도 했다.
그리고 혹여나 수문장을 시킨 녀석이 용사를 죽이기라도 하면 곤란하니, 근처에서 감시도 하고 위험하면 신호도 보내고, 요정의 이름을 빌려 구해주기도 했다.
정 못 이기겠다 싶으면 일부로 수문장의 약점을 흘리고. 적당한 무구를 구할 수 있게 도왔다. 그리고 싸우면서 섭취할 수 있게 귀한 약초를 옮겨다가 심었다.
슬슬 그들은 경험이 쌓였고 아예 수련장을 만들기로 한다. 그 이름은 던전. 별 이유는 없고 그저 가장 먼저 이 아이디어를 떠올린 마족의 이름이다.
함정을 설치하고 가장 깊은 곳에 강력한 존재를 놔두고 층별로 강한 놈들은 배치시킨다.
용사가 잘 싸울 수 있게 장비할 무구나 포션등 도움이 될만한 물건도 보물상자를 구해다가 배치시켜 놓았다.
가끔 장난치기 좋아하는 녀석이 미믹을 갖다 놓기도 했지만 들키는 즉시 갈굼을 당했다.
어쨌든 용사가 미믹에 당한 적은 없었고 보물상자의 힘으로 던전을 이겨내는데 성공한다. 계속 해서 없던 던전은 만들어내고 사람들을 조종하여 소문을 퍼트린다.
그러면 한달 전에 세우기 시작한 던전이 할머니가 소녀시절에 할아버지에게 듣던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곳으로 탈바꿈된다.
하지만 대놓고 건축물을 만드는 것은 곤란했다. 그러다가 위장의 개념으로 입구를 인간들이 알아차리지 못할만한 곳으로 만드는 식으로 변경되었다. 어차피 인간들이 알아차리지 못 할 뿐 던전을 지은 마족들이 알고 있고 그 마족들에게 포섭된 근처 주민이 알고 있다.
슬슬 재미가 붙기 시작한 마족들은 인간들이 오지 않는 험한 오지에 성을 하나 짓기 시작한다. 사상 최강의 던전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 던전의 마족의 왕이 살고있다는 소문을 뿌리니 던전의 이름이 마왕성이 되었다.
마왕은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인간들의 흥을 돋구기 위하여 서열 2위부터 5위까지 뽑아서 사천왕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다른 던전을 세우게 했다.
그 던전의 형태는 다양했다. 왕성에 가서 왕을 협박하고 위장함으로서 던전을 순식간에 만들어낸 사천왕부터 이동식 요새 하나를 만들어낸 녀석도 있었다.
솔직히 경험하지 않은 내가 기록만 보아도 겁나 재밌었다.
인간계에 나가있는 마족들이 보낸 편지와 휴가에 복귀하고 돌아온 마족이 풀어낸 썰. 마계의 마족들이 무단 이탈을 하려고 했기에 집사가 뒷목을 잡고 휴가금지령을 내렸다.
또한 어지간한 지위의 마족들은 전부 돌아오게 했다.
그렇게 하고 보니 인간계에 휴가를 떠난 마족들은 수천에서 수십으로 줄었다. 덕분에 인간계에 모습을 드러냈던 마족들 수백명이 일시에 모습을 감춘 것처럼 보였고.
‘용사가 마족 수백을 물리쳤다.’
란 소문이 돌았다. 굳이 마족들은 그 소문을 정정할 필요는 없었고 게다가 더 이상 던전을 만들 인력도 없었다.
이제 축제가 끝이 날 시간이 다가왔다. 때문에 초조해졌는데 한 마족이 미쳤다고 용사일행 앞에 나타나서 싸웠다.
당연하지만 졌다. 용사 혼자는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무력을 지녔으나 5대1은 그도 힘들었다. 그는 멋대로 쓰러지면서 유언을 남겼고 그 유언을 전해들은 마족들은 폭소를 금치 못 했다.
‘난 사천왕중 제일 약하다.’
