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 5분.
약속시간에 조금 늦었다.
드르륵-.
미닫이문을 열고 용준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성인이 된 이후로 친구들과 계속 몇 년 째 아지트처럼 모여 술을 마시는 가게다.
인테리어부터 모든 구조가 옛날식 연탄 고깃집으로, 드럼통 위에 원형의 테이블이 놓이고 그 가운데 뚫린 곳에 연탄을 넣어 고기를 굽는다.
좋은 고기를 쓰는 것은 물론 깔끔한 밑반찬에 더해 양념장과 불 맛이 정말 제대로라 용준네들이 결코 발길을 끊을 수 없는 맛집이다.
“오, 왔냐? 여기야, 여기.”
“짜식, 오늘은 그래도 덜 늦었네.”
“이 형님들이 미리 세팅해놓고 오매불망 널 기다려야겠니? 제때 좀 오라고.”
시끌벅적한 가게 안에서 친구 세 놈의 모습이 바로 보였다.
그들도 곧 용준을 발견했다. 늦게 온 그를 타박하며 요란스럽게 맞이한다.
“그래, 그래. 미안하다. 대신 오늘 내가 쏠게.”
“당연하지 자식아. 이모, 여기 소주 두 병이랑 삼겹살 삼 인분 추가요.”
“아, 나 바쁘니까 술은 그냥 네놈들이 꺼내서 마셔.”
“네네. 알겠사옵니다.”
까칠한 이모의 마력을 한껏 느끼며 한명이 고분고분 일어나 술을 더 가져왔다.
그 능청스러운 모습에 가게 안의 단골들도 피식피식 웃는다. 자신들도 받는 대우가 별반 다를 것 없지만 다른 손님들이 당하는 것을 볼 때 마다 재밌고 유쾌하다.
“크아, 오늘 소주맛 죽이네.”
“고기 맛은 더 죽여.”
“여긴 정말 밑반찬부터 하나하나 다 중독이라니깐. 며칠 뒤면 막 생각난다. 갑자기 떠오르다가 침 흐르고. 나 정말 이모님 사위하고 싶을 정도야.”
용준의 친구들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이 가게에 올 때마다 볼 수 있는 리액션이다.
박강우, 최진혁, 이서준.
용준과는 세 사람은 같은 고아원 출신으로 철이 들기도 전부터 함께 지냈던 사이다.
각각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오면서도 잊지 않고 자주 만났다. 정말 바쁘더라도 한 달에 한번은 꼭 시간을 내서 오늘처럼 모임을 가졌다.
강우와 진혁은 용준처럼 헌터였다.
지금은 헌터 일들을 모두 정리하고 같은 사설업체에서 경호원으로 일하고 있다.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은 만큼 싸우는 일도 잦지만 가장 돈독한 사이가 또 이 두 녀석이다.
서준은 처음부터 헌터가 아닌 일반인이었다.
이 녀석은 영화 관련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무척 좋아했던 녀석이라 합격했다고 들었을 때도 그리 놀라지 않았었다.
다들 ‘딱 네 적성에 맞는 직업 잘 찾았네.’ 라고 입을 모아 말했을 정도다.
성실하고 밝은 녀석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지냈던 고아원 덕이 컸다.
경기도에 위치한 가온 고아원.
이곳 고아원 원장님이 맡은 모든 아이들을 정말 엄마처럼 대해주었었다.
꾸짖을 일은 확실히 꾸짖었었고, 칭찬해줄 일에는 칭찬을 아끼지 앉았다.
지금도 이들은 가끔 고아원을 찾아가 원장님을 만난다.
돈을 모으는 틈틈이 네 사람의 이름으로 기부도 하고 있다.
“아오, 사장 그 자식.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게. 월급만 적었어도 바로 때려치우는 건데. 아오, 빡쳐.”
“왜? 무슨 일인데?”
술이 좀 들어가자 진혁이 설을 풀었다.
영문을 모르는 서준이 그의 말을 받으며 묻는다.
