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보이는 모든 것이 저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무서운 눈으로 노려본다. 콸콸거리는 개울물 소리마저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사나운 소리로 들린다.
노란 새는 보이지 않고,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고, 운몽은 혼자 개울가에 서서 가지도 오지도 못하는 어린 이방인이 되었다.
내 놀이터 같기만 하던 산이, 언제나 내 호령 한마디에 굽실거리던 나무들과 바위와 풀들, 그 모든 것이 죄다 낯설고 두려워졌다.
“사부님!”
소리쳐 불러보지만 개울 건너의 까마득한 벼랑에 부딪쳤다가 되돌아오는 공허한 메아리만 있을 뿐이었다.
무서워졌다. 온몸이 덜덜 떨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 버릴 만큼 무서웠다.
“와앙―”
운몽은 철푸덕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땀과 먼지로 꾀죄죄해진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리니 두 줄기의 자국이 볼에 새겨진다.
어린 마음에도 이제는 영영 사부님에게로 돌아갈 수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두려움이 더 커지기만 했다.
“와앙― 사부님―”
그래서 더 목청을 높여 울어보지만 사부님은 대답이 없고, 저를 불러냈던 노란 새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얼마나 울었을까.
콸콸거리는 개울물소리보다 컸던 울음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나중에는 낮은 흐느낌으로 변했다.
배가 고프고 몸이 고단한데 마음에 두려움으로 인한 상처마저 커서 지쳐 쓰러질 지경이 된 것이다.
그때 그 노란 새가 다시 지저귀었다.
“아니, 넌 누군데 이런 데에서 울고 있니?”
짜랑짜랑하고 맑은 음성이다.
운몽이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들었다.
거기, 노란 새는 재색 옷을 입은 작은 여자아이로 변해서 서 있었다.
목에 염주를 걸었고, 머리를 박박 밀어서 물가의 호박돌처럼 반짝이지만 운몽은 그 사람이 작은 여자라는 걸 금방 알아보았다.
열 살쯤 되어 보이는 비구니였던 것이다.
아직 보송보송한 솜털이 햇빛에 반짝이는 작은 여자 비구니가 이 깊은 산속을 혼자 배회하고 있다는 게 의아한 일이다.
그러나 운몽은 비로소 누군가를 만났다는 기쁨과 반가움으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길을 잃었어.”
훌쩍거리며 간신히 말하자 작은 비구니가 운몽 곁에 쪼그리고 앉았다.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혀를 찬다.
“쯧쯧, 눈이 퉁퉁 부었잖아. 그리고 이게 뭐니? 이리 와봐.”
꼬질꼬질한 볼을 꼬집고 물가로 데려가더니 씻겨주었다.
깨끗한 수건을 꺼내 잘 닦아주고 난 작은 비구니가 활짝 웃었다.
운몽은 눈이 부셔서 차마 그녀를 마주 볼 수 없었다.
“귀여운 아이네? 그런데 어쩌다가 이런 곳에서 길을 잃었어? 여기는 사람도 안 다니는 험한 곳인데, 산짐승이라도 만났으면 어쩔 뻔했니?”
“노란 새를 만났어.”
“노란 새?”
“응. 그 새를 따라왔는데, 나를 여기에다 내버려 두고 혼자서 날아가 버렸어.”
“풋.”
운몽의 천연덕스런 말에 작은 비구니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몇 살이니? 너, 정말 귀엽게 생겼다. 아기 보살 같아.”
“여섯 살. 너는?”
“나는 열 살이야. 그러니 너라고 부르면 안 돼.”
“그럼 누나라고 할까?”
잠시 생각하던 작은 비구니가 머리를 흔들었다.
“음, 그것도 곤란하겠다.”
“왜?”
“나는 구족계를 받고 비구니가 되었으니 속세의 인연을 모두 끊은 거잖아. 그러니 동생을 두면 안 되지.”
“왜?”
“구족계를 받았다니까.”
“왜?”
“에휴.”
운몽은 정말 몰라서 자꾸 왜? 라고 하는 건데 작은 비구니에게 그런 꼬마를 이해시킬 만한 말주변이 있을 리 없었다.
“가자, 내가 데려다 줄게. 그런데 어디에 사니?”
“반정도관.”
“반정도관?”
작은 비구니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이 산에 그런 곳도 있었나? 나는 어째서 전혀 듣지 못했을까?”
중얼거리더니 깜짝 놀라서 운몽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도관에 살다니, 그럼 너는 꼬마 도사였니?”
“사부님이 도사인데, 나는 도사인지 아닌지 모르겠어.”
“그래?”
작은 비구니가 다시 머리를 갸웃거리고 물었다.
“그럼 그 반정도관은 어디에 있어?”