제 상관의 이름을 팔아버린 마족, 졸지에 싸우지도 못하게 된 사천왕은 분노를 풀 당사자도 죽어서 화를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마왕도, 다른 사천왕도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고 집사의 휴가복귀 통고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덤으로 집사의 총톡이 심해졌기에 최후의 결전을 위하여 빠른 진행을 하였다. 사천왕들은 용사에게 자신의 소식을 남기며 마왕성으로 거처를 옮겼다.
정말 아쉽게도 급한 진행으로 인해 용사의 일행은 하나둘 희생을 했고 마왕의 앞에 선 것은 용사 한명 뿐이라고 한다.
아무도 없어서 마왕이 진짜 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계에서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마왕이 용사에게 진 듯하다. 왜 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축제가 그렇게 끝났다.
혹시나 남아있는 유흥거리를 찾아 비운의 사천왕이 인간계에 가본 결과, 용사는 폐인의 상태가 되어서 싸우고 싶은 의욕도 없어서 바로 돌아왔다고 한다.
대신 다음 용사가 태어나면 제2의 축제를 벌일 수 있게 준비를 해뒀는데. 집사는 절대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그리하여 용사가 탄생하자. 나는 믿을 만한 심복을 보내서 용사를 죽였다.
그다음 과거로 돌아오자. 정말 심복이 용사를 죽였는지 의심스러웠고 다른 심복을 보냈으나 결과는 같았다.
그것을 몇 차례 반복하고서 직접 용사의 앞에 찾아갔다.
“C부럴, 이놈의 버그. 작작 좀 하란 말이다.”
그게 바로 고블린이 때려도 죽을 것 같은 허약한 생명체, 용사와의 조우다.
“저장도 안 돼서 처음부터 하는데 왜 끝판 왕이 줄줄이 오냐.”
“매직미사일.”
일단 욕을 했으니 죽였다. 그리고 마왕성 옥좌에 앉아 있는 시간으로 되돌아온 나는 고민을 해본다. 사실 알고 보니 용사에게는 시간을 다루는 능력이 있었나? 아니면 전대 용사가 남긴 가호가 그를 지켜주는 걸까.
“그레고릭.”
“부르셨습니까. 마왕님.”
허공에 보라색이 일렁거리다 싶더니 회색의 복장을 갖춘 노신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평소 쓰는 분신체가 아닌 직접 온 걸보니 무언가 중요한 이유가 있나.
“마침 잘되었습니다. 인간계에 용사가 탄생했습니다. 처리하고 싶은 서류를 줄이고 싶으시다면 어서 심복을 보내 용사를 죽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 왜 본체인가 했더니 그 때문인가.
“그레고릭. 할 이야기가 있다.”
나는 내가 겪은 이야기에 대해 말해보았다.
“마왕님. 망상도 지나치십니다. 정말 과거로 되돌아왔다면 마왕님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네.”
그러고 보니 이것도 이상하군. 세간에 소문과 달리 마신이란 존재는 없다. 그렇다고 자신이 시간의 부조화를 인지하는 신적 존재도 아니다. 그러면 왜 나는 미래를 기억하고 있지?
“혹시 용사를 죽이고 싶지 않으셔서 꾀를 부리시는 건 아니 실거라 믿습니다. 만약 제2의 축제를 꿈꾸시고 싶다면 침대에서 꾸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레고릭. 내 말이 농담처럼 들리는가.”
“저야 물론 마왕님의 말을 믿습니다. 하오나 저번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저는 사표를 쓰고 떠나거나 아님 관에 들어가서 영면을 취하겠습니다.”
“그레고릭.”
“아, 이왕 하는 김에 확실하게 제가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잠깐, 기다려라.”
나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집사는 모습을 감추었다. 내가 직접 본 용사는 집사의 분신체가 소환한 마물이 부리는 허약한 괴물들도 감당 못 할 것이다.
막아야 한다.
집사가 죽여서 또 과거로 되돌아오면 나는 하루도 제대로 살 수가 없다. 지금은 일단 말리고 고문과 서적을 뒤적여서 실마리를 찾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