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00.
띠리리리릭-.
용준은 부산스러운 자명종 알람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부스스하게 헝클어진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지체 없이 침대에서 일어난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어젯밤 과음했던 것으로 인한 숙취는 전혀 없다. 숙면을 취하면서 알콜 성분을 마나로 전부 태워버렸다.
이건 그가 지닌 힘들 중에서 실생활에서 가장 유용하게 쓰이는 하나다.
시원한 냉수를 한잔 마신 뒤, 냉장고에서 이온음료 하나를 꺼내 들고 일층으로 내려갔다. 집안에 그가 마련해둔 훈련장이 따로 있다.
5분 정도 준비운동으로 간단히 몸을 풀고, 40분간 트레드밀을 뛰며 몸을 달군다. 그리고 15분을 명상을 한 뒤, 다시 1시간 동안 검술 훈련을 한다.
용준이 헌터가 된 이후로 단 한 번도 빼 먹어본 적이 없는 훈련과정이다.
훈련이 끝나면 샤워를 하고 아침밥을 먹는다. 고기를 가장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음식들을 가리진 않는다.
냉장고에서 대충 꺼낸 것들로 간단한 상차림이 준비되면 뉴스를 보며 식사를 한다.
삑-.
- 오늘 새벽 원양대교에서 투신한 것으로 보이는 시신 한구가 발견되었습니다. 시신의 밝혀진 신원이 전직 헌터였음이 드러나 시민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티비를 켜자 바로 뉴스채널이 나왔다.
용준이 가장 좋아하는 송은정 아나운서가 평소와 같은 단아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 김씨는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랭킹 말소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는 지인의 증언에 따라 경찰은 김씨가 이를 비관하며 자살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하고 사건을 계속해서 조사하고 있습니다.
시원한 보리차를 한잔 마시며 화면을 주목했다.
헌터 랭킹 말소자.
이는 최근에 나타나기 시작한 기현상이다.
헌터로 각성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랭킹을 확인할 수 있다.
시동어를 외치면, 빛으로 이루어진 판이 하나 나타나는데, 거기에 자신의 현재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가 기록되어있다.
그런데 랭킹 말소자들은 이제 더 이상 이 판을 소환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이다.
말 그대로 헌터로서의 기록이 어느 날 갑자기 공중으로 사라진 거다.
어째서 이런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던전의 몬스터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가정이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도 별게 없다.
현 단계에서는 저레벨의 헌터들에게서만 드물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차츰 상위로 이동하며 일어나고 있는 추세여서 언젠가는 고레벨의 헌터들에게도 결국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것은 랭킹 말소자들이 그들의 랭킹뿐 아니라 마나사용 스킬을 잃을 수도 있다는 점.
이건 전부를 잃을 수도 있고, 일부만 잃을 수도 있다.
한 마디로 복불복이다.
운이 좋으면 랭킹만 말소되고 기술은 다 자기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정말 운이 좋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고.
현재까지의 관찰 결과 마나 사용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 타입의 헌터들에게서 타격이 가장 컸다.
대표적인 예가 마법사다.
육체를 중점적으로 단련한 전사들은 마법사들에 비해 입은 피해가 적었다.
이번 한 달간만 해도 벌써 7명의 헌터들이 랭킹 말소자가 되어 자살기도를 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있다. 바로 지금처럼.
“랭킹확인.”
용준이 시동어를 외쳐 자신의 랭킹을 확인했다.
[이름] 전용준
[소속] 대한민국
[나이] 32
[전체랭킹] 85 위
[국가랭킹] 6 위
....
....
다행히 오늘도 빛나는 판이 보인다. 이는 그가 아직 랭킹 말소자가 아니라는 뜻.
설사 말소자가 된다 할지라도 고레벨의 헌터인 그에겐 한참 뒤에나 일어날 일이지만 용준도 다른 헌터들처럼 불안하긴 매한가지다.
- 다음 소식입니다. 대한민국 랭킹 1위의 헌터, 이강신씨가 헌터들로 구성된 범죄조직 ‘스트레인저(stranger)’를 소탕하는 일에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흠칫-.
이강신이라는 이름이 들리자 밥숟갈을 뜨던 손을 멈추고 다시 뉴스에 집중했다.
국제랭킹 7위, 국가랭킹 1위인 남자의 얼굴에 화면에 잡혔다.
용준이 처음 헌터가 되었던 그때에도, 그리고 지금도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사람.
이강신, 또한 그는 한때 용준의 목표였던 남자다.
언젠가 이 남자를 넘어서리라 용준은 늘 다짐해왔었다.
그러나 헌터의 시대가 끝나가면서 전부가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까드득-.
쥐고 있던 주먹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용준의 나이 올해로 32살.
헌터로서는 아직도 한참 전성기로 뛰어야 할 나이다.
넘치는 힘과 뛰어난 육체가 남아있는데도 이제 더는 꿈을 이룰 수가 없다.
그것이 참 분하다.
- 현재 세계인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가상현실게임 ‘아리아(AriA)’가 곧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기술력으로 헌터들의 던전 사냥을 그대로 재현해낸 이 게임은 전직 헌터들에게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헌터가 되길 소망했었던 일반인들에게도 유사체험의 기회가 -.
띠링-.
한창 헌터 관련 뉴스들을 보고 있을 때 용준의 폰에 메시지가 왔다.
[용준아, 어제 내가 이야기 했던 거 진짜 진지하게 한번 잘 생각해봐라.]
서준이 보낸 문자다.
“어제? 뭐였지?”
기억을 더듬던 용준은 어제 서준이 했던 말이 곧 생각났다.
‘용준아, 너 우리 영화 출연하지 않을래?’
“안 해.”
저녁쯤 되자 서준이 녀석이 전화를 걸어왔다.
내용은 다름 아닌 영화출연에 관한 것이었다.
- 그러지 말고. 한번만 더 생각해 봐. 응?
“안한다니깐?”
- 야아. 나 벌써 너 할 거 같다고 말해뒀단 말이야.
서준의 태도가 하루 만에 바뀌었다.
허스키한 그의 보이스에 어울리지 않게 한껏 애교를 담아 용준에게 아양을 떤다.
어제까지만 해도 취미 삼아 도전해보라고 가볍게 말하더니, 어느새 회사에 용준의 이름을 판 모양이었다.
나름 고레벨의 헌터로 명성을 쌓아 온 용준이라면 마케팅 효과가 충분하다는 계산을 그쪽에서도 마쳤을 것이다.
때문에 눈독을 들이고 그의 친구인 것으로 밝혀진 서준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 아이잉. 용준아아아아. 으응? 우리 의리남 전용준! 친구 한번만 살려주라. 응?
평소답지 않은 서준의 애교가 소름이 끼쳤다.
가식적으로 울먹이는 그의 목소리가 같잖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때문에 기분이 나빠져 오히려 용준의 목소리에 잔뜩 날이 섰다.
“그럼, 그냥 다시 이야기해봤는데 잘 안 되었다고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