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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속사정
작가 : 츄바춥스
작품등록일 : 20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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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속사정 0
작성일 : 17-06-10     조회 : 506     추천 : 0     분량 : 3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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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밀한 속사정

 

 

 

 

 

 

 그때도 비가 이렇게 많이 내렸었던 것 같다. 내가 그를 처음 보았을 때가.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의 책을 보았을 때가. 내 생일날 집에 엄마가 있겠다는 그 전화 한 통에 우산을 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온몸에 비를 맞으며 집에 달려왔을 때 정말 엄마는 집에 있었다. 다만 그녀가 나를 반겨준 모습은 이미 피를 흘릴 대로 다 흘려서 눈으로만 봐도 차가워 보이는 시체였지만. 미혼모로서 나를 낳은 그녀는 하루도 집에 있지를 못했다. 그 덕에 나는 항상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해져야 했고 혼자 보내는 시간을 당연하게 여겨야 될 수밖에 없었다. 매번 이렇게 나를 외롭게 만드는 그녀가 미웠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 그래도 나를 최소한 버리지 않았으니. 근데 이제는 그녀가 나를 버렸다. 정말 지독하게 나는 앞으로 혼자 있어야만 했다. 아니, 혼자 살아가야만 했다.

 

 

 

 

 

 죽어버린 엄마의 시체가 무서워서 또 안쓰러워서 눈물이 나기보다는 그냥 그 지독한 외로움에 혼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무서웠다. 신고를 해야 한다.라는 생각도 머릿속에 자리를 잡지 못했을 때 내 눈앞에 하나의 책이 있었다. 죽기 전, 그녀가 보았던 책인지 차마 책이 덥히지 못하고 끄트머리에 피가 조금씩 베여있었다. 그때의 방안은 무척이나 깜깜했었는데 책에 빼곡히 적혀있던 글자들이 다 보였고 나는 그 책을 천천히,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내 앞에는 엄마였지만 그래도 다름없는 시체가 있었으며 비는 내리고 내가 앉아있는 방안은 피의 냄새가 끊이질 않았건만 꼭 이 책하나만 있으면 모든 게 괜찮을 것만 같았다. 이 지독한 고독 속에서 오롯이 그 책은 나의 편이 되어주었다. 그런 책을 품속에 껴안으면서 제일 먼저 보았던 작가의 이름 석자는 예전 내가 좋아했던 여자애를 향한 두근거림과 설렘보다 더 짙은 감정으로 다가왔다.

 

 

 

 

 

 

 

 

 ‘민 서 울’

 

 

 

 

 

 

 

 

 

 

 

 

 

 

 

 은밀한 속사정

 

 <고독과 외로움>

 

 

 

 

 

 

 

 

 

 

 

 

 

 “작가님은 워낙에 혼자 있는 공간을 타인이랑 나눠쓰는 걸 안 좋아하셔서 눈치껏 잘 피해주세요. 좀 까다로우셔서.”

 

 

 

 

 

 그의 집을 얼마 안 남기고 나에게 당부의 말을 건네는 출판사 사람의 말에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솔직히 지금 나에게 누가 뭐라고 한들 귀에 들어올 상황이 아니었다. 그동안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할 수 없을 정도로 열병 같았던 짝사랑을 안겨준 그의 집이, 그리고 곧 있으면 볼 그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충분히 내가 사람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게 해주었다. 이내 초인종을 누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문이 열렸을 때 조금씩 발 폭을 줄여나갔다. 그를 볼 수 있다는 설렘과 두려움이 반반씩 교차하고 있을 때쯤 우리가 초인종을 다시 누르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는지 안쪽에서 문이 열렸다. 그리고 집안에서 나온 그의 얼굴은 정말 완벽했다. 방송 출연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작가라서 그동안 혼자 좋아하며 꿈꿔왔던 내 이상형이 그를 본떠서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똑같았으니까.

 

 

 

 

 

 들어오세요, 듣기 좋은 목소리로 문을 열어준 그는 출판사 사람이 말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처음 오는 나에게 웃어주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서 웃어주는 그 모습은 집 안으로 들어가서 출판사 사람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심지어 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출판사 측에서 그의 다음 작품에 대해서 말을 하는 와중에도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라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혼내는 건 더더욱 아니었지만 안경 너머로 느껴지는 그의 시선은 나를 짓누르기에 충분했다.

 

 

 

 

 

 

 

 

 

 

 

 * * *

 

 

 

 

 

 

 

 

 “은우연 씨, 맞죠?”

 “아, 네.”

 “내 이름은 알아요? 출판사 측에서 아직 말 안 해줬나.”