“어제 고객 한명이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행패를 부리더라고. 좀 있으니까 그게 점점 심해져서 일단 말렸지. 근데 네가 먼데 날 말리냐면서 그걸로 다시 열 받아가지고 온갖 욕이란 욕은 다. 아, 나한테 침까지 뱉으려고 하잖아! 물론 나의 이 날렵한 몸동작으로 사샤샥 피했지. 그러다 손도 막 위로 올라오는 게 보여서 딱 제압했는데 하필 사장이 지나가다가 또 그걸 봤어요. 그 뒤에 대충 수습하고 나서 날 불러서는 과잉대응이라고 하루 종일 쪼아대는데. 으윽. 아직도 사장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는 것 같다. 으으으.”
어제의 일이 떠오른 것인지 진혁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같은 시간에 근무하고 있어서 정확한 사정을 알고 있는 강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야, 과잉대응 맞아 인마. 헌터랑 일반인이랑 같냐? 그리고 그쪽은 평소처럼 그냥 현장 지나가다 네가 그 무식한 주먹으로 고객 눈탱이를 팬더로 만드는 것까지 전부 목격했으니, 사장도 식겁했겠지.”
“이 새끼.... 야! 너, 누구편이야? 내 편이야, 사장편이야!”
“약간의 정의와 나한테 돈 주는 사람 편이다, 이 자식아.”
“이 배신자 새끼야. 의리라곤 요만큼도 없는 놈. 네가 그러고도 내 불알친구냐? 자고로 진짜 친구란 한쪽이 상사를 까면 무조건 같이 신나게 까야하는 거야!”
“어휴, 유치하게 미친놈. 그래. 그냥 오늘 그 불알들 다 정리하자, 자식아.”
“큭큭큭.”
두 사람의 투닥거리는 모습에 서준의 웃음이 터졌다.
그러다 그들의 화제는 어느새 용준의 근황으로 바뀌었다.
진혁이 먼저 물었다.
“넌 요즘 어떠냐?”
“뭐, 똑같지.”
“허, 아직도 던전 돌아다니고 있냐?”
“응.”
“어휴 독한 놈. 저놈 저거 포기를 모르는 독종성격 또 나왔네. 어릴 때도 하나 파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고것만 파더니 이번에도 저러네. 야, 그만하고. 슬슬 정리해라.”
피식-.
용준은 실소를 했다.
오늘은 어딜 가나 그만 두라는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서준도 진혁을 거든다.
“돈이야 너 충분히 벌어놓은 거 있지만, 거기 이제 아무것도 없잖아. 괜히 돌아다니면 네 마음도 같이 우울해지고 공허해지지 않냐. 난 네가 의기소침한 거 싫다.”
“그래, 슬슬 정리 해야지.”
대답을 하면서도 용준은 마음이 씁쓸하다.
“용준이, 너. 랭킹도 꽤 높았잖아. 금방 좋은 일 찾을 수 있을 거다. 아, 너도 우리 회사 올래? 같이 경호나 뛰자. 우리 회사 그래도 대우는 좋아서 네 연봉 장난 아니게 협상될 걸, 아마.”
진혁이 살살 용준을 꼬셨다.
옆자리의 강우도 나쁜 생각은 아니라는 데에 동의 했는지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용준아, 아님 그냥 우선 너 다르게 취미 붙일 수 있는 일이라도 찾아봐. 너무 갑자기 변하는 게 힘들면 말이야. 그러다 네가 또 즐겁게 몰입해서 할 수 있는 걸 찾을 수 있겠지.”
“응.”
서준의 다정하게 타이르는 말에 용준이 그러마하고 답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본인이 제대로 웃으며 말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도무지 자신할 수가 없었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용준은 편의점에 들러 소주 두병과 육포를 샀다.
취기는 이미 한껏 올랐지만 갈증이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었다.
따그락-.
불 꺼진 거실 안.
푹신한 쇼파에 몸을 깊게 파묻고 병뚜껑을 땄다.
잔이 따로 필요하진 않다.
그는 바로 술병을 입에 물며 물처럼 마셨다.
“크아. 하나도 안 다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술을 마셨었지만, 친구들은 술이 달다고 했었다.
그러나 용준에겐 모임이 시작할 때부터도 단 술이 아니었다.
알싸하게 넘어가는 목 넘김.
아릿하게 식도를 지나가는 그 통증이 자신의 목마름을 잠시나마 잊게 한다.
그렇지만 역시, 오늘따라 유독 소주 맛이 참 쓰다는 생각을 용준은 지울 수가 없었다.
상처에 덧댄 파스마냥 그저 아프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