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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속사정
작가 : 츄바춥스
작품등록일 : 20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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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속사정 1
작성일 : 17-06-10     조회 : 317     추천 : 0     분량 : 5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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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밀한 속사정

 

 

 

 

 

 ‘고독과 외로움’

 

 

 

 

 

 서울, 자신이 이 책을 처음으로 집필했을 때가 스물다섯이었다. 갓 스물을 넘어서 더 이상 어리다는 말이 어울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사회에 녹록한 나이도 아닌 애매한 나이. 그 나이에 자신은 가정이 생겼고 아들이 태어났다. 스물의 나이에 대학보다는 글을 썼고 작가계에 막 데뷔했을 때에 그의 결혼 사실과 심지어 아이가 생겼다는 건 나름 크나큰 이슈로 자리 잡았다. 어떻게 보면 젊은 나이에 자신을 사랑해주는 여자를 만났고 자신을 닮은 아이가 생겼으니 제 인생 중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얼마 가지 못했고 아내는 자신을 사랑한 것처럼 쉽게 또 다른 사람을 사랑했다. 그런 아내에게 자신은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지 않았다. 그때 당시 자신 또한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그때 제목도 정하지 못하고 무제인 상태에서 틀도 미처 잡지 못한 채 무작정 써 내려갔던 글이 이 책이었다. 그동안 자신이 냈던 책들과는 다르게 ‘고독과 외로움’은 책을 처음 폈을 때부터 닫았을 때까지 어두웠다. 한때 천재 작가,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라는 타이틀과 다르게 이 책은 사랑받지 못했다. 출판사에서도 출판하기를 원하지 않았고 독자들도 읽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지껏 낸 책들 중에 이 책만이 꼭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담은 것 같아서 기뻤다. 남들이 좋아해 주지 않아도 이 책이 팔리지 않아도 수입이 없어도 좋았다. 그런데, 이 책을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났다.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분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난 건 생각 외로 행복함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우연이어서 좋았다. 말을 하면 할수록 스물다섯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았고 제 자신이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살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 자식보다도 저를 더 닮은 은우연이라는 사람이어서. 처음 보았을 때부터 꼭 편집 작가가 아니라 제 문하생 같았다. 한눈에 봐도 저를 동경하는 눈빛이 꼭 그랬다. 곧 죽어도 민서울, 제 옆에 두어야 되는 사람인 것처럼. 서울은 괜스레 느껴지는 갈증에 입술을 축이다가도 몇 번이고 바랬다.

 

 

 

 

 

 

 자신이 절필하는 그 순간을 넘어서 더 오랫동안 그 아이가 제 곁에 머물러 있기를.

 

 

 

 

 

 

 

 

 

 

 

 

 

 

 

 

 은밀한 속사정

 <시작은 언제나>

 

 

 

 

 

 

 

 

 

 “편집 작업은 어느 정도 됐어요?”

 

 

 

 

 

 어제의 일이 있고 난 후 어색한 사이가 더 어색해질까 봐 걱정했던 건 정말 나만의 생각이었는지 그는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으며 내게 물어왔다.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서도 이제는 한 집에 같이 살기 때문에 화장실을 가거나 어디를 가도 마주쳐야 하는 사이라는 사실에 방에 와서도 머리가 아팠다. 그런 자신과는 다르게 멀쩡하게 아침식사를 하는 그를 보자 괜히 한숨이 나왔다.

 

 

 

 

 

 “아직 다 못했어요. 이제 막 첫 부분 시작하고 있어서.”

 “그거 하지 마요.”

 

 

 

 

 

 네? 갑자기 하지 말라는 그의 말에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도통 알 수 없는 말에 뭘 하지 말라는 건지 고민도 해봤지만 앞뒤 문맥을 봐도 편집 작업을 하지 말라는 말 같았다. 내가 편집 작가로 여기 온 건데 편집 작업을 하지 말라는 건 나가라는 건가. 어이없는 그의 말에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 이어서 그도 밥을 다 먹은 건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단순히 편집 작업만 하지 말고 내 원고를 한 번 우연 씨가 원하는 대로 바꿔봐요.”

 “네? 아니, 제가 왜…”

 

 

 

 

 

 그냥, 우연 씨 생각이 궁금하기도 하고. 처음부터 바꾸기 어려우면 문맥이나 단락, 표현들을 바꿔봐도 괜찮아요. 나를 보고 웃으며 천천히 말을 해나가는 그의 모습에 당황스러워서 나이와 맞지 않게 말을 더듬었다. 서울의 글이 좋아서 그의 옆에서 단순히 그가 집필하는 과정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후에 그의 책이 출판되었을 때 뒷면에 편집담당의 이름에 은우연, 이라고 내 이름 하나만 있어도 충분했다. 그걸 위해서 내 꿈과 진로를 바꾸면서 여기에 온 거였으니까. 그런데 예고 없이 온 행운처럼 그의 말은 자꾸만 욕심을 만들었다. 그와 동등하게 작가란에 내 이름이 민서울, 그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욕심.