“풍소애(風召崖) 위에 있지. 그것도 몰라?”
“풍소애?”
그 또한 작은 비구니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 어리둥절했다.
“요 꼬마 동자가 나를 놀리는구나? 어째서 한 번에 말하지 않고 자꾸 묻게 만드는 거야? 좋아, 그럼 그 풍소애는 어디에 있어?”
“학정봉 남쪽에 있지. 그런데 너는 정말 모르는구나? 왜 모를까?”
이번에는 운몽이 머리를 갸웃거린다.
그의 말을 들은 작은 비구니가 깜짝 놀랐다.
“너는 학정봉에 살고 있어? 거기에서 여기까지 온 거야? 혼자서?”
“응.”
잠시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하던 작은 비구니가 등을 돌리고 앉았다.
“업혀, 내가 데려다 줄게.”
“헤―”
운몽은 얼른 작은 비구니의 등에 매달렸다. 그녀가 운몽을 가뿐히 업고 일어섰다.
한참을 그렇게 숲을 헤치며 나아갔는데, 운몽이 아무리 작은 꼬마라 해도 비구니 또한 작은 소녀에 지나지 않았으니 힘들 것이다.
“무겁지 않아? 힘들면 내가 걸어갈게.”
“괜찮아. 하나도 안 무거워.”
“왜?”
“또 왜 소리를 하기 시작했구나.”
작은 비구니가 호호, 웃고 천천히 말했다.
“나는 사부님에게서 무공을 배웠거든. 너 같은 꼬마는 하루 종일이라도 업고 다닐 수 있단다.”
“왜?”
“무공을 배웠다고 했잖아.”
“무공을 배우면 힘이 세지는 거야?”
“힘이 세지고 몸이 가벼워지니 담력도 커지지. 그래서 나는 혼자 산속을 돌아다녀도 무섭지 않단다. 물론 너처럼 길을 잃어버리지도 않지.”
“응.”
저를 놀리는 말에 심드렁하게 대답하지만 운몽의 마음속에는 저도 무공이라는 걸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공을 배우면 노란 새도 잡을 수 있을까?”
“새는 잡아서 뭐 하게?”
“예쁘거든. 아주 고운 목소리로 노래도 해.”
“그런 새는 누가 저를 잡는 걸 싫어할 거야. 예쁜 건 그저 눈으로 보고, 고운 노래는 귀로 들어야 할 뿐이지. 그걸 잡으려고 하면 새를 괴롭게 하고 너도 괴로워져.”
작은 비구니의 말속에는 장차 그들의 운명을 예언하는 오묘한 뜻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정작 말을 한 작은 비구니는 물론 운몽도 그 의미를 까맣게 몰랐다.
“왜?”
“나중에 너도 알게 될 거야.”
운몽의 ‘왜?’ 하는 소리가 귀찮아졌는지 작은 비구니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운몽의 궁금증은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너는 왜 머리카락이 없어?”
“구족계를 받았다니까 그러네.”
“왜?”
“장차 불도를 깊이 닦아서 번뇌를 벗고 해탈하려고 그러는 거지.”
“머리카락이 있으면 안 되는 거야?”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번뇌는 머리카락만큼 많단다. 그걸 다 끊어버린다는 뜻으로 속세를 등지고 머리카락을 잘라 버리는 거야. 번뇌가 없어야 해탈하게 되거든.”
“그럼 너는 작은 여자 중이로나?”
“나는 너보다 네 살이나 많은데 자꾸 너라고 할래?”
“그럼 뭐라고 불러? 누나라고 부르지도 못하게 했잖아.”
“음, 그냥 운지(雲智) 스님이라고 불러라.”
“운지? 그게 이름이야? 무슨 이름이 그래?”
“구족계를 받았으므로 법명을 갖게 된 거야. 그러는 너는 이름이 뭐니?”
“운몽.”
“운몽?”
어리둥절하던 운지가 까르르 웃었다.
“너야말로 무슨 이름이 그러니? 네 이름이 더 이상하다. 구름속의 꿈이라니? 그럼 너는 매일 꿈만 꾸다가 말겠네? 호호호호.”
놀림을 당하자 운몽이 몸에 잔뜩 힘을 주고 뻗대었다. 운지를 힘들게 하려는 건데 그걸 안 운지가 ‘요 녀석’ 하더니 엉덩이를 꼬집었다.
“항복, 항복.”
운몽은 어느새 운지의 등에서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노란 작은 새를 다시 만났고, 그 고운 노래를 실컷 듣는지 벙긋벙긋 웃는다.
노란 작은 새가 더 이상 달아나지 않고 품에 안겨 재재거리는 꿈인지도 모른다.
“얘, 얘. 이제 그만 일어나.”
