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누구시라고요?”
용준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반문했다.
전혀 생각치도 못하고 있던 인물의 전화로 그도 당황했기 때문이다.
-강신입니다. 이강신.
이어 이강신 특유의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의 목소리 안에는 언제나 강자의 여유와도 같은 것들이 녹아들어 있다.
“아니, 제가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니라. 왜 이강신씨가 저에게 전화를 걸고 계신 겁니까? 이건 헌터 협회장 직통용일 텐데요.”
대한민국의 헌터들을 헌터가 되면 헌터용 스마트폰을 지급받게 된다.
그 안에는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헌터 신분증을 비롯해 헌터에게 필요한 각종 데이터들이 들어있다.
또한 헌터 랭킹에 따라 발급받는 휴대폰도 급이 나뉜다.
보통 개인적으로 헌터 업무를 하게 될 때에는 본인들이 개인적으로 소유한 일반 전화를 이용하지만, 헌터 협회를 통해 들어오는 의뢰를 적합한 헌터에게 소개할 때에는 이 폰으로 문자를 받는다.
그리고 무언가 긴급을 요하는 상황이 발생되어 헌터를 소환해야 한다거나 그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 때에만 헌터장이 헌터 전용 스마트 폰으로 직통 전화를 걸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헌터장은 다른 인물이다.
이강신이 아니라.
때문에 이 전화로 느닷없이 이강신의 목소리를 듣게 되어 용준이 당황한 것이었다.
-아, 하하. 제가 개인 폰이 아니라 이쪽으로 전화를 걸어서 놀라셨나 보군요. 지금 헌터 협회와 국가가 손을 잡고 스트레인저를 소탕하려고 하는 건 알고 계시지요? 어쩌다보니 제가 거기 총괄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알고 있다.
용준이 얼마 전 뉴스로 접했던 내용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헌터용 비상 연락망을 쓸 수 있도록 권한을 얻었습니다. 용준씨한테 전화를 한 이유도 그 때문이고요. 근처에 스트레인저들이 나타났지요? 지금 바로 그쪽으로 지원을 좀 가주시겠습니까?
“네. 안 그래도 지금 그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전화를 받아든 그 순간부터 용준의 몸은 이미 사건 현장 쪽으로 돌려져 있었다.
이 폰으로 전화가 왔다는 건 지금부터 도시내에서 헌터들의 전투를 잠시간 허용하겠다는 무언의 허가가 내려진 것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용준은 천천히 촬영장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김만복 감독의 옆을 지나칠 때, 그는 눈으로 다녀오겠다는 말을 했고, 감독도 허락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가장 마지막에 폭발이 일어난 장소를 향해 용준의 몸이 쏘아지듯 빠르게 날아갔다.
남겨진 사람들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중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김만복 감독이다.
이내 갑자기 김만복 감독도 용준이 날아간 방향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향해 소리 질렀다.
“조감독! 나 없을 동안 잠깐 현장관리하고 있어. 그리고 너희! 튼튼하고 날랜 애들 몇 명, 어서 카메라 챙겨서 나 따라와!”
용준은 이동을 하는 도중에도 이강신과 계속 통화를 했다.
-이야, 근처에 용준씨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 주변에 다른 헌터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몇 명은 지원 신청을 한 자가 아니고 다른 또 몇 명은 투입시키기 적절한 레벨이 아니어서 곤란했습니다.
정말 안심했다는 듯 이강신이 웃으며 말했다.
얼마 전 헌터협회에서 국가랭킹 100위 권 내의 헌터들에게 공문이 내려왔었다.
스트레인저를 소탕할 팀을 꾸린다는 것과 이 부대에 본격적으로 편성될 지원자를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용준은 이강신의 팀이 아닌 자유지원 쪽을 신청했었다.
이는 부대에 소속되지 않고 그냥 평소처럼 자유롭게 일상생활을 하다가 가까운 곳에 스트레인저가 나타날 시에만 출동하여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도움을 지원하는 쪽이다.
헌데, 이렇게 빨리 연락을 받게 될 줄은 용준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저희 쪽 부대원들은 10분 안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상대측 수준과 인원은 파악이 되었나요?”
-건물 안 CCTV를 해킹해보니 세 명이 보이더군요. 그렇지만 아직까지 숨어있는 자들이 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 드러난 이들의 랭킹은 30위와 50위권 사이인 것으로 판단됩니다. 진압, 가능하겠습니까?
“변수가 없으면 충분히 될 거 같군요.”
-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놈들을 생포한다면 두당 큰 거 한 장. 그렇지만 사살도 상관없습니다. 대신 값은 절반으로 떨어집니다. 또한 힘드실 것 같으면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대원들이 출동할 때까지 도주로 차단만 해주셔도 같은 값을 쳐드리겠습니다.
그때 헌터들에게 내려진 공문 안에는 스트레인저들의 현상금 역시 함께 걸려 있었다.
용준이 귀찮음을 무릅쓰고서 자유지원을 신청한 이유도 반은 그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처리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뚝-.
용건을 마친 용준이 전화를 끊었다.
그가 막 건물 앞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읏차.”
용준은 폭발 때 떨어져 나와 근처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쇠파이프 하나를 집어 들었다.
부웅-.
부우웅-.
그리고 두 차례 휘둘러보며 무게감을 익혔다.
쿵-!
콰아앙-!!
입구 가까이로 다가갈수록 건물 소음이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유리로 된 출입문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있었고, 그것을 밟을 때 마다 파삭거리며 바스라 지는 소리가 났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용준의 눈에는 서로 대치하고 있는 네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건물 안 가득히 검은 연기가 들어차 있긴 했지만, 용준은 간단히 자신의 시야를 확보했다.
이 정도는 그에게 아무런 방해거리가 되지 않는다.
주변상황을 주시한 결과 네 명의 사내들 중 두 사람은 은행의 가디언 헌터들이었고, 다른 둘은 스트레인저들이었다.
그들의 몸에 두른 자신들만의 표식들이 그걸 알 수 있게 했다.
이강신의 말로는 3명의 스트레인저가 현장에 있다고 했는데, 지금 여기에 나머지 한 사람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용준이 입구를 지나서자마자 검은 연기들 속에 모습과 기척을 숨기고 들어간 탓인지, 아니면 그들이 서로의 대치에만 집중하고 있는 탓인지, 넷 중 어느 누구도 지금 이 순간 또 다른 이가 현장에 개입한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용준은 가만히 싸움을 지켜보았다.
자신이 상대해야 할 자들을 직접 보며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제 아무리 실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헌터들 간의 싸움은 정보를 많이 모을수록 유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