 

 

 

 

 

 “하다가 어려운 부분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요. 같이 써 내려가면 좋으니까.”

 “…….”

 “그렇게 하나씩 바꿔나가다가 우연 씨 스스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그걸 그대로 글로 써줘도 좋아요.”

 

 

 

 

 

 어차피 이번 작품은 단독으로 하려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는 이내 자신의 말을 마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 먹는 내내 당황한 표정을 지은 나와는 다르게 그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여유로워진 기분이 들었다. 이번 작품을 그가 혼자서 집필하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에 놀라웠고 아무래도 내가 어쩌면 그와 함께 집필하는 과정을 겪을 수도 있겠다는 것에 설렜다. 밥은 아직 많이 남아있었지만 더 이상 먹을 기분이 아니었기에 식탁에 남은 식기들과 반찬들을 정리했다. 본래 출판사와 내가 계약했던 일이 갑작스러운 그의 통보에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 * *

 

 

 

 

 

 

 

 “여보세요.”

 - 매형.

 

 

 

 

 

 서울은 핸드폰 건너편으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한 손에 쥐고 있던 물컵을 더 세게 쥐었다. 매형, 우리 누나 한 번만 봐주는 셈 쳐주고 다시 생각해주시면 안 돼요? 자신에게 부탁을 하는 건지 아니면 협박을 하는 건지, 매번 전화해서 앞 뒷말은 다 빼먹고 본론만 말하는 태도는 당돌함을 넘어서 이제는 불쾌함으로 다가왔다.

 

 

 

 

 

 “저번에도 말했잖아, 먼저 이혼하자고 한 건 네 누나야.”

 - 매형, 하지만.

 “그리고 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 없어”

 - …….

 “여태껏 지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왔으면 이제는 당해보기도 해야지,”

 

 

 

 

 

 안 그래? 서울은 제 말이 끝나자마자 전화기 너머로 성현의 성난 목소리가 그대로 전해져 왔다. 어쩌면 저런 모습까지 그래도 누나라고 꼴에 똑같이 닮았는지. 이혼한지도 많은 시간이 흘렀건만 성현은 곧이곧대로 저를 매형이라고 호칭해왔다. 그러나 성현의 성격에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이제는 매형이 아니라 욕설들이 저를 나타내는 대명사가 될지도 모르겠다.

 

 

 

 

 

 - 도윤이는,

 “……”

 - 얘가 그래도 아빠라고 많이 찾아요.

 

 

 

 

 

 그동안 살아오면서 그녀와 자신의 사이에서 굳이 따지자면 가해자는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이혼서류를 먼저 내밀고 아들을 데려간 건 그녀였지만 저 또한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으니, 알면서도 말리지 않았으니 그래서 자신이 가해자라고 생각했다. 지금 성현의 입에서 제 아들의 이름이 나오지만 않았어도 여태껏 그렇게 알고 살아가려고 했었다. 아내가 데리고 갈 때부터 도윤이에 대한 소식 한 번 들어보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건만 그래도 제 아들은 나를 기억하고 찾는다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버텨오고 있는 자신을 무너뜨리는 것 같았다.

 

 

 

 

 

 한 번만 좀 보러 와줘요. 누나가 아니라 도윤이라도. 서울은 성현의 말을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 제 누나를 위해서 자신에게 아들을 빌미로 협박하는 한성현이 나쁜 건지, 아니면 뻔히 답이 보이면서도 제 아들에게 쉽사리 가지 못하는 서울, 자신이 나쁜 건지. 어느새 서울의 손에 들려있던 컵은 이미 흔들릴 대로 흔들려서 컵에 남아있는 물보다 책상과 바닥을 적셔나가는 물이 더 많을 듯싶었다. 이내 제 발까지 닿는 물을 치울 생각도 못하고 서울은 그대로 의자에 기대 눈을 감았다.

 

 

 

 

 

 제 주변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용했건만 이상하게 자꾸만 소란스러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매번 이렇게 좋지 않은 기분으로 끝날걸 알면서도 그녀와 관련된 전화를 받는 자신이 미워졌다. 혹시라도 전화기 너머로 도윤이의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까 하면서 수만 번 바라는 제가 그렇게 미련해 보일 수가 없었다.

 

 

 

 

 

 

 

 

 만약에, 자신이 지금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제 옆에 있는 우연의 나이인 스물다섯으로 돌아간다면 많은 건 달라지지 않았어도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제 삶보다는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허황된 꿈처럼 이루어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서울은 꼭 스물다섯의 저와 스물다섯의 우연, 그 아이가 있는 꿈 아닌 꿈을 꿨다.

 

 

 

 

 

 

 

 

 

 

 

 

 * * *

 

 

 

 

 

 

 

 

 

 

 

 

 “작가님.”