운지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눈을 뜬 운몽은 제가 어느덧 학정봉 아래의 오솔길에 와 있다는 걸 알았다.
“저 위가 학정봉이야. 여기서부터는 너 혼자서 찾아갈 수 있지?”
“응.”
“그럼 이제 그만 헤어지자. 나는 더 갈 수 없어.”
운지가 운몽을 내려놓았다. 서운해하는 얼굴이다.
운몽이 어리둥절해진 얼굴로 운지를 보고 오솔길을 보다가 물었다.
“왜?”
“사부님의 명이 있었거든. 누구도 학정봉에 이 이상 가까이 다가가면 안 돼.”
“왜?”
“아이, 참. 너는 그 소리밖에 모르니? 사부님의 명령이라고 했잖아.”
“알았어. 귀찮아서 그러는구나? 흥.”
운몽이 토라졌지만 운지는 한숨만 쉴 뿐 그를 달래주려 하지도 않았다.
“그럼 조심해서 올라가. 다시는 함부로 혼자서 멀리까지 나오지 말고.”
앙증맞은 손을 모아 합장해 보이고는 돌아선다. 그런 운지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운몽이 소리쳐 물었다.
“작은 여자 중아. 너는 어디에 살아?”
운지가 돌아보지도 않고 손을 들어 저 멀리를 가리켰다.
“저기.”
“저기 어디?”
“복호사(伏虎寺)에 산단다. 잘 있어.”
그녀의 작은 모습이 숲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운몽은 한참 동안이나 우두커니 서서 운지가 사라진 곳을 보고 또 보았다.
터벅터벅 도관으로 돌아온 운몽은 사부님께 꾸중 들을 것이 큰 걱정이었다. 그러나 마당을 쓸고 있던 광명존자는 ‘왔느냐?’ 그 한마디를 했을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늘 그런 사부지만 운몽의 마음속에 그때만큼은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사부가 물어보면 운지를 만났던 일을 재잘재잘 이야기하면서 다시 한 번 그때의 따뜻했던 감정을 떠올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부는 말이 없고, 쫑알거리기 좋아하던 꼬마 제자도 말이 없어졌다.
몇 날 며칠을 그렇게 보냈는데, 운몽의 가슴속에는 운지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커져만 갔다.
여섯 살 꼬마에게 그것은 모성에 대한 본능적인 그리움이었다. 운지의 등에 업혔을 때의 따뜻함과 부드러운 느낌은 처음 느껴보는 것이기에 더욱 간절해진다.
사부의 눈치를 보면서 닷새를 보낸 어느 날, 운몽이 불쑥 사부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호롱불을 밝히고 책을 읽던 사부가 의아해서 돌아보았다.
“아직 자지 않았느냐?”
“사부님,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응?”
“복호사가 여기서 얼마나 먼가요?”
“왜?”
“어디로 가야 찾을 수 있지요?”
“왜?”
“아이, 참. 사부님은 맨날 왜? 그 소리밖에 몰라.”
“흘흘, 이 녀석아, 네가 묻는 뜻을 알 수 없으니 그럴 수밖에.”
“그냥 가르쳐 주시면 돼요. 어떻게 가야 하지요?”
“왜?”
“아이, 참.”
운몽이 발을 구르며 짜증을 내자 광명존자가 미소를 지었다.
“너는 복호사라는 이름을 어디에서 들었느냐?”
“여자 중한테서요.”
“여자 중?”
“나보다 쬐끔 큰 여자 중인데 복호사에 산대요.”
“어디서 들었느냐?”
“저 아래 개울가에서요.”
“거기는 왜 갔던고?”
“아이, 참. 나는 한 가지만 물었는데 사부님은 대체 몇 가지나 물으시는 거예요?”
“복호사는 여기서 멀다. 그런데 왜? 찾아가려고?”
“예.”
“흘흘―”
당돌한 운몽의 대답에 광명존자가 다시 웃었다.
“이 녀석아, 두 개의 높은 산봉우리를 넘고 세 개의 골짜기와 다섯 개의 크고 작은 개울을 건너야 하는데 네까짓 꼬마 녀석이 어떻게 가?”
“그렇게나 멀어요?”
운몽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멀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사부의 말을 듣고 나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거기는 왜 가려고? 그 작은 여자 중을 만나려고 그러느냐?”
“몰라요!”
사부의 웃음과 눈길에 부끄러워진 운몽이 발끈 화를 내고는 우당탕거리며 나갔다.
그가 사라지자 광명존자의 얼굴에서 서서히 웃음이 사라졌다. 회한의 그늘이 드리워진다.
멍하니 등잔 심지를 바라보던 존자가 길게 탄식하고 책을 덮었다.