 

 

 

 

 

 짐 정리를 끝내고 거실로 내려오자 그는 나에 대해 물었고 이내 제 이름을 물었다. 그의 말에 민서울 작가님이라고 끝을 흐리며 대답을 꺼냈다. 딱히 출판사를 통해 듣지 않아도 민서울이라는 이 사람 때문에 어울리지 않게 편집 작가로 직업까지 바꿔버린 나로서는 그의 이름뿐만이 아니라 인터넷상에 나온 그의 신상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었다. 나이는 서른둘이고 일찍 결혼함과 동시에 일찍이 이혼을 했고 슬하에 아들이 있다는 것까지.

 

 

 

 

 

 “나이가 스물다섯이라고 했나.”

 “네.”

 

 

 

 

 

 아직 어리네, 짧게 말을 꺼내며 그는 나를 보고 웃었다. 확실히 그보다는 어렸다. 굳이 나이를 넘어서 그의 작품이나 살아온 환경들은 내가 아직 그보다는 어린 축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곧이어 나에게 편집 작업은 내일부터 시작하면 된다는 등의 말을 이어나갔다. 그의 말에 집중하면서 해야 할 일들을 손에 쥔 메모장에 하나둘씩 적어 나갈 때쯤에 밖에서는 천둥소리가 들렸다. 이제 여름의 장마철이 시작되는 건지 우중충한 하늘에 또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씨 좋아해요?”

 “……네?”

 “난 비 오는 거 좋은데 우연 씨는 어떤가 해서.”

 “저는 별로 안 좋아해요. 비 오는 거.”

 

 

 

 

 

 왜요, 비 오는 날에 슬픈 일이 있었나. 나의 대답을 예상했던 건지 나를 보며 되물은 그에게 고개만 가만히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비는 내 유년시절에 있어서 항상 좋았었던 일에 내린 적이 없었다. 내 유일한 혈육이었던 어머니도 내 곁을 떠났을 때가 비 오던 날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내가 처음 그의 책을 봤을 때도 비가 왔었을 때였구나.

 

 

 

 

 

 “아, 그래도 좋았던 일도 있었어요, 작가님 작품을 읽었을 때도 비 오는 날이었거든요."

 “내 작품 읽었을 때가 좋았던 일이에요?”

 

 

 

 

 

 네, 그의 물음에 빠르게 답을 했다. 내 재빠른 대답에 그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선 나를 보고 웃었다. 지금 내가 이 집에 와서 있는 동안 그는 수도 없이 나를 보며 웃어주었지만 이 웃음은 느낌이 이상했다. 분명 그는 웃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야했다. 괜스레 이상해지는 기분에 손에 쥐고 있는 메모장에 쓸데없는 그림만 그려나가고 있을까 그의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정전이 된 건지 아까까지만 해도 밝았던 집이 온통 암흑으로 변했다. 예고 없는 그의 손길에 고개를 들어 올리자 깜깜해서 무엇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는 와중에도 나를 보고 있는 그의 눈빛이 느껴졌다.

 

 

 

 

 

 “그때 읽은 책 제목이 뭐였어요?”

 

 

 

 

 

 갑작스러운 그의 손길에 내가 당황해하는 것을 알면서도 넘기는 건지 그는 나에게 책 제목에 대해서 물어왔다. 그렇게 겁먹을 일도 아니었는데 곧바로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고독과 외로움이오. 제목 여섯 글자를 말하는 내 말과 같이 내 머리를 쓰다듬던 그의 손길은 어느샌가 내 볼 언저리를 쓰다듬었다. 나를 향한 곧은 그의 시선과 내 볼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그의 손길이 이 상황이 위험하다고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내가 위험한 건지, 그가 위험한 건지. 아무것도 알 수는 없었지만 다만 내 시선이 어디를 향하던 진득하게 그의 시선은 나를 따라다녔다. 어디를 향하던 결국 시선의 끝에는 민서울의 눈동자가 보였으니까.

 

 

 

 

 

 “고독을 즐기면 즐길수록 외로움은 나에게 그토록 사무치게 불안함을 주었다.”

 “…….”

 “지금, 너도 그래?”

 

 

 

 

 

 큰 집에 그의 낮은 목소리가 빗소리와 함께 울려 퍼졌다. 그의 물음에 긍정의 대답도, 그렇다고 부정의 대답도 못하고선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그를 똑같이 바라보았다. 고독과 외로움, 그 책 맨 앞에 쓰여있던 그 구절을 말하고 나에게 되물어오는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내 볼을 쓰다듬던 그의 손이 따뜻함을 넘어서 지금 내게는 너무나 뜨거웠기 때문에.

 

 

 

 

 

 

 

 

 

 밖에 내리는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비가 오던 그날 열아홉의 내 곁에는 그의 책이 있었고 스물다섯 지금, 그가 내 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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