 

 

 

 

 

 

 작업하시느라 바쁘신 건가, 여러 번 불러도 듣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주무시고 계시는 건지 문 안쪽에서는 도통 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웬만하면 그의 집필실에 함부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작품을 진행하는 와중에 누군가 방해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고 들었기 때문에 아무리 나에게 친절히 대해준 그라고 해도 방해를 하면 짜증을 낼 것 같았으니.

 

 

 

 

 

 끼익. 여느 문과는 다르게 소리를 내는 문에 괜히 더 양심에 찔리는 기분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지금 현재 작가를 필요로 하는 건 내가 아니라 내 손에 쥐어진 핸드폰 너머에 있는 출판사 사람이 것만, 왜 이런 고생은 내가 사서 다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선 그의 서재로 들어갔음에도 그에게서 아무런 답도,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핸드폰 넘어에서 우연 씨, 작가님은요? 하면서 계속해서 그를 찾는 출판사 부장의 목소리만 들릴 뿐 그의 서재는 적막하고 고요했다. 이내 그의 책상에 다다랐을 때에 작업하고 있을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는 와중에도 인상을 찌푸리면서 의자에 몸을 누웠다 싶이 기댄 그의 모습이 보였다.

 

 

 

 

 

 “저, 지금 작가님 주무시는데. 이따가 작가님 일어나시면 전화드리라고 전해드릴게요."

 

 

 

 

 

 깨우기에는 깊게 잠이 든 것 같은 그의 모습에 부장에게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동안 쉬지 않고 민서울을 찾아대던 시끄러운 전화도 끊어버리니 이 공간만 따로 만들어진 것처럼 내가 내뱉는 숨소리와 그의 옅은 숨소리만이 이 서재를 맴돌았다. 내가 부담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나를 뚫어져라 보던 그의 눈이 여느 때와 다르게 감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와 내가 상황이 바뀐 것처럼 바보같이 멍하니 자는 민서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입버릇처럼 엄마들이 아이들은 자는 모습이 제일 예쁘다고 하는 말의 이유를 이미 아이는 훌쩍 뛰어넘어서 중년을 향해가는 그의 모습을 통해 그 뜻을 처음으로 이해했다. 애초에 그의 나이와는 맞지 않게 스무 살의 아이들처럼 하얀 피부와 웃을 때마다 순하게 접히는 그의 눈매가 그보다 일곱 살 이나 어린 나보다도 어려 보였다. 뭐, 그렇게 얼굴로만 따지면 그의 직업이 작가인 건 여러모로 꽤나 아쉬운 일이 될 수도 있을 듯싶었다.

 

 

 

 

 

 그토록 동경해오고 존경해왔던 민서울의 모습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도 또 그의 곁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모두 신기한 일 투성이었다. 아까 아침 먹을 때 이번 작품을 같이 집필해가자는 그의 말을 들었을 때는 신기한 일을 넘어서 믿기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무슨 생각에서 나와 같이 작업을 하고 싶다는 건지 그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내 꿈과 모든 것을 그에게 걸었을 때부터 그를 알았지만 그가 나를 알기에는 내가 여기에 온 지 고작 하루도 안되는 턱없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이런 제안을 선뜻 내밀어 준 그가 고마웠다. 내가 그를 찾아온 것에 있어 보상을 주는 것만 같았다. 고맙습니다, 하고 작게 그에게 말을 꺼냈을까 언제부터였는지 내가 바라보던 그의 눈이 어느 순간부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은우연.”

 

 

 

 

 

 답지 않게 내 이름을 부르는 말에 나는 무슨 잘못을 하다가 걸린 사람처럼 작게 몸을 움츠렸다. 그런 내 손목을 끌어당기는 그의 행동에 아까보다 더 필요 이상으로 나와 그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은우연, 하고 느리게 내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밤새 운 아이처럼 물기가 가득 묻어나 있었다. 어제부터 그만 보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난 바보같이 그가 흘린 물인지, 알 수 없는 액체가 내 발을 적셔간다는 사실보다 느리게 두어 번 눈을 감았다 뜨는 그의 눈에 고여있는 눈물이 내 발뿐만이 아니라 온몸을 흥건히 적셔가는 듯한 착각에 빠져있었다.

 

 

 

 

 

 

 

 

 

 

 

 ‘언제나 시작이 어려운 법이었지, 막상 한 번 하면 답도 없이 빠져든 게 네 엄마 같은 사람이야.’

 

 

 

 

 

 ‘우연이는 이런 엄마 닮으면 안 돼, 알았지?’

 

 

 

 

 

 

 언젠가 술에 취한 엄마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쉽게 마약을 하고 술을 마셨으며 쉽게 정을 주고 사랑을 주고 상처를 받던 엄마가 했던 말이 왜 지금 떠오르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자식은 꼭 엄마를 닮는다는 말이 맞는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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